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화
‘독낭’.
그 두 글자와 마주한 순간 나는 곧장 팔을 뻗었다.
[프레데터의 중위 진화론]
내가 원하던 니즈에 꼭 부합되는 바.
굳이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기술 : 프레데터의 중위 진화론’을 발동합니다.]
[당신이 이룩할 진화 과정을 선택해 주십시오.]
[변형 이식]
[대상 「크루톤 : 2등급」의 ‘독낭(내장 기관)’을 선택하셨습니다.]
[진화를 시작합니다.]
[당신의 육체에 새로운 신체 조직이 생장하고 있습니다.]
우우우웅―
뱃가죽에 손을 꾹 대고 거침없이 발현하는 마력.
쭉 방출된 기운이 두 개의 육체를 하나로 연결한다 싶은 찰나에 크루톤의 복부가 강제로 찢기더니, 간과 쓸개로 예상되는 장기들 뒤편에 숨어 있던 어린아이 머리통만 한 무언가가 바들바들 떨리다 한순간에 뜯겨져 나왔다.
콰직!
콰드득!
낭랑하게 울려 퍼지는 섬뜩한 소리.
이내.
[‘신체 최적화’가 자동 진행됩니다.]
[다가올 고통에 대비하십시오.]
‘온다.’
짤막한 경고와 함께 복부 언저리가 불에 데인 듯 뜨겁게 달아오르며, 이질적인 감촉에 버무려진 통증이 전신을 휘감았다.
헌데.
우득―
우드득―
‘견딜 만, 하네…….’
의외로 아픔이 덜했다.
변형 이식이 원래 이런 건가?
아니면.
팔, 다리, 골격 등의 대대적인 공사와 달리 비교적 조그만 소규모 작업이라 그런 건진 몰라도…
용암을 마신 것처럼 화끈거리는 열기를 제외하면 적당히 참을 만했다.
‘그나저나, 정말로 변형 이식은 처음이네.’
최초의 오른팔을 기점으로 여태껏 흡수 이식만을 해 왔었는데.
앞으로 언제 다시 변형 이식을 진행할는지는 미지수겠지만, 내 몸에 뭔가가 더해진다는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보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급하게 먹다 체한 듯 속이 더부룩한 느낌이었다. 이 또한 익숙해지다 보면 괜찮아지려나.
우득―
[축하합니다!]
[「크루톤 : 2등급」의 ‘독낭(내장 기관)’ 이식에 성공했습니다.]
[대상 「크루톤 : 2등급」이 보유 중이던 신체 능력 일부가 전이되었습니다.]
[「인간성」 15%를 소모합니다.]
나지막하게 떠드는 사이.
이리저리 뒤척이며 터를 내줬던 갈비뼈가 제자리를 잡아 가는 변화를 마지막으로 온몸이 정상 궤도에 접어들었고.
‘독낭, 독낭, 독낭……. 독액은 아, 이렇게 분비되는 거군. 허면…….’
왠지 체중이 증가한 듯 묵직해진 감각에 묘한 감정을 느끼며 머릿속을 가득 채운 지식에 집중했다.
원체 생소한 기관이다 보니 개념의 이해와는 별개로 어찌 사용해야 할지 애매모호하게 다가왔다.
아무래도.
실전에서 직접 써 봐야 할 것 같았다.
마침.
[그러나 ‘독낭(내장 기관)’에 남아 있는 「크루톤 : 2등급」의 기억마저 포식하지 않는 한 불완전한 성장에 지나지 않습니다.]
[온전한 진화를 위해 지금부터 ‘666초’ 내에 「기억 포식」을 성공해 내야 합니다.]
[「기억 포식」에 실패하거나 혹 「기억 포식」 행위 자체를 시도하지 않을 경우 향상된 능력은 4분의 1로 하락합니다.]
[남은 시간 : 666초]
좋은 훈련장도 있고 하니.
“저쯤이면 되겠어.”
아무 곳이나 적당한 상가에 입성해 안전을 확보한 뒤.
“임시 안전지대.”
[‘임시 안전지대’를 발동합니다.]
[수식어 선택 중.]
[1%, 2%, 3%… 99%, 100%]
[설정 완료!]
[당신을 기준으로 폭 30m의 ‘무색의 안전지대(Lv. 1)’가 생성됩니다.]
[「무색의 장벽」이 구축됩니다.]
[‘아군 지정’ 주문을 사용해 격리된 아군을 들일 수 있습니다.]
후우욱―
쿵!
쿠구궁―
전방위를 포근하게 감싸주는 반투명한 장막을 구경하다 살며시 외쳤다.
“프레데터의 기억 포식.”
우우우웅!
[‘고유 능력 : 프레데터의 기억 포식’이 발동됩니다.]
[당신의 영혼이 〈포식의 땅 : 2등급〉으로 이동합니다.]
번쩍!
그 주문에 강렬한 광휘가 치솟더니, 어느새 내 육신은 심상의 세계로 진입해있었다.
* * *
“그어어어어!!”
“그어어어!”
커다란 호수를 둘러싼 숲.
크루톤들에게 맞춰진 세상에 입장한 나는 잔잔하고 따스한 대기를 밀어내며 쇄도해오는 12마리의 괴물들을 지켜보다 왼손을 바짝 세워 예리한 손톱으로 오른손 손바닥 중앙을 길게 그었다.
갑작스러운 자해에는 타당한 목적이 있다.
본래.
마비 독의 원주인인 크루톤들은 다리에 난 돌기 혹은 촉수라 불리는 생체 장치로 독액을 분사하나, 내겐 그런 무기가 준비돼 있지 않다.
즉.
동일한 방식으로는 써먹지 못한단 의미일지니.
따라서 고안된 나만의 기법이 바로 이것.
주르르륵―
“됐으면 좋겠는데.”
독낭에서 뽑아낸 마비 독을 피로 옮겨 투척하는 형태였다.
후우욱!
촤아아아악!!
반원을 그리며 휘둘러진 우수(右手)의 궤적을 타고 흩어지는 자홍색 선혈.
불그스름하면서도 독기에 채색되어 보랏빛이 은은히 감도는 핏줄기가 쫙 흐트러지는 장면은 가히 진풍경이었다.
단지.
한세정처럼 전문적인 투척술을 배우지도 않았고, 그쪽에 재능도 딱히 대단치 못해 화려한 것치고 맥아리가 없었다.
솔직히 말해서.
과연 크루톤들이 저 수에 당해 줄까 싶은 실정.
필시.
“그어어어어어!”
“그어어어!”
제 존재감을 드러내 보이겠다고 포효를 내질러 주지 않았더라면 별 효과가 없었을 거라는 게 내 예측이었다.
여하간.
후두두두둑―
후두둑―
“그어어억― 그어억?”
“그억― 그어억, 그억…….”
효과는 그럴싸한지.
구강을 비집고 배 속으로 직통된 덕에 효력이 극대화되었는지, 내 피를 삼킨 크투론 몇 마리에게서 이상 반응이 나타났다.
초기에는 혀가 굳어 렉 걸린 기계처럼 떠듬거리더니.
30여 초 남짓 흐르자 삐걱거리는 몸짓을 보이며 구부정한 자세로 속절없이 허물어졌다.
“30초.”
나는 그 타이밍을 잊지 않으려 몇 번이고 되뇌었다.
다소 독특하고 격한 감이 없잖아 있으나, 혈액에 섞어 쓰기만 하면 된다는 점에서 이만하면 썩 나쁘지 않은 디버프였다.
“오케이.”
[웨루카의 베어 가르기]
사악―
촤좌좌좌좌좍!!
위력 확인을 완료하자마자 마력을 쏟아 내 전방을 정리했다.
알아볼 건 독낭이 전부였기에, 미련 없이 인사를 전했다.
[‘고유 능력 : 프레데터의 기억 포식’ 시뮬레이션이 종료되었습니다.]
[정해진 시간 내에 ‘기억 포식’을 성공하셨습니다.]
[육체가 온전한 진화를 이룩해 냅니다.]
[대상 「크루톤의 독낭(내장 기관)」에 담긴 ‘기억’을 포식합니다.]
일거에 갈라진 괴물들의 사체 위로 주르륵 새겨지는 메시지들.
[현재 당신이 흡수한 대상의 등급은 「2」입니다.]
[대상의 등급에 따라 포식 가능한 ‘기억’의 폭이 늘어납니다.]
[1. 기술]
[2. 특성]
[포식하고자 하는 ‘기억의 갈래’를 선택해 주십시오.]
[선택되지 않는 ‘기억’은 자동 삭제됩니다.]
이제는 나름의 적응이 된 문구를 쓱쓱 넘긴 난 별 고민 없이 ‘특성’을 눌렀다.
무얼 가져갈진 사전에 정해 둔 상태.
기술은 지금도 상당히 많은 터라, 특성을 고를 예정이었다.
[‘기억의 갈래 : 특성’을 선택했습니다.]
[해당 갈래와 관련된 ‘기억’의 포식을 시작합니다.]
“뭐가 나오려나.”
스랄레오에서 빼낸 ‘특성 : 불굴’의 경우.
성십자가 클랜과 마찰이 생겼을 때 한 번, 퀸급 포타우스 사냥에서 한 번… 벌써 2회나 내 목숨을 구하는 혁혁한 전과를 남겼다.
그러니.
더 바랄 거 없이 비슷한 수준이기만 해도 흡족하게 받아들일 터인데.
[축하합니다!]
[이식된 「크루톤의 독낭」에 남아 있던 기억 속에서 ‘특별한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특성 : 석화」를 습득합니다.]
“석화?”
긴장된 마음으로 정면을 응시하던 나는 드디어 등장한 글귀에 눈을 번뜩였다.
《특성 : 석화》
- 설명 : 사냥감을 마비시켜 생살을 씹어 먹는, 피식자가 고통받는 것을 즐기는 행성 ‘어맨다(Amanda)’의 지배종 「크루톤」의 거친 성정이 십분 반영된 특성. 선결 과제를 이행할 시 특별한 힘이 부여된다.
- 과제 : 당신이 발한 적이 ‘마비’ 또는 그에 준하는 무언가(고유 능력, 기술에 한함)로부터 〈행동 불능〉 상태에 걸려 있을 것.
- 옵션 : 선결 과제 달성 시, 행동 불능 지속 시간 33% 상승 / 0.1% 확률로 ‘상태 이상 : 기절’로 전환
“호오!”
살펴본 ‘특성 : 석화’의 효능은 상상 이상으로 만족스러웠다.
홀딩 타임을 3분의 1이나 늘려 주다니.
1~2초의 틈으로 생사가 오고 가는 게 작금의 시대 아니던가? 손뼉 치고 환호를 질러도 모자람 없는 성과였다.
참 미약하지만 0.1%로 적을 기절시킬 수도 있고.
더군다나.
과제의 난이도 역시 반드시 마비가 아니더라도, ‘그에 준하는’이란 요건만 충족시키면 되는 후한 타입이었다.
예컨대 ‘발록의 투기’나 ‘군단을 파괴하는 본능’ 등으로 공포에 빠져도 된다는 뜻이었다.
덕분에.
“이걸 디버프 기술에 붙이면 어마어마한 게 탄생할 수도 있겠어.”
씨익-
[‘고유 능력 : 프레데터의 기억 포식’을 통해 「특성」을 습득했습니다.]
[앞으로 ‘30일’간 「특성」 포식이 제한됩니다.]
[앞으로 7일간 「기억」 포식이 제한됩니다.]
[앞으로 50일간 종족 「크루톤」을 상대로 ‘기억 포식’이 제한됩니다.]
뇌리를 파고드는 기억들을 갈무리한 나는 활짝 웃는 얼굴로 ‘포식의 땅’과 작별을 고했다.
* * *
*변경 전
- 근력 : 306
- 마력 : 270
- 속성 : 79
- 의지 : 60
- 제어 : 107
*변경 후
- 근력 : 319
- 마력 : 281
- 속성 : 92
- 의지 : 66
- 제어 : 117
“속성 위주로 증가했고… 근력 외에 제어나 의지도 약간은 향상됐네.”
현실로 귀환해 ‘개인 정보’를 열어 달라진 스탯을 체크한 나는 ‘속성’이 1차 한계에 다다랐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8.
‘내성’이 생기기 전이기에 1등급 근원석만으로 충분히 채울 수 있는 수치라 물량을 구하는 대로 보충하면 될 듯싶었다.
*신체
- 체력 : 289
- 순발력 : 287
- 마력 : 281
“하는 김에 체력이나 순발력, 마력도 뚫고.”
이 부분은 운이 따라 주면 나머지 두 번의 이식으로도 해결되리라.
부족하면 3등급 근원석으로 때워도 될 터.
어느 쪽이 됐든.
집으로 복귀하는 날 전후로 마무리 지어야겠다 하고 각오를 다진 난 주위에 널브러져 있는 구겨진 시체들을 뒤로하고 잠시 멈췄던 여행을 속행했다.
“이쪽으로 가면 크루톤이든 라세르타든 관련된 던전이 나오려나?”
[풀루스의 돌진]
탓―
쿠웅!
‘기억 포식’이야 7일의 제한이 걸렸다만.
그렇다고 내가 사냥을 못 하는 게 아니니, 날이 저물 때까지는 계속 돌아다니며 미리미리 포획을 해 두든 먹음직스러운 던전을 발굴하든 간에 뭐라도 할 작정이었다.
여기서의 임무를 빨리 끝낼수록 방랑하는 기간도 줄어들 테니까.
딸깍―
[이벤트 발발까지 남은 시간 : 47일 23시간 29분 07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