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키메라의 기억법-181화 (180/232)

181화

[축하합니다!]

[〈던전 : 거구의 수림〉에 입장하셨습니다.]

[해당 공간에서 활동하는 동안 〈던전 전용 퀘스트 : 기습 회피〉가 진행됩니다.]

철갑 사슴벌레.

아니.

기사 사슴벌레라고 해야 하나.

뭐가 됐든.

루카누스들의 던전 ‘절삭의 충왕’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온 우리는 점심을 기해 콜루베르들의 영역 ‘거구의 수림’으로 이동했다.

“아아, 진짜 울창하네요.”

“그치? 이런 데서 사냥을 해야 한다니……. 제대로 보이긴 하려나?”

“몇 미터씩 하신다니까 긴장만 유지하면 잡아 내지 않을까요?”

“하지만 우린 아윤 오빠만큼 감각이 예민하지 않은데.”

“하긴. 형은 엄청나시죠.”

정면에 펼쳐진 빼곡한 나무 숲을 두고 관람보다 공략법을 먼저 고민하는 한세정들.

종말 몇 달 만에 전문 사냥꾼이 다 됐다 싶은 담소를 잠시 구경하다 감상이 끝났을 즈음.

[〈던전〉 입장을 확인했습니다.]

[‘칭호 : 점령하는 자’가 발동합니다.]

[현재 〈던전 : 골갑의 초원〉에 존재하는 적의 숫자가 표시됩니다.]

[4등급 : 1]

[3등급 : 162]

[2등급 : 1,568]

[1등급 : 4,719]

[총합 : 6,450]

규모를 인지한 후 일행을 둘로 나눴다.

“곽재우, 신지운. 그리고… 조이령.”

“네.”

“네.”

“네.”

“이번 전투는 셋이 공략조로 나선다.”

“지유야, 잘해 보자.”

“언니만 믿고 갈게요.”

“나만 믿기는. 셋도 조심해서 다녀와. 무리하면 안 되는 거 알지?”

이틀 만에 익숙해진 3-3 포메이션.

서로에게 당부의 인사를 건넨 한세정들은 각자의 위치로 가더니 지체 않고 전쟁의 신호탄을 터트렸다.

콜루베르라는 종(種)의 정보야 던전에 진입하면서 살펴봤기에 진격하는 데에 망설임은 없었다.

“청염, 흔들바람.”

그 선두는 신지유였다.

“모조리 태워 버려.”

미끼조가 된 소녀는 시야를 가리는 데다가 기습의 발판으로 쓰이는 수풀을 굳이 놔둘 필요가 없다 여긴 듯 우선적으로 불과 바람을 이용해 우거진 녹음(綠陰)부터 지워 없앴다.

화르르륵!

후우웅!

돌풍이 인다.

청염의 푸른 불꽃이 가미돼 빨간색, 주황색, 파란색이 아름답게 뒤섞인 화마(火魔)는 전방을 집어삼키며 모든 걸 재로 만들었다.

아마존 대수림마저 단숨에 태워 버릴 기세.

그러나.

신지유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드라이어드까지 전선에 투입시켜 화력을 키웠다.

“드라이어드. 나무들을 심층부 방향으로 꺾어 줘.”

우우우웅!

촤르르르륵!!

촤르르륵―

소녀와 정령.

두 개체가 발현해 낸 마력에 이끌려 한쪽으로 기우는 초목에 탑승한 퍼런 마귀는 무섭도록 성장해 나가며 금세 던전 초입을 휘감았다.

딱 그 무렵이었다.

“쉬이이이익!”

“쉬이이이익!”

콰아앙!

쾅!

숨어서 기습의 기회를 엿보던 구렁이들이 파괴되는 터전에 참지 못하고 대가리를 내민 것은.

단단히 화가 났는지.

수가 수백 마리에 달했다.

물론.

그래 봐야 던전 가장자리에서 서식하는 솔져급, 끽해야 나이트급 언저리였기에 화재를 진압하기는커녕 지연시키는 것조차 하지 못했다.

“쉬에에에에엑!”

휘우우욱!

쾅―

콰과광!

그나마.

에칸스(Ekans) 행성에서도 산불에 당한 경우가 종종 있었는지, 몇몇 녀석들이 주변 나무를 부숴 불길의 고리를 끊어 보려는 시도를 가하기는 했으나… 이미 걷잡을 수 없을 수준으로 커진 불씨는 놈들의 노력을 비웃고 조롱하며 세계를 망칠 뿐이었다.

재앙.

자연에서 창초된 정령과 환수들이 빚어내는 모순의 재해 앞엔 한없이 무력했다.

“쉬에에에에엑!”

“쉬이이이익!”

결국.

콜루베르들은 불 끄기를 포기하고 머리를 돌렸다. 그래도 알기는 아는 거 같았다. 작금의 형세를 뒤집을 방법은 우리를 잡는 것 외엔 없다는 걸.

그게.

“온다.”

“지유야, 너는 하던 거 마저 해. 이쪽은 내가 처리할게”

“네, 언니!”

쉽지 않아서 문제였지만 말이다.

“후. 가자.”

[독사 지옥]

우우우우우우웅!

짧게 호흡을 내쉬며 쏟아 낸 마력.

독기가 충만한 수십 마리의 자홍색 뱀들이 콜루베르들을 향해 득달같이 물어뜯었다.

적게는 두 배.

많게는 네다섯 배 이상 차이 나는 체구임에도 거침이 없었다.

알기 때문이었다.

콰아앙!

콰앙―

콰과과과광!!

붙으면 무조건 이긴다는 사실을.

한세정의 기술 ‘독사 지옥’은 한층 강력해진 위력을 선보이며 구렁이 떼를 일거에 소멸시켰다.

독과 관련된 기술의 위력을 18% 증가시켜 주는 즉살검 ‘모르드(Moord)’.

여기에.

《체질 : 독인》

- 설명 : 전신이 독으로 이루어진 육체의 소유자. 혈액을 넘어 땀과 침을 포함한 수분을 시작으로 본인 의지에 따라 살점과 머리카락까지도 독으로 변형 가능한… ‘독(毒)’을 다루는 자들에게 있어서는 꿈의 경지라 해도 부족하다.

- 옵션 : 특수(特殊) 등급 기술 ‘내가 곧 독이요, 독이 곧 나로다’ 개화 / ‘속성 : 독’과 관련된 모든 기술의 위력 20% 상승

독인으로 거듭나며 더해진 시너지 효과가 이룩해 낸 결과였다.

“얼마든지 와 봐.”

[독사 지옥]

후우우욱―

사아아아아아!!

한세정은 그 무지막지한 대미지로 저지선을 구축했고, 이를 바탕으로 신지유는 더더욱 가열하게 소란을 일으키며 던전을 흔들었다.

그러길 얼마간.

휘우우우우욱―

콰아앙!!

“쉬에에에에엑!!”

한창 두 여인의 활약을 지켜보던 중에 멀리서 커다란 폭발음과 고막을 찌르는 괴성이 연달아 들렸다.

“시작됐나.”

슬슬 저쪽에서도 활동을 개시한 듯싶었다.

나는 느긋하게 그 광경을 바라보며 ‘고주파 신호기’를 만지작거렸다.

여유롭게 진행되는 일정.

순풍을 만난 돛처럼 순탄한 과정이라 내가 뭘 할 게 없었다.

갑작스럽게.

파직!

“…음?”

본능을 건드리는 무언가가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 * *

화르르륵―

화륵!

“후, 덥다, 더워. 이렇게 먼데도 뜨겁네.”

푸른 하늘로 치솟는 매캐한 연기와 바람에 실려 오는 후끈한 열기에 장난스레 농담을 던진 조이령이 늘어뜨렸던 창의 창대를 꽉 쥐며 슬그머니 왼손 주먹을 올렸다.

출발하자는 사인에.

끄덕―

끄덕―

무언으로 응답한 곽재우와 신지운도 각기 철퇴와 방패, 칼을 들고서 삼각형으로 편대를 구성해 좌우를 경계하며 퀸급 콜루베르를 찾아 전진했다.

전위는 신지운이 맡았다.

기습이 특기인 적들과 대적함에 있어서는.

[광역 탐색]

삑―

삐빅―

아윤을 제외한 일행 중 가장 뛰어났으니까.

‘세 시에 둘, 열한 시에 여섯…….’

공중에 켜 둔 레이더.

시전자의 눈에만 보이는 탐지기를 계속해서 체크하며 나아가는 발걸음.

원본(原本) 등급으로 올라가며 탐지 범위도, 정밀함도 엄청나게 상향된 ‘광역 탐색’을 통해 도처에 도사리고 있는 구렁이들을 피하며 전진해 가기를 5분여.

훅!

선봉으로 걷던 신지운이 급하게 손바닥을 세웠다.

그러고는.

스윽―

이내 검지 손가락만 남기고 전부 접는다.

1.

숫자 1이 상징하는 바는 하나밖에 없다.

‘퀸!’

여왕의 출현이었다.

거리는…….

‘300m쯤인가?’

대략적으로 간격을 가늠해 본 신지운은 조심스럽게 검집을 붙잡았다.

미리 약속했다.

목표를 발견한다면 바로 일차 공격까지 가하고 빠지기로.

신경이 딴데 쏠려 있을 때를 노려 기습하자는 작전.

우우우웅―

마력이 모여든다.

응축되고 압축된 기운에 진동하는 만혈검의 잔잔한 떨림을 음미하며 나지막하게 읊조렸다.

[일도양단]

그 작은 속삭임을 내쉰 직후.

후우우욱―!

[집중이 시작됩니다.]

짤막한 메시지와 함께 검신에 스며든 마력이 급격하게 증폭되어 간다.

‘크읍!’

1초, 2초, 3초…….

손아귀를 박차고 튀어나올 것처럼 꿈틀대는 검을 억지로 찍어누르며 자세를 낮췄다.

한 번.

단 한 번의 검격에 남김없이 담아내고자 무릎을 굽히고 허리를 비틀며 오른발로 대지를 꾹 밟았다.

10초.

“하아아아아!”

슈우욱!

이 찬란한 장면을 장식하고자.

서걱!

* * *

“갑니다!”

거대한 참격이 전면을 휩쓸고 지나가자마자 곽재우는 달렸다.

일제히 잘려 나가는 수풀과 거목들 사이.

한낮에 피어났던 초승달이 사라진 자리 아래로 피 분수가 솟구치는 게 선명하게 보였다.

솔져, 나이트, 커맨더.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은 지휘고하를 막론하고 갈라 버리는 달빛의 궤적을 따라 질주한 그는 ‘철벽’과 ‘분쇄’를 이고서 돌격해 뭔가와 부딪쳤다.

꼬리가 길게 베여 고통으로 범벅된 퀸급 콜루베르였다.

“쉬에에에에엑!!”

어찌어찌 습격에 반응하고서 회피를 꾀했으나, 이럴 땐 비대한 몸집이 말썽이었다.

‘꼬리가 길면 밟힌다’.

성현들의 옛 속담이 문자 그대로 실현된 탓이었다.

더군다나.

[‘집중 시간’이 최대치에 이르렀습니다.]

[출혈, 벙어력 관통, 봉합 불가 효과가 적용됩니다.]

방금의 일격은 각종 부가 옵션이 더해진 상태.

평상시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충격에 정신이 나갔는지 지근거리까지 접근했음에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놈을 주저 않고 들이받았다.

[태산압정]

부우웅!

콰아아아앙!

기술 ‘방패 치기’에서 업그레이드된 방패술이 가죽을 짓뭉개자.

“쉬에에에에엑!!”

또다시 튀어나오는 비명.

귀가 먹먹해질 정도로 시끄러운 고성을 받아넘기며 한 차례 더 가격하자 놈의 눈동자가 곽재우에게로 고정됐다.

“쉬에에에엑!”

“드디어 이쪽을 봐 주는군.”

[철혈의 술 : 1단계]

[대인방벽]

쿵―

쿠구구구궁!

분노에 찬 하울링을 질러 대며 이빨을 들이미는 퀸급 콜루베르를 면전에 두고 담담하게 방어 태세를 갖춘다.

본 싸움에서 자신의 역할은 어그로꾼.

후방에서 기회를 엿보고 있을 조이령이 최선의 타이밍을 잡을 때까지 관심을 끌어 주기만 하면 된다.

그러다 보면.

우리의 용맹한 여기사가 전장을 가로지르며 달려와―

“재우 씨! 나와아아아아아아!!”

후우우우우욱―

지금처럼 저 구렁이 여왕의 목덜미를 꿰뚫어 주리라.

[절대 물러서지 않는 용]

콰아아아아아앙!!

벼락이 치듯.

일직선으로 쭉 날아온 창룡(蒼龍)은 퀸급 콜루베르의 육신을 찢어발겼다.

다만.

[4등급 : 1]

놈은 이번에도 살아남았다.

오리지널 기술을 두 개나 직격당하고도 생존이라니.

“후아, 후……. 재우 씨, 오빠한테 연락 좀 해 줘.”

“예. 제 뒤로 오시죠. 지운이도.”

“으하! 힘들다, 힘들어.”

매번 느끼지만 참으로 끈질긴 생명력에 감탄을 금치 않으며 ‘고주파 신호기’를 붙잡았다.

요리를 마쳤으니.

이제 맛있게 먹기만 하면 되는 실정이었다.

해서.

오전에 그랬듯이 오리지널 기술을 발현해 힘이 빠진 두 사람을 보호하는 방벽을 설치하며 ‘고주파 신호기’를 쥐려던 그때.

“쉬에에에에엑!!”

쓰러져 죽어 가던 놈이 느닷없이 울부짖었다.

패배의 원통함인가? 죽음의 비통함인가.

인간의 입장에선 알아듣지 못할 포효를 귓가로 흘리며 ‘고주파 신호기’를 누르려던 순간이었다.

[〈던전 : 거구의 수림〉의 ‘던전 전용 기술 : 지원 요청’이 발동되었습니다.]

[해당 던전과 연결된 행성 ‘에칸스(Ekans)’로부터 지원군이 전송됩니다.]

[해당 ‘던전 전용 기술’은 발동 이후 〈차원 : 테라〉의 시간으로 일주일간 봉인됩니다.]

파지지지직!

촤아아악!

몇 줄의 문장을 동반하며 저 푸르른 하늘에 생겨난 검은 빛깔의 문틈으로.

“쒸에에에엑!”

“쉬에에에에엑!”

두 마리의 ‘이무기’가 등장한 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