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화
‘특수 퀘스트 : 괴물의 원수’.
이에 대한 초기 감상평은 그저… 종말이 찾아온 후로 접하고 클리어한 무수히 많은 퀘스트 정도였다.
사냥을 다니다 보면 자연스레 깨지겠거니 싶은.
그러다.
해당 임무의 가치와 몸값이 확연하게 달라지게 된 건, 녀석이 ‘단서’ 중 하나였음을 알게 되면서였다.
인류의 존망을 좌지우지할 ‘특수 조건’으로 향하는 실마리라니.
전혀 예상치 못한 이야기에 흡사 벼락을 맞은 듯했고, 그날을 기점으로 미적지근하게 대하던 내 심정도 급변했다.
언젠가는 깨겠지 하던 수준에서 반드시 깨야 한다는 각오로.
동시에.
궁금해졌다.
대체 ‘괴물의 원수’가 무엇인지, 그 뒤편에 어떤 결말이 기다리고 있는지.
《칭호 : 괴물의 원수》
- ‘다수의 퀸급 개체’를 살해하는 특별한 업적을 달성한 대상에게 부여되는 칭호. 본 칭호의 소유자는 〈차원 : 테라〉를 침범한 「모든 침략군」과 대면 시 신체 능력치가 7% 상승하며 가진 경험과 역사를 바탕으로 무장한 당신은 쉬이 ‘위압’에 눌리거나 ‘공포’에 빠지지 않는 등 정신적인 면으로 뛰어난 방호력을 갖추게 됩니다.
또한 본 대상이 「침략군」을 살해할 시 매회마다 0.01% 체력과 마력이 회복되며 피로도가 감소합니다. 회복 및 감소 효과는 현재 체력(또는 마력) 보유량이 총 보유량의 50%에 이를 때까지 지속됩니다.
“아……!”
그 호기심의 첫 번째 단락이었던 업그레이드된 칭호까지는 일단 감탄사를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오르그, 발록, 콜루베르 등.
특정 종(種)이 아닌 지구를 침공한 전체 종(種)에 대한 능력치 향상.
이것만으로도 가히 엄청난 옵션일진대.
비록 총량의 절반이란 리미트 라인이 그어져 있기는 해도, 근래 들어 눈덩이처럼 불어나던 마력 소모량을 해결해 주는 데다가 심지어 피로에도 영향을 끼치니 그야말로 최상위 버프였으니까.
허나.
나는 윗단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뒤따라 생성된 대사가 날 난처하게 만든 탓이었다.
[지금부터 666초에 걸쳐 〈차원 : 테라〉로 향하는 모든 「침략의 문」에 적용되어 있던 일부 조건이 삭제 혹은 조정됩니다.]
[‘말소 조항 1 : 파워 밸런스’에 의거하여 각 등급별 「침략군」의 능력치가 최대 500%에서 최소 30%(자세히 보기▼) 증가합니다.]
[‘말소 조항 2 : 홈 어드밴티지’에 의거하여 모든 「침략군」은 〈던전〉 내부에서 다양한 이점(자세히 보기▼)이 활성화됩니다.]
[‘개정 조항 3 : 이송 제한’에 의거하여 각 등급별 「침략군」의 이송 숫자가 기존의 열 배로 변경됩니다.]
[남은 시간 : 666초]
“…….”
하나하나가 생사(生死)와 직결되는 대목들.
일순간 호흡이 턱 막혀 말이 안 나왔다.
이는 한세정들도 마찬가지인 듯 다들 벙찐 표정으로 나를 돌아보는 중이었다. 앞으로 ‘종족의 원수’를 거머쥐어야 할 사람들이니 아마 나보다도 몇 배는 황망할 터.
띠링!
그로 인해 서로 당황스러운 시선만 교환하던 차에 다시금 울려 퍼지는 산뜻한 신호.
‘또……?’
미간을 찌푸린 채로 시선을 돌리자.
[축하합니다!]
[위대한 업적을 세운 당신의 ‘정보’가「아카식 레코드」에 기록됩니다.]
[‘두 번째 할당량’을 달성한 당신에게 ‘자격’이 부여됩니다.]
[‘특이 사항’란에 「자격 : 원정 대장」이 추가됩니다.]
눈앞의 공간이 일렁거리며 커다란 홀로그램 화면을 토해 냈다.
그 안을 본 이후.
“……?!”
내 동공은 한없이 커다래졌다.
《자격 : 원정 대장》
- 설명 : 정해진 법칙을 따라 설정된 ‘첫 번째 할당량’을 채워 〈특수 퀘스트 : 깃발을 쟁취하라〉의 도전 기회를 부여받고, 나아가 ‘두 번째 할당량’인 〈자격〉을 확보한 당신.
합당한 증명을 마친 당신에게 합당한 보상을 선물하리니.
「원정 대장」의 권좌가 바로 그것이며, 본 격을 부여받은 대상은 두 가지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
- 진실을 보는 눈 : 세계 이면에 감춰져 있던 전장으로 향하는 길목의 표시 「황금 마크」의 흔적을 읽어 내는 안목이 활성화되었습니다.
- 원정대 모집 : 최대 100명의 원정대를 모집 가능합니다.
┗주문 ‘원정대 참여’로 공모
┗참여 시 ‘특이 사항’란에 〈원정대원〉 표기
┗〈원정대장〉의 자율 아래 자유로운 입퇴 허용
┗현재 모집 인원 : 0/100
아무리 노력해 봐도 발견하지 못했던 ‘황금 마크’에 관한 비밀이 내포돼 있기 때문이었다.
“이래서였나…….”
나는 ‘진실을 보는 눈’이라는 명칭과 상세 정보를 확인하며 깊은 탄식을 쏟아 냈다.
어쩐지.
갖은 공을 들였음에도 털끝조차 보이지 않더니만.
드디어 밝혀진 원인과 더불어 그간 헛수고를 했다는 상념이 겹쳐지니 왠지 관자놀이가 뻐근해지는 기분이었다.
* * *
“돌아가자.”
“네.”
“네.”
“네.”
“네.”
“네.”
자칫하면 퀸급 개체만 열 마리, ‘지원 요청’을 고려하면 당최 몇 마리와 겨뤄야 할는지 미지수인 바.
추이를 지켜볼 겸 666초가 흐르기 전에 ‘던전 : 포효하는 분노’에서 빠져나온 우린 아예 거점으로 복귀해 그간의 보상품들을 깔끔하게 정리하기로 결정했다.
루카누스부터 무루에 이르기까지.
격파한 던전만 한가득이라 물건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당장 1층 로비에 널려 있는 ‘선물 상자’만 해도 그랬다.
[‘루카누스 던전 퀘스트 보상 선물 상자(진귀)’를 일곱 개 습득합니다.]
[‘콜루베르 던전 퀘스트 보상 선물 상자(진귀)’를 열네 개 습득합니다.]
[‘크루톤 던전 퀘스트 보상 선물 상자(진귀)’를 여섯 개 습득합니다.]
[‘무루 던전 퀘스트 보상 선물 상자(진귀)’를 여덟 개 습득합니다.]
기본급과 특수급을 죄다 팔아치우고도 진귀급 상자만 수십 박스라 유일급 아이템 드랍 가능성에 기대어 일일이 끈을 풀어 헤치기 시작한 자리.
한 번에 3~40여 개의 상자를 깐 덕택인가.
“나, 나왔다!”
“뭐가 나왔다고?”
“방어구요!! 특별 등급 방어구!”
전과 다르게 성과도 제법 괜찮았다.
아니.
괜찮다는 말로는 부족할지도 몰랐다.
“음? 나, 나도 나왔는데?”
“저도…….”
첫 타자였던 신지운을 스타트로 도합 세 개나 되는 특별 등급 장비를 뽑았으니 말이다.
다들 세트 아이템으로 무장한 상태라 곽재우가 획득한 장신구를 빼면 나머지는 판매용에 불과했지만.
적어도.
[‘3등급 근원석 : 아라운다’를 습득합니다.]
이런 것보단 백배 나았다.
“형님, 여깄습니다.”
나는 발치 앞에 깔려 있던 근원석들을 옆으로 치우고 곽재우가 건네준 반지를 받아 옵션을 살펴봤다.
《수중의 암살자》
- 등급 : 특별
- 분류 : 장신구
- 설명 :행성 ‘패디카(Pedica)’의 지배종 「아라운다」의 근원석을 가공하여 제작한 반지. 무려 ‘커맨더’ 등급의 「아라운다」에게서 추출된 근원석이기에 담긴 기운이 결코 적지 않다. 그래서인지 착용하는 것만으로도 순발력이 향상한다고 전해진다.
- 옵션 : 순발력 5% 상승 / 속성 +12 / 하루 3회 원본(原本) 등급 기술 ‘수중 급습’ 사용 가능 / 특수(特殊) 등급 기술 ‘파도 호흡법’ 사용 가능
*발동형 기술―수중 급습 : 오직 ‘환경 : 수중’에서만 시전할 수 있으며, 목표 설정 시 최대 10m까지 빠르게 쏘아져 날아간다.
*발동형 기술―파도 호흡법 : 하루 1회 10분간 호흡 및 자유 유영이 가능해진다.
“흐음.”
순발력 이외에 속성 스탯이 올라가는 것도 그렇고, 내게 국한돼 있던 수중전 능력을 키워 주는 것도 그렇고.
성능이 썩 나쁘지 않다.
여러모로 유용하게 쓰일 만한 아이템.
“세정이가 쓰는 게 나으려나.”
“아무래도 그럴 것 같습니다.”
“수고했어.”
“아닙니다.”
상승치를 감안했을 때.
한세정에게 최적화된 타입으로 보여 반지의 주인은 그녀로 정해졌다.
1차 정리가 마무리된 뒤엔 ‘근원 수정’이라든지, ‘금색 교환권’이라든지 하는 것들을 분류해 처분 및 복용 시간을 가졌다.
‘근원 수정’의 경우 대체로 근력 등의 기본 스탯 위주라 먹을 만한 게 거의 없었지만.
아라운다에게서 가져온 건 속성 스탯을 올려 주는 덕에 신지유가 무척 기꺼워했고, ‘금색 교환권’이야 기술은 물론 특성으로도 바꿀 수 있는지라 아주 불티나게 팔렸다.
“오빠, 근원석은 어떻게 할까요?”
“아이템으로.”
그 밖에.
남은 근원석은 대부분 장비를 구매하는 데 투자했다.
[침략군 등급별 강화 수치]
- 솔져급 : 500%
- 나이트급 : 300%
- 커맨더급 : 100%
- 퀸급 : 30%
- ?
[던전 내 이점 적용 목록]
- 체력 및 마력 회복 속도 22% 상승
- 기술 위력 및 시전 속도 22% 상승
- 영역 내부 서 ‘도망치는’ 먹잇감 추적 시 이동 속도 11% 상승
말소 조항 1과 2의 여파로 미친 듯이 강해져 버린 괴물들에게 대항하기 위한 무장 정비가 필수였다.
안 그래도 상점 레벨이 올라가면서 조만간 교체할 예정이었기에 망설임은 없었다.
단지.
“꽤… 비싸네요.”
“그러게. 50개 100개씩 달라는 건 아니라 다행이긴 한데…….”
유일 등급으로 맞춰야 하는 만큼 비용이 상상 이상이라는 점이 골칫거리라면 골칫거리였다.
[구입 예정 목록]
1. 한세정
《살왕 베놈케벨의 수십품 No_9 : 진(眞) 모르드(Moord)》
- 등급 : 유일
- 설명 : 베놈 케벨(Venom Kebel). 이름 모를 차원에서 독으로 유명하다는 살수 집단의 일급 살수만이 하사받는 최상등품의 칼 ‘모르드(Moord)’의 진체.
조직의 초대 창시자였던 살왕(殺王) 베놈 케벨(Venom Kebel)이 손수 수집해 온 무구 중 하나로, 실제 작전에도 몇 차례 쓰였을 만큼 능히 명검의 반열에 드는 작품이다.
- 옵션 : ‘속성 : 독’과 관련된 모든 기술의 위력 35% 증가 / 원본(原本―Master) 기술 ‘베놈 소드’ 사용 가능 / 속성 22% 상승 / 순발력 17% 상승 / 마력 +25
*지속형 기술―베놈 소드 : 마력 주입 시 독 속성 블레이드 생성, 검격의 궤적을 따라 독기가 흩어진다.
[구매가 : 4등급 근원석 열 개]
조이령의 말처럼.
수십 개씩 내놓으라는 강짜는 없지만, 무려 4등급 근원석을 바쳐야 하기 때문.
보통 방어구를 포함해 무기까지 적어도 5정을 구입한다고 계산하면…….
“한 사람당 50개에서 70개는 필요하다는 소리인가.”
“어휴, 그 많은 걸 언제 다 모으죠?”
“뼈가 빠지다 못해 박살 나겠는데……?”
‘4등급 근원석만 300여 개를 구해야 한다’라.
가히 천문학적인 금액에 한숨이 절로 튀어나왔으나.
그나마.
퀸급 개체들은 전리품을 떨궈준다는 것을 위안으로 삼으며 잘해보자는 말로 어깨를 짓누르는 부담감을 떨쳐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