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화
‘체질’.
“들어 본 적 있어?”
“저는 잘…….”
“태양이나 태음인 같은 것도 못 들어 봤어?”
“아, 그건 들어 봤습니다.”
“똑같아.”
“에이… 제가 설마 고거 들으려고 왔겠습니가? 좋습니다! 꿍쳐 둔 거 한 병 더 드릴 테니 시원하게 풀어보시죠! 예?”
“크흠. 좋다, 그래. 이놈은 말이지!”
쉽게 풀자면 날 때부터 지니고 있는 성질이나 특징을 말하는 거야.
가령.
누구는 적게 먹어도 살이 찌는데, 누구는 밥솥째 퍼먹어도 마른 체형을 벗어나지 못하는. 체질을 개선한다는 의미는 그와 비슷하면서도 생존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능력을 부여해 준다는 얘기지.
예컨대.
동급의 포션을 마셔도 남들보다 두 배의 효과가 적용되는 수약지체(水藥之體).
흘리는 피 한 방울, 한 방울마저 적을 중독시키는 독인(毒人).
영적인 능력이 강화되며 죽은 자들과의 소통이 자유로워지는 영령지체(英靈之體).
이 외에도 일일이 열거하기 힘든 수백, 수천 가지에 달하는 종류가 있다. 어느 하나라도 거머쥐기만 해도 생존율을 대폭 상승시키리라 확신하는.
“…허유. 말만 들어도 어마어마해 보이네요.”
그치?
진짜 대단하지.
더구나.
“더구나?”
얻기가 그리 어렵지도 않아.
“정말요?”
내가 기자 양반한테 뭣 하러 거짓말을 해?
이 귀한 술까지 받아먹어 놓고.
아니.
그나저나 이거 진짜 어서 구해 온 거야? 고작 인터뷰나 다니는 생활로는 술은커녕 물도 제대로 못 마실 텐데.
“디오니소스라고 해서 제 능력이 물을 술로 바꾸― 아아, 지금 중요한 게 술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어떻게 얻는 건데요?”
크흠.
별거 없어.
3차 환골탈태.
근력, 체력, 순발력, 내구를 300씩만 찍으면 되는 거야.
그러니까 기자 양반.
이따위 시시콜콜한 잡담은 집어치우고 우리 좀 진지하게 술에 관한…….
“아잇! 거참!”
에이.
그러지 말고 우리 오붓하게 스랄레오 고기에 술 한잔하면서.
"됐디니까요!"
그럼 두어 병만 보태 주고가!
한 병만이라도!
- 인터뷰 ‘체질이란 무엇인가’ 스케치 中 일부 발췌
* * *
짤막한 파골음.
그와 동시에 물기 젖은 손으로 콘센트를 만지다 감전이라도 된 양 전류가 튀듯 파직거린단 느낌과 함께 온몸의 세포가 깨어나는 듯한 기묘한 감각이 뇌리를 관통했다.
익숙한 광경이었다.
오르그, 티그리스, 머메른 등 이종(異種)의 육체를 이식할 때마다 체험했던 감각이었기에.
단지 기존의 전례와 차이가 있다면.
‘고통이, 없다?’
짧게는 10초, 길어도 1분 이내에 발효되었던 통증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거기까지 생각했을 무렵.
[당신의 성질이 확인되었습니다.]
[「체질」 목록이 개방됩니다.]
[원하는 「체질」을 선택해 주십시오.]
몇 줄의 메시지가 출력되며 눈앞이 단어와 글자로 빼곡해졌다.
[체질 목록]
[1. 무력지체(자세히 보기▼)]
[2. 검강지체(자세히 보기▼)]
허공을 물들인 건.
단순히 스크롤을 내리는 데만도 족히 10여 분은 걸릴 만큼 다양한 명칭이 적혀 있는 총람이었다.
그런 탓에.
‘이런……!’
무척이나 당황스러웠다.
현재 나는 한세정들처럼 등 뒤를 맡길 동료나 최소 골렘들은 고사하고 ‘성장의 땅 : 2단계’의 제한으로 ‘임시 안전지대’조차 설치하지 못하는 신세.
이 같은 마당에 수천 단위의 괴물들을 목전에 두고 한가로이 탐독 시간을 가질 만한 여유는 없었으니까.
실로 위기였다.
누가 보더라도 ‘체질’에 관한 문제는 하루 종일 살펴본대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사안.
때문에 급하다고 아무거나 막 정하기도, 그렇다고 처한 상황을 무시한 채 느긋하게 구경하기도 어려웠으니 말이다.
‘젠장…….’
사면초가(四面楚歌)나 매한가지인 실정에 인상이 찡그려지던 그때.
[당신을 기준으로 가로 5m, 세로 5m 크기의 마력 구체가 생성됩니다.]
[마력 구체는 설정이 종결되는 시점까지 사라지지 않습니다.]
우우우우우웅!!
푸른 빛이 일렁거리며 반투명한 장막이 내 주위를 감싸 안았다. 보는 즉시 날 지켜 주는 방패라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1차, 2차 환골탈태와 달리.
3차 환골탈태는 철저한 고민의 영역이었기에 자동적인 조치가 취해진 모양. 나로서는 천만다행이었다.
‘후…….’
그 안전장치에 진심을 담아 안도의 한숨을 내쉰 나는 비로소 안정된 환경에서 ‘체질 목록’으로 시선을 주었다.
[체질 목록]
[1. 무력지체(자세히 보기▼)]
[2. 검강지체(자세히 보기▼)]
[3. 도극지체(자세히 보기▼)]
게임 혹은 무협지서나 볼 법한 이름의 나열.
자세한 설명을 위해 차례대로 터치해 봤다.
《체질 : 무력지체》
- 설명 : 무략(武力)이란 곧 힘을 뜻하는 바, 만일 당신이 그 그릇을 품게 된다면, 무력 행사에 유리한 체형으로 신체 구조가 변경되며, 앞으로 행하는 모든 물리적 행동의 위력이 영구히 상승할 것이다.
- 옵션 : 물리력 행사 시 위력 25% 상승
“아…….”
간략하고 간결하되 그 효력이 명확하게 명시되어 있는 내용에 절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25%나 되는 상승률이라니.
오로지 ‘물리력’에 한정된 조항일지언정 결코 외면하지 못할 보정치. 그 외의 항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체질 : 감강지체》
- 설명 : 감객들이 꿈에 그리는 천고의 육신. 이 체질을 손에 넣을 수 있다면 능히 검(劍)을 다루기 위한 골격과 근육 등 다시 없을 최고의 육신으로 태어나리라.
- 옵션 : 검(劍)과 관련된 모든 공격의 위력 25% 증가
《체질 : 도극지체》
- 설명 : 도의 극의에 이르기 위해 필수적인 체격. 일 수, 일 수에 패도와 용력을 담아낼 그릇으로서 변모한다.
- 옵션 : 도(刀)와 관련된 모든 공격의 위력 25% 증가
《체질 : 극양지체》
- 설명 : 빙령지체와 반대되는, 차원에 존재하는 양기가 자연스레 흡수하는 선체(仙體)의 기질을 갖는다. 화열지기가 사용되는 모든 행위에 압도적인 파괴력을 행사할 수 있다.
- 옵션 : 화(火) 속성 공격 시 위력 25% 상승
《체질 : 빙령지체》
- 설명 : 극양지체와 반대되는, 차원에 존재하는 음기가 자연스레 흡수하는 선체(仙體)의 기질을 갖는다. 빙한지기가 사용되는 모든 행위에 압도적인 파괴력을 행사할 수 있다.
- 옵션 : 빙(氷) 속성 공격 시 위력 25% 상승
처음부터 딱 5번까지 확인한 직후 본능적으로 레이더가 섰다.
이 기회를 허투루 넘겨선 안 된다고.
‘찾아야 한다.’
설사 몇 날 며칠이 걸리든 간에 개의치 말고 내게 최적화된 체질을 찾아 골라야 한다는 사실을.
눈이 번쩍 뜨였다.
이건 뭐.
볼 것도 없었다.
‘성장의 땅’의 시일이 지체될수록 가수면 상태에 놓여 있을 현실의 나도 위험해지는지라 내심 걱정이 됐지만.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일지니.
‘해 보자.’
작게 고개를 끄덕인 나는 주먹을 불끈 쥐며 ‘체질 목록’ 탐독에 몰두했다.
이 판단이 어떤 결말을 불러올지는 미지수이나, ‘성장의 땅’에 입성하기 전에 마련해 둔 방지책들을 믿고서.
* * *
“대강 이 정도인가.”
동녘의 태양이 서쪽으로 옮겨가는 오후.
장장 반자절에 걸쳤던 고된 심사숙고 끝에, 나는 총 네 개의 리스트를 추려 냈다.
각기.
‘순양지체’, ‘격류지체’, ‘단련신’, ‘수호자’였다.
《체질 : 순양지체》
- 설명 : 순양의 육체를 달성한 자는 가진 기운이 최상의 질로 거듭나며, 마력이 가미된 모든 행위에 긍정적인 이점이 부여된다.
- 옵션 : 마력을 대가로 하는 기술의 위력 20% 상승
《체질 : 격류지체》
- 설명 : 격류(激流). 거친 물결은 두꺼운 장벽도 허무는 법. 격류지체를 완성할 시 체내에 순환하는 마력의 흐름이 극도로 빨라지며, 마력 활용으로 이루어지는 모든 기술의 발동 시간이 단축된다.
- 옵션 : 기술 발동 속도 25% 상승
《체질 : 단련신》
- 설명 : 수많은 갈래 중 배우고 익히는 것이 신(神)의 경지에 이른 몸. 한번 습득한 지식은 그 누구도 쫓아올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통달하리니.
- 옵션 : 기술 숙련 속도 25% 상승
《체질 : 수호자》
- 설명 : 반드시 지키리라 맹세한 것을 보호해야 할 상황에 놓였을 때, 초인적인 정신력을 발휘하며 한계 이상의 능력을 끌어내게 된다.
- 옵션 : 정해진 상황을 맞이할 시, 모든 신체 능력치 25% 상승
하나하나가 어디에 내놓아도 절대 꿇리지 않는 체질들. 그 천문학적인 선택지 사이에서 이 네 가지를 고른 까닭은 명료했다.
우선 ‘순양지체’.
통상의 생존자에 비해 소유한 기술의 양이 서너 배 이상 많은 나로서는 기술 위력의 증가는 호랑이 등에 날개를 달아 주는 격이었다.
만약.
오리지널 기술과 결합한다면… 가히 천재지변과 다름없는 재앙이 벌어지리라.
이러한 ‘순양지체’가 질적인 발전에 중점을 뒀다면. 두 번째 ‘격류지체’는 양적인 성장에 초점을 맞춘 타입이다.
“발현 속도가 25%나 올라간다니.”
활용만 잘한다면 오리지널 기술을 연속으로 쏘아 내는 것도 영 불가능한 일은 아닐 터.
당하는 입장에선 지옥이 따로 없을 거다.
반면.
‘단련신’은 그간 수련 과정에서 톡톡히 덕을 보았던 ‘기술자’의 강화판이었다. 칭호와 합해질 경우 무려 30%의 부스터가 가동되는 최강의 버프.
당장의 교전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겠지만.
현 사태가 해결되고 나면 미친 듯한 가속력으로 여의주를 문 이무기처럼 창공을 날아오르리라.
4번 ‘수호자’.
이 녀석은 앞의 세 개와는 조금 다른 유형으로.
“될지 안 될지는 불확실하다만…….”
‘반드시 지키리라 맹세한 것’이라는 부분 때문에 선정하게 된 체질이었다.
혹시.
‘지키리라 맹세한 것’에 내가 살고 있는 이 지구가 포함된다면, 그것으로 지구를 빼앗으려 날뛰는 ‘침략군’들과의 전쟁에서 무기로 쓸 수 있다면 생존 전선에 엄청난 보탬이 될 듯싶어서.
하여 이런저런 연유로 네 개로 좁히긴 했는데.
“으음…….”
이 다음을 어찌해야 할지 고심이 됐다.
무엇도 버리고 싶지 않달까.
허나.
여유가 없는 만큼 결정을 내려야 하는 바.
“좋아.”
툭―
한참 동안 고뇌에 빠져 있던 나는 마침내 지독한 번복의 고리를 끊고 팔을 뻗었다.
[〈체질 : 순양지체〉를 선택했습니다.]
[개선이 시작됩니다.]
[다가올 고통에 대비하십시오.]
나의 결론은 ‘순양지체’였다.
우득!
우드드득!
그 확고한 결단을 필두로 세상이 하얗게 물들었다.
격통의 해일이 휩쓸고 지나가, 종신을 차렸을 즈음엔 깜깜한 밤을 가고 새로운 아침이 밝아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