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화
《오리지널 기술 : 영원토록 붕괴하는 대지》
- 등급 : 체화
- 단계 : 1/7
- 설명 : 행성 ‘바이오스(Bioous)’의 지배종 「티그리스」만이 개화 가능한 기술이었으나, 이제는 누군가의 개성이 더해져 새로운 방식으로 진화된 기예(技藝)일지니.
특성 ‘반복’과의 결합으로 시전자의 마력 공급이 지속되는 한 절대 멈추지 않는 지진을 일으켜 최소 50m에서 최대 100m에 달하는 범위를 초토화시킨다.
시전자의 의지에 따라 전역을 뒤흔들 수도, 어느 한 방향에 지력을 집중할 수도 있으며 ‘붕괴하는 대지’에 노출된 시간에 비례하여 ‘혼란(50% 이하)’, ‘공포(75% 이하)’, ‘절망(90% 이하)’이 부여된다.
“아아.”
공중의 대기를 밀어내며 출력된 리포트.
그와 동시에 뇌에 새겨지는 지식에 자연스레 탄성이 흘러나왔다. 머릿속으로 그려지는 이미지대로라면… 그야말로 ‘지옥(地獄)’, 땅이 빚어낸 감옥이라는 의미를 그대로 재현해 내는 게 가능했으니까.
그만큼 마력 소모가 막대하겠지만.
원래 오리지널 기술은 마력 잡아먹는 하마이거니와, 실제로 써 보면서 조절해 나가면 될 일이었다.
뭣보다.
내 마력 통은 결코 작지 않다.
외려.
*신체
- 마력 : 270
매우 매우 방대한 편이지.
과제로 주어진 10,000분을 일거에 충족시킬 수준은 못 될지언정, 적어도 전투가 치러지는 동안 지치지 않고 유지할 능력은 있다.
그러므로.
“가도 되겠어.”
내일 당장.
던전 공략에 나선다.
정확하게는, ‘탐사’에 나설 계획이었다.
‘골갑의 초원’, ‘쌍수 증량의 폭력’ 등.
알고 있는 던전들을 순방하며 퀸급 개체의 유무를 체크해 보고 난 뒤에 전투든 전쟁이든 시행할 심산이다.
당연히.
“예? 혼자 가시겠다고요?!”
“그래.”
“저희도 같이…….”
“나 혼자 간다.”
단독으로 움직일 예정이다.
어디까지나 단순 정찰 임무였다.
고작 그 정도 업무에 한세정들을 전원 대동시키는 건 심각한 인력 낭비였다.
더군다나.
성과를 얻은 사람은 나 하나였다.
“너희는 내가 다녀올 때까지 수련에 집중해.”
“하지만…….”
“퀸급 살라만드라.”
“네?”
“놈은 수백 명에 달하는 생존자들이 한꺼번에 달려들었어도 버텨 냈다. 내구에 특허된 타입이었고, 결국 반격에 나서지는 못했지만. 방어력은 커맨더급과 비교해 수십 배나 뛰어났다.”
“…….”
“우린 앞으로 그런 상대를 겨우 여섯 명이서 사냥해야 한다. 설령 골렘들이 서포트한다고 해도 불리하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퀸급 개체는 아무나 노릴 먹잇감이 아니란 점을 똑똑하게 인지해야 한다.
“그러니 노력해. 퀸급 개체는 물론 어떤 적과 전쟁을 치르더라도 쓰러질 일 없도록. 기다려 줄 테니.”
철저한 대비책 마련.
그것은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사항이었다.
* * *
“후.”
펄럭!
겨울 바람에 나부끼는 장포 자락을 가다듬으며 눈 덮인 도로 위를 내달렸다.
1차 목적지는 ‘골갑의 초원’.
거주지와 인접해 있기도 하고, 주식인 스랄레오 냉동육 운반을 위해 잔해를 깔끔하게 철거하는 등 우리 나름대로 가도(道路)를 정비해 두어 왕래하는 데 굉장히 순탄했기 때문이었다.
그 덕에 빠르게 거리를 주파해 나가다 보니.
아침해가 완연하게 떠오를 무렵, 저 멀리 계절을 거스르는 푸르른 녹음(綠陰)이 눈에 들어왔다.
그새 더욱 확장된 듯.
기존의 분계선을 아득히 초월한 크기.
세밀한 측량은 불가능하나 대략 대여섯 배는 폭등한 듯했다.
하기사.
솔져급과 나이트급이 구성의 끝이었던 군대에 장수인 커맨더급이 추가된 데다가 여왕…이라고 하기는 애매하다만, 어쨌든 현시점의 최상위 개체인 퀸급까지 출현할지 모르는 형편이니 본래의 영토로는 턱없이 부족하리라.
따라서.
이는 충분히 납득하겠는데.
띠링!
[축하합니다!]
[〈던전 : 골갑의 초원〉 내부에서 자생하는 ‘오시세르’를 발견했습니다.]
“……?”
도대체 이건 뭘까.
무성하게 자란 잡초를 짓이기며 들판에 들어선 직후 나타난 ‘던전 : 골갑의 초원에 입장하셨습니다.’라는 친숙한 멘트를 휘휘 저어 없애길 잠시.
몇 걸음 나아가길 무섭게 처음 접하는 메시지가 눈앞을 가로막았다.
“오시세르?”
난데없이 뭔가 싶어 고개를 갸웃거리는 차에 3~4m 즈음 떨어진 전방에서 작은 섬광이 반짝거렸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다소 기이한 광경에 눈살을 찌푸린 나는 오감을 개방해 근방이 안전하다는 걸 확인하고서 빛무리가 일렁이는 장소로 다리를 뻗었다.
황당하고 아니고를 떠나서.
당면한 변수가 무엇인지 알아볼 필요성이 있는 바.
스윽―
텁!
자세를 살짝 낮춰 두꺼운 손바닥으로 휘감자 까슬까슬한 촉감이 피부를 타고 올라왔다.
광휘의 정체.
“풀?”
미지수의 실체는 사방에 널리고 널린 풀때기와 무척 흡사한 잡풀이었다.
특이한 게 있다면.
아래로.
투둑―
우드드득!
“…감자?!”
튼실한 씨알이 수북하게 매달린.
《오시세르》
- 등급 : 일반
- 분류 : 소모품
- 설명 : 행성 ‘두리티오스(Duritos)’ 전역에서 쉬이 찾아볼 수 있는 식물로, 특히 「스랄레오」들이 주로 섭취하는 먹이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환경에 구애받지 않고 잘 자라나는 이 작물의 열매에는 뼈를 단단하게 해 주는 효능이 있습니다.
- 옵션 : 복용 시 골밀도 증가
감자나 고구마를 쏙 빼닮은 구황 작물이란 것이었다.
“…….”
나는 약간 벙찐 얼굴로 오시세르란 이름의 식물에 시선을 고정한 채 미간을 찡그렸다.
약간 이해가 안 됐다.
렌티아 열매처럼 두드러지는 종류도, 그렇다고 스랄레오들이 풀밭을 헤집으며 먹고 있던 모습을 포착한 것도 아닐 터.
그런데 왜 갑자기 이런 작물이 내 눈에 띈 것인지.
…라고 중얼거리던 찰나.
“아.”
불현듯 하나의 지식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축제의 땅 : 심층부’ 입성 당시 선발 주자보다 늦게 얻은 탓에 ‘임사’ 꼬리표가 달렸던 칭호.
《칭호 : 디텍터》
- ‘위대한 업적’ 수준의 대상 혹은 물체를 발견해 냈을 때 부여되는 칭호입니다. 본 칭호의 소유자는 〈던전〉 내부에서 특별한 것을 찾을 확률이 높아집니다.
- 특이 사항 : 7일 이후 삭제됩니다.
퀸급 살라만드라라든가, 퀸급 살라만드라라든가, 퀸급 살라만드라라든가 하는 중요 포인트에 밀려 완전히 까먹고 있었던 이 녀석에 대한 데이터가.
“이게 원인이었군.”
그제야 답을 깨달은 나는 허탈하게 어깨를 으쓱였다.
괜한 데에 심력을 낭비한 느낌이라서.
여하간.
칭호 덕택에 좋은 음식 재료를 얻었다.
게다가 렌티아 열매같이 섭취하는 것만으로 뼈가 강화되는 ‘아이템’이라 상시로 복용하다 보면 우리 전력 상승에도 큰 효과가 있으리라.
스윽―
꽈아아악!
주머니를 열어 오시세르를 담은 나는 기껍게 웃으며 다시금 수색에 들어갔다.
광활한 초원.
《던전 전용 퀘스트 : 두개골 부수기》
- 이 퀘스트는 오로지 ‘던전 : 골갑의 초원’에서만 진행 가능하며, ‘살이 있는 「스랄레오」’의 두개골을 파괴하는 것이 핵심인 임무입니다.
미간을 중심으로 생성되는 그들의 골갑은 생존에 필요한 가장 강력한 무기이자 방어구이며 동시에 자존심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그 드높은 긍지를 꺾어 보십시오. 그것이 곧 당신의 능력을 입증하는 길이 될 터이니.
└현재 파괴한 두개골 : (0/~)
└상위 등급 「스랄레오」의 두개골 파괴 시 해당 등급의 ‘x2’만큼 추가 적용
간만에 접하는 ‘전전 전용 퀘스트’를 옆쪽으로 치우며 깊은 곳으로 들어가자 곧 여기저기서 스랄레오들이 감지되기 시작했다.
열, 스물, 서른…….
쉴 새 없이 늘어나는 수.
개중에는.
‘역시.’
예측했던 대로 커맨더급도 심심치 않게 섞여 있었다.
꽤나 많이.
적게 잡아도 스물 이상.
하위 개체들과 합치면 한 개 군단은 능히 꾸려 낼 숫자였다.
다만.
그게 다였다.
“…없나.”
아무리 감각을 퍼트려 봐도 정작 내가 바라는 타깃은 포착되질 않았으니까.
최상위 포식자.
그 정도쯤 되는 놈들이라면 내가 읽어내지 못할 리가 없는데, 소란을 피해 가며 수백 미터를 전진했음에도 퀸급의 어마어마한 기운이 걸리지 않는 걸로 보아…….
‘없다.’
허탕을 친 것 같았다.
씁.
한 방에 마주했다면 참 좋았으랴만.
“돌아가자.”
혹시 몰라 ‘균열’이 있는 인근을 조금 더 둘러보던 나는 깨끗하게 미련을 접고 몸을 돌렸다.
‘침략군’들도 엄연한 지성체.
가끔은 우주의 법칙에 의해 절대적인 명령을 따르기도 하나 기본적으로는 본인들의 결정과 판단하에 활동하는 생명체였다.
즉.
지구로 진입하는 시기도 각 종(種)의 지휘부에 따라 제각각일지니, 던전에 들른다고 해서 반드시 대면할 수 있으리란 생각은 없었다.
“여기서… 세 시 방향.”
부디.
다음 탐색지엔 존재하기를 희망할 뿐. 난 그 일념으로 2차 목적지인 ‘쌍수 증량의 폭력’으로 향했다.
* * *
[풀루스의 돌진]
탓―
콰아아앙!!
이동하는 와중에도 끊임없이 기술 레벨을 올리기 위하여 마력을 투자하며 질주하길 10분여.
‘기술자’ 칭호를 활용해 달달하게 경험치를 쌓으며 단숨에 몇 킬로미터나 되는 간극을 가로지른 끝에.
텁―
[축하합니다!]
[〈던전 : 쌍수 증량의 폭력〉에 입장하셨습니다.]
[해당 공간에서 활동하는 동안 〈던전 전용 퀘스트 : 긍지를 무너뜨려라〉가 진행됩니다.]
드디어 두 번째 탐문 지역에 도달했다.
“크라라라라라라!!”
“크라라라라라!!”
요간 입구서부터 괴물들로 득실거렸다.
‘골갑의 초원’ 같은 경우엔 식량 확보를 겸해서 이따금씩 청소를 했던지라 개체 수 조절이 됐지만, 이쪽은 ‘점령의 구슬’을 획득하고 난 후로 단 한 차례도 방문한 적이 없기에 개미굴처럼 변모한 실정이었다.
이에.
“선회해야 하나.”
나는 퇴로를 밟으며 넓게 우회하고자 후방으로 물러서려 했다.
단지 조사가 목표이니.
교전을 벌였다가 퀸급에서 솔져급까지 각계각층의 괴물들에게 무더기로 둘러싸이는 최악의 사태를 고려하여, 되도록 안전하고 조용한 경로를 택하겠단 의도였다.
허나.
쿠웅!
“……?!”
나는 우뚝 멈춰 서야만 했다.
멀찍한 곳에서 전해진 충격파와 더불어.
“크라라라라라라라라라!!”
콰아아아아앙!!
일대를 떨쳐 울린 폭발음 속에서 고막을 강타하는 거인의 포효가 솟구쳤기 때문이었다.
가히.
천둥을 연상케 하는 하울링으로 보건대.
“거기냐……!”
의심할 여지가 없다.
퀸급 포타우스.
내가 열렬히 찾아 헤매던 대상이 틀림없이 저기 있다. 어느 명검보도와 견주어도 뒤처지지 않는 나의 직검이 그리 속삭이고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