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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메라의 기억법-186화 (185/232)

186화

【 황금 표식 】

“천천히 잡아 보자.”

“네. 지운아, 지유야. 우선 솔져급으로 다섯 마리만 데려와 줘.”

“저쪽 공터로 끌고 올게요.”

“광역 탐색. 음……. 아, 저깄다.”

한세정의 부탁에 애병을 꼬나쥐며 전방으로 달려 나가는 신씨 남매.

동이 트는 대로 개인 훈련과 식사를 마치고 ‘던전 : 골갑의 초원’으로 향한 우리는 아침나절부터 전투에 돌입했다.

오늘의 목적은 체크.

침략군들이 얼마나 강력해졌는지를 몸소 체험하고자 이곳으로 왔다.

근력 혹은 특이 타입에 비해 내구 타입이 덜 위험할뿐더러 공격 패턴이 무척 단순한 스랄레오는 실험용으로 쓰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았으니까.

“500퍼센트라고 했던가.”

“다섯 배면… 솔져가 나이트급 정도는 된다는 거겠죠?”

“그보다 강하지 않을까 싶은데.”

“형! 왔어요!”

“꾸이이이익!”

“꾸이이익!”

“잡아 보면 알겠지.”

“가 보겠습니다.”

한세정과 대화를 주고받던 차에 들려온 하울링에, 철퇴와 방패를 패용한 곽재우가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 성큼성큼 유인 장소로 걸음을 옮긴다.

2m의 덩치에 풀 풀레이트 갑옷이 더해져 웬만한 괴물보다 더욱 괴물 같은 신장의 거인은 뚜벅뚜벅 걸어 나가더니.

“꾸이이이이이익!”

“꾸이이익!”

“꾸이이이익!”

“하압!”

돌진해 오던 스랄레오들의 전면을 그대로 막아섰다.

마력은 일정 사용치 않는 순수한 육체 격돌이었다.

후우우우욱―

콰앙!

“꾸이이이익!!”

“꾸이이익!!”

당연하게도 승자는 곽재우였다.

3차 환골탈태를 통해 평범한 인간의 범주를 아득히 초월해 버린 상황이라.

후욱―

쾅!

“꾸에엑―!”

중무장한 육체는 태산 그 자체였다.

횡으로 휘둘러진 철퇴에 맞아 나가떨어지는 멧돼지들.

“꽤 무겁다. 맨손으로도 해봐야겠어.”

철제 갑주에 비견되는 견고함을 자랑하던 백골갑이 맥없이 박살 나 흩날리는 가운데, 곽재우는 좀 더 세밀하고 꼼꼼한 검사를 위하여 무기도 내려놓고 박투를 벌였다.

5분, 10분, 30분…….

“형! 또 가요!”

“지운아! 이번엔 이쪽으로 보내 줘.”

“아! 넵! 누나!”

신지운의 계속되는 풀링을 토대로 한세정과 조이령에 이어 나도 솔져급에서 커맨더급으로 단계별 난이도를 높여 가며 과거와 현재의 차이를 체감하는 데 주력하길 한 시간여.

“꾸이이이이익!”

[칼리아스의 마력 방패]

후우우욱―

쾅!

카가가가각!

“뚫리지는… 않네.”

천천히 떠오르던 태양이 완연한 빛을 갖출 무렵.

기본 공격력과 방어력을 비롯해 반응 속도라든가, 스랄레오 종(種) 특유의 돌진 기술들까지 세세하게 위력 점검을 마친 나는 홀가분하게 주먹을 들며 퇴각 명령을 내렸다.

이래저래 필요한 자료는 전부 수집한 터라.

1차 탐사의 마침표를 찍은 우린 멀찍이 물러나 임시 거점으로 정한 상가 안쪽에 모닥불을 피워 놓고 앉아 개개인이 느낀 바를 주제로 대화를 나누며 휴식을 취했다.

끽해야 일이백여 마리.

딱히 컨디션적으로 난항을 끼칠 만한 숫자는 아니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태여 회복을 강조했다.

이제.

‘퀸’을 상대할 차례이기 때문이었다.

까딱하다간 퀸급 스랄레오로 이루어진 부대와 전쟁을 치르게 될 판국에.

거주지에 설치된 ‘초목의 안전지대’와 십이지신(十二支神)를 필두로 한 골렘 부대에 나와 한세정들이 전심전력으로 임한다면, 설령 열 마리가 한꺼번에 달려든다 한들 막아 낼 수야 있겠지만.

그랬다가 누군가 크게 다치거나 혹은 돌이키지 못할 최악의 사태가 벌어질지도 모르는 실정이니.

“푹 쉬어 둬. 예측하지 못한 사고가 터지더라도 문제없도록.”

* * *

바스락―

[〈던전 : 골갑의 초원〉에 입장하셨습니다.]

[‘칭호 : 점령하는 자’가 발동합니다.]

[현재 〈던전 : 골갑의 초원〉에 존재하는 적의 숫자가 표시됩니다.]

[4등급 : 7]

[3등급 : 439]

[2등급 : 3,598]

[1등급 : 9,997]

[총합 : 14,041]

발에 밟힌 풀잎에 옅게 흩어지는 소음 너머로 주르륵 펼쳐지는 현황판.

“만 사천이라…….”

다른 것보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일만을 훌쩍 넘겨 버린 합계였다.

규모로는 최고를 자처하던 절망의 파도마저 저리 가라 할 만큼 어마어마한 수치.

저 괴물들 사이에서 어떻게 퀸급 개체만 뽑아낼 수 있을는지 스멀스멀 올라오는 막막함 감정에 나도 한세정들의 미간이 와락 찌푸려졌다.

그러나.

해야만 하는 일이었기에,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잡념들을 억지로 떨쳐 내며 최대한 안전한 방법을 고안해 내고자 머리를 굴리던 나는.

“…이렇게 해 보자.”

심사숙고 끝에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유인조로는 나와 지유가 간다.”

“저요?”

“공중으로 날아갈 거야. 놈들의 기척에 걸리지 않게끔 간격을 유지하며 파고 들어가다 가장 바깥쪽에 존재하는 타깃을 노려 도발 후 끌고 나온다.”

“하울링이라도 터트리면 어떡하죠……?”

“어그로가 끌리는 즉시 남쪽으로 내려갈 거야. 내가 직접 미끼가 되어 빠져나갈 테니 신경 쓰지 말고 한 가지만 해줘.”

“한 가지라면…….”

“타깃이 던전 밖으로 빠져나가는 순간, 그 타이밍을 노려 일차적으로 길을 갈라 추격을 지연시켜. 원거리 공격도 없고 하니 벽을 세우고 다시 하늘로 도망친다면 널 쫓는 녀석은 없을 거다.”

“넵.”

똘망똘망한 눈빛으로 답변하는 신지유에게서 시선을 거둔 난 곽재우에게 다음 지시 사항을 전달했다.

“곽재우, 네 역할도 지유와 비슷해. 아래쪽에 대기하고 있다가 내가 타깃과 함께 지나가면 앞전과 마찬가지로 벽을 세워 길목을 차단하는 거다.”

“알겠습니다.”

“그 후 근처 빌딩 옥상으로 가서 지유와 같이 움직여.”

“예.”

“셋은, 미리 출발해서 적당한 공터를 만들어 두고 은신해 있다가 내가 도착하면 좌우로 선회해 최종 저지선을 구축하고 추격해 오는 놈들의 진로를 방해한다. 등급 간의 속력 격차를 이용한 작전이니 뒤쫓아온다면 최소 커맨더, 어쩌면 퀸급일 수도 있을 거다. 마력이고 뭐고 아끼지 마.”

“넷!”

“넷!”

“넷!”

“넷!”

“넷!”

완벽하다 자부하긴 어려워도.

나름 최선의 방안이라 생각되는 전략을 설명하자 깔끔하게 해내리라 다짐하듯 마주 주억거린 한세정들이 표식으로는 무엇을 남길지, 중간 합류 지점은 어디로 할 것인지 딱딱 정하고는 각자의 위치로 산개한다.

“우리도 가자.”

“네, 흔들바람!”

후우우욱―

휘우우우우우욱!

시간적 흐름을 맞추고자 약간을 더 머무르던 나와 신지유도 이내 바람에 안겨 창공 위로 솟구쳤다.

살결을 스치는 대기를 가르며 단박에 100여 미터 상공에 다다른 우리가 날개 없이 중력을 거스르며 던전 심처로 이동하길 잠시.

[감각 증폭 : 시력]

파아아아악!

급격하게 확장되는 시야를 근간으로 희멀건 구름 틈바구니를 뚫고 지상을 굽어보자.

“꾸이이이이익!!”

“꾸이이이익!”

땅덩어리를 가득 메우며 발 디딜 구석 하나 없이 득실거리는 스랄레오 떼가 보였다.

머리 위쪽, 어깨 부근, 척추를 위시한 등딱지 등.

각 등위에 맞게 돋아난 골갑을 구경하며 전진하다 보니 채 3분이 흐르기도 전에 원하던 목표가 나와 신지유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꾸이이이이이이익!!”

쿠우우웅!

전신이 새하얀 골갑으로 뒤덮인 8m가량의 거체가 퍽 위압적인 퀸급 스랄레오였다.

“오빠, 저기.”

“나도 봤다. 이만 내려갈 테니 조심해서 와.”

“전 괜찮으니 걱정하지 마시고, 오빠도 다치지 마세요.”

“그래.”

안녕을 기원하는 신지유의 말에 짤막하게 대답한 나는 지체 않고 그대로 뛰어내렸다.

줄 없는 번지 점프.

투웅―

후우우우우우욱!!

한 줄기 유성이 되어 지면에 내리꽂혔다.

콰아아아앙!!

쿠구구구궁―

어찌나 거칠게 처박혔는지 알려 주듯 요란하게 비명을 질러 대는 대지.

그 강렬한 촉감을 온몸으로 느끼며 착지한 나는 곧장 굽혀졌던 무릎을 펴며 전방으로 도약했다.

[풀루스의 돌진]

타닷―

파아앙!

“꾸이익?”

어리둥절한 기색을 표하며 멍청하게 서 있던 사냥감의 안면으로.

[오르그의 파괴 본능]

[강격]

후우우욱―

콰아아아아앙!!

* * *

딸깍―

[이벤트 발발까지 남은 시간 : 19일 23시간 59분 59초]

또 한 장의 페이지가 넘어가 어느덧 20일 안쪽으로 진입한 타이머.

활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매우 빠르게 흘러가는 나날 속에서 우린 많은 변화를 겪었다.

두 마리씩을 남겨 둔 곽재우와 신지운을 제외하고 한세정과 조이령, 신지유가 ‘괴물의 원수’를 달성했거니와.

“전 이걸로 구매했습니다.”

[구입 예정 목록 : 곽재우]

《철혈기사단장의 하사품 : 광신》

- 등급 : 유일

- 설명 : 오로지 누군가를 수호하는 데에 전념을 다했던 「철혈 기사단」의 단장이 자신이 아끼던 부단장 중 ‘충정의 기사’라 불렸던 이에게 하사한 철퇴. 대상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피를 보는 것도 불사하는 탓에 종종 ‘광신(狂臣)의 기사’라 놀림받았던 그의 신념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 옵션 : 원본(原本) 등급 기술 ‘붕괴격’ 사용 가능 / 원본(原本) 등급 지속형 기술 ‘아머 브레이킹’ 발동 / 내구 22% 상승 / 근력 +18 / 용기 +15(해당 능력치 미보유 시, 아이템을 소유하는 동안 한시적으로 개방)

*발동형 기술―붕괴격 : 마력 주입 시 매 타격마다 주변 1m에 강한 충격파 발생

*지속형 기술―아머 브레이킹 : 방어와 관련된 모든 것을 파괴하는 행위 시 기본 공격 및 기술 위력 10% 상승

[구매가 : 4등급 근원석 열세 개]

《철혈 기사단장의 하사품 : 삼각 성패》

- 등급 : 유일

- 설명 : 오로지 누군가를 수호하는 데에 전념을 다했던 「철혈 기사단」의 단장이 자신이 아끼던 부단장 중 ‘거인의 방패’라 불렸던 이에게 하사한 방패. 중앙에 솟아 있는 세 개의 뿔은 수호자로서 가져야 할 신념과 의지, 희생을 상징한다.

- 옵션 : 원본(原本) 등급 지속형 기술 ‘절대 맹세’ 발동 / 원본(原本) 등급 지속형 기술 ‘기사회생’ 발동 / 내구 22% 상승 / 내구 +18 / 의지 +15(해당 능력치 미보유 시, 아이템을 소유하는 동안 한시적으로 개방)

*지속형 기술―절대 맹세 : 본인이 맹세한 대상보다 ‘앞(최대 50m)’에 서 있을 시 모든 신체 능력치 7% 상승, 단 맹세 대상의 사망 시 사흘간 모든 능력치 30% 하락

*지속형 기술―기사회생 : 본인이 맹세한 대상보다 ‘앞(최대 50m)’에 서 있을 시 일격 필살을 당하지 않는다.

[구매가 : 4등급 근원석 열두 개]

곽재우의 신형 철퇴와 새 방패를 마지막으로 한세정들의 병기 보강도 완료됐으니까.

거의 보름여를 기해서 이룩한 결실.

나는 그 훌륭한 결과물을 바라보며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슬슬 때가 됐군.”

마침내.

세상 미면에 감춰진 비밀을 찾아갈 만한 준비가 되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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