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화
【 또 다른 단서들 】
“재우 씨, 시작할게.”
“오시죠. 지유와 지운이도 전력으로 임해라. 나는 괜찮으니까.”
“네, 오빠.”
“형. 조심하세요!”
새벽 여섯 시.
간단히 세안을 하고 공터로 나온 조이령, 곽재우, 신지유, 신지운 네 사람은 일 대 삼으로 나뉘어 각자의 애병을 손에 쥐었다.
먼저 행동한 쪽은 곽재우.
후웅―
쿵!
커다란 철퇴로 땅을 찍으며 마력을 발산하자.
쿠구구구궁!!
땅이 요란하게 흔들리며 무언가가 구름에 닿아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높게 솟구쳐 올랐다.
뾰족한 첨탑과 두꺼운 성벽.
중앙에는 성문 대신 황금빛 광휘로 뒤덮인 방패가 자리한 성채가 모습을 드러냈다.
[오리지널 기술 : 철벽의 요새]
곽재우의 비기였다.
그는 제 최고의 기술을 완성시키고는 셋을 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와도 좋다는 수신호.
정해진 동작을 수행하자.
“하아!”
“으아아아아!”
“얘들아!”
타이밍을 재던 세 남녀가 함성을 내지르며 달려들었다.
[발광하는 이무기]
[웨루카의 다중 베기]
[청염, 얼음꽃, 흔들바람, 산지기, 암전류]
맹렬한 스피드로 날아와 내리꽂히는 주력기.
후우우욱―
콰앙!
각기 동과 서.
정면을 노리고 온 힘을 다해 격돌한다.
그러나.
고오오오오오오―
희멀겋게 피어올랐던 먼지 구름 안에서 나타난 요새는 흠집조차 보이질 않았다.
티끌 하나 없이 멀쩡한 형상.
“쳇.”
“누나, 예상했잖아요.”
“그렇긴 하지. 다시 가자. 지유야.”
“네, 언니!”
그 광경에 셋은 혀를 차면서도 재차 창칼과 소환수들을 이끌고 진격했다.
네 명의 전투는 끊임없이 이어졌다.
한쪽은 방어를, 한쪽은 공격을.
흡사 모든 것을 뚫는 창과 모든 것을 막는 방패의 싸움인 양 누군가 죽어야 끝날 것처럼 계속되던 그때.
휙―
곽재우가 철퇴를 세웠다.
보유한 마력이 거의 다 소진되었다는 사인이었다.
그럴 만도 했다.
“몇 분이나 했지?”
“십…오 분 됐네요.”
“벌써?”
15분이나 ‘철벽의 요새’를 펼치고 있었으니.
하여.
“마지막 한 번으로 끝내자.”
“네.”
“네.”
조이령은 검지 손가락을 들어 무언의 대화를 나누고 무기를 꽉 붙들었다.
신지유와 신지운도 체내의 기운을 모조리 끄집어냈고.
“가자앗!”
타앗!
여기사를 선두로 두 줄기의 섬광과 여섯 종류의 천재지변이 성곽을 들이박았다.
후우우우욱―
콰아아아아앙!!
연신 울려 퍼지는 굉음.
휘위이익!
자욱하게 치솟은 까만 흙먼지가 뒤늦게 터져 나온 후폭풍에 밀려 나간다.
내부에 감춰져 있던.
“나이스!”
“됐다!”
“저도요!”
웃음기 머금은 세 남녀의 얼굴을 선보이며.
그 의미는 명확했다.
조이령도, 신지유도, 신지운도.
혹독하게 자행했던 수련의 결실이 맺혔다는 뜻이었다. 이를 증명하듯 셋의 시선이 일시에 상공으로 향했다.
“…….”
이에.
스윽―
곽재우는 조용히 뒤로 물러났다.
앞서 체험해 본 환희의 순간을 세 사람도 충분히 만끽하게끔 퇴장해 준 것이었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푸르른 하늘만을 응시하며 종이를 꺼내 찢더니 빈 허공을 두드리는 조이령과 신씨 남매.
아마도 그들의 눈앞에는 이런 글씨가 새겨지고 있을 터였다.
[‘한계 돌파 의뢰서 : 체화’를 사용합니다.]
요 짤막한 문구를 기점으로.
[기술 ‘발광하는 이무기’를 선택했습니다.]
[기술 ‘중급 계약술―소환편’을 선택했습니다.]
[기술 ‘웨루카의 다중 베기’를 선택했습니다.]
1차 스테이지를 지나.
[해당 기술이 ‘한계’에 다다랐음을 확인했습니다.]
[해당 기술의 한계를 돌파하는 데 필요한 임무가 주어집니다.]
《한계 돌파 : 발광하는 이무기》
- 설명 : 홀로 대군을 격파하고자 탄생한 기예를 피나는 노력 끝에 원류와 비견될 정도로 완숙의 경지에 다다른 그대. 이제는 ‘남의 것’을 ‘자신만의 것’으로 가다듬을 시간입니다. 당신이 지닌 ‘특성’을 가미해 원류를 뛰어넘을 본인의 길을 제시해 보십시오.
- 과제 : 1. 특성 결합 / ?
- 현재 결합 가능한 특성 : 강인함, 용맹
《한계 돌파 : 중급 계약술―소환편》
- 설명 : 차원을 넘나드는 이계의 존재 중 동료 혹은 친구로서 함께할 자들을 불러내기 위해 고안된 주문을 피나는 노력 끝에 원류와 비견될 정도로 완숙의 경지에 다다른 그대. 이제는 ‘남의 것’을 ‘자신만의 것’으로 가다듬을 시간입니다. 당신이 지닌 ‘특성’을 가미해 원류를 뛰어넘을 본인의 길을 제시해 보십시오.
- 과제 : 1. 특성 결합 / ?
- 현재 결합 가능한 특성 : 재배, 협동
《한계 돌파 : 웨루카의 다중 베기》
- 설명 : 행성 ‘버크(Buk)’의 지배종 「웨루카」만이 개화 가능한 기술을 베껴 피나는 노력 끝에 원류와 비견될 정도로 완숙의 경지에 다다른 그대. 이제는 ‘남의 것’을 ‘자신만의 것’으로 가다듬을 시간입니다. 당신이 지닌 ‘특성’을 가미해 원류를 뛰어넘을 본인의 길을 제시해 보십시오.
- 과제 : 1. 특성 결합 / ?
- 현재 결합 가능한 특성 : 심안, 초집중
[기술 ‘발광하는 이무기’와 특성 ‘용맹’이 결합합니다.]
[기술 ‘중급 계약술―소환편’과 특성 ‘협동’이 결합합니다.]
[기술 ‘웨루카의 다중 베기’가 특성 ‘초집중’과 결합합니다.]
선택의 장을 건너.
“앗!”
“이게…….”
“오리지널 기술!”
[스스로의 길을 찾은 그대에게 「오리지널 기술 : 절대 물러서지 않는 용」을 부여합니다.]
[스스로의 길을 찾은 그대에게 「오리지널 기술 : 천공의 문」을 부여합니다.]
[스스로의 길을 찾은 그대에게 「오리지널 기술 : 일도양단」을 부여합니다.]
오랜 노력에 걸맞은 선물을 거머쥐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내용이.
씨익―
이를 상상하니 곽재우의 입가에도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 * *
[당신의 「격」이 성장합니다.]
[보상으로 당신의 신체가 ‘재구축’됩니다.]
[이 변화에는 ‘괴물이되 인간이길 바라는 당신의 간절하고 고결한 의지’를 최우선적으로 반영합니다.]
[‘신체 재구축’을 시작합니다.]
스스스스스스스―
스스스스스―
현실로 돌아오기 무섭게 일어난 ‘신체 재구축’.
일찍이 경험해 본 현상이었기에 예상했던 부분이라, 별다른 거부감이나 놀람 없이 받아들였다.
다만.
궁금했다.
‘뭐가 바뀌려나…….’
중위 단계로 승격하던 시절을 회상해 보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신체 전반이 세포 단위로 분해됐다가 조립된 뒤 투박하고 거칠던 신체가 최대한 인간과 비슷하게 변형됐었다.
그러고는 ‘신체 최적화’ 기술을 획득하며 이후로는 추가적인 재구축이 없더라도 자동으로 개선 작업이 이루어졌지.
고로.
이번에도 그에 준하는 이벤트가 발생할진대.
‘과연…….’
무엇이 변할 것인가.
적잖은 호기심을 갖고 대기하길 3분여.
화악!
[신체의 ‘재구성’이 완료되었습니다.]
“아.”
빛이 트이며 복원된 눈동자 너머로 어떤 변화가 진행되었는지가 적힌 메시지의 파도가 보였다.
[불균형적인 신체 파워 밸런스가 안정화됩니다.]
[신체 파워 밸런스 안정화의 여파로 모든 신체 능력이 소폭 상승합니다.]
[「상위 프레데터」로서 진화한 당신에게 추가로 몇 가지 보상이 주어집니다.]
[기술 ‘프레데터의 중위 진화론’이 기술 ‘프레데터의 상위 진화론’으로 성장합니다.]
[기술 ‘괴령화’를 습득합니다.]
[기술 ‘피의 추적자’를 습득합니다.]
《기술 : 프레데터의 상위 진화론》
- 등급 : 특수
- 단계 : -
- 설명 : 누구의 도움 없이 스스로 진화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키메라 ‘프레데터’는 자신이 사냥한 개체의 신체 조직을 ‘흡수 이식’ 또는 ‘변형 이식’해 끊임없이 성장한다.
다만 발아한 터의 영혼이 인간이길 바라는 제약으로 매 이식마다 ‘인간성’의 일부를 필요로 하게 되었다.
└현재 등위에서 이식 가능한 신체 : 지금껏 흡수 또는 변형하지 않은 기관
└다음 등위까지 필요한 최소 이식 수 : 0/5
└현재 이식에 필요한 인간성 : 20%
└이전 등위에서 이식한 부위 또한 언제든 새로 이식할 수 있습니다.
└이전 등위에서 이식하지 못한 부위 또한 언제든 새로 이식할 수 있습니다.
└단, 이전 등위와 관련된 신체 부위는 ‘다음 등위까지 필요한 최소 이식 수’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기술 : 괴령화》
- 등급 : 특수
- 단계 : -
- 설명 : 기억은 곧 영혼의 또 다른 명칭이기도 하오니. 당신이 제압하고 굴복시킨 영령들의 힘을 끌어내 덧입는다. 종(種)에 따라 신체 능력 혹은 속성 능력이 전승되며, 기술의 해제 시 효과는 소멸된다.
《기술 : 피의 추적자》
- 등급 : 특수
- 단계 : -
- 설명 : ‘프레데터’란 곧 절대적인 포식자로서 군림하는 자. 사냥감으로 정한 대상은 설령 지옥에 존재할지라도 가서 심장을 치하는 자.
‘프레데터’가 그와 같은 위명을 떨칠 수 있었던 데에는 한 줌의 핏물만으로도 수 킬로미터 바깥으로 도망친 먹잇감의 추적이 가능하기 때문일지니. 마신 핏물의 양에 따라 추적 범위와 시간이 늘어난다.
“호…….”
위쪽에서부터 주르륵 읽어 내려가던 나는 탐독을 끝마치며 감탄사를 터트렸다.
아쉽게도 ‘신체 재구축’으론 밸런스 패치 이외에 특별한 변동이 없었으나, 새로 습득한 기술이 꽤나 마음에 들었다.
특히.
‘피의 추적자’란 거.
이렇다 할 추적 능력이 없는 나로서는 상당히 반가운 이야기였다.
페르니스의 근원석을 먹어 배운 ‘끈질긴 추적’이라는 게 있기는 한데, 사본(寫本) 등급이거니와 냄새가 지워지기라도 하면 단박에 흐지부지되는 타입이라.
“피를 마셔야 한다는 게 좀 꺼림칙하긴 하지만… 뭐, 필요하면 심장도 이용하는 판국이니.”
혈액이야.
‘인간성’ 복구하는 셈 치고 넘기면 되겠지.
그나저나.
“기관의 제한이 사라졌네.”
‘지금껏 흡수 또는 변형하지 않은 기관’이라.
허면.
슬슬 눈을 바꿀 때가 온 건가?
성십자가 클랜과의 전쟁 시절.
매였는지 독수리였는진 알지 못하나 거대한 새를 보며 조류의 시력을 취한다면 내 안력이 얼마나 강화될지 알고 싶었는데, 그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할 찬스가 온 듯싶었다.
일단은.
“돌아가야겠어.”
집을 떠나온 지도 어느덧 보름.
중요했던 숙제도 해결했으니 우선 복귀해서 다음 행보를 기획해야 할 것 같았다.
“임시 안전지대, 격살용 알람 마법진 오프.”
지이이이잉―
[‘강철의 안전지대(임시)’가 해제됩니다.]
[‘알람 마법진’이 비활성화됩니다.]
[‘알람 마법진’이 비활성화됩니다.]
[‘알람 마법진’이 비활성화됩니다.]
밖으로 나가기 위하여 ‘성장의 땅’으로 입장하기 전 설치해 두었던 ‘임시 안전지대’와 무더기로 활성화시킨 ‘알람 마법진’들을 중지시켰다.
심상 세계를 유영하는 기간 내내 날 보호해 주던 장벽들.
덕분에 다행히 무탈하게 깨어나 거점 방향으로 발을 내디딜 수 있었다.
딸깍―
[이벤트 발발까지 남은 시간 : 33일 22시간 21분 07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