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화
나는 잠깐 고민하다 한세정에게 한 장의 교환권을 건넸다.
“자.”
“…네?”
그녀는 왜 이 귀한 아이템을 자신에게 주느냐며 당혹스러운 얼굴로 날 바라봤지만, 일절 개의치 않고 억지로 손에 쥐여 주었다.
수호 기사에 대한 배상.
그 첫 번째 품목으로 내어 줄 요량이었기에 거부는 거부했다.
추가적으로.
“감사합니다……!”
“이건 이령아, 네가 가져라.”
“예? 저…요?”
다른 두 장 중 하나의 주인은 조이령으로 정했다.
내가 세운 공로.
이는 공동의 노력이 합해졌기에 성사될 수 있던 일이었으니, ‘양도 불가’ 마크가 붙지 않는 이상 무엇을 얻든 가급적이면 최대한 평등하게 분배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수량에 한계가 있는 만큼 효율을 따져 배분할 필요가 있는 바.
이를 고려했을 때.
포타우스가 근력 특화 타입임을 참고하여 최상의 시너지가 나올 조이령에게 우선적으로 할당했다.
곽재우와 신지유.
특히 내게 버금가는 활약을 가했던 신지운이 퍽 입맛을 다셨지만, 딱히 번복할 의지는 없다.
그 대신.
“너흰 이걸 가져가.”
옹기종기 앉아있는 셋에게는.
아니.
빚을 갚았을 따름이지, 실질적인 배급 인원에서는 제외되었던 한세정까지 포함해 네 명에겐 영롱한 빛깔의 ‘수정’을 두 개씩 반급했다.
“루비……?”
“보석입니까?”
“진짜 보석 같아요…….”
“이게 뭐예요, 형?”
얼핏 일견하기에는 루비나 가넷으로 추정되는 이것의 정체는.
오늘의 마지막 선물이자, 소수에게 국한된 ‘금색 교환권’이나 ‘칭호 : 종족의 원수’와 달리, 여럿이 합심해야만 하는 콘텐츠임을 감안해 고안된 듯한 다수 전용 보급품.
그래 봐야 고작 열 개에 불과하다만.
여하튼.
“근원 수정, 이라고 하네.”
《근원 수정 : 포타우스》
- 등급 : 특별
- 분류 : 소모품
- 설명 : 오직 어떤 종(種)의 「퀸급」 개체를 사냥한 자만이 획득할 수 있는 근원 수정. 해당 개체의 에너지가 극도로 농축된 이것은 복용하는 것으로, 해당 종(種)과 관련된 신체 능력치가 급상승한다. 단, ‘3차 내성’이 적용된 능력치는 향상되지 않는다.
- 옵션 : 복용 시 ‘근력’, ‘순발력’, ‘체력’ 각 10씩 상승 다 / 전신 근육 활성화 / 물리력을 행사하는 모든 행위에 긍정적 이점 부여 / 낮은 확률로 「포타우스」 관련 기술 습득
라는 아이템으로.
딱 봐도 근원석의 상위 버전이었다.
“와……. 한 알에 30?!”
“3차 내성에는 안 먹힌다는 단점이 있지만, 어차피 안 채워 둬서 별 상관은 없겠다.”
“그러게 말입니다.”
“소환 관련된 수정도 있으려나……?”
“웬만하면 못 구할걸? 개미나 바퀴벌레 같은 괴물들이면 주려나?”
“어휴, 바퀴벌레 얘기는 하지 마.”
옵션이 워낙 뛰어난지라 넷의 낯빛이 반짝 환해졌다.
신지운의 경우는 아예 받아들자마자 얼른 입으로 가져가는 포즈를 취했다.
그 정도로 만족스럽다는 뜻이려나.
설령 작위적인 보여 주기식일지언정, 수여자나 수령자나 주위 모두를 기분 좋게 해 주는 퍼포먼스였다.
* * *
으적!
[‘근원 수정 : 포타우스’를 복용했습니다.]
[근력, 순발력, 체력이 10씩 상승합니다.]
[전신의 근육이 최상의 상태로 활성화됩니다.]
[모든 물리 공격의 위력이 5% 증가합니다.]
연달아 해치운 두 번의 흡수.
우드득―
우득―
몇 줄의 메시지가 뜨고 지기를 반복하는 동안 온몸의 뼈와 근육이 빠드득거리며 고밀도로 압축되어 갔다.
약간의 통증이 수반되는 이 과정은…….
비교하자면 매우 강도 높은 마사지를 받는 느낌이었다. 물론 고통엔 익숙해질대로 익숙해진 나였기에 버티는 건 그닥 어렵지 않았다.
그렇게.
대략 10여 분에 걸쳐 성장이 완료된 이후.
꽈아아악―
후욱!
훅!
“나쁘지 않네.”
가볍게 주먹을 뻗어 본 나는 꽤나 확연하게 체감되는 변화에 흡족하게 주억거렸다.
그러면서.
스윽―
콰직!
콰직!
책상에 올려 두었던 두 개의 근원석을 차례로 씹어 삼켰다.
평상시라면 한세정들이나 먹었을 근원석을 섭취하는 까닭.
[‘3등급 근원석 : 포타우스’를 복용했습니다.]
[근력이 4 상승합니다.]
[‘3등급 근원석 : 포타우스’를 복용했습니다.]
[근력이 5 상승합니다.]
그건 무척 간결했다.
이래저래 스탯이 증가하면서 마침내 300선에 다다른 근력의 앞을 가로막은 벽을…….
[축하합니다!]
[‘신체 능력 : 근력’이 「300」을 돌파했습니다.]
“…됐다.”
완전하게 허물기 위함이었다.
[보상으로 ‘칭호 : 3차 한계 돌파―근력’을 습득합니다.]
[기술 ‘천강’을 습득합니다.]
《기술 : 천강》
- 등급 : 특수
- 단계 : -
- 설명 : 신체 능력치 중 ‘근력’이 「300」을 돌파했을 시 부여되는 기술입니다. 하루 1회에 한하여 하늘의 힘이 부여되며, 1분간 ‘근력’이 150% 향상됩니다.
하지만 무리하게 재생력을 끌어 쓴 대가로 지속 시간이 해제된 후에는 24시간 동안 ‘근력’이 최대치의 50%로 하락합니다.
한순간에 나타난 문장들이 파도를 이루며 허공에 쫙 드리워진다.
[‘신체 능력 : 근력’이 「300」에 도달했습니다.]
[능력치 ‘근력’에 한하여 「내성 : 3단계」가 적용됩니다.]
《특이 사항 : 내성―3단계》
- 〈차원 : 테라〉를 침략한 「침략군」의 근원을 흡수하여 ‘3차 한계’마저 돌파한 당신. 초월자의 영역에 들어선 당신에게 더 이상 하등한 품질의 근원석은 효과가 발휘되지 않습니다.
- 지금부터 「300」에 이른 능력치는 ‘3등급 근원석’으로 향상시킬 수 없습니다.
칭호에서 내성에 이르기까지.
“많기도 하다.”
난 시야를 어지럽히는 문구들을 손으로 휘휘 저어 없애며 새롭게 생긴 ‘천강’이란 기술로 눈길을 주었다.
“천강, 천강.”
60초간 1.5배로 폭증한 뒤에는 하루 내내 절반으로 깎인다라.
찬찬히 읽어 보니 ‘부분 복원’과 같은 대가성 버프였다. 헌데 발동 전후의 격차가 너무 극단적이기에 진짜 위급한 시기가 아니라면 되도록 아껴 둬야 할 듯싶었다.
자칫하다 빌빌거리는 몸으로 역전을 허용할지도 모르니.
펄럭!
촤르르르륵!
나는 그리 중얼거리며 두툼한 책 한 권을 펼쳤다.
[‘기술서 : 연속 타격’을 탐독합니다.]
[‘기술 : 연속 타격’을 습득합니다.]
[근력이 4 상승합니다.]
선물 상자에서 구한 ‘연속 타격’의 기술서였다.
나 이외에는 근접 박투를 즐겨하는 이가 없는 터라 내가 익히기로 결정 난 ‘연속 타격’은 문자 그대로 상대를 두들겨 패는, ‘아쿠스의 연속 찌르기’와 대동소이한 녀석이었다.
조금의 차이가 있다면.
《기술 : 연속 타격》
- 등급 : 사본(寫本)
- 단계 : 1/3
- 설명 : 행성 ‘노타투스(Notatus)’의 지배종 「포타우스」만이 개화 가능한 기술이다. 다음 2회에 타격의 위력이 50% 향상되며, 미약한 폭발력을 갖춘다.
속도에 치중한 ‘아쿠스의 연속 찌르기’와 달리 강타(强打)에 비중을 뒀다는 점?
“단일 대상 죽이기엔 이게 훨씬 좋겠어.”
[‘단계 향상의 돌’을 사용합니다.]
[‘기술 : 연속 타격’의 단계가 상승합니다.]
[‘단계 향상의 돌’을 사용합니다.]
[‘기술 : 연속 타격’의 단계가 상승합니다.]
[‘한계 돌파 의뢰서’를 사용합니다.]
지식을 흡수한 나는 기꺼운 심정으로 동봉했던 ‘단계 향상의 돌’과 ‘한계 돌파 의뢰서’를 모조리 투여했다.
[해당 기술이 ‘한계’에 다다랐음을 확인했습니다.]
[해당 기술의 한계를 돌파하는 데 필요한 임무가 주어집니다.]
“기술 100회 타격. 간단하네.”
자금을 쏟아부으며 마친 정산.
그렇게.
바쁘게 보냈던 하루가 지나갔다.
* * *
“추출.”
나지막하게 읊조리길 잠시.
[‘추출’ 가능한 대상이 확인되었습니다.]
└대상 : 포타우스 1개체
[추출을 시작합니다.]
콰직!
[대상 「포타우스」의 추출이 완료되었습니다.]
[‘4등급 근원석’을 습득합니다.]
애처롭게 얼어 있던 반쪽짜리 시체가 순식간에 쪼그라들며 어린아이 머리통만 한 크기의 심장으로 탈바꿈한다.
처음으로 대면하는.
“이게…….”
‘4등급 근원석’이었다.
《4등급 근원석 : 포타우스》
- 등급 : 유일
- 분류 : 소모품
- 설명 : 대상 「포타우스」의 에너지를 품고 있는 근원석이다. 복용 시 ‘근력’과 ‘순발력’이 동반 상승하며, 기술 ‘연속 타격’과 ‘일격 필살’, ‘마력 천권’ 중 하나를 습득하며 일정 확률로 ‘특성’을 얻는다.
- 옵션 : 복용 시 ‘근력’과 ‘순발력’ 15 상승 / 무작위 기술 1종 획득 / 33% 확률로 특성 1종 획득
이야.
“기술이 100%에 33%로 특성까지 얻을 수 있다니…….”
절로 감탄사가 튀어나온다.
허나.
구미가 당김에도 취하지는 않았다.
따로 사용처가 정해져 있었으니까.
“가 볼까?”
“네!”
상점 안쪽의 신설 창구.
‘단서 구매처’.
그곳으로 직행이었다.
[‘단서 구매처’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보름 전쯤에 봤었던 안내문과 더불어 커다란 스크린이 우리를 반긴다.
지이잉―
지잉―
[정해진 대가를 지불하여 ‘특수 조건 ?’의 「단서」를 구입할 수 있습니다.]
[1등급 근원석 : 0개 / 1,000개]
[2등급 근원석 : 0개 / 500개]
[3등급 근원석 : 0개 / 100개]
[4등급 근원석 : 0개 / 1개]
“음…….”
어서 채워 달라는 듯 한껏 개방된 투입구를 보자 괜스레 입가가 경직됐다. 세계를 구원으로 이끌 실마리가 지척에 있다고 생각하니 왠지 가슴이 뻐근해진다.
다들 비슷한 감정인지.
“후우.”
“으으, 긴장돼.”
여기저기서 무거운 숨소리가 들렸다.
이에.
나는 더 지체하지 않고 1등급 근원석에서부터 삽입하기 시작했다.
달그락―
달그락―
달그락―
쉴 새 없이 울려 퍼지는 소음.
1,000개… 500개… 100개…….
그리고.
툭―
달그락달그락―
쿵!
최후의 한 개.
도합 1,601개의 근원석이 숫자에 딱 맞게 주입된 찰나.
기이이이이잉!!
기계가 가동되는 노이즈가 발생하며 닫힌 투입구 위로 홀로그램 화면이 출력됐다.
그곳에는.
[특수 조건 ?의 실마리_No. 2]
대문짝만한 머리말 아래로.
[황금 표식]
“황금, 표식…….”
의미불명의 단어가 적혀 있었다.
다만.
우리는 곧 시선을 돌려야만 했다.
해석을 시도하기도 전에.
삐이이이익!!
[누군가에 의해 ‘특수 조건 : ?’의 두 번째 실마리가 공개되었습니다.]
“이게 무슨― 어?”
“뭐, 뭐야…….”
“갑자기 이상한 소리가…….”
“……?”
고막을 때리는 굉음을 필두로.
[‘이벤트 : ?’의 요건이 충족되었습니다.]
[지금부터 49일의 카운트다운에 돌입합니다.]
[이벤트 발발까지 남은 시간 : 49일]
“……!”
저 푸르른 창공 한가운데 생존자 전원에게 전하는 디데이가 공표됐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