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화
‘던전 전용 기술 : 지원 요청’.
보통.
던전 내부에 거주하는 괴물의 8할에서 9할이 제거되었을 시에 가동되는 일종의 필살기.
한번 사용되면 그동안 처치한 수와 거의 동일한 수치의 적과 다시 싸워야 하니 분류하자면 꽤나 위험한 부류에 속할 것이다.
일반적인 생존자들에게는.
실력이 받쳐 준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위기를 기회로 만든다는 말처럼, 능력 있는 이들에게 있어서 파견된 원군은 그저 더 많은 근원석을 수급할 수 있는 축제의 장으로 변모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삐이이익―
[〈던전 : 거구의 수림〉의 ‘던전 전용 기술 : 지원 요청’이 발동되었습니다.]
[해당 던전과 연결된 행성 ‘에칸스(Ekans)’로부터 지원군이 전송됩니다.]
[해당 ‘던전 전용 기술’은 발동 이후 〈차원 : 테라〉의 시간으로 일주일간 봉인됩니다.]
“떴군.”
메시지를 봤음에도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전개였고.
콰아앙―
쾅!
연달아 턴진 굉음으로 견주어 보아 공략조도 제 역할을 다한 듯하니.
이동 통로인 ‘균열’이 창공에 생성되었다는 점.
15m? 20m?
웬만한 빌딩도 단박에 집어삼킬 크기라는 게 다소 낯설었지만, 어찌 되었든 이대로 조금만 기다리다 오는 연락에 맞춰 구렁이의 목을 베면 되리라 싶었다.
그랬는데.
예상이 깨졌다.
오판이었다.
파직!
“…음?”
창공을 가르는 균열의 등장 시점만 하더라도 무미건조하던 육감의 변화.
파지직!
파직.
살갗이 따끔거리다 못해 감전이라도 된 양 격렬하게 요동치는 직감의 경고가 그걸 명확하게 인지시켜 주었다.
근거는 또 있다.
단순 촉 따위와는 비견을 불허하는 훨씬 명백하고 명쾌한.
“쒸에에에엑!”
“쉬에에에에엑!”
부우우웅―
부우웅―
콰아아아앙!!
실물 증거가.
삐빅―
[현재 〈던전 : 골갑의 초원〉에 존재하는 적의 숫자가 표시됩니다.]
[4등급 : 3]
거기까지 인지하고서.
“뛰어!!”
나는 곧장 외쳤다.
즉시.
쫓아오라고.
커맨더급 이하의 나부랭이들과 놀아날 때가 아니었다.
공략조가…….
내게 여왕의 목을 바치겠다고 마력을 탈탈 털었었을 조이령과 곽재우, 신지운의 목숨이 위태로웠다.
[가속]
타닷―
콰아아앙!
* * *
“쒸에에에엑!”
“쉬에에에에엑!”
부우우웅―
부우웅―
콰아아아앙!!
추락했다고 해야 할까, 강림했다고 해야 할까.
무어라 표현하든 현 상황에서 그게 딱히 중요한 포인트는 아닐 거다.
당장은.
슈우우우욱!
슈욱!
퀸급 콜루베르들의 공세를 막아 내는 게 수십, 수백 배는 더 급급했기에.
“하아!”
쿵!
[천강홍의장군]
[오리지널 기술 : 철벽의 요새]
쿠구구구구구궁!!
곽재우는 한치도 멈칫거리지 않고 지면에 방패 하단을 세차게 박아 넣으며 성벽을 쌓아 올렸다.
이거저거 따질 겨를이 없었다.
새롭게 추가된 두 마리에.
“쉬에에에에엑!!”
“재우 씨! 저기!”
“…젠장!”
이때다 싶었는지 아윤에게 넘기려고 내버려 두었던 기존의 한 마리도 어렵사리 대가리를 쳐들며 달려들고 있어 무려 세 마리나 되는 데다가.
[‘던전 전용 기술 : 총공세’가 발동되었습니다.]
[〈던전 : 거구의 수림〉 내에 존재하는 「콜루베르」 종(種) 전체가 당신을 향해 진군해 옵니다.]
[〈던전 : 거구의 수림〉 내에 존재하는 「콜루베르」 종(種) 전체의 모든 신체 능력치가 10% 상승합니다.]
[〈던전 : 거구의 수림〉 내에 존재하는 「콜루베르」 종(種)의 기술 위력이 10% 상승합니다.]
‘총공세’로 강화까지 된 마당이라 초장부터 최선의 패를 꺼내야 했다.
후우우욱!
후우욱!
콰와아앙!
콰과광!
암녹색(暗綠色)의 기운이 서려 불타오르는 꼬리가 간발의 차이로 완성된 성채를 사정없이 두들긴다.
흡사 채찍으로 후려치듯 강맹하게 휘갈기는 연격과 활짝 벌어진 주둥아리에서 쏘아져 날아오는 포격.
잇달아 가해지는 묵직함에 요새 전체가 들썩거린다.
“크읍……!”
금강지체나 호신강기 등.
여러 요인 덕분에 직접적인 피해는 없었지만, 가중되는 무게감에 비례하여 뭉텅이로 빠져나가는 마력이 원인인지.
고통스럽지 않음에도 쌓여 가는 탈력감에 절로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 모습에.
“재우 씨…….”
“형, 제가―”
조이령과 신지운이 서둘러 창칼을 쥐고 일어섰다.
제아무리 방어에 특출난 곽재우라도 그리 오래 버티지 못할지니 휴식은 집어치우고 참전하려는 모양이었다.
이제껏 사용한 거라고는 ‘오리지널 기술’ 한 방이 끝이라 체력은 아직 널널한 바.
충분히 싸울 수 있다.
“내가 왼쪽을 맡을게! 지운이 네가 오른쪽으로 가 줘.”
“네! 누나!”
“조심해……!”
“넵!”
설사.
3 대 1로 실시했던 전투를 일시적으로나마 홀로 감당해야 하는 탓에 짙은 긴장감이 스멀스멀 피어오를지언정.
“가자!”
“하아아아!”
나아가기로 작심했고, 또 반드시 나아갈 수 밖에 없었다.
“쉬에에에엑!!”
후우우우욱―
콰앙!
콰드드드득―
“제, 엔장!”
결코 무너지지 않으리라 여겼던 견고함의 상징이, 곽재우의 장막이 발광하는 이무기들의 괴력 앞에 무참히 격파되는 중이었으니까.
하여.
그 전에 얼른 칼을 빼 들어야 했다.
늑장 부리다 방벽이 정말 파괴되기라도 하면 아윤과 일행이 오지 않는 한은 오리지널 기술을 표출해 낼 찬스는 사실상 없으리니.
우우우우웅!
우우웅!
조이령과 신지운은 1분 1초가 아깝다는 걸 온몸으로 드러내며 각기 창과 검에 마력을 주입하고는 전력으로 내질렀다.
부디.
“흐아아아아!”
“하아아아!”
이 기예의 끄트머리에 아윤이 도착해 주기를 기원하며.
[오리지널 기술 : 절대 물러서지 않는 용]
[오리지널 기술 : 일도양단]
우우우우웅!
후우우우욱!
길게 뻗어 나가는 창룡(蒼龍)과 참격(斬擊).
극도로 압축된 두 개의 빛무리가 곽재우의 양옆을 스치듯 지나가며 다시금 꼬리를 휘두르려던 콜루베르들을 급습했다.
일방적으로 폭력을 행사하던 놈들이 재차 공격하는 박자를 절묘하게 노려 격발한 일종의 카운터펀치는 훌륭하게 제 소임을 수행해 냈는지.
콰아아앙!
촤와아아아악!
“쉬에에엑!”
“쉬이익!”
어떤 하모니보다 아름다운 비명이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빠지시죠!!”
“지운아, 뒤로!”
“네엣!”
곽재우와 조이령, 신지운은 그 감미로운 선율을 넘겨 흘리며 ‘철혈의 요새’를 해제함과 동시에 후다닥 뒤로 물러났다.
자고로 여왕이란 체화급으로 최소 두 방은 먹여야 쓰러지는 무지막지한 자식들.
즉.
나뉜 힘으로는 한시적인 제동을 거는 게 최선이라 퇴각만이 살길이었다. 물론 쉽지는 않았다.
“쉬에에에엑!”
“쉬이이익!”
퀸급 콜루베르들이 떨어져 나오고서 비어 있던 공간을 타고 넘어와 어느새 주위를 꽉 봉쇄한 하위 등급의 괴물들이 그 이유였다.
이에.
“제가 선두로 갑니다!”
곽재우는 양손에 든 철퇴와 방패를 부러지라 붙들고서 전위로 나서 손수 길을 뚫었다.
그도 괜찮은 형편은 아니었으나.
피로감이든 보존량이든 상대적으로 덜한, 조금이라도 우위에 있는 터라 몸을 아끼지 않고 불살랐다.
[태산압정]
[마력 변형술 : 거인의 철퇴]
[강격]
“후아!”
후우우우욱―
콰아아앙!
콰드드득―
일행 내에서나 탱커 포지션을 맡고 있지 본래라면 딜러로 가도 전혀 손색이 없는 남자가 곽재우다. 그는 꾹 참고 눌러 왔던 무력을 뽐내기라도 하듯이 단숨에 수백 단위를 깨부수며 발 디딜 틈 없이 꽉 막혀 있던 혈로(血路)를 개척해 나갔다.
너무나도 힘들었지만.
의외로 역경을 파헤치는 곽재우의 입가엔 미소가 걸려 있었다.
“형!”
뒤쪽에서 들려온.
분명 위급한 시국임에도 불구하고 싱글벙글 웃으며 외치는 신지운의 목소리 때문이었다.
“와요!”
누가?
구태여 질문은 던지지 않았다.
당연히.
슈우우우욱!
콰아아아앙!!
“형님!”
그일 테니.
* * *
[가속]
[그림자 걸음]
[풀루스의 돌진]
탓―
파앙!
불어오는 바람에 실려 내딛는 일보.
일행의 안전이 위혐당했다고 여겨 낼 수 있는 전속력으로 쾌보를 밟아 눈 깜짝할 새에 살기로 번들거리는 퀸급 콜루베르의 목전에 다다른 나는 굳게 쥔 주먹을 뻗었다.
조이령에게 당했나.
몸통 한쪽이 맹수의 발톱에 의해 할큄당한 것처럼 깊게 패어 피투성이가 된 채로 퇴각하던 곽재우들을 쫓아와 물어뜯으려 대가리를 들이밀던 놈은.
[강격]
[오르그의 파괴 본능]
후우우우욱―
콰아아앙!
“쉬에에에엑!!”
어떠한 예측은 고사하고 아예 감지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난데없이 복부를 가격하는 손길에 허리가 기역 자로 팍 꺾여 바닥을 나뒹굴었다.
본디 뱀은 유연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동물이라 통상적으로는 ‘허리가 꺾인다’ 하더라도 치명상을 입진 않을진데.
놈은 터져 나가는 살점과 비산하는 핏물 속에서 도통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필시…
콰직!
콰드득-
상처 부위를 정확하게 타격한 덕택같았다.
“후.”
나는 분수처럼 튀는 흠뻑 뒤집어쓰며 슬쩍 옆을 돌아봤다.
“아윤 오빠!”
“형님!”
“형!”
옮겨가는 시선을 따라 보이는 셋의 얼굴.
다행히 아무도 다치지 않은 듯 크게 모난 부분은 없었다.
해서.
수고했고, 또 이젠 쉬어도 좋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여준 뒤 재차 걸음을 떼었다.
처음부터 던전에 살고 있던 ‘꼬리 잘린 구렁이’를 완전한 영명에 이르게하고자.
[풀루스의 돌진]
탓-
쿠우웅!
“쉬에에에엑!!”
가는 길에 오리지널 기술에 맞고도 생각보다 멀쩡한 3번 콜루베르(2차 일도양단의 과녁이 되었던 개체)가 내 옆구리를 비집고 들어오며 심장을 탐했으나.
가볍게 무시했다.
이곳에는…….
“흔들바람! 산지기! 드라이어드! 묶어!”
휘우우웅!
쿠구구궁!
촤르르르륵!!
“사신의 눈물.”
스르릉―
콰직!
나만 있는 게 아니었기에.
“오빠, 가세요!”
든든히 뒤를 받쳐 주는 한세정과 신지유.
제 역량을 모조리 개방한 두 여인의 서포트를 받으며 난 거침없이 전장을 활보했다.
사냥감으로 지정한.
“쉬이이이이익!”
“찾았군.”
우우우웅―
활동력을 완벽하게 상실해 마력탄을 발사하는 데 주력 중인 1번 콜루베르의 눈앞까지.
그리고는.
[웨루카의 베어 가르기]
슈우욱!
“죽어.”
일말의 재고 없이 허수아비처럼 목울대만 울컥거리는 적의 두개골을 사선으로 그어 갔다.
촤아아아아악!!
“쉬에에엑!”
날카롭게 뻗어 간 검세는 겨우 목숨 줄을 연명하던 놈의 살가죽은 허무하리만치 쉽게 썰려 나가며 시뻘건 핏줄기를 토해냈다.
아쉽게도 한 번에 머리통이 두쪽나진 않았지만.
[오르그의 파괴 본능]
잠깐 삶이 연장되었을 뿐.
수웅!
콰과과광!
[축하합니다!]
[「콜루베르 : 퀸급」 개체 사냥에 성공했습니다.]
[당신이 세운 위업에 대해 지급할 보상품 선정이 완료되었습니다.]
[보상으로 ‘칭호 : 종족의 원수(콜루베르)’가 추가합니다.]
정해진 결말은 내가 바라던, 우리가 바라던 대로 흘러갈 따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