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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메라의 기억법-163화 (163/232)

163화

타닥―

탁―

빨갛게 피어오르는 불씨.

따듯한 기운이 살갗에 앉아 육체 위로 덮여 줄 즈음, 그 훈훈함에 느릿느릿하게 눈이 떠졌다.

천천히 밝아지는 시야 사이로 가장 먼저 보인 것은.

‘…꽃?’

연파랑색과 연초록색으로 편안함을 선사해 주는 꽃들과 그 아래로 자라난 나뭇가지와 풀잎들의 향연이었다.

냉혹함이 절정에 도달한 한겨울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풍경으로 장식된 하늘.

내가 알기로 지금 계절에 이런 경관이 꾸려진 장소는 한 곳뿐이다.

“집.”

매일같이 자고 일어나는 내 방 안이었다.

그 점을 인지하고 나자.

반사적으로 졸음을 못 이겨 쓰러져 가던 과거의 장면이 머릿속에서 플레이됐다.

어떻게든 대항해 보려고 하다 결국 힘에 부쳐 최소한의 대비책이었던 ‘임시 안전지대’를 설치하고서 무너졌었는데…….

사지 멀쩡하게 귀환한 걸로 보아 한세정들이 전투를 잘 마무리하고 옮겨 놓은 듯했다.

자세한 내막은 내려가서 들어 봐야겠지만.

나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생각을 정리하며 이부자리를 치우고 바깥으로 나왔다. 신지운에게 가 보기 위함이었다.

“잘 회복했으려나.”

포션에 자체 기술, 거기에 동일한 치유 능력을 갖춘 곽재우나 한세정이 있으니 틀림없이 쾌유했을 터이나.

그래도 확실히 체크해 봐야지.

“잘 먹겠습니다!!”

“응! 지운이도 맛있게 먹어.”

“넵!”

쩌렁쩌렁하고 화기애애한 목청을 보면 이미 완쾌된 듯하다만.

피식―

“제가 올라가서 아윤 오빠 일어나셨는지 보고 올게요!”

“고마워, 지유야.”

“뭘요. 다녀올― 아! 아윤 오빠!”

싱거운 미소를 지으며 계단을 내려가다 막 위로 올라오려던 신지유와 마주쳤다.

벌써 한 달이 훌쩍 넘게 동행하며 어렴풋이 남아 있던 약간의 거리감마저 사라진 양.

긴 흑발을 찰랑거리며 고개를 돌리던 소녀는 나와 대면하자 활짝 웃으며 달려왔다. 내가 무탈해 보여 상당히 안도하는 눈치였다.

그 진심을 다한 반김에 화답하려는 차에.

“아윤 오빠? 아윤 오빠!”

“오빠!”

“형님!”

“형!!”

신지유의 외침을 들은 한세정들이 식당에서 우르르 몰려나왔다.

하나같이 물기를 머금은 표정들.

내게는 참 과분한 환영 인사였다.

* * *

“…해서 임시 안전지대가 사라지는 걸 기다렸다가 오빠와 지운이를 데리고 온 거예요.”

일행을 대표하여 한세정에게 자초지종을 전해 들었다.

전체적으로.

내가 유추한 전개와 크게 다르지 않은 과정과 결말이었다.

“그래서 오빠는 어떻게 되신 거예요? 지운이도 자세히는 못 봤다고…….”

“그게 말이지.”

한세정이 얘기를 마친 뒤에는 내가 배턴을 넘겨받아 퀸급 포타우스와 치렀던 일전에 관해 설명해 주었다.

개전하는 동시에 전장을 반으로 갈랐던 터라.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주니 다들 굉장히 흥미롭다는 기색으로 내 말을 경청했다. 아마 언젠가는 자신들이 겨뤄야 할 대상이라는 부분도 저들의 관심을 자극하는 요소였으리라.

반대로 나는 썰을 풀며 전투를 복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번 싸움.

찬찬히 되짚어 보면 여러모로 고칠 구석이 많은 일전이었다.

가령.

교전 방식이라든지.

포타우스의 손아귀에 갇혀 비장의 수를 펼쳐 보여야 하나 고민하던 순간 등등.

첫 공략이었던 것치고는 아무도 다친 사람 없이 완벽에 가까운 승리를 거뒀으나, 그 말대로 ‘가까운 승리’였다.

결점은 존재했고.

그로 인해.

“미안하네.”

“네?”

“수호 기사, 나 때문에 파괴돼서.”

“아아, 아니에요. 그럴 수도 있죠.”

한세정의 골렘 ‘수호 기사’가 폐기되었으니까.

부정할 수 없는 엄청난 손실이었다.

일반 제작형을 잃은 것과는 비견을 불가하는, 오직 랭킹 특전으로만 획득 가능한 ‘소형화’ 기능을 가진 특수 골렘의 유실이었기에.

그래서인가.

퀸급 개체를 사냥하는 전공을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더욱 철저하게 준비했더라면 별다른 사고 없이 마무리 짓지 않았을까 하는 자책감으로 가슴이 헛헛해졌다.

하여.

반드시 보다 좋은 아이템으로 변상해 주리라고 다짐을 새긴 나는 연신 괜찮다는 한세정에게 미안함을 전하곤 슬슬 식사하자는 말로 분위기를 전환했다.

스랄레오 냉동육에 렌티아 열매와 구황 작물 같은 오시세르 감자 등.

나날이 늘어 가는 음식 재료 덕에 든든하고 배부른 한 끼를 해결한 우리는 포만감을 느끼며 긴장감 어린 눈빛으로 모였다.

어디 싸우러 가는 것도 아닌데 비장함이 감도는 거실.

그 원인은 단순했다.

바야흐로.

“쓸모없는 것들 먼저 개봉해 보죠?”

“그래. 원래 뽑기는 제물을 바쳐야지.”

“등급별로 왼쪽부터 낮은 순입니다.”

‘던전 : 쌍수 증량의 폭력’에서 수확해 온 보상‘들’을 확인해 볼 시간이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던전을 통해 걷어 온 전리품의 양은 그야말로 어마어마했다.

거짓말 살짝 보태 작은 동산이라 표현해도 될 만큼 수백 단위로.

《던전 전용 퀘스트 : 긍지를 무너뜨려라》

- 이 퀘스트는 오로지 ‘던전 : 쌍수 증량의 폭력’에서만 진행 가능하며, 그야말로 폭력적이라는 표현이 아주 잘 어울리는 「포타우스」 종(種)의 특징을 가져와 설계되었습니다.

저들은 자신의 ‘무기’이자 ‘증명의 도구’인 팔을 광적으로 숭배합니다. 그러니, 그 긍지를 무너뜨려 보십시오. 저들의 긍지를 꺾는다는 건, 반대로 당신의 능력을 입증하는 최고의 발판이 될 테니까.

└현재 파괴한 팔 : (80/~)

└나이트 등급 「포타우스」의 팔 파괴 시 해당 등급의 ‘x1.5’만큼 추가 적용

└커맨더 등급 「포타우스」의 팔 파괴 시 해당 등급의 ‘x5’만큼 추가 적용

└퀸 등급 「포타우스」의 팔 파괴 시 해당 등급의 ‘x10’만큼 추가 적용

[축하합니다.]

[〈던전 전용 퀘스트 : 긍지를 무너뜨려라〉를 ‘80회’ 달성했습니다.]

[‘포타우스 던전 퀘스트 보상 선물 상자(기본)’를 80개 습득합니다.]

[‘포타우스 던전 퀘스트 보상 선물 상자(특수)’를 여덟 개 습득합니다.]

일단 나만 해도 90여 개였다.

그것도.

[〈아카식 레코드〉를 통하여 「포타우스 : 퀸급」을 처치한 대상임을 확인했습니다.]

[모든 선물 상자의 등급이 1계단씩 향상됩니다.]

“……?”

특수 등급 80개에.

[‘포타우스 던전 퀘스트 보상 선물 상자(진귀)’를 여덟 개 습득합니다.]

‘진귀함’이라는 업그레이드된 상자로 구성된 꾸러미로.

《포타우스 던전 전용 퀘스트 보상 선물 상자 : 진귀》

- 등급 : 특별

- 분류 : 소모품

- 설명 : 〈던전 : 쌍수 증량의 폭력〉의 전용 퀘스트를 진행하여 획득 가능한 보상 상자. 그중에서도 놀라운 위업을 달성하여 업그레이드된 ‘특별’ 등급의 선물 상자가 주어졌다.

- 옵션 : 개봉 시 종족 「포타우스」 관련 ‘비범~ 특별’ 등급 아이템 획득 / 극히 낮은 확률로 ‘유일’ 등급 아이템 획득

“히든 피스……?”

히든 피스였다.

허.

던전에 이러한 비밀이 숨겨져 있을 줄이야.

‘퀸급 개체 처치자’에게만 부여되는 설정이었기에 한세정들에게는 기존 지급안이 적용되어 다소 아쉬우면서도, 확률은 낮으나 여차하면 ‘유일’급 아이템까지 드랍된다는 사실에 감탄사가 튀어나왔다.

물론.

[축하합니다!]

[‘2등급 근원석 : 포타우스’을 습득합니다.]

[‘2등급 근원석 : 포타우스’을 습득합니다.]

[‘2등급 근원석 : 포타우스’을 습득합니다.]

[‘2등급 근원석 : 포타우스’을 습득합니다.]

[‘2등급 근원석 : 포타우스’을 습득합니다.]

[‘2등급 근원석 : 포타우스’을 습득합니다.]

“…….”

최악의 뽑기운을 타고났는지.

그 대단한 물건으로 ‘2등급 근원석’만 여섯 개나 뽑아 버리는 황당한 엔딩을 맞이해 문제였지만 말이다.

정녕.

[기술서 ‘연속 타격’을 습득합니다.]

[‘포타우스 힘줄 탄성궁’을 습득합니다.]

“기술서라도 건져서 망정인가…….”

접싯물에 코 박고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재수였다.

역시.

“나머지는 다 처분해.”

“…알겠습니다.”

이 선물 상자는 여는 것보다 팔아 치우는 게 백번 나았다.

* * *

무더기로 쌓여 있던 선물 상자들을 전부 팔아 치우고 난 자리. 깔끔하게 비워진 공간에 도로 모인 우린 금일의 하이라이트에 주목했다.

어제는 기절하느라 제대로 살펴보지 못했던 ‘퀸급 개체 처지 보상’으로.

[축하합니다!]

[「포타우스 : 퀸급」 개체 사냥에 성공했습니다.]

[당신이 세운 위업에 대해 지급할 보상품 선정이 완료되었습니다.]

함께 풀어 보고 싶은 마음에 일부러 피했던 메시지들을 목전으로 끌어와 하나하나 읊어 나갔다.

그 첫 타자는.

[보상으로 ‘칭호 : 종족의 원수(포타우스)’를 습득합니다.]

‘칭호’였다.

다만.

전혀 평범치 않은.

《칭호 : 종족의 원수(포타우스)》

- 특별한 업적을 달성한 대상에게 부여되는 칭호. 해당 칭호를 소유한 대상은 행성 ‘노타투스(Notatus)’의 지배종 「포타우스」을 상대할 시 무조건적으로 모든 능력치가 5% 상승합니다.

- ‘특수 퀘스트 : 괴물의 원수’ 부여

《특수 퀘스트 : 괴물의 원수》

- 과제 : 다섯 종(種)의 「퀸급」 개체를 사냥해 ‘원수 칭호’ 습득

- 보상 : 칭호―괴물의 원수

부가 퀘스트를 꼬리로 달고 있는 특이하고도 특별한 칭호였다.

“…5%?!”

“와.”

“칭호로 특수 퀘스트도 수행 가능하단 말씀이십니까?”

이와 같은 옵션에 다들 신기하단 태도를 보였다.

‘괴물의 원수’라는 칭호의 효과가 얼마나 좋을는지는 실제로 목도해 봐야 알겠지만, 클리어 난이도만 보더라도 결과물의 수준이 심상치 않으리라 예측됐기 때문이었다.

그 화려한 리워드에 기대치가 잔뜩 높아졌을까?

“다음은요? 다음은 뭐예요?”

어서 다음을 공개하라 아우성치는 한세정들.

나는 다섯 사람의 재촉을 발판 삼아 품 안에서 세 장의 종이를 내밀었다.

모두에게 낯익은.

중앙에 포타우스의 이미지가 수놓아져 있는 자그마한 티켓.

바로.

“어? 이건…….”

“교, 환권?”

“포타우스 금색 교환권이다.”

[보상으로 ‘포타우스 전용 금색 교환권(x3)’을 습득했습니다.]

무려 세 장이나 되는 교환권이었다.

《포타우스 전용 금색 교환권》

- 등급 : 특별

- 분류 : 소모품

- 설명 : 오직 어떤 종(種)의 「퀸급」 개체를 사냥한 자만이 획득할 수 있는 교환권이다. 반으로 가를 시 장비, 기술, 특성 등 「포타우스」 종(種)과 관련된 대부분과 교환할 수 있다.

- 옵션 : 반절 시 ‘금색 교환 창’ 생성

본래는 ‘축제의 땅’에서 기여도 상위 10%에 들어야만 제공되던 아이템이었는데, 그 조항이 삭제된 채로 제공된 걸 보니.

‘축제의 땅’이란.

지구 생존자들에게 앞으로 어떤 괴물, 어떤 보상이 튀어나올지 미리 선보이는 일종의 스페셜 스테이지였던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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