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화
【 49일 】
“…49.”
나와 한세정들은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봤다.
설마하니.
단서를 구입한다는 게 이런 결말로 연결될 거라고는 전혀 예상 못 했었기에, 그야말로 충격 그 자체였다.
어안이 벙벙하다는 표현처럼.
당면한 현실이 심히 당황스러워 머릿속이 새하얗게 물들어 갔다.
당연했다.
작금의 시대에서 ‘이벤트’가 발생했다 함은 곧, 퀸급마저도 고개를 조아리게 만드는 존재의 등장을 예고했으니까.
즉.
“킹.”
‘왕’의 행차였다.
딸깍―
[이벤트 발발까지 남은 시간 : 48일 23시간 59분 59초]
* * *
쿵!
[오리지널 기술 : 영원토록 붕괴하는 대지]
쿠구구구구구구구궁!!
거칠게 짓밟은 지면을 기점으로 일순간에 뒤틀려 가는 사방.
체내의 마력을 쏟아부으며 거듭되는 파괴 속에서 기존의 지형이 송두리째 사라질 즈음.
[풀루스의 돌진]
탁―
파앙!
공급하던 마력을 끊고서 전방으로 쇄도하며 권격을 내질렀다.
[포타우스의 연속 폭격]
슈숙!
콰광!
잽과 스트레이트.
간결한 동작으로 2m 가까이 치솟은 거석을 부수고는 발이 땅에 닿기 무섭게 새로운 과녁을 노리고 몸을 던졌다.
이와 같은 행동을 반나절 내내 되풀이했다.
두 가지.
[축하합니다!]
[과제의 달성률이 100%에 도달했습니다.]
[「기술 : 포타우스의 연속 폭격」이 온전하게 승격됩니다.]
새로 익힌 ‘연속 타격’의 진화판 ‘포타우스의 연속 폭격’과.
[축하합니다!]
[2차 과제의 달성률이 100%에 도달했습니다.]
[「오리지널 기술 : 영원토록 붕괴하는 대지」가 온전하게 체화됩니다.]
두 번째 오리지널 기술 ‘영원토록 붕괴하는 대지’의 미션을 완수하기 위해서였다.
“드디어 끝났네.”
후련하다.
‘영원토록 붕괴하는 대지’의 경우.
시전할 때마다 마력을 미친 듯이 잡아먹는 탓에 일정 기간마다 휴식을 취해야 했기에 퀸급 포타우스와 부딪쳤던 그날부터 장장 보름을 매달렸던지라.
“가자.”
툭―
툭―
트레이닝의 여파로 흙먼지를 잔뜩 뒤집어썼음에도 귀환하는 내내 마음이 홀가분했다.
가면서 살펴본 결과.
“투르바의 포효나 발록의 투기는 아직 멀었고… 음, 머메른의 갑주랑 풀루스의 돌진은 거의 다 왔네.”
주력 기술로 사용 중인 것들이 대체로 4레벨에 도달한 상태였다.
나머지도 대체로 3레벨이었고.
역시 ‘칭호 : 기술자’의 효력은 대단했다. 기본적으로 혹독한 수련이 바탕에 깔려 있어 가능한 결실이겠지만, 그걸 따지더라도 상당히 빠른 속도 아니던가.
“조만간…….”
이 기세라면 길어도 2주, 짧게는 열흘 안에 또 하나의 기술을 마스터하지 않을까 싶었다.
나도.
“하아!”
“재우 씨! 막아!”
“저는 걱정하지 말고 오시죠.”
“간다!”
“얼마든지.”
지독하게 훈련 중인 한세정들도.
딸깍!
[이벤트 발발까지 남은 시간 : 48일 9시간 21분 49초]
* * *
“자! 맛있게 드세요!”
“잘 먹겠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와아!”
“신지운, 너 손 닦았어?”
“에이, 내가 애야?”
“애지, 그럼―”
왁자지껄한 분위기.
따듯한 모닥불 곁에 둘러앉아 먹는 저녁.
늘 똑같은 반찬이라 질릴 법도 하건만, 육신을 한계치까지 몰아붙여 체력이 바닥난 채로 밥숟가락을 떠서 그런가.
맛을 음미할 새도 없이 음식을 목구멍으로 밀어 넣기 급급했다.
“오빠! 여기.”
“고맙다.”
“헤, 뭘요!”
배불리 식사를 마친 뒤에는 작게 티타임도 가졌다.
말린 렌티아 열매를 가루로 빻아서 뜨거운 물에 타 마시는 수준이었으나, 벽 일부를 해체해 바깥을 구경하며 마시는 차 한 잔은 나름의 운치가 있었다.
마침 함박눈이 휘날리고 있어 더더욱.
하여.
끼이이익―
끼익―
끼이익―
끼익―
다같이 흔들의자에 기대앉아 백색으로 뒤덮여 가는 풍경을 관망하던 찰나.
“내일부터.”
“……?”
“……?”
“……?”
“……?”
“……?”
침묵 혹은 소소한 담소만이 이고 지던 적막한 공간에 내가 돌멩이를 던졌다.
묵직하게 내뱉어진 음성을 따라 집중되는 이목.
나는 의아한 기색이 완연한 한세정들의 표정을 응시하며 천천히 말을 이었다.
명일부로.
“잠시 나갔다 올 거야.”
기약없는 출장을 나가리라고.
갑작스러운 외출 소식에 다들 눈만 껌뻑거린다.
“네?”
“나갔다… 오신다고요?”
이해가 안 되는 듯했다.
뜬금없는 타이밍이기도 했거니와, ‘나갔다 오겠다’라는 말 자체가 굉장히 광범위하고 막연했기에 바로 받아들이기가 어려운 모양.
그래서.
좀 더 명확하고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 주었다.
“이식에 적합한 녀석들을 찾으러 갈 생각이다.”
라고.
앞서 퀸급 포타우스와 싸우며 깊은 확신이 생겼다.
기껏 오리지널 기술 두 개로는 목표한 바를 이루지 못한다는 걸.
평범한 생존자들이 들었다면 개소리하지 말라며 있는 놈이 더하다는 식의 온갖 욕을 해 댈 터이나.
내 의견에는 변함이 없었다.
수옥(手獄)에 갇혀 방어에 전전하던 순간, 수호 기사의 소실, 겨우겨우 승리를 거두고도 기절해 버렸던 최후까지…….
부족하다는 건 진심이자 진실이었으니.
그러므로.
최소한 머저리같이 쓰러지는 일은 없도록 지금보다 훨씬 강해져야 했다. 하지만 기술을 숙련하는 방식으로는 시일이 오래 걸릴 터.
시간적으로 널널한 형편이었다면 몰라도.
49일.
하루가 흘러 이제 48일 하고도 아홉 시간여밖에 남지 않은 현시점에선 다른 방법을 쓸 작정이었다.
“해서 가려는 거다.”
내가 가진 최고의 무기이자 과거 불곰파를 파멸시키기 위한 방도로 택했던 비책.
전 우주를 통틀어 최강이 될 수 있다는 잠재력을 지닌 최악의 생물, ‘프레데터’의 고유한 능력을.
이른바.
무사 수행(武士 修行).
정확하게는 ‘이식 수행(移植 修行)’을 떠나려 함이었다.
덧붙여.
기회가 닿는다면 출가 중에 '황금 표식'에 관해서도 알아볼 요량이다.
단어만 툭하고 덩그러니 던져놓아 어디서부터 접근해야 할지 감이 안 온다만, 중간중간 발견하는 던전을 위주로 수색해가면 뭐라도 건지겠거니 생각 중이었다.
설사 예측이 틀려도 상관없다.
말했다시피 그 부분은 부차적인 업무.
베이스가 되는 행동 방침은 흡수 재료를 탐색하는 것이었다.
* * *
쿵!
“말씀하신 일주일 분량의 물자입니다. 제일 큰 가방이 냉동육, 이쪽이 렌티아 열매와 오시세르입니다.”
“이쪽은 약인데…….”
“누락된 부분은 없는―”
"이거 빠졌어! 상태 이상 물약하고…“
다음 날 아침, 일찍부터 거점이 부산스럽게 들썩였다.
손수 제작한 약재를 챙겨 오는 한세정, 식량을 담당한 곽재우와 조이령, 포션 및 빠진 목록이 없는지 체크하는 신지유와 신지운 등.
굳이 이러지 않아도 된다 말했으나.
며칠이 될지 모를 여행이니 철저하게 준비해야 한다는 한세정을 비롯하여 모두가 열과 성을 다해 채비를 갖춰 주고 있었다.
“…수고했다.”
그 열렬한 노력에 진정으로 감사를 표한 나는.
스윽―
펄럭!
비상 연락 수단인 ‘고주파 신호기’를 주머니에 넣으며 한세정들을 등지고 여전히 어둠이 자욱한 도심으로 걸음을 옮겼다.
인생 2막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던.
“저쪽이던가.”
황 노인과 유신이의 집을 향해.
목적지를 그리로 삼은 이유는 단순했다. 다시없을 변곡점을 맞이했던 장소이니만큼, 이번에도 운이 따라 주지 않을까 싶었을 따름이었다.
어차피 어딜 가든 무방하니까.
단지.
시작점으로 되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려나.
“키에에에엑―”
“아아아악!!”
‘그때는 하울링만 들어도 덜덜 떨었었지.’
괜스레 감상에 젖어드는 듯 묘한 기분에 가슴이 일렁거렸다.
부디.
이 감정의 끝에서도 웃을 수 있어야 할 텐데.
“후…….”
해피 엔딩을 기원하며 뻗어가는 보보.
오랜만에 밟아 보는 복귀로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내비게이션을 켜 둔 것처럼 몸이 알아서 경로를 찾아간다.
좌로, 우로.
때때로 길이 없다면 직접 개통해서라도 쭉쭉 전진해 가다 보니.
“…아, 여긴.”
쏴아아아아아아아!!
반쯤 허물어진 빌딩 근처에서 시가지를 가로지르는 세찬 물줄기와 마주하게 되었다.
도착과 동시에 내 뇌리를 자극하는 이곳은.
[〈던전 : 파도 속의 고치〉에 입장하셨습니다.]
우리를 제법 곤혹스럽게 했던 그 물거미 소굴이었다.
착호 부대와의 쓸데없는 교전을 피해 이동하던 중 실내 수영장 건물이 던전으로 변모하며 뛰쳐나온 물거미들로 인해 조이령과 곽재우가 납치당해 제법 애를 먹었었지.
당시엔 입수할 능력도, 수중에서 싸울 능력도 없던 데다가.
하필이면 우릴 쫓아오던 군인들도 같이 휘말려 누가 누구인지 분간이 불가능해 목숨을 걸어야 했다.
《던전 전용 퀘스트 : 고치 파괴/구출》
- 이 퀘스트는 오로지 ‘던전 : 파도 속의 고치’에서만 진행 가능하며, 던전 곳곳에서 발견되는 고치를 파괴하거나 구출해 내는 양에 따라 보상이 달라지는 형식입니다.
파괴는 쉽고 빠르나, 실력에 자신이 있다면 위험을 극복하며 고치를 뭍까지 옮겨 보십시오. 난이도가 올라갈수록 보상도 올라갈 것입니다.
┗현재 파괴한 고치 : (0/~)
┗현재 구출한 고치 : (0/~)
┗등급별로 고치의 ‘색’이 다르게 표시됩니다.
┗파괴 혹은 구출한 고치의 등급별로 보상의 질이 달라집니다.
이 퀘스트를 보고 나니 한층 생생해지는 기억.
“재밌네.”
그 아찔했던 추억에 피식하고 웃은 나는 다리의 근육을 풀어 주며 도약할 자세를 잡았다.
대략 15m는 될 법한 강폭.
머메른의 피부를 가져오며 물갈퀴를 가지게 된 터라 원한다면 물속으로 들어간다 해도 문제없다만, 그랬다간 방수 기능 없는 가방과 함께 내용물이 죄다 젖어 버릴 테니.
꾸우우우욱―
“넘자.”
[가속]
[풀루스의 돌진]
타앗―
넘어 버린다.
파아아앙!
힘차게 뻗은 일보와 바람이 더해지며 훨훨 비상하는 육체.
그 화려한 도약에 놀랐나.
“키에에엑!!”
“키에에에엑!”
촤아악!
촤악!
격류 내부에 도사리던 물거미들이 포효를 내지르며 머리를 쳐든다.
필시 먹잇감이 입수하기만을 기다린 듯한데.
후우우우우웅―
쿵!
안타깝게도 내게 15m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가뿐하게 위치를 바꾼 나는 슬쩍 후방을 돌아봤다.
“있으려나.”
던전 ‘파도 속의 고치’의 중심이자 검푸른 강줄기의 출발점인 실내 수영장.
저곳에도 퀸급 개체가 있을는지 궁금해서.
다만 출타한 것인지 아직 소환이 안 된 건지 감각에는 잡히진 않았다. 아무래도 추후에 재차 들러서 확인해 봐야 할 것 같았다.
만약.
단순히 자리를 비웠던 거라면 나중에라도 찾아와서 사냥할 계획이다.
더 이상은 수중전이 두렵지 않을뿐더러.
“신지유 입장에선 최적의 사냥터가 되겠어.”
마침 상극의 속성을 다루는 소환사가 옆에 있으니 말이다.
녀석에게 여길 맡기면…….
아마 1분도 되지 않아 지옥문이 열릴 거다.
그 무렵엔.
신지유도 오리지널 기술 하나쯤 보유했을 테니 퀸급이고 나발이고 자연재해처럼 일거에 쓸어버릴 것이다.
나는 그와 같은 상상을 그리며 다시금 앞으로 나아갔다.
딸깍!
[이벤트 발발까지 남은 시간 : 47일 23시간 37분 31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