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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메라의 기억법-159화 (159/232)

159화

쭉 내디딘 발끝에 바스락하고 풀잎이 꺾이며 하나둘 족적이 남는다.

막 동이 틀 무렵이라 그런가.

퀘스트 설명문 등의 메시지가 출력되었다가 사라졌음에도 주위는 조용했다.

주행성 생물이라 아직 기상하지 않은 느낌.

아무래도.

손수 깨워 줘야 할 것 같아 신지유를 불렀다.

“신지유.”

“네.”

다채로운 속성의 소환수를 부리는 소환사만큼 자명종 역할에 제격인 사람은 또 없었으니.

“암전류, 전력으로 부숴.”

파직―!

한 손에는 수려한 나무 지팡이를, 다른 손에는 고풍스러운 문양의 책을 쥔 소녀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공중에서 번뜩이는 빛줄기.

낙뢰(落雷).

구름 한 점 없이 생겨난, 숫제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다.

콰아아앙!!

화려한 빛무리를 휘감고 지상으로 추락한 전류가 지면과 맞닿는 찰나에 터져 나온 광휘.

그 직후 거미줄인 양 사방으로 뻗어 나가는 스파크에 고요하던 전장이 금세 소란스러워졌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크라라라라라!!”

“크라라라라!!”

쿠웅―

쿵―

쿠우웅―

아수라장(阿修羅場)이라 묘사하는 게 맞을 것이다.

느닷없는 기습에 당황한 듯 안절부절못하는 놈, 살려 달라 비명을 지르며 잠자리서 뛰쳐나오는 놈, 감전당해 연기를 피워 내며 새카맣게 타 죽는 놈 등등등…….

우람한 체격에 어울리지 않게 허둥지둥하며 그려 내는 광경은 난장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청염, 얼음꽃, 흔들바람, 산지기, 드라이어드.”

공습은.

“포화.”

이제 시작이었는데 말이다.

화르르륵!!

쩌저저적!

휘우우우우웅!!

쿠구구구궁!

촤좌좌좌좌좍!!

푸른 불꽃이 이글거리는 도깨비 가면, 백색 빙각이 뾰족하게 튀어나온 구체, 반투명한 풍력으로 이루어진 새, 50cm 남짓한 난쟁이와 초목의 정령이 합심하여 쏘아내는 형형색색의 폭격에 던전 내부가 뒤흔들렸다.

솔져, 나이트, 커맨더.

누가 걸리든, 등급이 무엇이든 간에 작정하고 난사하는 폭격에 무참히 갈려 나가는 괴물들.

그러나.

겨우 이런 전과로 흥분하거나 기꺼워하는 이는 없었다.

웃기엔 이르다.

진짜는.

후우우웅―

“크라라라라라라라!!”

콰아아아앙!!

털끝 하나 다치지 않았으니까.

“오는군.”

나는 고막이 떨어져 나갈 듯한 포효와 더불어 어마어마한 위압감을 선사하며 출현한 퀸급 포타우스를 보고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폭음을 동반하며 뿜어낸 기운에 절로 팽팽해지는 근육.

수백여 명의 능력자들에게 전방이 둘러싸여 공략당하던 퀸급 살라만드라와 다르게 아무런 제약도 없이 고삐가 풀려 있어 동일한 급수임에도 ‘축제의 땅 : 심층부’에서 접했던 당시보다 기세가 월등히 사나웠다.

슬쩍 옆으로 고개를 돌리니.

딱딱하게 굳어 있는 한세정들의 표정이 보였다. 처음 접해 보는 최상위 개체의 압박감에 적잖게 긴장한 듯싶었다.

허나 그도 잠시.

우린 금세 심신을 가다듬으며 눈앞에 집중해야 했다.

“크라라라라라라라!!”

세상이 떠나가라 울부짖던 퀸급 포타우스가 여덟 개의 팔을 일거에 펼치자.

후우우웅―

파아아아앙!!

[‘던전 전용 기술 : 총공세’가 발동되었습니다.]

[〈던전 : 쌍수 증량의 폭력〉 내에 존재하는 「포타우스」 종(種) 전체가 당신을 향해 진군해 옵니다.]

[〈던전 : 쌍수 증량의 폭력〉 내에 존재하는 「포타우스」 종(種) 전체의 모든 신체 능력치가 10% 상승합니다.]

[〈던전 : 쌍수 증량의 폭력〉 내에 존재하는 「포타우스」 종(種) 의 기술 위력이 10% 상승합니다.]

짙은 폭풍이 휘몰아치며 온갖 경고를 필두로 몇 마리인지 셀 수도 없는 괴물들이 일제히 달려들어 온 탓이었다.

비로소.

전쟁의 개전이었다.

* * *

“크라라라라라!!”

“크라라라라!!”

쿠구구구구궁―!!

땅울림을 빚어내며 진격해 오는 포타우스 떼를 바라보며 꽉 틀어쥔 주먹을 들었다.

‘계획대로.’

짤막하고 간결한 수신호에 앞다투어 주억거린 한세정들이 체내에 응축되어 있던 마력을 터트리며 인근을 뒤틀어 버린다.

“철혈의 술.”

“산지기.”

쿵―

쿠구구구구구궁!!

가장 먼저 신위를 선보인 것은 곽재우와 신지유였다.

챙겨 온 피와 일대의 토양을 집약해 양옆으로 거대하고 두꺼운 벽을 세워 전방위적으로 공격해 오지 못하도록 지형을 고정시키자.

넓게 퍼져서 돌진해 오던 놈들이 급격히 꿈틀거리며 한쪽으로 몰린다.

“옵니다!”

두 사람이 일부러 열어 두었던.

“매직 트랩.”

“베놈 포그.”

삑―

삐비빅―

콰아앙!

콰앙!

사아아아아아아―!

자욱하게 깔린 독 안개와 연달아 폭발하는 지뢰가 격하게 환영해 주는 지옥의 입구로.

간혹 정신머리가 똑바로 박힌 녀석들은 무더기로 죽어 나가는 동족들을 보며 다른 길을 찾으려 했으나 그마저도 쉽지는 않았다.

[매드 스크림]

“후으으읍, 으아아아아아아!!”

쿠웅―

애병인 분쇄로 땅을 내리찍으며 토해 낸 곽재우의 쩌렁쩌렁한 함성이.

[‘매드 스크림’이 전장을 가로지릅니다.]

[「아군」으로 지정되지 않은 모든 존재가 도발에 걸려듭니다.]

“크라아악― 크라라라라락!!”

“크라라라라!!”

난잡하던 소음을 한꺼번에 밀어내며 놈들의 정신을 자극했기 때문이었다.

포타우스는 전형적인 근력 특화 타입.

정신 저항 능력은 제로에 가까운지라 설사 커맨더급이라고 한들 어그로를 벗어나는 일은 없었다.

외려.

더욱 집요하게 함정 속으로 몸들 던질 따름.

그사이.

“군악대의 전쟁가, 열세 극복.”

우우우웅!

[‘군악대의 전쟁가’를 들었습니다.]

[10분간 모든 신체 능력치가 상승합니다.]

[‘열세 극복’이 발동되었습니다.]

[현재 당신은 심각한 수적 격차에 직면한 상황입니다.]

[5분간 모든 신체 능력치가 대폭 상승합니다.]

“지운아. 갈까?”

“네!”

[멀리 인첸트―샤프니스]

[‘멀티 인첸트―샤프니스’가 적용되었습니다.]

[지정된 모든 무기에 「날카로움」 효과가 각인됩니다.]

‘스트랭스’나 ‘마력 유체’부터 각종 버프를 덕지덕지 바른 조이령과 신지운이 창칼을 꼬나쥐며 좌우로 갈라졌다.

맹렬한 속도로 나아간 둘은 중독과 트랩으로 정신 줄을 놓아 버린 포타우스들의 옆구리를 사정없이 물고 늘어졌다.

[발광하는 이무기]

[웨루카의 다중 베기]

착―

휘우우우웅―!

촤아악!

거의 동시에 행해진 찌르기와 베기의 궤적을 따라 분출된 마력.

아가리를 쫙 벌린 이무기와 초승달을 닮은 십수 개의 참격이 공간을 거칠게 파고들며 경로에 놓인 무수히 많은 적을 찢어발긴다.

“독사 지옥.”

“얘들아!”

한세정과 신지유가 합류한 것도 그즈음이었다.

독기로 이루어진 수십 마리의 뱀과 여섯 소환수들을 이끌고 도착한 두 여인은 재차 공격하려는 조이령 신지운 페어와 손발을 맞추며 괴물들을 도살했다.

그럼에도.

“크라라라라라!!”

“크라라라!!”

쿠웅!

쿠우웅!

포타우스들은 어떻게든 나아가며 한세정들을 깨부수려 노력했다.

아무리 짓밟혀도 다시 자라는 잡초처럼.

‘던전 전용 기술 : 총공세’와 ‘매드 스크림’의 영향으로 광분 상태나 다름없는 지금, 놈들은 오로지 살육이라는 목적하에 막대한 군세를 앞세워 빈 구석을 찾아 꾸역꾸역 전진해 왔다.

그 맹목적인 인해전술에 한세정들도 조금씩 조금씩 뒤로 밀려 나갔다.

길목을 좁게 만들어 타격 지점을 한정시켜도 동족의 시체를 밟고 진군해 오면 답이 없었으니까.

게다가.

일부는 자랑하는 악력을 토대로 아예 벽을 등반하며 전급해 오는 중이었다.

“후방 100m까지 퇴각!”

하기에 한세정은 망설이지 않고 후퇴를 지시했다.

초전의 기습과 이번 격전으로 이미 쏠쏠한 성과를 거뒀으니, 슬슬 2페이즈로 돌입할 타임이었다.

바로.

“자…….”

스윽―

“던져!”

후우우욱!

“읏, 차!”

“하압!”

“흡!”

후우욱!

후욱―

후우우욱―

[봉인 해제]

[봉인 해제]

[봉인 해제]

번쩍!

“그워어어어어어어!!”

“그워어어어어!!”

콰아아아아아아앙!!

대골렘전을.

십이지신(十二支神)을 비롯하여 수호 기사와 수호병.

거점을 지켜야 하는 만큼 흑기사들까지 전부 대동하지는 못했으나… 한 기, 한 기가 10m에 달하는 거신들은 강림만으로도 전세를 뒤집기엔 모자람이 없었다.

거기에.

“충정의 길.”

슈우우우웅―!

슈우우웅!

슈우우우우웅!!

[당신의 부름에 응답한 ‘철혈 기사단’의 혼령들이 차원을 넘어 도열합니다.]

곽재우가 불러낸 오십 기의 영체 기사들.

‘철탑의 방벽’ 세트 효과로 한 차례 강화되어 나이트급 이상의 무력을 지니게 된 그들의 지원도 상당한 도움이 됐다.

숫자도 숫자지만.

‘영체’라는 특성상 물리력에 대한 내성이 무척 높아 포타우스와는 상극이었기 때문이었다.

“반격!!”

착착 수행되어 가는 작전.

부지휘관인 한세정은 살짝 수그러들었던 전의를 한껏 불태우며 반전의 나팔을 불었다.

* * *

그 시각.

[풀루스의 돌진]

탓―

쿠우웅!

나는 한세정들이 포타우스들과 부딪치는 시기에 맞춰 설치된 벽을 통로 삼아 던전 심처로.

“크라라라라라!!”

콰아앙!

콰앙!

성큼성큼 걸어오는 퀸급 포타우스를 노리고 움직였다.

일대일로 승부를 볼 의도는 없다.

단지 어제 구상한 전략대로.

한세정들이 포타우스들을 모조리 소탕하는 동안 퀸급의 시선을 잡아끌어 주리라는 약속을 이행하기 위함이었다.

본래는 가능하다면 단독으로 목을 베어 볼 생각도 있었으나.

대치해 보고서 깨달았다.

제아무리 오리지널 기술을 두 개나 확보한 나라고 해도 혼자서는 어렵다는 걸.

따라서.

짜 온 플랜에 맞게 움직임만 제지해 놓고 기다리다 한세정들과 합세해 차근차근히 사냥하리라.

나는 그러한 심정으로 날아가 대지에 밟을 올렸다

후우우욱―

탁!

가볍게 내디딘 보폭.

물론.

[오리지널 기술 : 영원토록 붕괴하는 대지]

결과는 가볍지 않았다.

쾅!

콰과과과과과광!!

온몸의 마력이 발끝을 통해 빠져나간다 싶은 순간 전면 일대가 송두리째 박살 났으니까.

대지진.

어떠한 전조 현상도 없이 갑작스럽게 생성된 지진은 100m라는 광범위한 지역을 휩쓸며 필드 내의 모든 걸 집어삼켰다.

생물, 사물.

재앙 앞에 구분은 없었다.

당연히.

“크라라락― 크아아아악!!”

쾅!

콰과광!

퀸급 포타우스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다.

7~8m는 될 법한 거체도 사시나무처럼 휘청거렸고, 한순간에 자세가 무너지며 땅바닥을 나뒹굴어야 했다.

놈은 당혹감에 물든 고성을 내지르며 일어서려 안간힘을 썼지만.

대지는 우람한 팔다리를 꽉 깨물고 심연 저편으로 놈의 육체를 인도했다.

더군다나.

우우우우우우우웅!!

[오리지널 기술 : 군단을 파괴하는 본능]

“하아!”

투우웅!

상공에서는 수백 갈래로 나눠진 유성우(流星雨)가 내려오고 있는 형편이라 거미의 다리를 연상케 하듯 꿈틀거리는 팔수로도 균형을 되찾기란 결코 간단치 않으리라 여기던 그때였다.

“크라라라라라라!!”

우우우우웅!

콰아아앙!!

저 깊숙한 지하에서 굉음과 함께.

퍼어어어어억!

“크라라라라라!!”

“……?!”

나락까지 곤두박질칠 것처럼 사라져 가던 놈이 날개도 없이 공중으로 치솟은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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