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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메라의 기억법-169화 (232/232)

169화

탈깍―

[이벤트 발발까지 남은 시간 : 39일 23시간 59분 59초]

“시간 참 빠르네.”

어느덧 30일 대로 접어든 시계에 혼잣말을 중얼거린 나는, 손을 뻗어 ‘알람 마법진’을 비활성화 상태로 돌리며 온기가 사라진 ‘보온석’을 주머니에 넣고 바깥으로 나왔다.

1월의 끝자락.

절기상 슬슬 입춘(立春)이 다가오고 있음에도 변함없이 쌀쌀맞고 허여멀건한 계절에 정통으로 맞서며 지하실 서남 방면으로 걸었다.

목적지는…….

대략 20km 남짓 남진하면 나오는 던전.

우거진 정글이 드리워진 지대.

띠링!

[축하합니다!]

[〈던전 : 거구의 수림〉에 입장하셨습니다.]

[해당 공간에서 활동하는 동안 〈던전 전용 퀘스트 : 기습 회피〉가 진행됩니다.]

“다 왔네.”

여기 ‘거구의 수림’이다.

다른 말로는.

쉬이이이익!!

쉬이이익!

뱀들의 천국.

최소 10m는 될 법한 거구(巨軀)이자, 그 어마 무시한 몸통에서 비롯된 거구(巨口)가 주요 특색인 구렁이들이 득실거리는 수림이었다.

내게.

《정보 : 콜루베르(2등급)》

- 1단계 설명 : 행성 ‘에칸스(Ekans)’의 지배종 「콜루베르」. 상대가 무엇이든 단숨에 집어삼켜 버리는 그들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역시나 십수 미터의 무지막지한 체구로 밀어붙이는 묵직한 조이기.

일거에 온몸의 뼈를 으스러뜨리는 조임은 집채만 한 바윗덩어리도 버틸 수 없습니다.

또한 극단적으로 긴 위장과 쇳조각마저 녹여 버리는 위액을 통해 제 몸보다 커다란 먹잇감도 순식간에 소화시켜 영양분으로 바꿔 버리리니.

만일 심연의 나락과도 같은 목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면 다시는 세상 빛을 보지 못할 것입니다.

- 2단계 설명 : 보유 기술은 ‘콜루베르의 거석 조이기(자세히 보기▼)’과 ‘콜루베르의 화골산(자세히 보기▼)’, *** 등이 존재합니다.

두 번째 내장 기관인 ‘위장’을 선물해 줄 대상이었다.

한참을 떠돌다 이틀 전에서야 찾아낸 녀석으로.

던전이 워낙 먼 곳에 있어 모르고 지나칠 뻔했었는데, 그제 폭설 덕분에 대면하게 된 케이스였다. 도로가 도화지처럼 돼 버리면서 새겨진 놈들의 이동 흔적이 실마리가 돼 준 것이다.

여러모로 운이 좋았다고 할까.

정 안 되면 아무거나 붙잡고 이식하려고 했으니.

[감각 증폭 : 청력]

파앙―

“쉬익―”

“쉬이이익―”

던전의 경계선을 통과하며 청각을 강화하자 도처에서 혀 날름거리는 소리가 메아리처럼 고막을 울린다.

비대한 몸집에 걸맞게 굉장히 시끄러운.

‘감각 증폭’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뭐가 됐든 상당히 거슬리는 운율에 인상을 찡그리며 근처 나뭇가지를 치우며 안쪽으로 걸어갔다.

바스락―

바스락―

찌릿!

‘좌측, 아홉 시 부근에 한 마리.’

찌릿!

‘…대각선 쪽에도 숨어 있고.’

앞으로 전진해 나갈 때마다 괴물들의 기척이 감지됐다.

우거지다 못해 빽빽한 초목 덩굴에 숨어 보호색으로 위장한 채 사냥감이 근접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어쌔신들.

그 함정들을 피해 가며 더욱 깊숙한 장소로 들어갔다.

“쉬이이이익!”

‘나왔군.’

눈앞에 저놈과 같은 평균 신장이 13~14m에 이르는 나이트급 콜루베르들이 나타나는 시점까지.

이유는 저번과 동일하다.

쿨타임이나 스탯 상승량도 적당하면서, 기술 또는 특성 중 원하는 걸 고를 선택권을 갖기 위하여.

해서.

고대하던 타깃을 발견한 순간.

[가속]

탓―

슈욱!

일말의 망설임 없이 발을 굴러 미처 반응하지 못한 괴물의 목덜미를 손톱으로 꿰뚫었다.

[마력 변형술 : 창수(槍手)]

우우웅!

콰직!

안 그래도 날카로운 발록의 좌수에 마력을 덧입혀 목과 아래턱의 연결 부위를 찢어발긴 나는.

[순간 회귀 : 발록의 왼손]

우득―

우드드드득!

텁!

크기를 키운 왼팔로 큼지막한 머리통을 붙잡고서 바로 몸을 회전시키며 던전을 빠져나가고자 서둘러 도약했다.

“후읍!”

탁―

[가속]

[풀루스의 돌진]

“차아!”

콰아앙!

그래.

의심할 거 없이 도망이었다.

평소와는 다른 전개.

원래의 경우 열댓 마리 이상 잡아 쭉 늘어놓고 어느 재료가 제일 좋은지 비교해 보며 최상의 원료를 가려냈을 터이나 이번만큼은 그러지 않았다.

결코 귀찮아서는 아니었다.

그저.

“쉬에에에에에에엑!!”

쿠구구구구구궁!!!

귀를 먹먹하게 만드는 포효의 주인공.

제법 간격이 있음에도 내 존재감을 지각하고 쫓아오는 저 ‘퀸급 콜루베르’ 때문이었다.

무려 20m나 되는 덩치의 괴수.

뱀이나 구렁이 따위의 단어보단 ‘이무기’라 칭해야 옳을 듯한 녀석과의 교전은 여전히 무리였기에 쉬지 않고 내달렸다.

[가속]

[그림자 걸음]

[풀루스의 돌진]

타닷―

파아아앙!!

추적에 혼동을 주고자 ‘그림자 걸음’으로 곳곳에 내 분신을 던지며 빠져나가는 도주극.

손에 시체를 쥐고 뛰어야 했기에 뿌리치기가 쉽지 않았으나.

“쉬에에에에엑!!”

“그만 좀―”

[오리지널 기술 : 영원토록 붕괴하는 대지]

탁―

“―따라와.”

콰앙!

콰곽과과과광!!

길목 자체를 망가뜨리는 방식으로 거리를 벌려 나갔다.

제아무리 퀸급 개체라 해도 오리지널 기술을 무시하기는 힘든 법.

그로 인해 간격은 계속해서 벌어졌고.

[가속]

“흡!”

사악!

열세 번째 ‘가속’의 발동을 끝으로 퀸급 콜루베르의 마수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었다.

악착같이 따라오려 하면 어쩌나 싶었는데.

아무래도 인내심이 강한 부류는 아닌 듯했다.

* * *

우득―

[축하합니다!]

[「콜루베르 : 2등급」의 ‘위장(내장 기관)’ 이식에 성공했습니다.]

[대상 「콜루베르 : 2등급」이 보유 중이던 신체 능력 일부가 전이되었습니다.]

[「인간성」 15%를 소모합니다.]

골격이 이리저리 뒤바뀌길 몇 분.

영육을 괴롭히던 통증이 가라앉으며 네 번째 융합이 완료되었다는 메시지가 시야에 잡힌다.

흡수 형태였고.

독낭과 달리 소화력 향상 이외에 딱히 주목할 부분은 없었기에 대충 휘휘 저어 창을 없앤 나는 후다닥 ‘기억 포식’도 마무리 지었다.

그 결과로.

[축하합니다!]

[이식된 「콜루베르의 위장」에 남아 있던 기억 속에서 ‘특별한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r기술 : 콜루베르의 기합 습격」을 습득합니다.]

[순발력이 4 싱승합니다.]

새로운 기술을 얻게됐다.

기왕이면 크루톤처럼 「석화」와 같은 특성을 가져가고 싶었으나.

아쉽게도 ‘기억 포식’의 특성 뺏기는 한 번 시도하고나면 30일이나 되는 재사용 대기시간이 생겨버리는 까닭에, 내 바람과는 상관없이 그쪽은 포기해야만 했다.

뭐.

이쪽도 충분히 괜찮은 선택지였기에 그다지 불만은 없었다.

예컨대 최선과 차선의 갈림길에서 답을 결정했을 따름이랄까. 그러므로 작은 아쉬움은 남을지언정 갖고팠던 걸 놓쳐서 분하다거나 답답함 등의 안타까운 감정은 단 1도 없었다.

정 구하고 싶다면 추후에 퀸급 콜루베르의 목을 베고서 드랍된 ‘금색 교환권’으로 얻으면 되는 일이니.

이런 연유로 일희일비(一喜一悲)하는 게 더 이상했다.

“그나저나…”

[축하합니다!]

반가운 소식이 한 가지 또 있다.

앞서 전달된 지식을 정리하기 무섭게.

[‘신체 능력 : 순발력’이 「300」을 돌파했습니다.]

[보상으로 ‘칭호 : 3차 한계 돌파―순발력’을 습득합니다.]

[능력치 ‘순발력’에 한하여 「내성 : 3단계」가 적용됩니다.]

[기술 ‘분영일보’를 습득합니다.]

《기술 : 분영일보》

- 등급 : 특수

- 단계 : -

- 설명 : 신체 능력치 중 ‘순발력’이 「300」을 돌파했을 시 부여되는 기술입니다. 발동 시 3초간 당신의 그림자가 환영이 되어 당신의 다음 행동을 따라 합니다. 그것은 공격이 될 수도, 방어가 될 수도 있으며 심지어 방패가 되어 줄 수도 있습니다.

“호.”

끄트머리에 걸쳐 있던 ‘순발력’이 정상에 올랐다는 굿 뉴스가 전해진 것이었다.

게다가.

*변경 전

- 근력 : 319

- 체력 : 289

- 내구 : 271

- 순발력 : 287

- 동화 : 2

*변경 후

- 근력 : 331

- 체력 : 297

- 내구 : 287

- 순발력 : 300

- 동화 : 11

‘체력’과 ‘내구’ 스탯도 막바지였다.

이대로라면 다음 이식 때 3차 환골탈태를 이루게 될 가능성이 농후했다.

씨익―

예상은 하고 있었으나, 실제로 현실이 되니 자연스레 입꼬리가 올라갔다.

물론.

진정으로 날 기분 좋게 만들어 주는 건.

“하나.”

이제 단 한 개의 조각만 구한다면…….

목표로 삼은 ‘상위 프레데터’로 가는 문이 열린다는 점이었다.

언제였던가.

성풍 아파트 단지에서 티그리스의 다리를 빼앗으며 중위 단계에 등극했으니, 거의 50여 일 만에 겪는 진화였다.

경험해 보았듯 격이 오른다고 드라마틱한 변경 점이 발생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답보하는 것보다는 강해질 게 분명하기에 미래를 상상하면 할수록 묘한 기대감으로 내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래서인지.

탈깍―

[이벤트 발발까지 남은 시간 : 39일 22시간 47분 20초]

어서 이레가 흘러갔으면 하는 마음에 시선이 자꾸만 타이머로 갔다.

* * *

“크허허허허허헝!!”

후우우우우욱―

쿠우웅!

콰과과광!!

분노가 담긴 괴성을 내지르며 휘두른 앞발에 박살 나는 대지.

그러나.

“크허허허헝!!”

곰 형태의 괴물 ‘무루’는 한층 시끄럽게 울부짖으며 쾅쾅 날뛰어 댔다.

족히 3~4m에 달하는 크레이터가 각인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잡힌 게 아무것도 없음을 깨달은 탓이었다.

하지만 발작은 오래가지 않았다.

“크허허허헝!!”

후우우우욱―

슈우욱―

텁!

“…크헝?!”

철제 합판도 찢어발기는 발톱이 공중에서 툭 하고 제동이 걸렸으니까.

더불어.

콰직!

두툼한 뱃가죽이 꿰뚫렸으니까.

우득―

우드득―

두부에 박아 넣은 칼날처럼 무아지경으로 무루의 배 속을 헤엄치는 검붉은 손길.

갈비뼈를 걷어 내고 혈관과 살점을 비집고 입성한 팔뚝은 고통으로 얼룩진 절규를 귓등으로 흘리며 억세게 꿈틀거리다 이내 무언가를 붙잡았다.

식도, 위, 간.

그 부근에 위치한 장기.

[대상 「무루 : 2등급」의 ‘쓸개(내장 기관)’를 선택하셨습니다.]

[진화를 시작합니다.]

[‘신체 최적화’가 자동 진행됩니다.]

[다가올 고통에 대비하십시오.]

‘쓸개’였다.

그것을 단단히 틀어쥔 손아귀는 주인의 비명에도 우악스럽게 생살을 잡아 뜯어냈다. 손등을 타고 선혈이 솟구쳤으나 포식자는 개의치 않았다.

이걸로 콜루베르에게서 옮겨 심은 위를 보조해 줄 기관이 생겼거니와.

[축하합니다.]

[‘기술 : 프레데터의 중위 진화론’에 명시된 모든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당신의 「격」이 한계에 다다랐습니다.]

[한계를 뛰어넘을 ‘진정한 진화’를 이루기 위하여 「아카식 레코드」에 기록된 〈전직 퀘스트 : 등위 상향〉이 발동됩니다.]

“드디어.”

소망하던 신세계로의 여행 티켓을 발급받았기 때문이었다.

[당신의 영혼이 〈성장의 땅 : 2단계〉로 이동됩니다.]

[〈전직 퀘스트 : 등위 상향〉에 실패할 경우 「인간성」을 상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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