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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메라의 기억법-176화 (175/232)

176화

끼이이익―

쿵!

지하실 문을 닫고, 아라운다 던전을 건너 되돌아온 초목 하우스에서 처음으로 마주한 이는…….

“그어어어어어!!”

“그어어어어!”

쿠웅―

쿵―

쿵―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우두커니 서서 거처를 수호하던 골렘 부대 중에서도 최고를 자랑하는 십이지신(十二支神)들이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영역에 들어서자마자 달려 나와 나를 반겨 주는 녀석들.

단순한 기계 덩어리.

잘해 봐야 그 수준이라고 여겼는데.

“반려견이 따로 없네.”

지성을 갖춰서일까?

내 생각보다 더 귀여운 아이들이었다.

음.

귀엽다고 하는 게 맞으려나.

아무튼.

“그워어어어어!”

“그어어어!”

“그래, 그래. 나도 반갑다.”

주인을 만나 낑낑거리는 강아지처럼 그릉거리는 골렘들의 환영 인사에 적당히 호응해 준 나는 예상 못 한 상황에 피식하고 웃으며 문을 열었다.

[‘초목의 안전지대’에 들어왔습니다.]

[체력 및 마력 재생 속도가 10% 상승합니다.]

[피로 회복 속도가 5% 상승합니다.]

진입하는 동시에 적용되는 여러 옵션들 사이로.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려오는 한세정들의 얼굴이 보였다.

“스랄레오들이 대규모로 쳐들어왔나?”

“그러니까. 왜 갑자기 울어 대는 거지?”

“제가 혼자 갔다 와도 됩니다만.”

“오빠도 마력 거의 다 소모하셨잖아요.”

“맞아요, 형. 같이 정리하고 빨리 가서 밥 먹자고요!”

십이지신(十二支神)들이 하도 울어 대서인지 의아한 표정으로 대화를 주고받으며 나오던 그들은.

“…어? 아윤, 오빠?”

“응? 오빠가 어디, 진짜네?”

“……!”

문 앞에 서 있는 나를 발견하곤 헛것을 본 게 아닌가 싶은 듯 몇 번이고 눈을 껌뻑이더니, 이내 진짜란 걸 확인했는지.

금세 환한 표정을 지으며 허겁지겁 뛰쳐나왔다.

“아윤 오빠!”

“오빠! 오셨어요?”

“형님!”

“오빠!”

“형!”

기쁨, 환희, 반가움.

여러 감정으로 두 손에 쥐고 다가오는 한세정들을 보고 있자니, 정말로 ‘집’에 돌아왔구나 하는 기분이 들었다.

평범한 언어적으로나, 함축된 표현적으로나.

여기에.

누나까지 함께였다면 훨씬 좋았으련만…….

‘…조금만 기다려!’

괜스레 차오르는 씁쓸함을 각오의 발판으로 삼으며 옆에 달라붙는 한세정들과 나란히 식당으로 올라갔다.

막 아침 훈련을 마치고 귀환했던 모양인지.

식탁 위에 모락모락 김이 나는 고기와 렌티아 열매 등이 먹다 남은 채로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오빠, 밥은 드셨어요?”

“구운 게 있으면 하나만 줘.”

“잠시만요!”

난 그 냄새에 이끌리듯 의자에 앉아 신지유에게 한 접시를 부탁했다.

자유로운 활동성 때문에 식량을 일주일 분량만 가져갔던 탓에.

2주 내내 쪼개고 쪼개서 먹느라 제대로 된 음식 섭취를 하지 못해 육향이 콧속으로 스며들자마자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들렸다.

* * *

간만에 전원이 참석한 식사를 끝내고 차 한 잔을 곁들여 회포를 푸는 자리.

빨리 말해주고픈 게 있나 입을 움찔거리던 한세정들에게 선수를 양보하고서 잠시 후.

“정말이야?”

“네!”

나는 입을 벌리며 탄성을 내뱉었다.

지난 보름간.

단 한 명도 빠짐없이 ‘오리지널 기술’을 확보했다는 얘기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저는 사신의 눈물.”

“저는 절대 물러서지 않는 용.”

“전 철벽의 요새입니다.”

“저는 천공의 문이라네요.”

“전, 전 일도양단이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지독하게 단련해 왔으니 당연한 성과 아닌가 하겠지만, 그건 절대 아니었다.

며칠은커녕.

단 몇 시간만 똑같은 행위를 반복해도 지치는 게 사람이다.

헌데.

그걸 참고 버티며 몇 날 며칠이고 마력이 찰 때마다 동일한 기술을 끊임없이 되풀이한다는 건.

끈질김, 독기…….

실상 집착에 가까운 의지력이 동반되어야 하는 고된 행군일지니, 이를 이겨 냈다는 것은 능히 박수받을 일이었기에 진심을 다해 얘기했다.

“수고했다. 정말로.”

말을 짧았지만, 속내는 분명하게 전달되었는지 기꺼운 반응을 보이며 싱그러운 면면으로 화답해 주는 한세정들.

후에 나도 ‘등위 상향’의 성공 스토리를 풀어 주며 우린 2주간 쌓여 있었던 이야깃거리를 털어놓았다.

이들은 <성장의 땅>에서의 내 행적에 유난히 열띤 호응을 해주었다.

하기야.

그럴 만도 했다.

해당 과정에서 '특수 퀘스트'가 다섯 개나 클리어했거니와, 최종 장에선 퀸급 발록을 단독으로 처치하는 공적을 이뤘으니.

신기하고 또 대단하다는 듯 눈동자를 반짝였다.

그 밖에도.

한세정이나 조이령, 곽재우는 황 노인의 지하실에서 기거했었다는 말에 아련한 기색을 표하기도 했다.

한사코 대가를 거절하며 많은 도움을 주었던 노손(老孫)은 우리에게 있어 평생토록 기억될 의인들이었기에.

그날은 그렇게 담소를 나누며 푹 쉬었다.

나에게도, 한세정들에게도.

열심히 달렸던 우리에게 주는 휴식이었다.

* * *

딸깍―

[이벤트 발발까지 남은 시간 : 32일 22시간 47분 15초]

다음 날.

“가자.”

“네!”

“네!”

“네!”

“네!”

“네!”

오전 트레이닝을 하고 나서 모인 우리는 당장 교전에 투입돼도 좋을 만큼 완벽하게 무장을 갖춘 상태로 거점을 나섰다.

어제 잘 쉬었으니.

오늘부터는 다시 사냥을 나설 차례였다.

또 다른 단서 입수를 위하여.

아쉽게도 여정 당시에 ‘황금 표식’과 연관된 뭔가를 포착하지 못한 터라 4등급 근원석을 구해야만 했다.

“어디부터 가실 거예요?”

“골갑의 초원.”

그러한 목적을 지닌 우리의 일차 행선지는 가장 인접한 장소에 위치한 ‘골갑의 초원’, 스랄레오들이 우글거리는 던전이었다.

이곳으로 정한 이유는 딱히 없다.

기존에는 되도록이면 상성이 맞는 곳, 예컨대 신지유가 활약할 수 있는 물거미 아라운다 던전이라든가 하는 쪽으로 들러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만…….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될 듯했다.

여섯을 합치면 오리지널 기술만 무려 여덟 개였으니까.

설사 상극의 존재와 대면하더라도 작심하고 합격하면 단숨에 찢어발겨지리라.

“문제는 퀸급이 두 마리 이상일 가능성인데.”

“그러면 물러나야겠죠?”

“아마도.”

무리하면 어렵지 않게 사냥할 테지만, 구태여 위험을 초래할 까닭은 없으니 전체가 다 그런 게 아니라면 가급적 안전한 방향으로 움직일 요량이었다.

여하간.

겨울 북풍을 헤치며 도착한 초원.

마력의 영향인지 시스템의 영향인지, 여전히 녹음(綠陰)이 우거진 수풀에 발을 들이자 입장 관련 메시지들이 연달아 떠올랐다 사라진다.

나는 그것들을 다 쳐 내고 마지막 단락에 시선을 뒀다.

[〈던전〉 입장을 확인했습니다.]

[‘칭호 : 점령하는 자’가 발동합니다.]

[현재 〈던전 : 골갑의 초원〉에 존재하는 적의 숫자가 표시됩니다.]

[4등급 : 1]

[3등급 : 132]

[2등급 : 1,225]

[1등급 : 4,192]

[총합 : 5,450]

‘칭호 : 점령하는 자’를 통해 단박에 감지되는 숫자.

참 멍청하게도 그동안은 이 기능을 잊고 살았다. 이거 하나면 퀸급의 유무는 물론 그 수가 몇 마리인지도 깔끔하게 파악이 되는데, 매번 까먹고 기감에 의존해서 알아내려 했으니 말이다.

필시.

이 외에도 까먹고 묻혀 버린 능력이 있을 거다.

아이템이든, 기술이든, 칭호든.

언젠가 시간 될 때 한꺼번에 정리해 봐야 할 거 같았다.

“세정아, 지유야.”

그리 중얼거리며 한세정과 신지유를 불렀다.

내 부름에 일행보다 한 발자국 앞쪽으로 걸어 나간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주억거리고는 마력을 풀어낸다.

우우우웅!

우웅!

격렬하게 요동치며 방출된 에너지는.

[베놈 포그]

[흔들바람]

사아아아아아아아!!

사아아아아!!

일순간에 던전 초입을 제외한 전 지역을 보랏빛으로 물들였다.

스랄레오를 비롯한 대부분의 괴물들이…….

그냥 대부분의 생명체가 독에 관한 저항력이 없음을 노려 개발한 광역 중독기였다.

효과는 굉장했다.

“꾸이이이이익!!”

“꾸이이익!!”

스랄레오가 내구 특화 종(種)이기는 해도.

[용독술―하독편 : 광란분]

[용독술―하독편 : 발정분]

*광란분(狂亂粉) : 흡입 시 ‘상태 이상 : 혼란’ 증세 유발 가루

*발정액(發情粉) : 성 충동 유발 가루

촤아아악!

촤아악!

흔들바람을 믿고서 작정하고 쏟아 내는 하독술에는 당해 낼 도리가 없었다.

그 덕에.

“꾸이이이익!”

“꾸이익!”

쿠우웅!

쾅!

우린 광란과 발정으로 저들끼리 치열하게 치고받는 장면을 원없이 감상할 수 있었다.

실제로도 저러할까 싶은 장관에 한참을 관망하던 차에.

“됐다. 다 날아갔어요.”

“그래? 그럼 슬슬 출발해.”

“네!”

“세정아, 좌측으로 갈까?”

“그러자.”

“누나들, 전 준비됐어요.”

대기상의 독효를 체크하던 한세정이 활동해도 좋음을 전하자, 곽재우를 필두로 하나둘 병기를 쥐고 진격을 시작했다.

대형은 ‘3-3’.

평소와 달리 나와 곽재우, 신지유가 한 조가 되어 커맨더급 이하의 스랄레오들을 상대하는 유인조가 되고.

한세정, 조이령, 신지운이 공력조가 되어 퀸급 스랄레오를 사냥하는 방식이다.

평소와는 판이한 포지션으로.

이리 지정한 연유는 모두가 ‘퀸급’이라는 최상위 개체를 직접 상대해 보도록 하기 위해 짠 구성이라, 앞으로도 멤버만 달라질 뿐 같은 포메이션을 유지할 계획이다.

하여.

요격조가 타이밍을 잡으려 은신한 직후.

“작전 개시.”

“예.”

쿵―

[철혈의 술―2단계]

[대군 방벽]

곽재우가 전방에 10여 미터는 될 법한 거벽을 세웠다.

멀리서도 확 띌 만한 시뻘건 방벽.

“산지기, 드라이어드.”

쿵―

쿠구구구구궁!!

거기에 신지유까지 합세해 돌과 나무로 된 첨탑을 건축하자.

“꾸이이이이익!!”

“꾸이이이익!”

“꾸이익!”

쾅!

두두두두두두!!

서서히 안정세를 찾아가던 스랄레오들이 동족상잔(同族相殘)의 원한을 풀고자 하는가.

지진을 연상케 하듯 발을 구르며 미친 듯이 돌격해 왔다.

미끼를 제대로 문 모양.

그러자.

“얘들아.”

신지유가 정령 하나와 소환수 다섯을 대동한 채 전면으로 나섰다.

스태프를 쥔 소녀는 몰려오는 수백 마리의 괴물들을 무감각한 눈빛으로 주시하며 마력을 전개했다.

“집중 포화.”

단 네 글자.

고작 두 단어의 조합이었으나, 결과는 참혹 그 자체였다.

화르르륵!

쩌저적!

휘우우우웅!

쿠구구궁!

파지직!

촤르르륵!

청염의 불길, 얼음꽃의 빙각, 흔들바람의 칼바람에 산지기의 거석과 암전류의 낙뢰.

그 중심에서 적들이 도망치지 못하게 옭아매는 초목의 속박은 과거보다 한층 강력해진 힘으로 스랄레오들을 찍어눌렀다.

곽재우나 나는 가만히 앉아 구경해도 좋을 만큼.

“계약술이 체화 등급으로 올라가서 간섭력이 더 줄어들었다고 했던가…….”

소환사가 아니기에 ‘간섭력의 차이’가 정확히 무얼 말하는진 몰라도.

이건 확실했다.

지금의 신지유라면.

아라운다 던전처럼 상극을 점하는 특수한 환경에선 나보다도 뛰어난 힘을 발휘하리라고.

이는 추측을 넘어서는 확신이었다.

‘기대되네.’

그래서인지.

어서 보고 싶어졌다.

신지유…

나아가 한세정들이 가진 무력의 한계가 어떨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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