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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메라의 기억법-177화 (176/232)

177화

작지만 거대한 소녀의 뒷모습을 보며 감탄사를 내뱉는 가운데.

전장에서 피어나는 꽃을 향해 더 많은 스랄레오들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수백, 수천.

“천 단위는 넘었나.”

적어도 1,000여 마리는 가뿐히 넘기는 규모.

허나.

신지유를 포함해 우리 중 누구도 다친 이는 없었다. 상처는 고사하고 흙먼지조차 근처로 접근해 오지 못했다.

“흡!”

쿠웅!

[철혈의 술]

쿠구구구구궁―

곽재우의 방어.

보다 명확하게는…….

[3단계 : 공방합일격]

촤악!

촤좌좍!

중앙에 뿔이 달려 의도에 따라 공격용 무기로도 전환이 가능한 가시 방패처럼 첨예(尖銳)한 뿔로 빼곡하게 채워진 ‘세 번째 방벽’으로 인해 근접해 오는 것부터 불허했기 때문이었다.

마스터 단계에 이른 ‘철혈의 술’.

피를 머금을수록 단단해지는 그 기예의 방호력은 설사 커맨더급 스랄레오라 하더라도 결코 뚫어 내질 못했다.

해서였을까?

“꾸이이이이이이익!!”

후우우욱!

쿠우우우웅!

멀리서 어마 무시한 포효가 세상을 떨쳐 울렸다.

퀸급 스랄레오.

마침내 놈이 기지개를 켜는 것 같았다.

‘던전 : 쌍수 증량의 폭력’의 경우엔 전투 개시 직후 퀸급 포타우스가 곧장 출현했었으나.

“멧돼지라 그런가.”

엉덩이가 무거워서인지 이제야 얼굴을 보여 주려는 놈.

우리로서는 나쁘지 않은 성향이었다.

되레.

기꺼웠다.

느긋하다고 해야 할지, 나태하다고 해야할지는 몰라도 여하튼 저 성격 덕분에 퀸급과 나머지를 양쪽으로 갈라야 하는 전략 수행이 훨씬 쉬워졌으니까.

“꾸이이이이익!!”

“꾸이이이익!!”

제 상관의 거동에 바스러지던 아랫것들의 기세가 다시금 달아오르기는 했으나.

그래봐야 신지유와 곽재우의 조합 앞에서는 커맨더급 이하 나부랭이.

“갔다 올게.”

“예, 형님. 조심하십시오.”

“걱정하지 마.”

나는 무운을 비는 곽재우를 등지고 살짝 무릎을 굽혔다.

꾸우우욱!

팽팽하게 당겨 오는 근육.

밀도 있는 수축감이 최고조에 달할 즈음.

[가속]

후욱―

파아아앙!

그대로 탄력적인 도약력을 발판 삼아 드높은 적벽(赤壁) 위로 점프했다.

10m쯤 등반하는 거야 우스웠다.

슈우욱!

탁!

시원한 바람을 밀어내며 도착한 창공.

[풀루스의 돌진]

아래를 굽어보며 천길 낭떠러지를 달린다.

아슬아슬한 곡예 주행을 따라 하듯 질주하던 나는 벽의 끝자락이자 던전의 한복판으로 몸을 던졌다.

딱.

“꾸이이이이이익!!”

퀸급 스랄레오의 휘황찬란한 골갑이 눈에 보이던 시점이었다.

“다치지 말아야 할 텐데.”

난 거칠게 쇄도해 오는 녀석을 응시하며 어딘가에서 대기하고 있을 한세정, 조이령, 신지운에게 한마디를 남겨 준 뒤.

콰직―

가볍게 땅을 찍었다.

내가 이 위치를 점한 내력을 설파하고자.

[오리지널 기술 : 영원토록 붕괴하는 대지]

콰과과과과과과광!!

* * *

콰과과과과과과광!!

“왔다.”

초원의 가장자리.

무성하게 자란 풀과 나무 곁에 숨어 신호가 올 때까지 잠복해 있던 셋은 묵직한 땅 울림에 그림자 바깥으로 빠져나왔다.

저쪽이 워낙 시끄럽게 떠들어 준지라 조용하기만 한 주변.

구태여 모습을 노출해 위험을 초래할 필요는 없었기에 은밀하게 기동하며 던전 후방을 가르고 이동하길 얼마 가지 않아 주춤거리는 퀸급 스랄레오의 뒤꽁무니가 시야에 잡혔다.

날개라도 있다면 모를까.

보행이 베이스인 종(種)에게 무너지고 쪼개지는 지반을 돌파하기란 말이 안 되는 이야기. 그러한 탓에 어정쩡하게 서 있는 놈을 노려보던 한세정은 좌우로 사인을 보내며 공간의 문을 열었다.

[단거리 공간 이동]

지앙!

번쩍!

빛을 뿌리며 기습적으로 간격을 좁힌 그녀는 어느샌가 혼자 남아 서슬 퍼런 예광이 번뜩이는 즉살검 ‘모르드’를 빠르게 찔러 넣었다.

검은색과 보라색이 뒤섞여 혼탁하면서도 선명한…….

상식적인 선에서는 이해가 불가한 모순적인 색으로 물든 칼날이 섬뜩한 소음을 일으키며 전방을 베어 갈랐―

슈우우우욱!

“꾸이이익!!”

후욱!

다고 여긴 찰나.

큼지막한 몸뚱어리가 호선을 옆으로 비켜선다.

도처에서 터져 나오는 폭음으로 집중이 흐트러졌을 테니 웬만해서는 회피하기가 어려웠을진대.

그 와중에 살기를 느끼고 신형을 틀며 궤적에서 벗어난 것이다.

서걱!

끄트머리에 살갗이 베이기는 했으나, 겨우 한 치에 불과한 깊이라.

과연 대미지를 입기는 했는가 의아한 수준.

그런데.

무척 이상하게도 습격을 마치고 뒤로 물러나는 한세정의 입가엔…….

씨익―

옅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왜?

원인은 간단했다.

그녀의 검신을 뒤덮은 기운은.

[오리지널 기술 : 사신의 눈물]

1인치.

설령 1cm라 하더라도 상관없는 명부 사자(冥府使者)의 대낫이기 때문이었다.

《오리지널 기술 : 사신의 눈물》

- 등급 : 체화

- 단계 : 1/7

- 설명 : 무도인들의 입장에서 독(毒)이란 통상 약자들의 것, 비겁한 수, 멸시의 대상이라 불렀으나 누군가는 달리 생각했다.

한 줌의 무게만으로도 절대 강자를 죽음의 늪에 빠뜨리는 ‘억전의 비수’이자 순리조차 거스를 수 있는 ‘역천의 이빨’이라 여겼고 이를 기반으로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 냈을뿐더러 여기에 특성 ‘집착’이 결합되어 진정한 기예로서 완성해 냈으니.

「사신의 눈물」이란 명칭에 걸맞게 한번 상대를 물고 나면, 시전자의 마력이 제공되는 한 대상이 사망 선고가 내려질 때까지 끊임없이 생명력을 갉아먹는다.

또한 현재 체력에 비례하여 ‘부분 마비(50% 이하)’, ‘오감 혼동(405% 이하)’, ‘정신 착란(30% 이하)’이 부여된다.

[‘사신의 눈물’이 발동되었습니다.]

[극독의 사신이 당신의 마력을 대가로 원합니다.]

[마력이 공급되는 한 「목표 : 퀸급 스랄레오」의 체력이 매 초마다 0.01%씩 감소합니다.]

1만 초.

가독성 있는 형태로 치환하면 총 두 시간 46분 40초에 이르는 모래시계가 퀸급 스랄레오의 목덜미를 옥죄어 간다.

“꾸웨에에에에엑!!”

콰앙!

쾅!

체화(體化)등급의 기술답게 독기가 바로 뻗쳐 오르는지 통증에 울부짖는 놈.

“지운아!”

그 광경에 더욱 아름답게 입꼬리를 비틀어 올린 한세정이 훌쩍 퇴각하며 신지운을 부르자.

“하아앗!”

대답 대신 우렁찬 기합을 내지르며 등장한 소년이 양팔을 쭉 뻗었다.

무기도 없이 무얼 하려는 걸까.

의문을 갖기도 전에 오색빛깔의 광휘가 지상으로 내리꽂혔다.

사아아아아아아아아!!

제3의 영역.

[오리지널 기술 : 신력 발현]

[봉쇄옥(封鎖獄)]

신력(神力)으로 이루어진 ‘창살’의 소환이었다.

슈우욱!

쾅!

콰앙!

“꾸이이이익!!”

안 그래도 중독 증세에 빠져 고통스러워하던 놈은 급기야 온몸을 구속하는 감옥까지 생겨나자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날뛰어 댔다.

하지만.

후우우욱!

콰앙!

쾅!

광분해서 들이받는 충격에도 철창은 흔들릴지언정 부서지지 않았다.

특수(特殊) 등급.

성장이 불가한 기술일지라도 위력마저 부족한 건 전혀 아니었다.

놈도.

“꾸이이이익!!”

우우우우웅!!

그걸 체감했는지.

평범한 방법으로는 안 되겠다 판단하고서 전신을 휘감은 백골갑에 마력을 주입하며 발을 굴렀다.

비록.

광활한 초원처럼 마음껏 도움닫기 할 구간이 없어 일반적인 돌진에는 미치지 못하겠지만.

일단은 탈출에 초점을 맞춘 듯싶던 그때였다.

저벅―

저벅―

누군가 걸어 나온 것은.

주욱 늘어뜨린 한 자루의 창과 광채를 반사하며 반짝이는 풀 플레이트 아머를 착용한 여기사 조이령이었다.

그녀는.

일직선상의 퀸급 스랄레오를 두고 보보를 내디뎠다.

한 걸음, 한 걸음.

점차 좁혀드는 간극.

“꾸이이익!!”

후우우욱!

콰아아아앙!!

“…….”

꽈아악!

조이령은 면전에서 벌어지는 폭발에도 굴하지 않고 계속해서 전진하며 창대를 쥔 손에 힘을 줬다.

그러고는.

저벅―

저벅!

저벅!

탁―

탓―

타앗―

타다다다다!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속력을 올려 속보(速步)에서 추보(趨步)로 전환하다 지면을 박차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 곁에.

[오리지널 기술]

“흐아아아아아아아아!!”

[절대 물러서지 않는 용]

키에에에에에에엑!!

여의주를 문 창룡(蒼龍)이 뒤따르고 있었다.

후우우우욱!

콰아아아아아아아앙!!

* * *

구우우우우웅―

쿠우웅!

쓰러진다.

굉음을 발생시키며 수십 톤에 이를 듯한 거구가 제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크게 들썩였다가 맥없이 고꾸라졌다.

죽었을까?

[현재 〈던전 : 골갑의 초원〉에 존재하는 적의 숫자가 표시됩니다.]

[4등급 : 1]

“죽진 않았군.”

출력이 약간 모자랐는지 1은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꾸이이이이이이……!”

웅장하던 위압감을 잃어버린 구슬픈 울음과 환상이라도 보는 양 허공을 응시하며 으르렁거리는 꼴을 보건대, 간신히 목숨을 건졌을 뿐 생사의 갈림길에서 오락가락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러던 차에.

“하아!”

귓가로 신지운의 목소리가 들렸다.

왼손으로는 허리춤의 칼집을, 오른손으로는 칼의 손잡이를 붙들고 퀸급 스랄레오의 발치에 선 소년은 짤막한 외침을 토해 내고는 응축되었던 마력을 일시에 폭발시키며 한 폭의 초승달을 그려 냈다.

후우우우우욱―

촤아악!

서거거거걱!!

기다란 궤적을 동반하며 일대를 긋고 지나가는 참격.

백색 갑주를 송두리째 잘라 버리는 검격에 잠깐의 숨 막힘 너머로 시뻘건 피 분수가 쏟아졌다.

“호오…….”

나는 그 깔끔한 일격이 빚어낸 참상을 관람하며 속으로 손뼉을 쳤다.

‘영원토록 붕괴하는 대지’를 발동하고 5분도 안 돼서 종점이 찍힌 전쟁.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특히.

그네들이 선보인 한 수들은 경이롭기까지 했다.

안타깝게도 한세정의 ‘사신의 눈물’은 이펙트가 화려하지 않아 잘 보이지 않았으나, 나머지 두 기예는 똑똑히 체감했다.

“절대 물러서지 않는 용, 과 일도양단이라고 했던가.”

《오리지널 기술 : 절대 물러서지 않는 용》

- 등급 : 체화

- 단계 : 1/7

- 설명 : 후퇴를 잊어버린, 오로지 진격의 나팔을 불며 전진하는 여기사의 긍지를 칭송하며 탄생한 기술에 특성 ‘용맹’이 결합되어 진화된 기예이리니.

시전 시 마력으로 빚어진 창룡(蒼龍)이 형상화되어 최대 100m에 이르는 일직선상의 모든 적을 찢어발긴다.

또한 상대와 나의 ‘수적 차이’, ‘종합 신체 능력치 차이’, ‘지형적 차이’를 극복할 때마다 위력이 15%씩 상승한다.

《오리지널 기술 : 일도양단》

- 등급 : 체화

- 단계 : 1/7

- 설명 : 행성 ‘버크(Buk)’의 지배종 「웨루카」만이 개화 가능한 기술이었으나, 이제는 누군가의 개성이 더해져 새로운 방식으로 진화된 기예(技藝)일지니.

특성 ‘초집중’과의 결합으로 발현 시 ‘집중 시간(최소 3초~최대 10초)’에 따라 위력과 사정거리가 절댓값이 달라진다.

또한 ‘집중 시간’이 3초씩 늘어날 때마다 ‘출혈’, ‘방어력 관통’, ‘봉합 불가’의 이로운 효과가 부여된다.

되뇌는 혼잣말에 겹치듯 아스라이 떠오르는 정보.

그 이름과 설명대로 참 대단하고도 무서운 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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