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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메라의 기억법-168화 (168/232)

168화

어슴푸레한 새벽.

평상시처럼 동이 트는 시각에 맞춰 기상해 스트레칭으로 밤사이 뻣뻣해졌던 몸뚱이를 풀어 주던 차.

딸깍―

[이벤트 발발까지 남은 시간 : 42일 23시간 51분 18초]

따로 의식하지 않으면 거의 들리지 않는 시곗바늘 넘어가는 소음에 슬그머니 시선을 옮겨 타이머를 바라봤다.

“42일…….”

아윤이 떠난 지도 벌써 5일째.

지금쯤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는지…….

아스라이 그려지는 형상에 웃다가도 울다가도, 복잡미묘한 심정으로 한참을 그리워하던 한세정은 금세 주먹을 세게 쥐며 벌떡 일어났다.

그가 얘기했다.

‘잠시 나갔다 올 거야.’

조만간.

길어도 2~3주 안에는 돌아올 거라고. 고로 짧으면 열흘, 늦어져도 보름 정도면 아윤과 재회할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니 슬픔에 젖어 있을 수 없다.

“보여 줘야지.”

깜짝 놀라게 해 줘야 하니까.

내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내가 어떤 변화를 손에 넣었는지 증명해 내며 당신의 옆자리를 차지해도 될 사람은 오직 나뿐만이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각인시켜 주려면!

“가자.”

골반 옆에 끼워 둔 즉살 검 ‘모르드’를 필두로 투척용 비수 세트를 쫙 만져 보며 점검해 준 뒤.

씩씩하게 수련장으로 향했다.

스릉―

공터에 당도하자마자 즉시 꺼내 든 칼날.

막 깨어나는 태양의 붉은빛과 아직 창공을 누비는 달의 푸른빛이 나란히 어우러져 광채를 발하는 모르드를 꽉 쥔 한세정은, 소검을 역수로 들고서 짧은 심호흡을 신호탄 삼아 가볍게 보폭을 내디뎠다.

탁―

쿠우웅!

때로는 강하게.

타닷―

슈욱!

때로는 빠르게.

속도와 강약을 조절해 가며 활보하길 10여 분가량 되자.

콰아앙!

쿠구구궁!

번쩍!

이령이나 재우 씨들도 출근한 듯 저 멀리서부터 각종 폭발음이 은은하게 귓가를 자극했다.

한세정은 요란하게 메아리치는 폭음의 운율을 감상하다 다시금 칼춤을 이어 나갔다.

슈우우욱!

서걱!

기습적으로 내려친 참격에 대각선으로 잘려 나가는 거석.

후우우웅―

파바바바바박!!

그 위로 비처럼 떨어진 십수 개의 암기가 암석을 꿰뚫고 깊숙하게 틀어박히며 가공할 파괴력을 선보인다.

베고, 찌르고, 던지고…….

한세정은 최대한 다양한 동작과 각도로 저 세 과정을 완연한 아침이 올 때까지 끊임없이 반복했다.

마력과 기술은 일절 사용치 않은 순수 기본기 단련이었다.

“쓰으으읍, 후우우우……. 흐유, 힘들다.”

거의 한 시간여.

거칠어진 숨소리를 가다듬으며 겨울바람마저 밀어내고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을 스윽 닦아 낸 그녀는.

“회수.”

우우우웅!

촤좌좌좌좍!

끝으로 동원했던 모든 병기를 거두어들이며 수련장에서 벗어났다.

간단하면서도 한편으론 격렬했던 첫 번째 일과를 마친 다음 식당으로 가자 누군가 이미 와서 요리를 하고 있는지.

계단에 발을 올리기 무섭게 향긋한 냄새가 날아와 코를 간지럽혔다.

“언니, 오셨어요?”

신지유였다.

따로 당번을 정해 두진 않은지라 아무나 일찍 온 사람이 조리를 담당하곤 했는데, 오늘은 신지유가 가장 먼저 도착한 모양.

정령 드리어어드와 다섯 소환수를 대동해.

“청염, 이것도 구워 줘.”

화르르륵!

“흔들바람은 접시 놔주고, 드라이어드 너는…….”

누구는 고기를 익히고, 누구는 접시를 세팅하는 등 혼자서도 여럿이서 같이 하는 듯한 장관을 연출해 내는 소녀.

몇 번을 봐도 신기한 광경에 혀를 내두르며 의자에 앉자.

엇비슷하게 훈련을 마친 조이령이나 곽재우들도 하나둘 등장해 삭막했던 공간을 채우기 시작했다.

“잘 먹겠습니다.”

“잘 먹을게, 지유야.”

“맛있게 드세요.”

다들 스스로를 한계까지 몰아붙이고 왔기 때문인지.

소모된 에너지를 회복하기 위해 맛을 음미하기보단 허기진 배를 달래려 필사적으로 수저를 움직이는 한세정들.

그렇게 한참을 먹고 나서야 포만감을 느끼며 숟가락을 내려놓을 즈음, 손수 렌티아 차를 타 온 한세정이 넷에게 컵을 건네주며 곽재우를 꼭 집어 불렀다.

“재우 씨.”

“예?”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잔을 받아 들고서 의아한 눈빛으로 갸웃거리는 곽재우.

한세정은 그에게 오전을 비워 달라 부탁했다.

사유는 일대일 결투.

아윤이 자릴 비운 이래로 전력을 다해도 되는 맞수는 곽재우가 유일해진 상황이라, 실전 같은 트레이닝을 가지려면 그가 필요한 까닭이었다.

조이령이나 신씨 남매도 하려면 못 할 건 없으나.

상대적으로 방어 능력이 취약한 이들끼리 붙었다간 자칫 돌이킬 수 없는 불상사가 벌어질 수도 있었기에, ‘회피 기동 연습’이나 ‘원거리 격돌전’ 정도 외에는 되도록 피하는 분위기였다.

하여.

“아, 내가 부탁하려고 했는데…….”

“누나도요? 저도…….”

알게 모르게 기회를 노리던 조이령과 신지운이 못내 아쉬움을 내보였지만.

“둘은 어제, 그제 했었으니 좀 봐줘.”

“쩝……. 어쩔 수 없지.”

“지유 누나, 누난 뭐 할 거야?”

“나? 나는 할 게 있어서.”

한세정의 말대로 어제는 조이령에게, 그제는 신지운에게 순서를 내어 줬던 터라 둘은 입맛을 다시면서도 깔끔하게 물러났다.

남은 건 곽재우의 의사인데.

“저는 좋습니다.”

“정말요? 진짜 고마워요.”

“아닙니다.”

다행스럽게도 그는 자신의 요구를 수락해 줬다.

이에 진심으로 고마움을 표한 한세정은 30분쯤 지나 소화가 다 됐을 무렵 밖으로 나왔다.

한바탕 폭설이 내려서였는지.

며칠 내내 푸르른 하늘 아래 서서 대기하고 있자니, 완전 무장을 갖춘 곽재우가 커다란 방패를 착용하고서 앞에 멈춰 선다.

투구 안으로 비치는 안광이 사뭇 강렬했다.

“갑니다.”

“오십시요.”

그 진지한 표정과 마주해 간결하게 한마디씩을 교환한 후.

[독살]

[방패 치기]

후욱!

콰아아아앙!!

둘의 형상이 한데 겹치며 거대한 폭풍이 일었다.

온힘을 다해 부딪친 공격.

눈치를 보며 잽을 날리는 식의 간 보기 따윈 없다. 첫수부터 가진 패를 싹 다 털어 내며 서로의 목숨을 취할 일념으로 손을 섞었다.

금일부로.

‘오늘! 끝낸다!’

“흐아아아아!!”

보유 기술 중 최고 성취도를 자랑하는 ‘독살’을… 완벽하게 ‘마스터(Master)’할 계획이었으니까.

감이 딱 왔다.

여자의 촉이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으나.

골백번만 더 휘두르면 최종 장에 다다를 수 있다는 직감이 전신을 휘감고 있었다. 그래서 곽재우를 부른 것이다.

체내에 비축된 마력을 죄다 들춰 낼 동안 막아 달라고.

그라면.

[고유 능력 : 천강홍의장군]

[철혈의 술―2단계]

[대군 방벽]

쿠웅―

쿠구구구구구궁!!

견뎌 줄 테니 말이다.

[독살]

“하아!”

슈우우우우욱―

콰아아앙!

* * *

동쪽에서 서쪽으로 슬금슬금 옮겨 가던 해가 중천에 머무르던 시각.

“한 번만―”

[독살]

“다시……!”

슈욱!

쿠웅!

극한으로 짜낸 마력을 검에 실으며 내저은 일격.

기어이 발해 낸 검격이 큼지막한 방패에 막혀 사그라진다.

“크읍……!”

그 충격에 신음을 흘리며 밀려나는 곽재우.

한세정만큼이나 악착같이 매달렸기에, 그도 그녀도 둘 다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허나.

두 남녀는 멈추지 않았다. 일 합이라도 더 맞대 보고자 덜덜 떨리는 몸으로 칼과 방패를 이고 앞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마침내.

“하앗!”

“흐아아아!”

[독살]

[철혈의 술―1단계]

[대인적벽]

최후의 공방이 뒤엉킨 직후.

쿠우우웅―!

부쩍 미약해진 폭발과 동시에 한세정과 곽재우가 각각 좌우로 튕겨 나가 땅바닥을 나뒹굴었다. 버틸 힘조차 모조리 끌어 쓴 탓에 쉽사리 기립하질 못했다.

휘우우욱―

하여 흙먼지를 뒤집어썼거늘.

“…헤.”

외려 미소를 지어 보이는 한세정.

모래 따위로 더럽혀졌음에도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어째서?

원인은 매우 단순했다.

기어이.

*기술

- 독살 [원본(原本) / 체화(體化) 진행 중 : 4/5]

딸깍.

*기술

- 독살 [원본(原本) / Master]

“됐―다아아아아아!!”

소망하고 기원하던 목표를 달성했기 때문이었다.

그 행복한 성과에 함성이 절로 나왔다.

헌데.

기쁜 소식은 하나만이 아니었다.

옆에서도.

“아, 아아, 아아아!”

쪼개진 대지 틈바구니에 처박혀 있던 곽재우의 목청에서도 한세정과 마찬가지로 포효가 튀어나오고 있었다.

그도.

결실을 맺었다는 의미였다.

* * *

“갈까요?”

“가시죠.”

끄덕―

촤아아악!

촤아악!

간략한 대화를 나누고서 단박에 찢어발기는 두 장의 종이.

그 너머로.

지독하게 수련했던 기술들이 문서화되어 출력된다.

[‘한계 돌파 의뢰서 : 체화’를 사용합니다.]

[기술 ‘독살’을 선택했습니다.]

[기술 ‘철혈의 술’을 선택했습니다.]

[해당 기술이 ‘한계’에 다다랐음을 확인했습니다.]

[해당 기술의 한계를 돌파하는 데 필요한 임무가 주어집니다.]

《한계 돌파 : 독살》

- 설명 : 오로지 표석을 죽이기 위해 고안된 기예를 피나는 노력 끝에 원류와 비견될 정도로 완숙의 경지에 다다른 그대. 이제는 ‘남의 것’을 ‘자신만의 것’으로 가다듬을 시간입니다. 당신이 지닌 ‘특성’을 가미해 원류를 뛰어넘을 본인의 길을 제시해 보십시오.

- 과제 : 1. 특성 결합 / ?

- 현재 결합 가능한 특성 : 절애, 집착

《한계 돌파 : 철혈의 술》

- 설명 : 누군가를 지키려는 의지가 발판이 되어 탄생한 기예를 피나는 노력 끝에 원류와 비견될 정도로 완숙의 경지에 다다른 그대. 이제는 ‘남의 것’을 ‘자신만의 것’으로 가다듬을 시간입니다. 당신이 지닌 ‘특성’을 가미해 원류를 뛰어넘을 본인의 길을 제시해 보십시오.

- 과제 : 1. 특성 결합 / ?

- 현재 결합 가능한 특성 : 철벽, 인고

특이하게도 업그레이드가 됐으나 명칭은 변하지 않는 공통점을 가졌던 반면, 누군가를 죽이려는 살의와 누군가를 지키려는 호의라는 정반대의 제작 의도를 가진 기술들.

과연 이것들이 어떠한 모습으로 진화할 것인가.

한세정과 곽재우는 무척 경건한 태도로 홀로그램 화면 속을 주시하다 각자가 생각하던 특성을 터치했고.

스으윽―

탁―

타악―

[기술 ‘독살’과 특성 ‘집착’이 결합합니다.]

[기술 ‘철혈의 술’과 특성 ‘철벽’이 결합합니다.]

곧.

[스스로의 길을 찾은 그대에게 「오리지널 기술 : 사신의 눈물」을 부여합니다.]

[스스로의 길을 찾은 그대에게 「오리지널 기술 : 철벽의 요새」를 부여합니다.]

[2차 과제가 해금되었습니다.]

[과제 : 1. 특성 결합(완료) / 2. 총합 ‘4,444’개체 ‘사신의 눈물’에 의해 중독된 상태로 처치]

[과제 : 1. 특성 결합(완료) / 2. 총합 ‘10,000’회 방어]

[2차 과제를 시작합니다.]

[남은 시간 : 29일 23시간 59초]

두 사람이 던진 질문에 대한 대답이 허공을 빼곡히 뒤덮었다.

딸깍―

[이벤트 발발까지 남은 시간 : 42일 11시간 27분 43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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