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화
녀석과 대면했을 때 처음 든 감상 평은…….
“크네.”
무척 크다는 거였다.
‘침략군’.
지구를 침공한 외계 생명체들의 공통적인 특징이 ‘거구’라는 점은 누구보다 잘 안다. 상위 등급으로 올라갈수록 그에 비례하여 몇 배로 커진다는 점도.
당장 ‘축제의 땅’에서의 보았던 퀸급 살라만드라나 ‘던전 : 쌍수 증량의 폭력’에서 사냥했던 퀸급 포타우스만 해도 10m에 달하는 초대형 종(種)이지 않았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쌍의 날개를 펄럭이며 지상으로 내려오는 8m 사이즈의 발록은 유난히 비대하게 다가왔다.
아마.
겨우 시선을 맞대는 것만으로도 심대한 압박감을 선사하는, 전설상의 악마가 현세에 강림하는 듯한 연출에서 오는 압박감이 그 원인이리라.
본인 스스로도 그 강점을 잘 아는 양.
부우우우웅―
쿵!
“그어어어어어어어!!”
쿠구구궁!
놈은 지면에 발을 대자마자 거친 포효를 내질렀다.
그 의미가 왠지.
고작 2m도 안 되는 자그마한 생물 주제에 자신을 상대할 수 있겠느냐는 조롱 섞인 비웃음으로 느껴졌다.
실제로는.
푸확!
[‘발록의 투기’에 적중되었습니다.]
[강렬한 기파에 ‘상태 이상 : 공포’가 찾아옵니다.]
[기술 ‘멘탈리티 가드’가 정신적 공격에 대항합니다.]
[신체 능력 ‘저항’, ‘투기’, ‘용기’, ‘의지’가…….]
청각을 자극해 관심을 끌어 놓고 몰래 공작을 벌이려는 노림수였던 거 같다만.
‘바로 들어오는군.’
나는 의외로 교활한 한 수에 혀를 내두르며 발끝에 힘을 주었다.
비록 선수는 빼앗겼으나.
이타(二打), 삼타(三打)까지 연속으로 내줄 생각은 전혀 없었다.
‘괴물의 심장’ 효과가 꺼지기 전에.
툭―
[오리지널 기술 : 영원토록 붕괴하는 대지]
한 대라도 더 때려야 하니까.
쿵―
콰과과과과광!!
디딤판에 무게를 실은 직후.
대지가 수십, 수백 조각으로 갈라져 나갔다.
퀸급 포타우스를 목표 삼아 가동되었던 당시와는 비교를 불허할 만큼 거칠면서도 신속하게.
‘순양지체’와 ‘괴물의 심장’을 필두로 각종 버프가 한데 어우러져 빚어내는 경이로운 재앙.
“그어어어억!!”
그 기습적인 공세에 발록의 주둥이에서 경악성이 튀어나온다.
기파에 눌려 겁에 질려야 했을 내가 아무렇지 않게 움직였음에, 더해서 한낱 인간 따위의 손에서 경천동지할 자연재해가 탄생했다는 것에 기겁한 눈치였다.
나는 놈의 방심을 놓치지 않았다.
퀸급 포타우스와 싸우며 경험했다.
제아무리 오리지널 기술이라고 해도 최상위 개체쯤 되면 구속에서 빠져나오기도 한다는 걸.
게다가.
녀석의 경우엔 날개도 있는지라 일격이 통했다고 한들 안심하지 않으리라 작정했고.
“그대로―”
우우우우웅!!
그 단호한 결심은.
“처박아 주마.”
[오리지널 기술 : 군단을 파괴하는 본능]
후우욱!
콰아아앙!!
한순간에 세상을 뒤흔들며 안 그래도 심연으로 추락하던 놈의 전신을 더더욱 깊숙하게 짓눌렀다.
콰앙!
쾅!
콰과광!
비록.
쪼개지고 쪼개진 탓에 치명적인 피해를 입히진 못할지언정, 선행기인 ‘영원토록 붕괴하는 대지’와 절묘하게 결합하며 묵직하게 작렬하는 별들의 격노는 발록에게서 비명을 뽑아냈다.
“그어어억!! 그어억!”
쿠구궁―
쿠구구궁―
어찌나 고통스럽게 울어 대는지 고막이 다 따가울 지경.
필시 ‘진격하는 자’라는 이름으로 실시되었던 퀘스트를 클리어하여 얻은 보상의 효능도 톡톡히 본 듯했다.
《칭호 : 임전무퇴》
- 특별한 업적을 달성한 대상에게 부여되는 칭호. 적을 ‘앞’에 두고 물러나지 않을 경우 상황 해제 시까지 모든 기술의 위력이 5% 늘어납니다. 또한, 「발록」을 상대로 전투가 일어날 경우 모든 신체 능력이 5% 상승합니다.
기술 위력은 기술 위력대로, 신체 능력은 신체 능력대로.
한 번에 두 방향을 모두 증가시켜 주는, 분류하자면 능히 최상급 티어에 들어갈 만한 칭호였으니 말이다.
설마 이런 엄청난 게 뜰 줄은 몰랐다만.
뭐가 됐든.
‘마력이……!’
그 과정서 나로서도 단 3~4분 만에 30% 가까이 되는 마력을 대가로 지불해야 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애당초.
총량의 7할은 아낌없이 투자할 계획이었다.
놈이.
[마력 변형술 : 거신의 창]
[강격]
꽈아아아아악!!
“하아!”
뒈질 때까지.
후우우우욱!
‘군단을 파괴하는 본능’의 여파가 잠잠해지는 즉시 쏘아 낸 3m 길이의 창.
거신(巨神)이라는 명칭이 딱 어울리는 거병이 공간을 격하고 쇄도해 타깃과 충돌한다.
쿠웅!
한세정처럼 투척술에 능통하진 않다고 한들.
“한 발 더―”
[마력 변형술 : 거신의 창]
후우우욱!
쾅!
과녁의 부피 자체가 워낙 넓어 대충 던져도 적중 또 적중이기 때문이었다.
“그어어어어!!”
그때였다.
후화화확!!
반쯤 파묻혀 가던 발록에게서 어마어마한 기운이 소용돌이친 것은.
우람한 한쪽 팔로 머리와 흉부를 가린 채 체내의 에너지를 방출하는 놈의 기세에 나는 반사적으로 눈살을 찌푸렸다.
‘뭐냐……!’
연달아 펼쳐진 두 개의 오리지널 기술과 온갖 연계기로 몰아붙였기에 웬만하면 쓰러져 주리라 싶었거늘.
역시는 역시인가.
[순간 회귀 : 스랄레오의 골갑]
[머메른의 갑주]
[칼리아스의 마력 방패]
콰득―
촤르르르륵!
이맛살을 찡그리며 자연스레 방어 수단을 총동원하는 동안.
“그어어어억!!”
퍼버버버버버벅!!
발록의 몸뚱어리에서 뿜어져 나온 진홍색 알갱이 수천 개가 전방위를 휩쓸기 시작했다.
저것이 퀸급의 기술이던가.
전쟁 영화 속 기관총의 이미지가 떠오르는 적우(赤雨)는 닿은 모든 장애물을 꿰뚫어 버리며 내 목숨을 노렸다.
카가가가강!
카가강!
‘미친 듯이 쏟아지는구나……!’
겹겹이 세워 둔 방패를 깨부수기 위해 돌진해 오는 파상공세를 막아서는 건, 폭풍우의 중심에서 우산을 들고 서 있는 느낌이었다.
젖느냐, 젖지 않느냐.
어쩔 수 없이 젖어야 한다면 대체로 어느 부위를 내어 줄 것인가.
[칼리아스의 마력 방패]
[칼리아스의 마력 방패]
[칼리아스의 마력 방패]
우우웅!
콰직!
‘젠장!’
반복해서 창조되었다 파괴당하는 마력의 흔적들이 그 공방의 치열함을 증명했다.
단지.
상황이 지속될수록 웃는 쪽은 나였다.
카가가각―
캉!
‘끝나 가는 건가.’
아무래도 육체의 절반가량이 매몰된 채로 광역기를 시전한 터라, 내 목과 심장을 노려야 할 대다수의 적우(赤雨)가 애꿎은 지반에 잡아먹힌 까닭이었다.
딱히 노린 부분은 아니었으나, 실상 절호의 기회.
나는 즉각 무릎을 굽히며 도약을 준비했다.
복싱 경기서 스트레이트를 잘못 날렸다 도리어 상체가 비어 훅을 맞듯, 강력한 기술은 그만큼의 반동을 낳는 바.
판단을 내렸다.
이 빈틈을 벌려 칼날을 박아 버리기로.
결정을 내린 내 몸은 벌써 공중을 유영하는 중이었다.
발휘할 수 있는.
[가속]
[그림자 걸음]
[풀루스의 돌진]
“하앗!!”
탁―
파아앙!
최고의 속도로.
슈우우욱!
대기가 찢겨 나간다.
너무나도 빠른 속력에 시야가 제대로 쫓아오지 못해 흐릿한 주변.
오로지 직감에 의존해 단숨에 발록의 지척에 도달해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주먹을 들어 올렸다.
“그어어어억!!”
발록과 나 사이의 간격은 약 5m.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당도한 내 손끝에서는 검고 파란 마력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오리지널 기술 : 군단을 파괴하는 본능]
우우우우웅!
퀸급 포타우스의 생명을 앗아 가는 데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형태 변화]
“후아아아아아아!!”
과거보다.
[천강]
우득―
우드드득!
[1분간 근력이 150%로 상승합니다.]
훨씬 공포스러워진 기예의 발현이었다.
[천격 태세]
후우욱!
콰아아아아아아앙!!
터진다.
분화할 시기를 겪기도 직전에 마광포가 압축된 그대로 발록의 상반신과 부딪치며 우레와 같은 굉음을 일으켰다.
나는 그 타격으로 놈의 허리가 새우처럼 꺾이는 광경을 목격함과 동시에 뒤로 튕겨 나가떨어졌다.
30m? 50m?
대관절 어디까지 곤두박질치는 걸까.
아니.
지금은 그런 시시콜콜한 사안에 집중할 때가 아니었다.
‘치료, 해야 한다……!’
동귀어진(同歸於盡)의 수법을 사용해 찾아온 리바운드부터 해결해야 했다.
어떻게?
[부분 복원]
[급속 회복]
방법이야 많았다.
[‘급속 회복’이 발동됩니다.]
[소모된 체력의 10%를 회복합니다.]
[‘부분 복원’이 발동됩니다.]
[3분간 재생력이 극대화되며, 수지 절단 이하의 상처가 완벽하게 복원됩니다.]
우우우웅웅!
연이어 전개한 회복술에 살가죽이 뜯겨 나가고, 핏물이 솟구치던 상처들이 아물어 간다.
‘회귀’는 아꼈다.
이전과 달리 ‘불굴’이 작동하지 않은 걸로 보아 위급한 상태는 아닐 테니 그건 최후의 수단으로 남겨 두고서.
부웅―
쿵!
“크흡!”
추락의 충격을 이 악물고 버텼다.
척추를 타고 흐르는 찌르르한 전류. 온몸으로 옮겨 가는 울림을 억눌린 기합과 함께 털어 내며 휘청휘청 일어섰다.
까득―
어금니 갈리는 소리가 뇌리를 진동시킨다.
허나.
“아직, 안 끝났다……!”
꽉 참고 걸었다.
녀석이.
[등위 상향에 필요한 고귀한 파편 : (0/1)]
여전히 살아 있었기에 마무리를 지으러 가야 한다.
저벅―
저벅―
“그어어어어…….―”
예닐곱 걸음을 전진했을 무렵.
내가 근접해 옴을 인지한 듯 우짖는 발록의 괴성이 들렸다. 개전 초기의 비아냥거림은 온데간데없는, 오직 비애와 분루로 가득 찬 절규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20초, 19초, 18초…….”
나는 발록의 비통한 하울링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머릿속으로 셈을 거듭했다.
1분짜리 기술.
‘천강’이 해제되기까지 몇 초나 남았는지를 추측하고 있었다.
굳이 150%로 폭증한, 무려 500대를 넘겨 버린 이 근력을 내버리고 싶지 않았으니까.
나도.
[분영일보]
탓―
촤아아아악!
[잠들어 있던 그림자가 깨어납니다.]
[당신의 다음 행동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꽈드득―
“하아!”
[웨루카의 베어 가르기]
후우우욱!
[그림자가 ‘베기’를 따라 합니다.]
나의 분신도.
“그어어어어어어어!!”
서거걱!!
* * *
휘이이이잉―
미풍이 분다.
산뜻하게 밀려오던 공기에 섞인 온기가 따스하게 감돌던 찰나.
휘유유유유―
털썩!
창백한 색채의 뭔가가 떠나가는 바람에 이끌리다 지상으로 곤두박질치며 땅바닥을 데구루루 굴렀다.
목덜미가 사선으로 베여 절단된…….
격렬하게 치러졌던 격전의 전리품이자, 성인 남자의 머리통 서너 개와 비견되는 괴물 퀸급 ‘발록의 대두(大頭)’였다.
그 육중한 대가리를.
후우욱―
콰직!
발로 밟아 으깨고서 폐허가 되어 버린 전쟁터에 굳게 섰을 때에 비로소 나는 두 가지 사실을 확실하게 체감하게 되었다.
[‘고귀한 파편’이 소멸하였습니다.]
[축하합니다!]
[〈전직 퀘스트 : 등위 상향〉이 완료되었습니다.]
하나는 두 번째 ‘등위 상향’에 성공했다는 거.
나머지 하나는.
“…됐다.”
이제 단독으로도 퀸급 개체를 사냥할 수 있는 위치에 올라섰다는 대목이었다.
그 만족스러운 결말에.
무어라 표현하기 힘든 감정이 차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