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화
【 괴물의 원수 】
“크흠, 형님! 저 또 왔어요!”
“음? 이거 누구야. 술 한 병이 아깝다고 내뺐던 양반이잖아?”
“에이, 뭘 또 내빼기까지야. 크흠. 자자, 이거 받으시고!”
찰랑―
“내가 고작 술 따위로― 음? 이거 뭐야! 소, 소주?!”
“어떻습니까? 제가 이거 가져오느라고……. 어휴, 말도 마십쇼…….”
“크흠, 그래. 오늘은 뭐가 알고 싶어서 온 겐가.”
“그게 말이죠. 형님께 원정대에 대해 묻고 싶은 게 생겨서 말입니다.”
원정대?
흠.
하긴, 저번 만남에서 ‘체질’에 관해 물었었으니 슬슬 ‘원정’에 관해 질문할 시기가 됐지.
그런 점에서 참 잘 찾아왔네.
나도 어찌어찌 원정에 참여했었거든.
아무튼.
뭘 먼저 말해 줘야 하나.
음…….
아! 그래.
일단 말이지.
원정대를 참가하기 위하여 갖춰야 할 ‘자격’을 알려 줘야겠구먼.
방식은 두 가지가 있어.
하나는 ‘대장’이고 하나는 ‘대원’이지.
당연히 중요한 인물은 ‘원정대장’.
한 명의 원정대장이 최대 100명이나 모집해 데려갈 수 있거든.
“100명이라…….”
그만큼 자격을 취득하기는 어렵지.
기본적으로 ‘괴물의 원수’가 되어야 하거든.
“…괴물의, 원수요? 그게 뭔가요?”
퀸급 개체 다섯 마리 처치.
“네?”
그것도 직접 목을 벤 사람만이 획득 가능하지.
“허…….”
대단하지?
간혹.
그 양아치처럼 남들이 다 잡아 놓은 산송장의 머리를 자르고 제가 해냈다고 지X하는 놈팡이도 있기는 한데.
대체로 ‘괴물의 원수’가 된 자들은 대단한 실력자일 테니 절대 깝치지 마.
골로 가는 덴 순서 없다.
“알죠, 알죠. 괴물의, 원수……. 오케이. 그럼 다음은요?”
아아.
말을 너무 많이 했더니 갈증이 나네.
우선 목 좀 축이자.
- 인터뷰 ‘원정의 서막(가제)’ 스케치 中 일부 발췌
* * *
“그러니까… 괴물의 원수 칭호를 달성해야 한다. 이거죠?”
“보기에는.”
조심스럽게 묻는 신지운의 말에 대꾸한 나는 ‘개인 정보’ 창을 열어 상단으로 시선을 옮겼다.
[개인 정보]
*기본 사항
- 설명 : 아윤
- 종족 : 키메라―프레데터
- 칭호 : 인류 최초의 키메라(대표 칭호 변경▼)
- 고유 능력 : 프레데터의 기억 포식
- 특성 : 불굴(대표 특성 변경▼)
- 체질 : 순양지체(효과 확인▼)
최상층에 위치한 칭호란.
탁―
‘대표 칭호 변경▼’이라는 버튼을 터치하니.
[보유 중인 칭호 목록]
- 포타스의 적수(상세 확인▼)
- 선수필승(상세 확인▼)
- 흔들리지 않는 법(상세 확인▼)
- 압도(상세 확인▼)
- 일당백(상세 확인▼)
최초로 습득했던 ‘포타스의 적수’를 포함해 각종 ‘특수 퀘스트’의 부산물부터 스탯이 100, 200, 300에 올라설 때마다 기록됐던 ‘한계 돌파’까지 서른 중반대에 이르는 항목들이 허공을 꽉 채운다.
언제 이 많은 걸 손에 넣었나 나조차도 놀라울 지경.
개중.
스크로를 내려 하단에 있던 ‘종족의 원수’를 누르자.
《칭호 : 종족의 원수(포타우스)》
- 특별한 업적을 달성한 대상에게 부여되는 칭호. 해당 칭호를 소유한 대상은 행성 ‘노타투스(Notatus)’의 지배종 「포타우스」를 상대할 시 무조건적으로 모든 능력치가 5% 상승합니다.
- ‘특수 퀘스트 : 괴물의 원수’ 부여
《특수 퀘스트 : 괴물의 원수》
- 과제 : 다섯 종(種)의 「퀸급」 개체를 사냥해 ‘원수 칭호’ 습득
- 보상 : 칭호―괴물의 원수
- 진행 상황 : 포타우스(1/5)
“음…….”
스랄레오는 신지운이, 아라운다는 신지유가.
발록은 심상 세계인 ‘성장의 땅’이었기에 책정이 되지 않아 오로지 포타우스 종(種)만이 기재되어 있는 자세한 설명이 오픈된다.
나는 이 페이지와.
[특수 조건 ?의 실마리_No. 4]
[괴물의 원수]
좌측에 켜 둔 4번 단서를 번갈아 보며 작게 혀를 찼다.
이럴 줄 알았다면 스랄레오든 아라운다든 내가 죽였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진하게 밀려왔다.
물론.
‘후, 됐다.’
괜한 생각이었기에 금세 머릿속에서 지워 버렸다.
알고 있었다면 모르되.
당시만 해도 그저 조금 특이한, 혹은 약간 특별한 수준으로 취급했었을 뿐이니. 때늦게 후회해 봐야 시간 낭비일 따름이었다.
그러하니.
이미 잃어버린 소는 깨끗하게 잊어버리고, 외양간을 고치고 새로운 송아지들을 입양하는 데 집중해야겠지.
“봐서 알겠지만.”
각오인 듯 다짐인 듯 되뇐 나는 공중에 떠 있던 메시지들을 지워 버리곤 한세정들을 불렀다.
“앞으로 퀸급 개체를 더 열심히 사냥해야 할 거 같다.”
“열심히…라면?”
“이후에 어떻게 될지 모르니 한 사람도 빠짐없이 괴물의 원수 칭호를 가졌으면 해.”
“그럼 스물일곱 마리는 잡아야겠네요?”
“그렇지. 쉽진 않겠지만, 오늘처럼만 해 준다면 충분히 가능하리라고 봐.”
금일만 해도 하루 새 두 마리를 잡았다.
이를 고려하면.
늦어도 3주, 빠르면 보름 안에 너끈히 완수하리라. 다들 동의하는지 눈빛에 자신감이 엿보였다.
하기에.
나는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20일. 그 안에 마쳐 보자.”
라고.
* * *
“십이지신, 주위를 둘러싸. 흑기사들도 2기씩 전후좌우로 움직여.”
“그어어어어!”
“끄어어어!”
시곗바늘이 여덟 시를 가리키던 저녁.
새까맣게 내려앉은 밤공기를 밀치며 십이지신(十二支神)과 여러 골렘들이 제각기 방향을 정하며 이리저리로 이동한다.
골렘만이 아니다.
“드라이어드, 담장을 조금만 더 넓혀 줘. 청염은 저쪽에도 불 피워 주고.”
촤르르르륵―
화륵!
신지유의 정령과 소환수도.
“내가 이쪽으로 갈게.”
“그럼 난 여기.”
“전 남는 데로 가겠습니다.”
“나는 재우 형 옆이요!”
한세정, 조이령, 곽재우, 신지운.
한 사람도 빠짐없이 달빛 아래 뛰어다녔다.
도대체 왜.
이들은 잠을 자러 가도 모자랄 이 야심한 시각에 대규모 공사를 병행하며 이리도 바쁘게 방황 중인 것인가.
원인은 단순했다.
“기대된다. 체질이라니…….”
“그러게. 뭐로 하지?”
“아윤 오빠 말로는 수백 가지나 된다니까…….”
체질.
3차 환골탈태의 보너스인 ‘체질 개선’을 하기 위하여, 각자가 머물 방을 만들고 추위 방지용 개인 화로를 설치하는 등 그에 관한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1차나 2차 환골탈태는 별다른 대비 없이 바로 진행해도 좋으나.
해당 과정에선 가로 세로로 5m나 되는 마력 구체가 생겨나기 때문에 기껏 건축한 집이 박살 나지 않도록 지키려면 여분의 공간 제작은 필수였다.
“오빠! 다 됐어요.”
“그럼 시작해.”
“네!”
“네!”
“네!”
“네!”
“네!”
이윽고 임시 숙소가 완공되자.
신지유의 보고를 기점으로 하나둘 개인실로 입장해 챙겨 간 근원석을 복용하며 바닥에 드러눕는 한세정들.
“넉넉하게 하루면 되려나.”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곽재우를 최종으로 전부 가수면에 빠지자 슬그머니 일어나 공터로 향했다.
나야 현실 세계에 있을 육체를 보존해야 하는 연유로 반나절 만에 검색을 마쳤으나, 한세정들은 마력 구체와 골렘에 심지어 나 또한 보초를 서고 있어 상당히 안전한 터라 며칠이 걸리든 상관하지 말고 최선을 다하라 일러두었다.
따라서.
정말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기에 대기하면서 수련이라도 할 요량이었다.
* * *
[풀루스의 돌진]
타닷―
쾅!
묵직하게 내딛는 걸음.
[웨루카의 베어 가르기]
[아쿠스의 연속 찌르기]
목표한 장소에 도착하는 동시에 베고 가르고.
“하아!”
[칼리아스의 마력 방패]
[포타우스의 연속 폭격]
후우욱―
콰과과광!
스스로 세웠던 방패를 가격해 부숴 버린다.
누군가 이 광경을 보았다면 혼자서 무슨 기행일까 의아해할 테지만.
틀렸다.
일견하기엔 일인인 듯하나, 실제로는 둘이었다.
[분영일보]
촤아아아악!
그림자.
[잠들어 있던 그림자가 깨어납니다.]
[당신의 다음 행동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르그의 파괴 본능]
후우우욱!
[그림자가 ‘타격’을 따라 합니다.]
나는 진체와 분체로 나뉘어 서로를 공격하고 방어하며 아주 특수한 트레이닝을 하고 있었다.
이는.
제법 괜찮은 수련법이었다.
설령 죽이더라도 난처해지지 않아 전력으로 임해도 되는 훌륭한 생체 허수아비였으니까.
[머메른의 갑주]
슈우우욱!
퍼억!
“큭!”
사라락―
매섭게 내리꽂힌 주먹.
갑주로 받아넘기고서 ‘웨루카의 베어 가르기’로 소멸 직전이던 그림자의 목을 베어 넘기고 반사적으로 ‘풀루스의 돌진’을 발동하려던 찰나.
뭉게뭉게 피어오르던 먼지구름 사이로 앳된 음성이 들렸다.
“형!”
목소리의 주인은 신지운이었다.
곁에 아무도 없는 걸로 보아 비교적 일찍 선택을 마치고 이쪽으로 온 듯,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다가온 녀석은 내게 종이쪽지를 건넸다.
그 안에는.
무엇을 골랐는지 정보가 적혀 있었는데.
《체질 : 검강지체》
- 설명 : 감객들이 꿈에 그리는 천고의 육신. 이 체질을 손에 넣을 수 있다면 능히 검(劍)을 다루기 위한 골격과 근육 등 다시 없을 최고의 육신으로 태어나리라.
- 옵션 : 검(劍)과 관련된 모든 공격의 위력 25% 증가
“이건.”
의외로 나도 잘 아는 내용이었다.
설마 이걸 택했을 줄이야.
뭐.
주 무기도, 주력 기술도 검과 관련된 실정이기에 납득이 안 되는 판단은 아니었다.
필시 조이령도.
“저는 이거예요.”
《체질 : 창천지체》
- 설명 : 창(槍)으로 하늘을 꿰뚫다. ‘창천지체’는 그 이적의 시작점이자 발판이 되어 주는 육체를 뜻한다. 경험해 보면 알 것이다. 이 체질을 갖기 전의 당신과 이후의 당신이 얼마나 다를지.
- 옵션 : 창(槍)과 관련된 모든 공격의 위력 25% 증가
같은 사유로 ‘창천지체’를 초이스한 거겠지.
고로.
“창천지체, 괜찮네.”
“그쵸? 그쵸! 후후. 지운아! 너는 뭐야?”
“저는 검강지체라고…….”
나는 신지운이든 조이령이든.
그들의 결정에 왈가왈부하지 않았다. 고심 끝에 내린 결단일 터이니 비난보다는 존중이 옳았다.
“오빠!”
“형님.”
한세정은 곽재우와 나란히 걸어왔다.
고민하느라 머리가 아팠는지 홀가분한 눈빛으로 당도한 둘은 각기 ‘독인(毒人)’과 ‘금강불괴(金剛不壞)’가 되었음을 내게 알렸다. 흘리는 피 한 방울, 한 방울마저 적을 중독시키는 독인과 피부가 강철 이상으로 단단해지는 금강지체라.
각기 특수 딜러와 탱커란 포지션에 착 부합하는 종류였다.
“지유, 지유만 남았나?”
“오빠! 아, 언니!”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맨 나중에 등장한 신지유는 자기가 가장 늦었다는 사실에 눈을 동그랗게 뜨며 서둘러 달려왔다.
환골탈태의 영향으로 키가 살짝 커져 이제는 숙녀라고 봐도 무방한 소녀는 숨 가쁘게 뛰어와 잠시 호흡을 가다듬더니.
“저는, 후아, 저는 이걸로 골랐어요.”
나에게 쪽지를 주며 모두가 들을 수 있게끔 자신이 선정한 신체에 대하여 말해 주었다.
헌데.
“…뭐?”
그 선언이 끝난 직후.
듣던 나나 한세정들이나 전원이 의아함을 표해야 했다.
무척이나.
“이상…한가요?”
의아한 선택지였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