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화
사람들은 말한다.
「그렇게 위험한데, 레이드를 왜 나가는 거야?」
오리지널 기술을 맞고도 버티는 무지막지한 퀸급 개체를 필두로 수천 단위의 괴물들이 파도처럼 휘몰아치는 지옥으로 뛰어 들어가는 까닭이 무엇이냐고.
양약 밖으로 사냥을 나선 놈들과 충돌하는 거라면야 이해를 하겠는데.
굳이 사지(死地)임을 알면서 스스로 부나방을 자처하는 사유를 궁금해했다.
그럴 때마다.
직접 공략에 나서는 이들은 이렇게 대답했다.
“지금이 제일 약하니까.”
“뭐?”
이 세상은 흡사 게임과 비슷하다.
종말 초기.
그 당시만 하더라도 솔져급이 지상 최강의 생물인 줄 알았는데.
막상 돌이켜 보니 나이트니 커멘드니 하며 단계적으로 더 강력하고 더 위협적인 상대가 하나둘 튀어나오며 지속해서 인류의 심장을 노려오지 않던가.
게다가.
단순히 하이 레벨의 침략군이 등장하는 게 아니다.
인간을 섭취해서든, 시스템의 도움을 받아서건. 세월의 흐름은 본래 지구를 침탈 중이던 괴물들의 무력 역시 끊임없이 발전되었다.
이게 무슨 뜻인가.
즉.
눈앞의 퀸급 개체들 또한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더욱 강해질 수 있다는 의미였다.
고로.
“삭초제근(削草除根).”
보다 진화하기 전에 미리 싹을 잘라야 한다.
당장의 연명을 위해 가만히 내버려 두었다가 도저히 감당 못 할 「마물(魔物)」이 되지 않도록.
죽을 결심해서라도 짓밟아야 했다.
최약의 상태를 노려 벗겨낸 가죽으로 갑옷을 만들고, 도려낸 뼈로 무기를 제작해야 했다.
그래야.
그 무장을 기반으로 먼 훗날의 재앙 속에서도 살아남으리니.
“그리고.”
“……?”
“게임 좀 해 봤으면 알 거 아냐.”
“뭘…….”
“보상.”
생존도 생존이지만.
뭣보다.
목숨을 걸고서라도 차지하고 싶을 정도로 ‘전리품’이 미쳤거든.
그게.
우리가 싸우는 유이(唯二)한 목적이야.
— ‘나는 오늘도 군화를 신는다’ 中 일부 발췌
* * *
마광포.
쿠구구구구구궁!!
손끝을 타고 뻗어 나간 초대형 마옥(魔玉)이 대기를 진동시키며 공포로 이지를 상실한 퀸급 포타우스의 육신을 먹어 치운다.
워낙 근접해서 날린 일격이었기 때문인가?
보통이었다면 수십, 수백 갈래로 쪼개진 이후에야 공세를 퍼붓던 마력이 압축된 형태 그대로 놈의 복부를 짓이겨 간다.
그 장면을 응시하며 깨달았다.
기본 베이스인 ‘오르그의 파괴 본능’이 타격식과 권갑 식 등 두 가지로 투로가 나뉘듯.
이는.
기술 ‘군단을 파괴하는 본능’의 또 다른 공격법이 되리라는 것을.
예컨대.
[오리지널 기술 : 군단을 파괴하는 본능]
[형태변화]
[일격 태세]
라고나 할까.
명칭이야 뭐가 됐든 이것 하나는 분명했다.
초고밀도로 집약된 마광포의 파괴력은.
후우우우욱!
“크라라라라라라라라라라!!”
콰아아아아앙!!
그 어떤 것과도 비교를 불허할 만큼 압도적이라는 걸.
나는 그 명백한 진실을 손에 거머쥐고서.
‘아.’
파앙!
슈화화화화화학!!
정면에서 일어난 충격파를 뒤집어쓰며 수십 미터 밖으로 튕겨 나갔다.
막거나 방비할 겨를이 없었다.
마치 폭탄 수십 개가 한꺼번에 폭발한 듯, 날 후려치는 몇백 톤급 반발력에 매돌 차게 휩쓸려야 했다.
슈우우우우욱!!
영원토록 행해질 것만 같았던 비행은 신지유가 구축한 장벽과 격돌하고 나서야 제동이 걸렸다.
그때 처음 알았다.
후우우우욱!
쾅!
콰드드득!!
“커헉!”
몸으로 벽을 박살 내며 처박히는, 애니메이션의 흔한 연출을 현실에서도 실현된다는 팩트를.
등판으로 전달되는 대미지에 절로 개방되는 목구멍.
신음인지 호흡인지.
온몸의 뼈가 바스러지는 고통이 가득 담긴 숨결을 토해 내고서야 간신히 정신이 돌아왔고.
“크아아악……!”
나는 입술을 비집고 새어 나오려는 아픔을 억누르며 마력부터 끌어올렸다.
신체적으로 위급한 상태였기 때문인가.
우우우웅!
“끄으으읍!”
고작 한 줌의 기를 순환하는 행동만으로도 진통이 몇 배로 가중된다.
하지만.
이를 악물고 인내하며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티끌만 한 마력이라도 모으고 모아야 ‘급속 회복’이든 ‘부분 복원’이든 시도해서 치유에 들어갈 터.
“크으으읍!! 큭.”
양이 늘어날수록 가까스로 붙잡았던 의식이 혼미해졌으나.
우웅!
[「특성 : 불굴」의 발현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불굴’ 상태가 발현됩니다.]
[모든 저항력이 대폭 상승합니다.]
[저항력의 상승으로 당신에게 적용된 온갖 해로운 것들이 일체 파훼됩니다.]
때마침 ‘불굴’이 작동하면서 통증이 확연히 줄어들었고.
그 여세를 몰아 계속해서 소리친 결과.
우우웅—
우웅!
악다구니가 통했는지 에너지가 서서히 반응하기 시작했다.
다행이었다.
‘불굴’이 연동된 것 자체가 몹시 위중하다는 방증이었기에 이걸 낙관적으로 받아들이기가 무척 애매했지만.
여하튼.
“크으으읍! 흐읍!”
[급속 회복]
탁!
후우우우우욱!
[‘급속 회복’이 발동됩니다.]
[소모된 체력의 10%를 회복합니다.]
덕분에 한순간이나마 멘탈을 또렷하게 유지하며 가진 패를 꺼내놓았다.
“흐읍— 하아… 하…….”
[부분 복원]
우우우웅!!
[‘부분 복원’이 발동됩니다.]
[3분간 재생력이 극대화되며, 수지 절단 이하의 상처가 완벽하게 복원됩니다.]
[무리하게 재생력을 끌어 쓴 대가로 사흘간 자연 치유력이 20% 감소합니다.]
[기술 ‘부분 복원’이 일시적으로 봉인됩니다.]
[해금까지 남은 시간 : 71시간 59분 59초]
비용을 지불하자마자 전신을 따스하게 감싸는 온기에 본격적으로 안정을 찾은 나는 더불어 쿨타임이 3일이나 되는 ‘부분 복원’까지 총동원하며 벽에서 빠져나왔다.
쿵—!
후두두둑!
“큭.”
뽑아내는 팔다리 궤적을 뒤쫓아 흩날리는 돌가루들.
뒤를 돌아보자 직경 5~6m는 될법한 크레이터가 날 반겼다. 나는 그 흔적을 어처구니 없는 얼굴로 구경하다 머리를 휘휘 젓고는 전장으로 걷기 시작했다.
각 잡고 요양해도 모자랄 판국에 억지로 몸을 움직여서 그런가.
툭—
투둑—
겨우 아물었던 환부가 다시 찢어지는 등 재차 골이 울렸으나.
꾹 참고 한 걸음, 한 걸음 전진해 나갔다.
어쩔 수 없었다.
놈이.
“그걸 맞고도, 후… 살았나.”
죽지 않았으니까.
생사 여부를 확인하는 건 아주 쉬웠다.
「특성 : 불굴」이 활성화되는 전제 조건에는, ‘체력 10% 이하’ 이외에도… 적이 ‘앞’에 있어야 한다는 두 번째 요건이 충족되어야 했기에.
〈특성 : 불굴〉
― 과제 : 체력 10% 이하로 하락한 상태에서 적을 ‘앞’에 둘 것
그러므로.
“후욱, 후…….”
저벅—
저벅—
나는 가야 했다.
가서.
결판을 내야 했다.
“크라라라라…….”
어금니를 꽉 깨물고 뻗어 나가는 보폭 끝에서 힘겹게 내쉬는 하울링이 바람에 실려 왔다.
예상한 대로.
놈은 아직 죽지 않았다.
신지운에게 절단된 오른쪽 다리를 비롯해 상체 전반이 뚫린 데다가 포타우스 종(種)의 특징이자 모든 것인 팔도 모조리 소실된 참혹한 모습이되.
“크라라라라라…….”
여전히 명맥이 이어지고 있었다.
척—
내가 면전에 서자 조금씩 올라오는 눈동자.
그 커다란 동공 내에는, 최후를 직감했을 텐데도 활활 불타오르는 열기가 그득했다.
분노, 살기, 저주…….
「침략군」도 생명체이기에, 역으로 사냥을 당해 생사의 갈림길에 서게 되면 삶의 끈을 붙잡고자 애절한 기색을 표할 때도 종종 있다.
한데.
놈은 오로지 복수심으로 이글거렸다.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패배에 굴복하고 싶지 않다는 의지이려나.
모르겠다.
단지 한 가지 확실한 사항은.
“끝내자.”
오늘이.
후우우우욱!
놈의 기일이라는 것이었다.
서걱!
쿵!
[축하합니다!]
[「포타우스 : 퀸급」 개체 사냥에 성공했습니다.]
[위대한 업적을 세운 당신의 ‘정보’가「아카식 레코드」에 기록됩니다.]
[당신이 세운 위업에 대한 보상이 지급될 예정입니다.]
* * *
“…지운아! 신지운!”
맥없이 잘려나간 하마 대가리를 응시하다 불현듯 신지운이 떠올랐다.
‘신력 발현’으로 생성한 칼날을 쏘아 낸 녀석에게 최대한 물러나라 고함을 지르긴 했으나.
내가 직접 겪은 폭발력으로 추측하건대 신지운도 결코 안전하지 못했을 터였다.
‘그런데도 이제야 기억했다니, 이 머저리 같은 놈……!’
[감각 증폭 : 청력]
파앗!
서둘러 청각을 활짝 열고 주변 어딘가에 널브러져 있을 녀석의 숨소리를 쫓았다.
10m, 20m, 30m…….
주르륵 넓혀 가는 탐지 범위가 50m에 다다를 무렵.
“으으…….“
“……! 거기냐!”
찰나 간에 앓는 음성이 귓가를 스쳐 지나갔다.
신속히 달려가자 ‘영원토록 붕괴하는 대지’의 영향으로 솟아 있던 거석 아래에서 쓰러져 있는 신지운을 발견했다.
‘제발, 제발……!’
한달음에 도착해 무릎을 꿇고 앉은 나는 허리춤에 묶여 있던 주머니를 죄다 끌어내 안쪽을 뒤져 포션을 깡그리 끄집어냈다.
장벽에 파묻히면서 죄다 깨졌으면 어쩌나 불안했는데.
천운이 따랐는지 두어 병 정도가 멀쩡했다.
꿀꺽.
꿀꺽.
똑바로 눕히고 포션을 먹이자.
“으으… 으… 으…….”
신지운의 낯빛에 점차 혈색이 돌며 신음하는 주기가 길어졌다.
약발이 돌고 있다는 말.
“하…….”
그제서야 조급했던 마음을 조금이나마 내려놓았다.
포션을 먹였다고 해서 만사형통은 아니나.
깨어나기만 하면 내가 그러했듯 ‘급속 회복’과 ‘부분 복원’으로 정상권에 접어들 테니 안심해도 좋았다.
쿵!
콰아앙!
크라라라라라!!
“…….”
스윽.
그렇게 평정심을 확보하고 나자 자연스레 한세정들에게로 눈이 갔다.
신지운을 이쪽으로 지원 보내면서.
단 네 명으로 전쟁을 치러야 하는 형편이라 퍽 우려스러웠다.
하나.
“…괜찮겠지.”
나는 그들의 전투력을 믿기로 했다.
손수 키워 낸 실력도 절대 모자람이 없었거니와.
[「포타우스 : 퀸급」이 쓰러졌습니다.]
[한시적으로 〈차원 : 테라〉에 존재하는 모든 「포타우스」 의 모든 능력치 및 기술 위력이 10% 감소합니다.]
[한시적으로 〈차원 : 테라〉에 존재하는 모든 「포타우스」 의 기세가 저하되어 ‘상태 이상 : 공포’에 빠져들 확률이 증가합니다.]
허공에 뜬 수많은 메시지 중에 이런 내용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었다.
이만하면 초광범위 버프를 걸어 준 셈이니 필시 훌륭하게 승전보를 가져오리라.
으음.
철퍽!
나는 그리 중얼거리며 가지런히 눕혀둔 신지운의 옆쪽에 쓰러졌다.
이러면 안 되는데.
‘젠, 장……’
수마(睡魔)가 몰려왔다.
아무래도.
출혈이 꽤 컸던 모양이었다.
쿵!
항거 불능.
자꾸만 내려앉는 눈꺼풀에 온 힘을 다해 저항해 보던 나는 이내 세계가 어둠으로 물드는 광경을 지켜만 봐야 했다.
그나마.
[‘임시 안전지대’를 발동합니다.]
[수식어 선택 중.]
[1%, 2%, 3%··· 99%, 100%]
[설정 완료!]
[당신을 기준으로 폭 30m의 ‘강철의 안전지대(Lv. 1)’가 생성됩니다.]
[「강철의 장벽」이 구축됩니다.]
[‘아군 지정’ 주문을 사용해 격리된 아군을 들일 수 있습니다.]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