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화
《던전 : 독수의 땅》
- 이곳은 행성 ‘어맨다(Amanda)’의 지배종 「크루톤」의 영역입니다. 포악한 성질로 살아 있는 모든 걸 먹어 치우는 그들은 수중 보행이 가능한 본인들의 능력을 과시하고자 물줄기가 흐르는 장소를 찾아 영토화합니다. 그리고 오염시킵니다. 한 번, 두 번…….
물속을 유영하며 ‘독낭’에서 분비된 독으로 천천히, 모든 생명체들의 삶을 지탱해 주는 생명수를 그 누구도 마시지 못할 치명적인 독수로 말이죠.
그러니 주변에 「크루톤」들이 살고 있다면 물을 멀리하십시오. 갈증을, 더위를 피하려다 죽음을 맞이하게 될 터이니.
└던전 입장 시 ‘던전 전용 퀘스트’가 자동 진행됩니다.
└던전 전용 퀘스트 : 역지사지
《던전 전용 퀘스트 : 역지사지》
- 이 퀘스트는 오로지 ‘던전 : 독수의 땅’에서만 진행 가능하며, 강대한 힘을 기반으로 포악함을 키워 나갔던 「크루톤」들의 성향이 핵심인 임무입니다.
닥치는 대로 물어뜯고 찢어발기며 언제나 포식자의 위치에 서 있던 그들.
하지만.
세상은 결코 만만치 않으리니.
이 세상에 또다른 하늘이 있음을 알려 주십시오. 본인이 갖고 놀았던 피식자들의 입장이 어떠했는지, 체감하게 해 주십시오. 그들에게 ‘공포’를 선사하는 겁니다.
└공포 상태에서 처지된 수 : (0/~)
└나이트 등급 「크루톤」 공포 이후 처리 시 ‘x5’만큼 추가 적용
└커맨더 등급 「크루톤」 공포 이후 처치 시 ‘x8’만큼 추가 적용
└퀸 등급 「크루톤」 공포 이후 처치 시 ‘x12’만큼 추가 적용
던전 입성 직후 주르륵 출력된 메시지들.
개중.
나는 전용 퀘스트 부분에 주로 눈길이 갔다.
“공포라.”
특이하게도.
감정의 변화, 정신적 상태 이상을 유발해야 되는 형태인 까닭이었다.
난이도로 따지자면 여태껏 겪어 왔던 수많은 퀘스트 중에서도 단연 최상위 랭크를 차지할 미션이었다.
따로 멘탈을 뒤흔드는 디버프 류의 관련 기술이 없다면 매일같이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괴물들을 단순히 무력만으로 두려워하게끔 만드는 작업은 절대 쉽지 않았기에.
그래서 등급별로 붙는 배수가 다른 곳에 비해 높게 책정된 모양.
‘이렇게 되면… 추후 정리는 내가 맡아야 하려나.’
다행스럽게도 내게는 공포 유발용 기술이 존재하기는 했으니까.
《오리지널 기술 : 군단을 파괴하는 본능》
- 등급 : 체화
- 단계 : 1/7
- 설명 : 행성 ‘웨이노르(Waynor)’의 지배종인 「오르그」만이 개화 가능한 기술이었으나, 이제는 누군가의 개성이 더해져 새로운 방식으로 진화된 기예(技藝)일지니. 특성 ‘다대일’과의 결합으로 특히 대군(大群)을 격파하고 군단(群團)을 괴멸하는 데 특화되었다…….(중략)
폭발이 가라앉은 뒤 살아남은 대상은 ‘잃은 체력’에 비례하여 ‘혼란(50% 이하)’, ‘공포(75% 이하)’, ‘절망(90% 이하)’이 부여된다.
이를 잘만 사용한다면 퀘스트 수행에도 적잖은 도움이 되리라.
문제는.
‘과연 마광포를 맞고도 생존하는 개체가 있느냐인데……. 시도는 해 봐야겠지.’
음.
내가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사이.
“자, 다들 받아.”
“고마워, 세정아.”
“감사합니다.”
“언니, 잘 쓸게요!”
“감기약처럼 생겼네요? 어릴 땐 감기약 진짜 싫어했는데.”
“지운아, 넌 지금도 어려.”
“에이… 곧 있으면 나도 어른이야.”
“어른은 무슨, 고등학교나 가고 말해.”
“쳇.”
한세정들이 농담을 주고받으며 뭔가를 나눠 가졌다.
자그마한 통에 담긴 푸른색 알약 100개와 빨간색 알약 50개였다.
한세정이 ‘차원 상점’을 오가며 공수해 온 재료로 제작한 두 가지 해독제였다.
《손수 제작한 마비 치료제》
- 등급 : 비범
- 분류 : 소모품
- 설명 : 누군가의 따스한 손길이 갈무리된 알약입니다. ‘상태 이상 : 마비’에 특화되어 있으나, 사본(寫本) 등급의 여러 독에도 적잖은 효과를 발휘합니다.
- 옵션 : 복용 시 ‘상태 이상 : 마비’ 해소 / 33% 확률로 사본(寫本) 등급의 독 해소
《손수 제작한 대단한 마비 치료제》
- 등급 : 특별
- 분류 : 소모품
- 설명 : 누군가의 따스한 손길이 갈무리된 대단한 알약입니다. ‘상태 이상 : 마비’에 특화되어 있으나, 원본(寫本) 등급 이하의 여러 독에도 적잖은 효과를 발휘합니다.
- 옵션 : 복용 시 ‘상태 이상 : 마비’ 해소 / 22% 확률로 원본(原本) 등급의 독 해소 / 80% 확률로 사본(寫本) 등급의 독 해소 / 복용 후 5분간 사본(寫本) 등급 단기형 기술 ‘독성 저항’ 발동
* 단기형 기술―독성 저항 : 5분간 사본(寫本) 등급의 독기로부터 자유로워집니다.
직접 제조했다고는 믿기 어려운 퀄리티의 아이템들.
이것만 있어도.
최대 골칫거리인 마비 독 따위는 아무런 말썽이 되지 않으리라.
비록 퀸급이나 커맨더급 크루톤들을 상대로도 완전히 안전해졌다 확신하지 못한다만, 이외에도 ‘해독 포션’이나 ‘피독주’의 구비로 만반의 준비를 마쳐 놓은지라 우린 일말의 망설임 없이 안쪽으로 발을 내밀었다.
* * *
각종 해독제를 앞세운 우리는 뇌우(雷雨)를 동반한 태풍처럼 휘몰아치며 금세 퀸급 크루톤의 목덜미까지 들어갔다.
특히.
“총공세든 지원 요청이든 하기 전에 죽여야 해!”
“얼릴게요!”
이번 타임의 공략조로 나선 조이령과 신지유는 ‘던전 : 거구의 수림’에서 빚었던 사고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가급적 빠른 속도로 나아갔다.
동일한 연유로.
나 역시 이젠 미끼조가 아닌 공략조 곁에 합류해 있었다.
경력이야 부족함 없이 쌓았으니.
우선은 ‘괴물의 원수’ 칭호부터 완수해서 한세정들이 애먼 데에 심력 쏟지 않게끔 해 주자는 생각이었다.
덕분에.
“그어어어어어어!!”
[오리지널 기술 천공의 문 / 얼음꽃]
[오리지널 기술 : 절대 물러서지 않는 용]
[오리지널 기술 : 군단을 파괴하는 본능]
퀸급 크루톤은 자신의 위압감을 제대로 드러내지도 못하고 연달아 가해진 세 번의 오리지널 기술에 당해 쓸쓸히 퇴장해 버렸다.
작정하고 펼쳐 낸 공세였기에.
후우우우욱―
콰과과과광!!
‘정보 교환기’로 알아낸 취약 속성으로 전신을 올려놓고 양방향에서 치고 들어가는 연타를 버티는 건 불가능했다.
[축하합니다!]
[「크투론 : 퀸급」 개체 사냥에 성공했습니다.]
[보상으로 ‘칭호 : 종족의 원수’에 「크루톤」 종(種)이 추가됩니다.]
“여긴 확보됐고.”
단숨에 부숴 버린 육체.
나는 칭호란에 새로운 정보가 기록되는 걸 체크하고서 한세정들에게 이동을 알렸다.
오늘로 ‘특수 퀘스트 : 괴물의 원수’를 완료하고자.
파죽지세(破竹之勢)라는 표현이 꼭 어울릴 만큼 쾌속하게 무루의 서식지로 발걸음을 돌렸다.
내 기억과 신지운의 레이더가 결합된 나침판을 필두로 나아가는 길.
“크허허허허헝!!”
“크허허허헝!”
“아! 찾았다!”
[축하합니다!]
[〈던전 : 포효하는 분노〉에 입장하셨습니다.]
[해당 공간에서 활동하는 동안 〈던전 전용 퀘스트 : 부서지지 않는 방패〉가 진행됩니다.]
대략 한 시간여의 수색 끝에 당도한 무루의 던전.
도처에 깔린 나무에 복숭아와 닮은 복슬복슬한 과일이 노란빛을 뽐내고 있는 것을 제외하면 구조는 대체로 무난했다.
“가자.”
“넷!”
“가시죠.”
나는 한세정과 조이령을 대동하고서 퀸급 무루의 후방을 노렸다.
무루는 포타우스 종(種)과 비슷하게 성질이 폭급한 타입이라 한세정과 곽재우, 신지유가 바깥쪽으로 화려하게 어그로를 끌어 주자마자 등장해 준 터라 뒤를 노리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선수는 내가.”
조이령은 퀸급 무루가 나타나자 즉시 창을 들고 달리며 옆구리를 가격했다.
[오리지널 기술 : 절대 물러서지 않는 용]
우우우우우웅!
파아아악!
타격을 먹이면 좋고, 그러지 못해도 시선 끌기용으로는 제격인 창룡(蒼龍)이 눈부신 빛을 발하며 공간을 격하고 날아든다.
그 거대한 살기의 집합체를 감지한 퀸급 무루는 도망이나 회피 대신 맞대응을 택한 듯.
“크허허허헝!!”
세상이 떠나가라 괴성을 내지르며 집채만 한 앞발을 휘둘러 왔다.
검붉은 마력이 뜨겁게 타오르는 묵직한 일격과 창룡(蒼龍)의 격돌.
콰아앙!!
휘우우우우욱!!
충돌의 중심에서 피어나는 후폭풍.
흙먼지와 나뭇잎 등.
가시거리가 채 1m도 안 될 듯이 거칠게 밀려오는 풍압에 풀 쪼가리고 거석이고 모조리 뽑혀 나갈 무렵.
번쩍!
뭔가가 반짝였다.
누구도 인지할 수 없이 굉장히 은밀하고 신속하게 솟구친 빛무리는 검은 별 하나를 남기고 소멸되었다.
푹―
“크헝?!”
“안녕.”
[‘사신의 눈물’이 발동되었습니다.]
[극독의 사신이 당신의 마력을 대가로 원합니다.]
이 위험한 표식이 각인되었음을 깨달았을 땐.
[오리지널 기술 : 영원토록 붕괴하는 대지]
툭―
콰과고과과과과광!!
“크허허허헝!!”
대지의 감옥이 육체를 봉인한 다음이었다.
나는 역할을 다한 한세정과 조이령에게 미끼조로 가 있을 것을 지시하고는 단독으로 대치하며 서서히 거리를 좁혀 갔다.
뚜벅―
뚜벅―
마력 공급이 끊기지 않게 유지하며 가까이 전급해 가니.
“크허허헝! 크허헝!”
놈은 갈라지고 부서지는 지반에 엉켜 연신 나뒹굴면서도 나를 똑바로 노려봤다.
아는 거 같았다.
본 사달이 누구로 인해 벌어졌는질.
후우욱!
콰직!
콰드드득―
허나.
의외의 탈출력을 선보였던 포타우스와 달리 놈에게는 이렇다 할 비책이 없는지, 발버둥을 치면서도 계속해서 깊은 심연 속으로 빨려 들어갈 따름이었다.
[오리지널 기술 : 군단을 파괴하는 본능]
[형태 변화]
[일격 태세]
제 심장에 커다란 구멍이 뚫릴 때까지도.
나의 퀘스트는.
슈우우우욱!
쿠웅!
콰과과과과과광!!
[축하합니다!]
[「무루 : 퀸급」 개체 사냥에 성공했습니다.]
[보상으로 ‘칭호 : 종족의 원수’에 「무루」 종(種)이 추가됩니다.]
그걸로 끝이었다.
띠링!
[축하합니다.]
[〈특수 퀘스트 : 괴물의 원수〉를 완료하셨습니다.]
[보상으로 ‘칭호 : 종족의 원수’가 ‘칭호 : 괴물의 원수’로 성장합니다.]
[보상으로…….]
“후……. 드디어 됐나.”
모루의 사망이 선고된 순간 출력되는 메시지들.
촤르륵 올라오는 문장의 파도를 맞이하며 나는 홀가분은 심정으로 탄성을 내뱉었다.
사나흘이면 오래 걸린 것도 아닐진대.
필시.
이게 ‘단서’와 관련된 무언가이기 때문이리라.
딱 그런 생각을 하던 차였다.
띠링!
[〈차원 : 테라〉의 누군가가 「칭호 : 괴물의 원수」를 달성했습니다.]
[정해진 법칙에 의거하여 지금부터 〈차원 : 테라〉내에 존재하는 ‘간섭력’의 제한이 일부 해제됩니다.]
그 글귀가 허공에 수놓아진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