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화
‘축제의 땅’ 심층부.
사람들은 이곳을 일명 ‘메인 스테이지’라고 불렀다.
광대한 초원을 영역으로 둔 비늘 가시 도마뱀 ‘살라만드라’들을 상대로 수백 차례의 승리를 거둔 자에게만 입장이 허용되는 무대이기 때문이었다.
이 메인 스테이지로 오는 ‘길’을 여는 데만도 요구되는 기여도가 최소 10%.
기껏해야 0.01%에서 많아 봐야 0.03%를 주는 솔져급 살라만드라로 치환하면 아무리 적게 계산해도 334마리 이상을 죽여야 한다는 뜻이다.
그게 끝인가?
아니다.
이는 전초전에 불과할지니.
[당신의 ‘기여도’가 10%에 도달했습니다.]
[〈축제의 땅〉 심층부로 향하는 ‘길’이 개방됩니다.]
[‘맵’ 기능이 활성화됩니다.]
라는 메시지를 받고 난 후.
허공에 나타난 홀로그램 화면을 통해 오픈된 ‘지하 통로’를 통과하는 데에도 목숨을 걸어야 한다.
상하좌우(上下左右).
온갖 곳에서 발동되는 함정을 피하고, 각지에 숨어 있는 ‘미궁의 병사’들을 처치해야 출구에 다다를 수 있으니까.
그래서 심처에 도착한 자들은 모두 제 실력에 자부심을 가졌다. 각종 고비와 위기를 견디고 돌파하는 과정이 하나의 테스트로 비쳐졌기에 자신감에 취할 만도 했다.
허나.
곧 알게 되었다.
스스로.
‘지옥(地獄)’에 발을 들였다는 걸.
그래.
여긴 연옥이었다.
[〈축제의 땅 : 심층부〉에 발을 들였습니다.]
[‘?’의 시선이 당신을 주시합니다.]
[〈축제의 땅 : 심층부〉에 존재하는 모든 「살라만드라」들이 당신을 인식했습니다.]
[이 집요한 공격은 어딘가에 위치한 ‘?’를 찾아 죽이는 그날까지 지속됩니다.]
다짜고짜 울려 퍼진 공지를 기점으로 전방위에서 파고드는 도마뱀 군단.
그리고 이어지는.
[‘?’의 「검은 태양」이 발현되었습니다.]
[‘?’의 마력이 닿는 공간의 빛이 사그라집니다.]
어둠.
‘고유 능력’, ‘기술’, ‘아이템’의 효과를 제외한 모든 빛을 차단하는 암흑은 암순응이 채 되기도 전에 수많은 인간의 생명을 앗아 갔다.
겨우 도마뱀 주제에 무슨 수로 이 거대한 그림자를 불러일으켰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 순간 사람들이 고를 답안은 한 가지뿐이었다.
탈출.
메시지는 얘기했다.
안전 구역이 있다고.
심층부라고 해서 다를 바 없을 테니 일단은 상황을 돌아볼 피난처를 찾아 나섰다.
다행히 그 판단은 옳았다.
의외로 ‘최후의 성채’라 명명한 세이프티 존은 가까이에 있었고, 수만 명이 동시에 기거해도 부족하지 않을 정도로 넓었다.
덕분에 간신히 숨은 돌렸지만.
“젠장!”
쾅!
신(新)한국 소속 전투 부대 ‘충령’의 대장 김한수는 책상이 부서져라 내리치며 울분을 토했다.
어떤 보물이 감춰져 있는가.
무엇이 됐든 차지해서 가져오라는 국왕 이회건의 지시를 이행하고자 ‘축제의 땅’을 밟았으나, 파죽지세로 메인 스테이지까지 도달한 것치고는 전황이 너무나도 안 좋았다.
도주하는 와중에만 부하 여덟이 죽었고, 다섯은 중상으로 사경을 헤매는 중.
그 외에 열서넛도 치료를 요하는 수준의 경상을 입어 200인으로 구성된 부대의 전력 1할이 한순간에 바스러졌으니.
“그놈들을 어떻게 키웠는데… 제기랄!”
미쳐 버릴 것만 같았다.
종말 이전부터 이회건을 따랐던 대통령 경호 실장으로서 충성심을 인정받았고, 그에 따른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애지중지 육성해 낸 병사들이거늘.
게다가.
더욱 심각한 건.
명예고 뭐고 죄다 버리며 도망친 이 성채에서도 마냥 안심하기는 힘들다는 점이었다.
앞으로 여덟 시간 뒤에.
[‘안전 구역’ 폐쇄까지 남은 시간 : 478분 22초]
이 대피소가 파괴되도록 설계돼 있었으니까.
타이머가 0이 되면 의사와 상관없이 강제로 저 검은 세계에 떨궈진다는 소리였다.
“미쳐 버리겠군.”
탁―
탁―
김한수는 버릇처럼 검집을 손가락으로 툭툭 건드리며 눈살을 찌푸렸다.
막막했다.
이화건의 명령을 완수하기 위해선 ‘?’인지 뭔지를 잡아 죽여야 할진대.
그랬다간 병사들이 싸그리 몰살당할 판이니.
“후, 부대장.”
“부르셨습니까!”
고심을 거듭하던 김한수는 답답한 심정을 한숨으로 털어 내며 부대장 이지형을 불러 한 가지 임무를 하달했다.
그건.
“전부… 말이십니까?”
“그래. 어차피 다 비슷한 처지라 물꼬만 터 주면 될 거다.”
“알겠습니다.”
자신들과 마찬가지로 성채로 피신한 부대들의 지휘관들을 한자리로 불러 모으는 것이었다.
현재 성내에 주둔 중인 집단은 다섯.
정부 소속인 ‘충령 부대’와 정부만큼이나 서울에서 이름값이 높다는 길드 ‘킹덤’, 부산의 대표를 자처하는 ‘해운대’ 연합과 소수의 군인 및 국가 대표 운동선수들이 주축이 된 ‘태릉’.
마지막으로.
단일 무력으로는 가장 뛰어나다 평가받는 ‘성십자가’ 클랜.
‘축제의 땅’이 열리자마자 앞다투어 진입해 엇비슷한 속도로 메인 스테이지까지 뚫고 온 최강자들이었다.
김한수가 이들을 한데 모은 까닭은 단순했다.
“다들 알다시피, 이대로 있어 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소. 그러니 제안하겠소이다.”
“제안?”
“한 시간, 부상자를 치료하고 정비를 마친 후 합심해서 여길 공략합시다.”
공조.
혼자서는 불가, 둘이나 셋으로 꾸리면 나머지가 견제에 나설 게 뻔하니. ‘?’의 목을 두고 경쟁하되 협력하자는 게 김한수의 생각이었다.
만약 이 의견을 거절한다면.
‘목숨을 걸고서라도 우리끼리 해결해야겠지…….’
전원이 뼈를 묻는 한이 있더라도.
감히.
왕명을 거역해서는 안 될 터이니.
아무튼.
만찬 대신 물 한 잔을 얹어 두고 이야기를 마치자.
“뭐, 좋소. 나는 찬성이요.”
3분여의 침묵을 깨고 오른쪽에 앉아 있던 해운대의 대표 송무식이 시원스레 찬성을 표했다.
조사한 바에 따르면.
뱃사람 출신이자 우락부락한 면상에 딱 어울리는 다혈질적인 남자로, 지금의 갑갑한 실정을 타파할 수만 있다면 뭐든 좋은 모양이었다.
속내를 들여다볼 능력이 없는 탓에 무조건 신뢰하긴 어렵겠지만.
“사나이가 자존심이 있지. 물음표 새끼 상판대기도 못 보고 돌아갈 바엔 똥 밭에 대가리 처박고 뒈지는 게 낫지.”
“고맙소.”
어쨌든 송무식이 나서 준 덕택에 급조한 회의장의 내의 분위기는 꽤나 호의적으로 변했다.
이 기회에 속수무책으로 죽어 나간 동료 혹은 부하의 복수를 소망하며 결심한 건지.
고생해서 쌓은 기여도가 절반으로 깎이는 걸 감내하며 포기하고 물러서는 것보다야, 도전이라도 해 보자는 심리가 저들의 마음을 자극했는진 모르겠으나.
“나도 좋수다. 근 손실 오니까 바로 갑시다.”
전 국가 대표 보디빌더인 태릉의 연합장인 운동광 서강철도.
“모두 동의하신다면 저도 좋습니다.”
날카로운 눈매가 인상적인 킹덤의 주인 홍주석도.
“우리는 어떻게 할까.”
“하자.”
“알겠어. 부마스터인 네가 하자면 따라야지. 우리도 참가하겠습니다.”
마스터는 어디 갔는지 부마스터 황선아가 통솔하고 있는 성십자가 클랜도 전원 동참을 약속했으니.
그 뒤로는 일사천리였다.
패잔병처럼 굴던 병사들을 소집하고, 전열을 가다듬으며 세워진 반격의 깃발.
“방식은 오각 대형. 이리저리 섞어 봐야 군기만 흐트러질 테니 맡은 구역을 방어하며 전진하는 거요. 단, 주위를 밝혀 줄… 편의상 섬광 부대라고 하겠소. 이 섬광 부대는 각 집단에서 30명씩 차출해 150명이 30명씩 10분 간격으로 돌아가며 빛을 쏘아 내는 형식으로 합시다.”
주도적으로 협력을 건의했던 김한수를 중심으로 계획을 짜고, 얘기한 한 시간이 지나자 거동이 불가한 중상자를 배제한 천여 명의 군세가 앞다투어 성 밖으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진격로는 남쪽.
‘?’의 위치를 특정하지 못한 터라, 우선은 메인 스테이지 입구에서 쭉 직진해 보자는 게 수뇌부의 회의 결과였다.
“출발!!”
“출발!!”
“가자!!”
“으아아아아!!”
화르르륵!
화륵!
퍼어엉!
섬광 부대의 화염을 손전등 삼아 나아가는 행진.
여전히 어둡고, 여전히 사나워도.
각 그룹에게 주어진 전방만 해결하면 되는 환경이라, 전과 비교하면 훨씬 수월해진 난이도였다.
‘좋아. 이대로만 가면 된다.’
김한수는 점차 빨리지는 행군 속도를 보며 싱긋 웃었다.
서로 간의 간격이 멀어지지 않게끔 조율만 잘해 주면 메인 스테이지 클리어도 해낼 수 있으리란 예감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김한수 대장님!”
“무슨 일이야.”
“킹덤 쪽에서 지도를 발견했다고 합니다!”
“지도?”
“예, 그렇습니다! 기여도 30%에 달성 시에 물음표의 위치가 기록된 지도를 획득한답니다!”
“아!”
전세도 더할 나위 없이 훌륭했다.
비록.
주도권은 빼앗겼지만.
‘?’의 은신처를 알아낼 방도가 생기며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던 안갯속이 점점 밝아지고 있었다.
그렇게 계속된 전진.
“저기다!!”
성채를 벗어나 30여 분간의 적극적인 진격 끝에, 연합군은 마침내 수풀로 꽁꽁 감싸져 있는 초대형 둥지 안쪽에서 온통 비밀투성이였던 ‘?’와 마주하게 되었다.
몸길이만 10m에 달하는 초거대 도마뱀.
“키에에에에에에에에엑!!”
후우우우웅!!
띠링!
[축하합니다!]
[최초로 「퀸급」 개체를 발견했습니다.]
[보상으로 ‘칭호 : 디텍터’를 습득했습니다.]
[〈던전 : 음습한 둥지〉에 입장하셨습니다.]
포효만으로 폭풍을 일으키는 ‘퀸급’ 개체를.
‘축제의 땅’.
이곳은 지구에도 풀리지 않은 퀸급 개체를 미리 경험해 보는 유일무이한 체험 존이었다.
모두가.
“퀸급! 퀸급입니다!”
“호들갑 떨지 마라.”
“예?”
“대충은 짐작하고 있었으니까.”
예상한 대로.
일부는 전혀 생각지 못한 만남이라 당황한 모양새였지만, 사실 머리 좀 굴릴 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예측 가능한 부분이었다.
커맨더급이 등장한 마당에.
그보다 대단한 걸 준비하려면 상위 단계밖에 더 있을까. 하기에 연합군 수뇌부는 퇴각이나 방진을 외치기보다는.
“공격해!!”
“우리가 잡는 거다!!”
“빼앗겨선 안 된다!!”
“키에에에에엑!!”
쿠우웅!!
쿠구구구구구궁!!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퀸급 살라만드라를 향해 창칼을 뽑아 들었다.
최초 발견자라고 했다.
바꿔 말하면.
최초로 퀸급을 사냥하는 업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뜻. 절대 물러나선 안 되는 싸움이었다.
적은 하나, 이쪽은 집단별로 적어도 1백 명 이상.
퀸이든 킹이든.
이만한 병력이 두들기면 승리를 거머쥐는 건 일도 아니리라!
“…라고 생각했는데.”
5분.
단 5분 만에 김한수의 입가에서 미소가 싹 사라졌다.
“키에에에에엑!!”
[‘드래곤 스케일’이 발동 중입니다.]
쿠웅!!
촤좌좌좌좌좌좍!!
[사본(寫本) 등급 기술의 위력을 100% 무효화시킵니다.]
[원본(原本) 등급 기술의 위력을 80% 무효화시킵니다.]
놈의 입가에서 고막이 찢어질 듯한 하울링이 터져 나온 순간 전신을 둘러싼 비늘 가시가 춤을 추며 빚어낸, 현존하는 최강의 갑주 앞에 모두가 무력해졌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