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화
“죽여! 죽이라고!!”
“저 빌어먹을 갑옷에 막혀 아무것도 통하질 않습니다!!”
“닥치고 부숴! 니놈들 꼴통부터 박살 내기 전에!!”
“옛!”
“…….”
김한수는 사방에서 들려오는 억울함과 황당함이 뒤섞인 고함에 입을 다물었다.
본인이 보기에도 이 전투는 어처구니가 없었으니까.
공격이 통하지 않는 적이라니.
내구에 특화된 적들은 셀 수 없이 많이 만나 봤다. 암석을 먹고 자라 딱딱한 돌 피부를 갖게 됐다는 고릴라와 칼날 깃털로 무장한 괴조, 고무로 만들어진 듯 엄청난 탄력으로 물리 타격을 튕겨 내던 문어에 뼈로 된 백색 골갑을 뒤집어쓴 코뿔소까지.
한결같이 단단하고 견고한 거죽을 자랑했지만.
20여 년간의 검도로 다져진 자신이 손수 키워 낸 충령의 칼들은 대상을 가리지 않고 당당하게 갈라 버렸다.
헌데.
그 예리했던 백칠십여 자루의 검이 모조리 막힐 줄이야.
“용갑(龍甲)……. 용갑이라.”
당혹감에 물든 눈빛으로 정면을 바라보던 김한수는 슬그머니 킹덤이나 해운대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신(新)한국 내에서도 강함을 논할 때면 언제나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부대도 쩔쩔매는 형편인데, 과연 다른 곳은 어떠한지 궁금했다.
특히.
‘성십자가 클랜…….’
전투력으로는 국내 최강을 자부한다는 저들은 현 사태를 어떤 시각으로 보고 있으려나.
최근 순위 발표식에서 1위 자리를 번번이 빼앗기며 기세가 다소 주춤거렸어도.
김한수는 똑똑히 기억했다.
신(新)한국 왕조 선언 직전, 전하와 밀담을 나누고는 공표에 힘을 실어 주겠다며 개떼처럼 밀려오던 파도를 압도적인 파워로 단숨에 짓밟던 과거를.
악인을 멸하고 범죄를 처단하리라는 기치 아래 세워진 단체라기에, 히어로 영화에 심취한 머저리인 줄로만 알았던 그네들의 실체를.
하여 호기심이 일었다.
우리가 고전하는 문제를 저들도 난감해할지. 더불어 괜찮은 방도가 있다면 벤치마킹해 올 심산으로 슬쩍 구경해 보니.
“딜이 안 박혀!”
“집중! 화력을 분산시키지 말고 한곳에 집중해 봐!”
“예! 전원 내가 지정하는 방향으로 일제 사격한다!!”
“옛!!”
‘대처가 빠르군.’
역시는 역시인가.
적잖이 놀랐을 텐데도 잠깐의 머뭇거림만으로 ‘일점 포화’라는 방책을 간구해 굉장히 신속하게 대응해 나가는 성십자가 클랜의 움직임을 볼 수 있었다.
더군다나.
지휘부만 똑똑한 게 아니다.
상부에서 공략법이 하달된 즉시 병사들을 컨트롤하는 하급 지휘관들과, 그 제어를 일말의 의심 없이 수행하는 병사들.
상하가 골고루 제 역할을 해내는 중이었다.
그 밖에.
킹덤과 해운대, 태릉의 반응도 나쁘진 않았다.
저마다 한 지역의 패권을 노리는 자들.
약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전체적으로 유사한 형식의 전술을 구사하며 저 무지막지한 아머를 파괴하는 데 열을 올렸고.
“전하께서 기다리신다. 결코 빼앗기지 마라!”
“충!”
그것은 어느새 집단과 집단 간의 자존심 대결로 변질했다.
외부 인사 따위에게 밀리지 않겠다는 김한수의 단호한 외침이 신호탄이 되어.
“이 자식들아! 우리가 누구냐! 고래도 잡아 올리는 뱃사람 아니냐!! 물질도 안 해 본 서울 촌놈들한테 뺏겼다가는 내가 네놈들 대가리를 빠개 불라니까 이 악물고 뛰어들어!!”
“아우으으으으!!”
“아우으으!”
거친 성정에 걸맞게 패배를 싫어하는 해운대도.
“쏟아부어! 여까지 와서 빈털터리로 복귀할 거 아니면 죽기 살기로 달려들라고!! 메달이 코앞이다, 새끼들아!!”
“1초만 땡겨 보자아아아!!”
“가자아아아아아!!”
도전 의식이 강해 애당초 물러선다는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았던 태릉도.
“오른쪽 다리부터 차근차근히 부순다.”
“오른쪽 다리다! 탱커들이 어그로 끌 동안 딜러들 마력 아끼지 말고 퍼부어!”
신중하되 칼을 뽑아야 할 때에는 뽑을 줄 아는 킹덤도.
어느 한 곳 빠짐없이 전력을 다해 문을 두들기며 꺾일 만도 했던 메인 스테이지의 열기가 금세 불타올랐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 전장에 드라마틱한 변화가 발생했다 말하기는 무리였다.
“키에에에에엑!!”
쾅!
콰아앙!
콰과과광―!!
격분한 생존자들의 공세에도 퀸급 살라만드라의 용갑(龍甲)은 뚫릴 기미조차 없었고, 외려 위기 의식을 느낀 놈이 더더욱 몸을 웅크리며 육체 방어력을 극대화시켰다.
거기다가.
“키에에에에엑!!”
“키에에엑!”
“키에에에엑!!”
“도, 도마뱀들이 몰려온다!”
“숫자! 소리로 파악한 숫자는 적어도 일천 개체 이상! 시야 불명확으로 정확한 규모 확인 불가!”
여왕의 피습 소식이 ‘축제의 땅’ 전역으로 전달되었는가.
여기저기서 다양한 등급이 살라만드라들이 야음을 틈타 턱밑까지 접근해 온 시점이었다.
중앙에 퀸급을 둔 채로 한 꺼풀은 인간들이, 그다음 꺼풀은 솔져급에서 커맨더급 이하의 도마뱀 군단이 채운 꼴이랄까.
그야말로 진퇴양난(進退兩難)의 형국.
당장에야 퀸급이 방어 태세만 고수하고 있어 완전히 궁지에 몰렸다고 하기는 애매했지만.
“7조! 8조는 반전해서 후방을 맡는다!”
“충!”
“우리도 빼! 흰수염고래호! 범고래호! 바다수달호는 뒤로 빠져서 도마뱀 새끼들을 막아!”
“우리는…….”
방심은 금물이거니와 뒤쪽이 무너지면 앞쪽이 붕괴하는 건 순리였기에 충령 부대를 비롯한 각 길드들은 병력을 일부라도 후방으로 돌릴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인력이 분산된 만큼 아마 브레이킹에 투입되는 공격력의 총량도 감소한 탓에, 퀸급의 목을 노리기가 요원해지고 있단 점이었다.
“…으음.”
그로 인해 형세가 지지부진해지자 김한수의 눈동자가 다시금 자연스레 주변을 훑었다.
이 답보 상태를 해결하려면 직접 나서야 할 듯한데.
허면 체력적으로나 마력적으로나 결함이 생겨 정작 기여도 싸움이 최고조에 달할 라스트 결전에선 뒤처질 테고, 그렇다고 눈치만 살피며 대기하자니 앞뒤로 끼인 부하들의 생사에 악영향이 가리니.
“이지형!”
김한수는 결국 답을 내렸다.
“옛!”
“가서 각 길드 지휘관들을 불러와라.”
“지금, 말씀이십니까?”
“그래 지금! 당장!”
“아, 알겠습니다!”
짧게나마 회의를 개최하기로.
안건은 간단하다.
“시기가 시기니 용건만 얘기하지요. 이대로 시간이 끌리면 여러모로 안 좋은 건 모두가 똑같을 터. 그러니 지금부터는 가진 패 아끼지 말고 다 털어 넣읍시다.”
“가진 패를 다 털자?”
“이러다 후발 주자들이 오기라도 하면 죽 쒀서 개 주는 게 될 거요. 그게 좋다면 우린 그냥 빠지리다. 갖은 정성을 들여 키운 내 부하들을 이런 데서 죽이고 싶진 않으니.”
초강수를 뒀다.
협력하지 않으면 철수하리라.
멍청한 이는 경쟁자가 빠지면 좋은 거 아니냐 코웃음 치겠지만, 실상은 전혀 다르다.
충령 부대가 갑자기 전선을 이탈해 버리면 부지불식간에 텅 빈 공간을 찌르고 파고드는 살라만드라들을 누가 막을 것인가?
최악의 타이밍을 노려 시도한 탈주를 막겠답시고 군력을 쪼개다 보면 다섯 개 집단이 합심해 유지되던 균형은 단박에 어그러질 거고, 적잖은 사상자가 땅바닥을 구르게 될 거다.
만일.
안정적으로 보강해도 개의치 않는다. 그때는 너 죽고 나 죽자 식의 고의 트롤링으로 판을 망가뜨릴 거니까.
“해 왔던 대로 협동해서 기여도를 먹든지, 다 실패할 각오로 진흙탕 싸움을 하든지……. 거 협박 한번 더럽게 무섭네.”
“어쩌시겠소.”
김한수는 미간을 찡그리는 대표들의 면면을 번갈아 보며 최후통첩을 날렸다.
이에.
해운대의 송무식이나 태릉의 서강철은 대놓고 싫은 티를 냈지만, 달리 뾰족한 수는 없었다.
“좋아, 머리 아픈 소리는 집어치우고, 난 할 테니 당신들도 결정해. 할지 말지.”
“…나도 좋습니다.”
킹덤, 해운대, 태릉, 성십자가.
네 군데 다 손을 맞잡았고, 묘한 기류 속에서 최정예들이 선발되었다.
한 턴.
후발 주자들을 고려해 딱 한 턴에 마무리 짓기로 결의를 다지고 각자가 맡은 방향에서 퀸급을 찌르고 들어갔다.
스르릉―
[검의 주인]
우우우우웅!!
“가자!”
“충!”
김한수는 굳게 쥔 칼을 옆구리에 가져다 대며 전속력으로 고르고 고른 30인과 함께 한껏 웅크린 퀸급 살라만드라의 옆구리를 노렸다.
우우우우웅!!
검신에 압축된 마력이 막대한 진동을 동반하며 허리춤에서 대각선으로 목표 지점을 가른다.
발도에 이은 올려 베기.
김한수가 항시 즐겨 쓰는 검술로.
무려.
[재해검―3식]
[용오름 베기]
“하아아앗!!”
마스터 레벨을 목전에 둔 원본(原本)급 기술의 발현이었다.
후우우우욱―!!
콰아앙!!
푸화하하하학!!
“키에에에에엑!!”
‘먹혔다!’
벼락처럼 내지른 검격은 처음으로 영원불멸할 것 같던 용갑을 쩍 하고 결딴냈다.
꽁꽁 묵혀 두었던 핏물이 퍽 하고 솟구치는 게 보였다.
치명상은 아니더라도 첫 유효타에 싱긋 미소 지은 김한수가 재빨리 칼을 회수에 이격을 준비하며 옆을 돌아봤다.
‘놈들은……!’
기약한 대로 비기를 꺼냈으니 저들도 비장의 한 수를 선보일 차례.
눈에 익혀 둬야 한다.
오늘의 정보가 내일의 무기로 씨일지도 모르는 세상이니.
내심.
‘따라와 봐라!’
기대감도 있었다.
아직 종결되지 않은 자존심 겨루기.
내가 해낸 걸, 너희도 가능하겠느냐는 눈초리가 네 명의 대표를 매섭게 관찰했다.
양손에 손도끼를 나눠 쥐고 반대편 갈빗대를 과녁 삼은 해운대의 송무식, 좌측에서 앞다리 부근을 물어뜯으려는 태릉 서강철의 어린아이 머리통만 한 건틀릿.
대가리와 목덜미 사이의 혈관을 찍어 누르는 킹덤 홍주석의 장검, 꼬리와 엉덩이 골반 부위에 연달아 일곱 발의 화살을 박아 넣는 성십자가의 3인자 유하늘.
그리고.
하늘 높게 도약해 한 줄기 유성이 되어 척추로 떨어지는 ‘검은 불꽃’을.
“···음? 왜 네 개가 아니라 다섯 개가…….”
* * *
[〈축제의 땅 : 심층부〉에 발을 들였습니다.]
[‘?’의 시선이 당신을 주시합니다.]
[〈축제의 땅 : 심층부〉에 존재하는 모든 「살라만드라」들이 당신을 인식했습니다.]
[이 집요한 공격은 어딘가에 위치한 ‘?’를 찾아 죽이는 그날까지 지속됩니다.]
“심층부라.”
“안전지대부터 들를까요……?”
신지운이 포착했던 알을 박살 내며 맞이한 ‘특수 퀘스트 : 살라만드라의 분노’를 진행해 대폭 쌓은 기여도로 맵을 열어 당도한 ‘축제의 땅’의 심층부.
“바로 가자. 남부로.”
함정과 괴물들이 득실거리는 지하 통로를 지나 끝자락에 다다른 우린 별빛 한 점 보이지 않는 깜깜한 일대를 도깨비불로 훤히 밝히며 남쪽으로 직진 경로를 밟았다.
초행길임에도 눈 깜짝하지 않고 곧바로 코스를 설정할 수 있었던 연유는 명료했다.
[현재 당신의 ‘기여도’는 32.74%입니다.]
[‘기여도’가 30%를 돌파했습니다.]
[〈축제의 땅 : 심층부〉의 지도를 획득했습니다.]
[맵에 추가된 지도가 적용됩니다.]
퀘스트를 클리어하며 축적된 기여도로 내비게이션이 지급됐기 때문이었다.
이것도 운이라면 운이려나.
아무튼.
안내자도 제공됐겠다. 딴 길 갈 거 없이 곧장 ‘?’라는 녀석을 찾아 체크부터 할 작정이었다.
누가 사냥 중인 건 아닌지, 우리가 잡을 만한 놈인지.
휴식은 그 뒤에 해도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