190화
콰아아아아앙!!
퀸급 프라구스를 노려 찔러 넣은 권격.
갑작스럽게 발발한 폭발에 모두의 이목이 내게로 쏠린다. 나는 손끝을 타고 전달되는 육중한 무게감을 느끼며 바닥에 내려오자마자 재차 무릎을 굽혔다 펴며 도약해 어리둥절해하는 늑대 여왕의 옆구리를 후려쳤다.
[웨루카의 베어 가르기]
오른손보다도 두 배는 큰 왼손을 활짝 펴 올려 치는 참격.
후우우우욱―
촤아아악!!
“……!”
다섯 가닥의 빛줄기가 갈기를 자르고 살점을 헤집자 1톤짜리 물탱크가 박살 난 것처럼 엄청난 양의 핏물이 쏟아져 나왔다.
신음을 내뱉지도 못할 만큼 고통스러운지.
끼깅거리는 비명은 들리지 않았다.
그나마.
“아우우우우!!”
“아우우우!”
덩달아 얼타던 커맨더급 개체 이하의 늑대들이 피를 보고서 퍼뜩 정신을 차리긴 했으나.
쿠구구구궁―
파지지직!
화르륵!
타이밍 좋게 호응한 신지유의 소환수들이 지반을 비틀고 불과 벼락을 퍼부으며 길목을 깔끔하게 차단해 준 터라.
나는 다른 데 신경 쓰지 않고 오직 퀸급 프라구스만을 응시하며 일대를 검푸른 장막으로 뒤덮었다.
[마력 전개]
우우웅!
화아아아악!
난 지금 누군가를 보호해야 하는 형편.
즉.
기술 싸움으로 치고받다가는 뒤편에서 생존자들이 다칠 가능성이 있어 가급적이면 파급력을 최소화하고자 아예 막아 버렸다.
아무도 날뛰지 못하도록.
[기술 ‘마력 전개’가 발동되었습니다.]
[시전자를 기준으로 일정 공간 내의 마력 흐름이 3분간 제한되며, 환경적 요인에 의한 제약이 차단됩니다.]
설령 퀸급 개체와 붙어도 뒤지지 않는 스탯을 갖췄기에 내릴 수 있는 판단이었다.
그러는 사이.
“다들 이쪽으로 오세요!”
드라이어드를 활용해 발목까지 푹푹 빠지던 눈을 밀어내고 목각 도로를 설치한 신지유가 의문의 무리를 인도해 던전을 빠져나가며 구조 작업 개시했다.
사람들은 우리의 난입에 당황하면서도 활로(活路)가 생기자.
“이, 일단 저쪽으로!”
“뭐, 뭘 믿고 저길…!”
“그럼 가만히 있다 뒈질 거야?! 닥치고 빨리 가!!”
믿네 마네 시끄럽게 떠들면서도 살고 싶다는 원초적인 욕망 아래 신지유를 통솔을 받으며 필사의 도주를 선택했다.
그네들이 달아나는 동안.
“아우우우우우우우!!”
“어딜.”
나도 마침내 의식을 되찾고서 울부짖는 퀸급 프라구스에게로 쇄도했다.
보통.
몸과 몸이 부딪치는 전투에선 당연히 덩치가 커야 좋다. 부딪치는 힘도, 찍어 누르는 힘도 전부 몸집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말이지.
참 신기하게도 이 법칙은 매번 통용되지 않는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 하던가.
“커헝!”
후우욱―
쿵!
쿠웅!
일견하기엔 분명 압도적인 체격 차이를 앞세운 놈이 나를 일방적으로 찍어누르는 듯했으나.
‘왼쪽.’
슈우우욱―
쿠웅!
‘오른쪽 대각선.’
사아악!
자세히 들여다보면 실속 없는 공격뿐.
오감(五感)을 넘어 육감(六感)의 영역에 발을 들인 나는 무척이나 자유롭게 활보하며 되레 기둥처럼 큼지막하게 서 있는 네 개의 다리를 사정없이 헤집어 놓고 있었다.
사족 보행형 괴수의 어쩔 수 없는 한계였다.
미꾸라지인 양 날뛰는 날 잡기엔 놈의 행동 방식이 너무나도 한정적이었으니까.
후우우욱!
촤아악!
“커허헝!”
또다시 베여 나가는 발목.
마력이 가미되지 않음에도 간단하게 살갗을 갈라 버리는 손톱에 피륙이 터져 나가는 통증을 느낀 놈이 목청이 떨어지라고 괴성을 질러 댄다.
혹은.
주둥아리를 벌리는 꼴을 보건대 프라구스 종(種)이 자랑하는 빙결 포탄을 쏘아 내려 하는 걸 수도 있다.
뭐가 되었든 간에.
나는 새로운 상처를 새겨 넣은 후 미련없이 물러났다.
파직!
‘왔군.’
좌측에서 전류가 튄 것에 대한 호응이었다.
미리 정해 둔 약조는 아니었으나, 구태여 말과 글로 주절주절 떠들어야 하는 사이는 오래전에 지났다.
“잘 있어라.”
슈우우욱―
[‘마력 전개’가 해제되었습니다.]
[재사용 대기 시간 : 23시간 59분 59초]
탓―
[풀루스의 돌진]
[가속]
파아아앙!!
사용자의 의사대로 펼쳤다가 거둬들인다는 ‘마력 전개’의 장점을 살려 느닷없이 작동을 중지하고 기술을 시전해 후퇴하자.
“……! 아우우우우우!!”
한 발 늦게 변화를 알아차린 놈이 허겁지겁 추격을 시도하며 뒤쫓아 왔다.
허나.
이미 간격은 무지막지하게 벌어진 마당인 데다가.
[그림자 걸음]
툭―
파아앙!
이 와중에 반대편으로 환영을 보내며 혼란을 빚어 주니 순식간에 수백 미터까지 벌어졌고, 안 그래도 거센 설풍(雪風)이 더해지며 이내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멀어진 다음이었다.
* * *
얼마나 달렸을까.
던전의 끝자락에 다다를 무렵.
“오빠! 아윤 오빠!”
날 마중 나온 한세정과 만났다.
‘고주파 신호기’로 한 번.
“지유에게 대강 얘기 들었어요! 저기로 가면 돼요!”
앞서 나갔던 신지유에게 두 번.
간략하게나마 상황이 어찌 돌아가는 중인지 이야기를 들은 그녀는 가타부타 대화 나누기보단 즉시 반전해 곽재우 등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
[↓]
[↘]
도처에 새겨 놓은 화살표에 의지해 던전 인근 빌딩 숲을 가로질러 3분 여쯤 가다 보니.
“형! 여기요!”
웬 건물 근처에서 서성거리던 신지운이 칼자루를 흔들며 우릴 이름 모를 가게로 데려갔다.
집기를 치운 건지.
와서 치워놓았는지 의자나 테이블조차 없는 텅 빈 식당으로.
중앙에 구출해 온 이들이 옹기종기 모여앉아 모닥불을 쬐며 꽁꽁 얼어 있던 몸을 녹이고 있었고, 신지유와 곽재우는 양옆에서 그들을 감시하는 중이었다.
조이령만 보이질 않았는데.
슬쩍 운을 띄우자.
“혹시 몰라 화장실 가는 척 후문을 막아 달라고 했어요. 주방 쪽에 후문이 있더라구요.”
한세정이 귓속말로 그 내막을 설명해 주었다.
끄덕―
이에 고개를 주억거린 나는 슬며시 입구로 가서 자리 잡는 그녀를 두고 뚜벅뚜벅 걸어가 너덧 걸음 앞에 섰다.
그러자.
조용하게 속삭이다 말고 후다닥 입을 다물고는 두려운 눈빛으로 내 눈치를 살피는 인파.
의도는 아니었을지언정 퀸급 프라구스를 상대로 무력을 선보였던지라 나라는 미지의 인물에 대해 굉장한 공포를 갖고 있는 듯했다.
작금의 시대는 주먹이 법인 시국이었으니까.
“우, 우리를 어쩌려는 거요……!”
그 탓인가?
아무런 위해도 가하지 않았거늘.
도리어 생사의 갈림길에서 오도 가도 못 하는 걸 구해 준 실정임에도 리더로 추측되는 남자의 주둥이에선 감사 인사보다 공포에 휩싸인 물음부터 튀어나왔다.
퍽.
어처구니없는 첫마디였다.
다만.
감격해 주길 바란 적도 없었기에 가볍게 무시하고 역으로 물었다.
“당신들의 소속은 어디인가. 왜 프라구스들과 싸우고 있었나. 대답만 제대로 하면 살려 보내겠다.”
무미건조한 목소리와 담담한 어투.
존대는커녕.
문장 말미에 여차하면 최악의 광경을 맞이하게 되리란 뜻을 담아 살기(殺氣)를 흘리자.
“……!”
내가 쏘아 보낸 살의가 완벽하게 전송된 듯.
급격히 핼쑥해진 남자의 눈알이 파르르르 떨린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난 신지유에게 입구를 맡기고, 다가오는 한세정과 칼자루를 쥐고 대기하던 곽재우에게 한 명씩을 붙여 각기 다른 공간에서 심문하라 지시했다.
일종의 위협이었다.
거짓으로 답했다가 서로의 답변이 다르기라도 하면 결코 아름다운 결말은 없을 거라는.
이 조치가 남자에게는 막대한 압박감을 선사했는지.
“…우, 우리는 도망자일 뿐이오.”
제법 진실된 표정으로 침을 꿀꺽 삼키곤 입을 열었다.
“도망자?”
“그렇소……. 원래는 한강 근교에 거주하다 사흘 전쯤에 이쪽으로 내려왔소.”
“왜지?”
“왜긴 왜, 겠소……. 괴물들 때문이지. 누구인진 몰라도 최근 괴물들의 능력이 미친 듯이 강화되면서 사냥은 물론 식량 구하기가 극도로 어려워졌지.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우리 같은 이들에게는 더더욱.”
“음…”
“그래서 살려고 남하해 온 거요. 지금 서울은 정부나 ‘킹덤’ 같은 대형 길드가 아니면 사방에 깔린 던전과 매일매일 쏟아져 나오는 몬스터들로 지옥이 따로 없었소.”
“…….”
쭉 이어지는 독백에 나는 작게 미간을 찌푸렸다.
‘황금 마크’를 노리는 어느 집단의 파견 부대일 확률이 제일 높다고 예측했건만, 실상은 내가 ‘괴물의 원수’를 달성하면서 미친 여파로 도망자가 된 난민들이었다.
칭호를 획득하던 날 상상은 했었다.
저들처럼.
자의와 관계없이 피난길에 오르는 사람들이 나올지도 모르겠다고.
당시에는 갈 길이 바빠 심각하게 상념치 않았으나, 이리 몸소 목격하고 나자 마음이 불편했다. 온전히 내가 원인이었다 주정하기는 애매해도, 그렇다고 또 완전히 관련 없다 말하기는 힘들었으니 말이다.
“쯧.”
그러한 곡절에 절로 혀를 차던 찰나였다.
나지막하게 읊던 대사를 마친 남자는, 잠시 침묵하다 한숨을 푹 내쉬고는 다시금 입술을 달싹이며 뒷말을 붙였다.
“것보다 우릴 구해 줘서 고맙소. 그래도 목숨을 구원받았는데, 보답을 해 주진 못하더라도 고맙다는 말 한마디는 해야겠지.”
“…….”
아직 경계의 눈초리는 지워지지 않았으나, 그와는 별개로 진심을 다해 허리를 숙이는 남자.
나는 그를 가만히 쳐다보다 복귀한 한세정과 곽재우에게서 허언이 없었음을 확인한 후에 사람들에게 가도 좋다는 말을 전했다.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아서인지.
떨떠름한 낯빛으로 우릴 바라보던 난민들은 우리가 말을 바꾸기라도 할까 무서웠는지 거듭 감사를 표하곤 헐레벌떡 떠나갔다.
원하기는.
남자가 언급했던 '킹덤'이나 여타 거대 조식에 관해 묻고 싶은 게 있었으나, 실체를 깨닫고 나니 뭔가를 물어기가 꺼려졌다.
"적당히 보호해주다 와줘."
"네."
신지유를 보호자로 비밀스레 대동시킨 것도 같은 의미.
그리 마무리되던 참이었다.
타다다닷-
“…?”
기왕 들어온 김에 휴식이나 취할까 싶어 한세정들에게 쉬다 가자고 하려던 직전 바깥에서 뜀박질 소리가 내부에 울려 퍼졌다.
괴물인가?
설마 프라구스들이 이 악물고 따라오기라도 했나, 반사적으로 마력을 끌어올리며 나가니.
“음? 저 사람은…”
“아까 그 남자 옆에 있던.”
머리카락 한 올 남기지 않고 사라졌던 피난민 중 하나가 유턴해오고 있었다.
“허억, 허억… 헉……”
거친 호흡을 몰아쉬며 당도한 20대 초중반의 청년은 복부를 틀어쥐며 숨을 고르고는 내게 다가와 떠듬떠듬 왜 되돌아왔는지를 밝혔다.
“건수 형님이 알려주고라고 했습니다.”
“건수? 아까 대화했던 남자의 그 사람인가?”
“예. 형님께서 서울로 올라가는 거라면 킹덤과 나머지 주요 길드에 관한 정보가 필요할거라고…”
“아.”
구명의 은혜를 보답하기 위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