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키메라의 기억법-178화 (177/232)

178화

“오빠!”

근원석을 추출해 돌아오는 한세정.

자신들의 능력으로 퀸급 개체를 사냥했다는 것에 굉장한 흡족한지, 그녀를 비롯해 귀환하는 조이령이나 신지운의 표정이 더없이 밝았다.

아직.

개전부터 종전까지 모든 부분을 세 사람의 힘으로 완결 지은 건 아니었으되.

어찌 되었든 거물을 쓰러뜨렸으니, 오늘의 경험을 바탕으로 발전해 나간다면 향후에는 정말 온전히 본인들만의 스토리를 써 내려가리라 싶었다.

“수고했다.”

나는 그리 중얼거리며 세 사람을 맞아 주고 곽재우와 신지유 페어와 합류했다.

우리가 빠져 있는 동안 단둘이서 천 단위를 막아서고 있던 둘은 여전히 굳건한 체제로 괴물들을 커팅해 내고 있었는데.

“오셨습니까.”

“오셨어요? 아, 언니들 고생하셨어요! 지운이도 수고했고, 어디 다친 데는 없지?”

“당연하지! 나야 나!”

교전 중에도 한가로이 축하 인사를 건넬 만큼 여유가 흘렀다.

설령.

[〈던전 : 골갑의 초원〉의 ‘던전 전용 기술 : 지원 요청’이 발동되었습니다.]

[해당 던전과 연결된 행성 ‘두리티오스(Duritos)’로부터 지원군이 전송됩니다.]

[해당 ‘던전 전용 기술’은 발동 이후 〈차원 : 테라〉의 시간으로 일주일간 봉인됩니다.]

지원 요청이 오든.

[‘던전 전용 기술 : 총공세’가 발동되었습니다.]

[〈던전 : 골갑의 초원〉 내에 존재하는 「스랄레오」 종(種) 전체가 당신을 향해 진군해 옵니다.]

[〈던전 : 골갑의 초원〉 내에 존재하는 「스랄레오」 종(種) 전체의 모든 신체 능력치가 10% 상승합니다.]

[〈던전 : 골갑의 초원〉 내에 존재하는 「스랄레오」 종(種)의 기술 위력이 10% 상승합니다.]

총공세가 가동되든 말든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다.

외려.

“지유야, 언니가 왼쪽으로 갈게.”

“이령 언니, 괜찮으세요?”

“당연히 괜찮지.”

“누나, 우측은 내가 간다아.”

조이령과 신지운이 합세하면서 한층 빠른 속도로 도살될 따름.

그사이.

나와 곽재우, 한세정은 나란히 앉아서 근원석을 수거하고 각 군별로 분류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죄다 ‘내구’ 혹은 ‘근력’에 치중된 종(種)이었기에 실상 도열 맞춰 나눠 담는 정도였지만.

여하튼. 정리를 마칠 무렵.

“꾸이이이이익!!”

콰직!

마지막 멧돼지가 멱 따이는 소리를 내며 ‘1차전’의 마침표가 찍혔다.

그래.

1차전이었다.

“다들 고생했다. 푹 쉬고, 오후에 가자.”

예상대로.

어쩌면 예측 이상으로 깔끔하게 상황이 마무리된 터라 적절히 휴식을 취하고서 회복 후에 2차전을 뛸 작정이었다.

* * *

“기본 상자랑 특수 상자는 다 팔아 치웠고, 진귀 등급 상자만 남겼어요.”

“몇 개야?”

“열두 개요!”

집으로 복귀해 점심 식사를 하고서.

신지운이 퀸급 스랄레오의 목을 베는 공적으로 업그레이드된 ‘스랄레오 던전 전용 퀘스트 보상 선물 상자(진귀)’ 무더기를 가져왔다.

초반에는 급습 작전을 위해 은신해 있느라 중후반이 되어서야 참전해 ‘던전 전용 퀘스트 : 두개골 부수기’를 수행했음에도 열두 개나 되다니.

뒤늦게 참가한 걸 알기에 더더욱 열정적으로 임한 거 같았다.

우린 각기 두 개씩 상자를 열어 봤다.

언제부턴가 팔아 치우는 게 원칙 아닌 원칙이 됐지만…….

진귀급 상자의 경우 낮다 하더라도 ‘유일’급 드랍의 확률이 있어 도저히 안 까 볼 수가 없었다.

[축하합니다!]

[‘3등급 근원석 : 스랄레오’를 습득합니다.]

[‘2등급 근원석 : 스랄레오’를 습득합니다.]

“…쯧.”

결과는 비참했지만.

그나마 3등급 근원석을 얻어 다행이려나.

한세정들 중에는 특별 등급 방패를 뽑은 신지유나 동급의 신발을 획득한 조이령 등 적잖은 성과가 제일이었다.

이래저래 정리가 끝난 자리.

차 한 잔으로 한기를 몰아내던 조이령이 내게 물었다.

“그나저나, 두 번째는 어디로 가실 거예요?”

초원의 여왕이 처리됨으로써.

현재 거주지 인근은 두 차례의 원정으로 사뭇 평화로워진 형편.

해서.

앞으로는 데이터가 없는 던전을 가야 하는 판국이라, 행선지가 어디로 정해질지 궁금한 듯했다.

나는 그 의문에 단호하게 대답했다.

“아라운다 던전.”

물거미 소굴로 가겠다고.

이유는 하나였다. 다음 공력조의 구성원이 한세정과 곽재우… 더불어 ‘신지유’이기 때문이었다.

* * *

쏴아아아아아아아―

세차게 흐르는 격류.

일전에 보았을 때보다 유속도, 강폭도 늘어난 듯한 풍경에 한세정들의 입이 절로 벌어졌다.

“와……. 엄청나게 커졌네.”

“지금 빨려 들어가면 빠져나올 수 있으려나?”

“형님이 계시면 가능할 겁니다.”

나야 최근에도 봤었지만, 이들은 농자재 백화점에 거점을 튼 이래로 처음 방문하는 거라, 그간의 변화가 놀랍게 다가오는 모양.

그럴 만도 했다.

시가지를 얼기설기 휘감는 수십 줄기의 하류와 그게 뭉쳐 완성된 강줄기는 그야말로 장관이 따로 없었으니까.

하여.

충분히 감상할 시간을 주고서 한세정들을 모아 작전을 얘기했다.

“먼저, 공략조는 한세정, 곽재우, 신지유 이렇게 셋.”

“네!”

“남은 두 사람은 나와 사냥조가 되어 어라운다들을 처리한다.”

전체적인 구조 자체는 비슷하되, 약간의 골자가 달랐다.

“이번 미끼는 나다.”

“알겠습니다.”

“나는 전투가 개시되면 물속으로 들어갈 거야.”

“예? 물이요……?”

“그래. 머메른을 취하면서, 수중에서도 자유로워졌다고 말했었지.”

“네.”

“그걸로 아라운다들을 최대한 끌고 빠질 거다. 그 과정에서 적당히 모였다 싶으면 둘이 순서를 정해 한 번씩 허리를 끊는 거야. 이런 식으로 반복하면서 아라운다들의 숫자를 줄이고, 틀어박혀 있을 여왕을 꺼낸다.”

먼젓번엔 곽재우가 방패를 들고 스랄레오들을 끌어냈다면, 당금 싸움에선 내가 꼬리를 흔들 작정이다.

몸소 입수해서.

아무래도 뭍에서 깨작거리는 거보단 직접 몸을 맞대는 게 한결 효과적일 테니 말이다.

“그러다 퀸이 튀어나오면 즉시 지반을 뒤집어 길목을 차단하고 고립시킨 뒤 공략조가 사냥하는 거다. 다들 이해했지?”

쭉 이어진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일행.

다소 불안해하는 기색도 보였으나, 나는 장포 끈을 꽉 동여매곤 실내 수영장으로 다가갔다.

우우우웅!

손끝으로 모여드는 마력.

[〈던전 : 파도 속의 고치〉에 입장하셨습니다.]

주르륵 떠오르는 메시지들을 무시하며 검푸른 빛이 일렁거리는 주먹을 뻗었다.

[오르그의 파괴 본능]

후우우욱―

퍼엉!

화끈하게 울려 퍼지는 폭발음.

“키에에엑!!”

“키에에에엑!”

“키에엑!!”

“키에에에에엑!”

그 여파로 온갖 곳에서 솟구치는 아라운다들의 하울링.

메아리처럼 귓바퀴에 맴도는 고성을 흘려보내며 재차 권격을 내질렀다.

[오르그의 파괴 본능]

우우우우웅!

콰아앙!

알려 주기 위함이었다.

[순간 회귀 : 머메른의 피부]

우드득!

“가자.”

내가.

꾸우욱―

타악!

여기 있다고.

슈우우우욱!

퍼억!

촤아아아악!

물보라가 인다.

2월로 접어드는 중이라 온화해졌다 한들 변함없이 한기가 팽배한 겨울이건만.

‘내구’, ‘저항’, ‘동화’, ‘적응’ 등 냉기를 막아 주는 능력치와 기술들의 존재로 그렇게 춥지는 않았다.

“키에에엑!”

“키에엑!”

촤아아아악!

촤아아악!

그 덕에.

[가속]

‘따라와 봐라.’

툭―

파아아아앙!

나는 별문제 없이 팔과 다리에 돋아난 갈퀴를 이용해 맹렬히 추격해 오는 물거미들과 거리를 벌려 나갔다.

* * *

“끼에에에에에에엑!!”

“왔다.”

아윤이 세 번째 다이빙을 실시하던 타이밍에 귀를 찌르는 고음이 치솟았다.

타깃이었다.

‘천년목의 나무 지팡이’와 ‘소환의 서’를 양손에 쥐고 기다리던 신지유는 허리를 곧게 펴며 체내의 마력을 천천히 풀었다.

우우우우웅!!.

다양한 소환수들을 의미하듯.

여러 가지 색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기운에 안긴 소녀는 홀로였다.

본디.

한세정과 곽재우가 옆에 있었으나.

수중 공격이 힘든 두 사람은 퀸급 아라운다가 육지로 나오면 힘을 보태기로 말을 맞춘 상태라.

그전까지는 단독으로 상대하고자 혈혈단신으로 날아올랐다.

“흔들바람.”

휘이이이이익―

부우웅!

5m, 10m, 15m…….

한 마리의 새가 된 듯 하늘에 자리를 잡기 무섭게 실내 수영장의 입구를 부수다시피 하며 튀어나오는 검은 물체.

콰아아앙!

“끼에에에에엑!!”

퀸급 아라운다의 출현이었다.

족히 6~7m에 달하는 거체와 마주하니 긴장감이 감돈다.

그러나.

두렵지는 않았다.

신지유에겐.

“…오빠!”

“가를 테니 비켜!”

“네!”

쿠구구구구구궁!

일대일로 싸울 수 있게끔 지형을 형성시켜주는 아윤과.

“하아!”

후우웅!!

화아아아악!!

품 안에 맴돌던 마력을 일시에 해방시켜 만들어 낸, 창공을 한켠을 차지하며 생성된 형형색색으로 빛나는 ‘문(門)’이 있었으니까.

“천공의 문!”

[오리지널 기술 : 천공의 문]

《오리지널 기술 : 천공의 문》

- 등급 : 체화

- 단계 : 1/7

- 설명 : 차원을 넘나드는 이계의 존재 중 동료 혹은 친구로서 함께할 자들을 불러내기 위해 고안된 주문에 특성 ‘협동’이 결합되어 완성된 마법.

발동 시 시전자의 차원에 「대차원」의 통로 개방되며, 이를 통해 현재 계약한 존재 중 하나를 지정해 추가 소환합니다. 해당 대상의 능력은 지정된 소환체의 ‘등급’과 동일하며 소환량은 ‘단계’에 비례하여 달라집니다.

[‘천공의 문’이 생성되었습니다.]

[원조 요청을 보낼 대상을 지정해 주십시오.]

“암전류.”

[「대상 : 암전류」가 선택되었습니다.]

[기술 등급 및 단계 : 원본(原本) - 3/5]

[‘등급’과 ‘단계’에 비례하여 〈대차원 : 환계〉에서 「대상 : 암전류」가 추가 소환됩니다.]

파직!

파지지지직!

무려.

‘서른 마리’의 암전류를 쏟아 내는 배출구가.

“공격해!!”

후우우욱!

번쩍!

콰과과과과과광!

전쟁은 그걸로 끝이었다.

* * *

[‘단서 구매처’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정해진 대가를 지불하여 ‘특수 조건 ?’의 「단서」를 구입할 수 있습니다.]

[1등급 근원석 : 2, 000개 / 1,000개]

[2등급 근원석 : 1,000개 / 500개]

[3등급 근원석 : 200개 / 100개]

[4등급 근원석 : 2개 / 1개]

지이이이이잉!

‘골갑의 초원’과.

신지유의 활약으로 굉장히 손쉽게 점령했던 ‘파도 속의 고치’에서 확보한 근원석들을 집어넣길 잠시.

기계 돌아가는 노이즈와 함께 스크린이 활성화된다.

과연.

이번에는 무엇을 던져 줄 것인가.

부디 ‘황금 표식’같이 두루뭉술한 표현보단 좀 더 확실한 단서가 지급되기를 바라며, 두근거리는 심정으로 홀로그램 화면에 눈길을 보내자.

슥-

스슥-

서서히 새겨지기 시작하는 단어.

[특수 조건 ?의 실마리_No. 3]

[특수 조건 ?의 실마리_No. 4]

1분 1초가 하루 일련처럼 느리게 느껴지던 시간의 흐름 속에서 비로소 완전해진 글귀의 정체를 확인한 이후.

“…?!”

나는 꽤나 충격을 받아야 했다.

둘 모두.

[균열]

[괴물의 원수]

매우 익숙한 글자의 배합이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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