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화
“여기서 왼편으로 돌면…….”
어두컴컴한 초원.
맵과 도깨비불에 의지해 전진하길 10여 분.
우거진 수풀을 치우며 우람한 크기의 나무밭을 건너자 우측에서 예닐곱 마리의 살라만드라가 기습을 기해 왔다.
“키에에에엑!”
“키에에엑!”
“숫자는 일곱, 등급은 솔져 다섯에 나이트 둘. 지운이가 전위로, 보조는 한세정, 나머지는 본인 위치 대기 및 사주 경계.”
“넷!”
“누나! 제가 먼저 부딪칠게요!”
꼭 눈으로 봐야 하는 게 아니다.
귀로 듣고, 냄새를 맡고.
그마저도 안 된다면 느낀다.
육감(六感).
일반적인 영역을 아득히 초월한 감각으로 깔끔하게 잡아내 지시를 내리자, 간결하게 대답한 신지운과 한세정이 무기를 꼬나쥐며 뭉친다.
솔로, 더블, 트리플, 쿼드, 올.
단독 작전은 기본.
인원이 불어나든 줄어들든 상관없이 유연하고 탄력적인 플레이를 척척 이뤄 내도록 철저하게 훈련한 터라. 두 사람은 급조된 페어임에도 능숙하게 조력하며 살라만드라들을 헤쳐 나갔다.
[단거리 공간 이동]
번쩍!
가볍게 공간을 점프해 여유롭게 습격을 회피하고는, 목전에서 먹잇감이 사라져 어리둥절해진 놈들의 후면을 점하며 날카롭게 벼려진 두 자루의 검을 휘두른다.
후우우욱―
서걱!
서걱!
“탐색, 생존 다섯 마리.”
단 일격에 무참히 썰려 나가는 도마뱀들.
중간중간 기술 ‘탐색’을 활용해 빠르고 간편하게 확인사살까지 해 가며 이어 가는 교전.
그동안.
나는 맵을 응시하며 둥지 형태의 이미지가 박힌 위치와 우리의 간격이 얼마나 될는지 가늠해 봤다.
“거의 다 왔나.”
속보 위주로 이동해 온 덕분에 넉넉하게 5분이면 목적지에 도달할 걸로 예상됐다.
속력을 높이면 2분.
길어도 3분 안에는 주파 가능한 간극에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 난 전투를 마치고 제자리로 귀환한 한세정과 신지운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전하고는 오른손을 치켜들었다.
출발 사인.
그러나.
스윽―
“……!”
탁!
나는 채 1분이 지나기도 전에 주먹을 쥐며 정지 신호를 보내야 했다.
전방 길목에.
‘…개미 떼?’
최소 일천 이상의 괴물이 감지됐기 때문이었다.
그마저도 추정치일 뿐.
실제로는 훨씬 더 많을지도 몰랐고.
‘대체…….’
이 괴이한 광경에 절로 헛웃음이 나왔다.
느닷없이 수천 단위의 적이라니.
보물을 차지하고 싶다면, 저 두꺼운 성벽을 뚫고 가야 한다는 의미 같은데.
우리끼리 할 수 있을까?
“…….”
난 입술을 꾹 닫고서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며 머릿속으로 계산에 돌입했다.
6 대 1,000.
‘이벤트 : 절망의 파도’를 겪으며 하루에도 몇 번씩 2~3천여의 괴물들을 분쇄해 왔지만…….
‘그거하고는 상황이 다르지.’
당시엔 다가오는 것만 쳐 내면 되는 방어자의 입장이었는데 반해 이제는 막힌 벽을 격파해야 하는 공격자 입장이 됐으니까.
그것도.
주위가 탁 트여 여차하면 빙 둘러싸일 수도 있는 이 개방감 넘치는 환경에서 말이지.
이를 어찌하는 게 좋겠는가.
고심을 거듭하던 난 단독으로 결론지어선 안 되겠다는 판단에 일행에게 당면한 골칫거리를 설명해 주며 작게 회의를 열었다. 자칫하면 목숨이 위험해질지도 모르는지라 생각을 모아 결정해야 할 듯했다.
그 과정에서 두 가지의 주장이 나왔다.
첫째는.
“가장자리부터 천천히 제거해 나가면 어떨까 싶습니다.”
곽재우의 저속 돌파론.
어차피 가야 할 길이니 조금 느리더라도 안정적으로 사냥해 보자는 의견이었고.
둘째는.
“이건… 어떠세요?”
“……?”
“원래 목적이 현장 체크 정도였으니… 일단 땅속으로 굴을 파서 둥지? 하여간 그곳만 살펴보고 나와도 되지 않을까 해서요. 선행자가 있다면, 그때 가서 다시 계획을 짜는 식으로…….”
목표 달성을 제일 과제로 둔 신지유의 전면 회피론.
둘 다 장단점이 분명한 제의였기에 우린 제안자인 곽재우와 신지유를 제외한 네 명이서 거수로 합의점을 구했다.
그 논의의 결과.
“3 대 1. 지유의 말대로 간다.”
“네.”
“네.”
“네.”
“네.”
“네.”
신지유의 전면 회피론이 뽑혔고, 우린 즉각 지면 밑으로 통로를 개설해 나갔다.
보다 정확하게는.
“땅지기. 부탁할게.”
우우우웅!
쿵!
쿠구구구구궁!!
소녀와 대지 속성의 소환수 땅지기의 합작으로 개통되어 가는 갱도를 따라 걸었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괴물들에게 발각되지 않게끔 은밀히 땅굴을 파낼 능력자는 신지유가 유일했으니.
그렇게.
“거기서 오른쪽 두 시 방향.”
“두 시 방향.”
쿠웅―
쿠구구궁!
흙을 걷어 내고 바위를 치우며 나아가길 3분여.
슬슬 보스 룸 근처에 인접해졌다 싶을 무렵.
쿠우우웅!
쿠웅!
“……?”
어디에선가 터져 나온 강렬한 진동이 나를 휘감았다.
뭐지?
반사적으로 살라만드라의 짓인가 의심했다.
아무도 인지하지 못하게끔 일부러 30m 가까이 내려와 있다만, 커맨더급 개체라면 캐치해 낼 만도 하니.
놈들이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는 건 아닐까 걱정돼 ‘감각 증폭’으로 청력을 강화했다.
우웅―
마력이 일렁거린 순간 확 넓어지는 세계.
시각을 대신해 청각으로 받아들이는 곳곳에서 수많은 ‘목소리’가 들렸다.
“역시 대장님이시다!!”
“으아아아아아!!”
“네놈들 대가리를 빠개 줄 테니까!”
‘사람?’
그래.
사람이었다.
키에에엑거리는 괴물들의 하울링 사이사이로 족히 수백에 달하는 인간의 괴성이 내 귓바퀴를 사정없이 찌르고 있었다.
거기까지 확인한 나는 서둘러 ‘감각 증폭’을 종료하며 한세정들에게 외쳤다.
어서.
“다들 준비해!”
“네?”
“선행자가 있다……!”
위로 올라가야 한다고.
코앞에 있는 보물을 누군가 가져가려 하는 바. 늑장 부릴 때가 아니었다.
“땅지기!”
쿵!
쿠구구궁!
내 다급한 재촉에 급격히 열리는 진격로.
다만.
“저희는―”
“우선 대기!”
“네! 대, 네? 대기요?”
지상을 밟는 것은 나 혼자였다.
‘축제의 땅’은 엄연히 일종의 보너스 판.
반드시 치러야 하는 전쟁도 아닌 데다 뭣보다 안전이 확보되지 않은 전장에 한세정들을 데려갈 순 없었다.
이들의 실력이면 무슨 장애물이든 능히 파훼할 테지만.
본디.
희대의 용장도 난전 중에 날아든 눈먼 화살엔 못 당하는 법. 그러니 한세정들에게는 추이를 봐서 ‘고주파 신호기’로 연락을 주겠다 얘기하곤 대기를 명령했다.
그러고는.
“갔다 올게.”
“…조심하셔야 해요.”
“형님, 무리하지는 마세요. 언제든 부르시면 뛰쳐나가겠습니다.”
사고가 일어나지 않기를 기원하는 일행을 떼 두고 틈이 벌어진 대지 밖으로 솟구쳤다.
[가속]
탁―
쿠웅!
후우우욱!
바닥을 박찬 내 살갗을 스치는 외부 공기.
도처에서 포효와 비명, 윽박과 함성이 마구잡이로 밀려들어 왔다. 한달음에 맞이한 바깥은 실로 인산인해(人 山人 海) 그 자체였다.
발 디딜 틈 하나 없이 빼곡하게 자리해 분주하게 뛰어다니는데.
‘복장이 달라.’
표식이나 장식품이 중구난방인 걸로 보아 여러 집단이 일시적인 연합을 구축한 듯.
나로서는 나쁘지 않은 상황이었다.
외부인 침입에 매우 취약하다는 뜻이었으니까.
‘어디냐……!’
나는 그 난잡하고 어수선한 배경에 숨어 가장 강력한 기파가 느껴지는 장소로 발을 놀렸다.
초대형 둥지 속.
‘저깄다!’
쉴 새 없이 퍼붓는 공세를 견디기 위해 아르마딜로처럼 전신을 둘둘 만 10여 미터의 살라만드라를 향해.
띠링!
[축하합니다!]
[「퀸급」 개체를 발견했습니다.]
[최초의 영애는 얻지 못했으나, 위대한 업적을 세운 당신에게 특별한 보상이 주어집니다.]
[보상으로 ‘칭호 : 디텍터(7일)’가 부여도비니다.]
[〈던전 : 음습한 둥지〉에 입장하셨습니다.]
《칭호 : 디텍터》
- ‘위대한 업적’ 수준의 대상 혹은 물체를 발견해 냈을 때 부여되는 칭호입니다. 본 칭호의 소유자는 ‘던전’ 내부에서 특별한 것을 찾을 확률이 높아집니다.
- 특이 사항 : 7일 이후 삭제됩니다.
퀸급 살라만드라.
그 거대한 생물을 목도하자 허공에 온갖 메시지가 주르륵 출력됐다.
칭호니 던전이니.
허나.
나는 다른 데에 눈길을 줄 수가 없었다.
타깃을 발견한 찰나.
휘우우우웅!!
쾅!
콰아아앙!!
한세정들과 비견될 만한 기세의 몇몇이 퀸급 살라만드라의 살점을 헤집으며 상처를 입힌 데다가.
다 떠나서.
화륵―
“……?!”
공중에서 발화한 검은 불꽃.
저 고요한 불길이.
후우우우욱!
콰아아아아앙!!
“키에에에에에에엑!!”
가공할 위력을 내보이며 초거대 도마뱀의 등판을 종잇장인 양 찢어발긴 탓이었다.
일반 개체.
커맨더도 비교를 불허하는 퀸급의 방어를 저리 쉽게 깨트린다고?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장면.
그 비밀은 단순했다.
“…오리지널 기술.”
검은 불꽃의 실체가…….
나의 ‘군단을 파괴하는 본능’과 동일한 체화(體化) 등급의 ‘오리지널 기술’일 경우였다.
“…….”
설마.
나 이외에 또 다른 오리지널 기술 사용자를 대면하게 될 줄이야.
당황스럽다.
신지운같이 무당의 핏줄이라는 특이 체질을 타고나지 않는 한 당분간은 날 추격할 인물은 없을 거라 여겼거늘.
이렇기에 세상이 넓다 했던가.
‘허…….’
나지막한 경악성이 목구멍을 비집고 튀어나온다.
그러거나 말거나.
재차 칼을 쥐고 퀸급 살라만드라의 심장으로 검은 불꽃을 꽂아 넣으려던 남자가.
툭―
스으윽―
불현듯 멈춰 서서 이쪽을 돌아봤다.
아마.
오리지널 기술을 가진 자답게 은연중에 풍긴 내 기운을 잡아낸 모양이었는데.
“…음?”
“……!”
서로의 시선이 마주친 직후.
나도 녀석도 그대로 굳어 버렸다.
“악, 마……?!”
검은 불꽃의 남자.
녀석의 정체는, 어쭙잖은 영웅심으로 다짜고짜 덤볐다가 겨우 목숨만 건져 도망친 성십자가 클랜의 마스터였기 때문이었다.
“저놈이 어떻게……?”
나는 의외의 얼굴에 황망하다는 어투로 중얼거렸다.
동시에.
납득했다.
성십자가 클랜과의 마찰이 벌어졌던 그날을 회상해 보면, 일 순위로 떠오르는 건 단연 나와 엇비슷했던 놈의 실력이었으니까. 따라서 살아남기만 했더라면 저러한 무력을 갖추는 것도 영 의아한 일은 아니었다.
고로.
‘지금은 저놈을 신경 쓸 시간이 없다.’
가능할 법한 사안에 대해서는 더 이상 깊게 고민하지 않기로 마음먹고, 퀸급에게 집중했다.
여기서 내가 할 일은.
[스트랭스]
[가속]
[일기당천]
[강격]
[돌진]
우우우우우웅!!
‘한 번에―’
[오리지널 기술 : 군단을 파괴하는 본능]
탁―
콰아아아앙!!
‘잡는다!!’
주인없는 보물을 쟁취하는 것이었다.
그 의지를 드러내자.
“어딜!!”
화르르르륵!!
성십자가 클랜의 마스터가 악다구니를 쓰듯 거칠게 으르렁거리더니 검은 불꽃을 칼에 이고 퀸급에게로 미친 듯이 질주하기 시작했다.
절대로.
나에게만큼은 내주지 않으리라 선언하는 것처럼.
그 격돌의 중심에서.
후우우우우웅!
“하아!!”
“으아아아아아아!!”
콰아아아아아앙!!
[축하합니다!]
[「최초의 퀸급 개체」가 처치되었습니다.]
[‘기여도’가 50% 상승합니다.]
[〈축제의 땅〉이 정복되었습니다.]
누군가의 손에 보물이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