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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메라의 기억법-149화 (149/232)

149화

웬만한 차 한 대 크기를 자랑하는 살라만드라 수백 마리.

“키에에에엑!!”

“키에에엑!”

대지를 뒤덮은 숫자만큼이나 등급도 다양한 듯.

다 똑같아 보여도 군데군데 외피에 비늘이 쫙 깔린 나이트급 개체도 있었고, 중앙 부분에는 비늘 위로 4~50cm에 육박하는 가시 수십 개가 돋아난 커맨더급 개체도 존재했다.

가히 살라만드라로 이루어진 군대였다.

평탄하게 활동하던 우리가 저런 대규모 부대와 부딪치게 된 건.

대략 5분 전쯤.

풀숲 어귀에서 발견한 ‘사람’ 때문이었다.

* * *

“저, 저기로 가 볼까요?”

“…그러자.”

짧지만 강렬했던 대화의 여파로 어색해진 분위기 속.

무슨 일이라도 있었느냐는 조이령의 물음을 슬그머니 흘린 한세정의 선두로 개시된 사냥.

30여 분의 노력으로 두 장의 퇴장권을 완성하고서 잠깐 쉬다 재차 탐색에 나서려는데.

“…어?”

막 걸음을 옮기려던 차에 우측 경계를 담당하던 느닷없이 멈춰 서더니 어딘가를 쭉 가리켰다.

매일같이 지속된 훈련으로 굳은살이 잔뜩 박혀 투박함이 묻어 나오는 손가락이 향한 끝자락에는.

“…나무? 나무는 왜?”

“나무 위쪽에, 사람이 있는데요…?”

“응? 아, 진짜네요?”

살아 있는지 죽었는지 모를 사람이 10여 미터가량 되는 아름드리나무 중턱에 빨랫감인 양 축 늘어진 채로 걸려 있었다.

이를 처음으로 포착한 신지운이 나를 돌아본다.

어찌할 거냐는 무언의 질문.

“…가 보자.”

따로 고민할 것도 없었다.

시신은 아주 좋은 루팅 재료다. 사망한 지 오래되어 부패한 시체는 시독(屍毒)을 뿌려 대는 탓에 쓸모가 없지만.

그게 아니라면 장비나 포션.

혹은 하다못해 ‘퇴장권 파편’을 건질 찬스였다.

나는 다른 것보다 파편이 있기를 바랐다. 저 지경이 되어서도 귀환하지 않은 거 보면 ‘퇴장권’은 없는 듯하니, 한세정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파편이라도 왕창 갖고 있기를 기원하며 접근하니.

“아, 저기 시체가 또 있어요.”

“여기도 있네.”

“저 바깥쪽에도 있습니다.”

나무 근처 여기저기에도 몇 구의 사체가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는 중이었다.

도마뱀들과 싸우다 쓰러졌는지.

박살 나고 찢겨 쓰레기가 된 장비와 약간의 살점을 제외하면 머리고 몸통이고 온전한 데가 거의 없는 상태.

절로 인상이 찡그려지는 광경에 시선을 거두며 신지유에게 드라이어드를 움직여 달라 부탁했다.

“드라이어드. 저 사람을 내려 줘.”

우우우웅!

촤르르륵!

촤르륵!

감미로운 음성에 호응한 정령이 나뭇가지들을 생물처럼 제어하며 밧줄로 만들더니, 30대 중반의 남성을 지상으로 묶고 지상으로 이송해 온다.

툭―

하고 땅바닥에 닿은 남자의 코로 손가락을 가져다 대는 곽재우.

“…죽었습니다.”

호흡을 체크하던 그는 이내 담담한 목소리로 사망을 선언했다.

슬쩍 훑어보니 옆구리가 움푹 함몰된 걸로 보아.

아득바득 살아 보려고 나무를 탔으나 꼬리에 맞은 충격으로 갈비뼈나 척추가 부러지며 폐나 심장 등 장기를 찔려 죽음에 이른 듯했다.

‘쯧.’

스윽―

스윽―

“아, 파편이 있습니다. 스물, 스물하나, 스물둘, 스물두 장입니다.”

안타까운 최후에 속으로 혀를 차는 사이.

손수 품을 뒤진 곽재우가 허리춤에 달린 주머니에서 ‘퇴장권 파편’을 스물두 장이나 건져 냈다.

그 옆에는 물약도 두 병이나 있었는데.

《하급 해독 물약》

《하급 동상 회복 물약》

이런 상비약을 두고 왜 그냥 죽었나 했더니, 둘 다 상처 회복과는 무관한 종류였다.

그쪽 계통은 이미 다 써 버린 건가.

뭐.

우리로서는 해독이든 동상류든 마다할 이유가 없는지라 가방에 챙겨 넣은 뒤.

“불태워 줘.”

“네.”

신지유에게 말해 시신들을 화장시켰다.

못 봤다면 몰라도.

그래도 동족이었으니 저리 비참한 꼴로 놔둘 수는 없지. 불태우는 게 딱히 어려운 일도 아니고.

해서 싹 장사 지내 주고는 북쪽으로 진로를 정해 발을 내디뎠다.

푹 찍힌 족적, 질질 끌린 꼬리 자국, 모래에 섞인 핏방울.

사람들을 해쳤던 살라만드라들의 흔적이 선명하게 새겨진 방향이었다. 이대로 북상하면 놈들과 대면하게 될 테니, 굳이 딴 데로 빠질 필요가 없는 바.

하여 열심히 추적해 나가니.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던 듯 금세 주둥이가 피와 살점이 진득하게 묻어 있는 한 무리의 도마뱀들과 당면하게 되었다.

“그놈들이다.”

“제가 유인해 올게요.”

“서른 마리쯤 되고, 나이트급도 다섯은 섞여 있어. 미끼를 물면 지유는 중간을 갈라 줘. 이령이는…….”

원하던 대상을 찾은 즉시 플랜을 짜며 교전에 돌입하는 한세정들.

스스로 미끼를 자처한 신지운이 칼을 뽑아 들고 달려 나가는 타이밍에 맞춰 다섯 남녀가 각자의 위치로 퍼져 나간다.

전투는 일방적이었다.

무슨 연유에서인지 살라만드라들의 무력이 현실의 괴물들에 비해 최소 네다섯 배 이상 강하다지만.

한세정들의 역량도 결코 모자라지 않다.

6일 차 랭킹 보상으로 얻은 영약에 ‘이벤트 : 절망의 파도’ 완료 보상으로 ‘신체 능력치 지정 상승권’과 ‘기술 등급 성장권’을 받아 사용하고 온 시점이었다.

그 덕에 2단계 내성으로 막혀 있던 250 선의 스탯을 시원하게 뚫은지라.

“지금!”

“얘들아!”

후우우웅!

콰아아아앙!!

도마뱀들의 능력이 어떠하든 불도저처럼 밀고 지나갔다.

날카로운 이빨과 강력한 턱을 가진 살라만드라들은 특유의 물어뜯기를 시전하며 대응하려 했으나.

태우고, 얼리고, 지지고, 터트리고, 중독시키고…….

마력으로 무장한 한세정들의 압도적인 괴력에 속절없이 나가떨어졌다.

[폭발하는 뱀]

“끝!”

쐐에에에엑―!

콰앙!

문제가 발생한 건.

“후아, 재우 씨, 여기.”

“감사합니다.”

“이제 몇 장 남았어?”

“방금 스물두 장을 얻어서 이제… 열세 장만 더 있으면 됩니다.”

“다 모았네.”

“형! 여기 한 장 더― 응?!”

“음? 지운아, 왜 그래?”

싸움이 마무리된 다음이었다.

수거한 ‘퇴장권 파편’을 곽재우에게 전해 주러 가던 신지운이, 조금 전처럼 뭔가를 감지해 낸 것.

차이가 있다면.

일전에는 순수하게 시야로 찾아냈다는 거고, 현재는 원본(原本) 등급으로 승격한 기술 ‘탐색’으로 잡아냈다는 점이었다.

“저기에…….”

혹시나 놓친 적이 있을까 싶어 보통 전투 전후로 ‘탐색’을 돌리게 해 두는데, 그걸로 뭔가를 짚어 낸 듯 전장 북동부로 후다닥 뛰어가는 신지운.

소년의 발길을 따라 쫓아간 목적지엔.

“…알?”

“알, 이네요?”

“저게 다 몇 개야……?”

족히 백여 개는 훌쩍 넘어가는 새하얀 ‘알’들이 한가득 깔려 있었다.

당연하게도.

새끼 살라만드라들을 품은 알들로, 여기가 바로 놈들의 부화장인 것 같았다.

‘알을 깨도 기여도를 주는 건가.’

나는 광활한 해처리에 주먹을 쥐었다.

제대로 부화하지 않은 생명체를 죽여도 기여도와 파편을 획득할 수 있을는지 궁금해진 터라.

“깨 보시게요?”

“시험 삼아 두어 개만 깨 보려고.”

확인해 보고자 가볍게 일격을 내질렀다.

[마력 변형술 : 에너지 건틀릿]

피부 바깥에 두른 마력으로 내려친 전방.

후욱―

쿠웅!

짤막한 폭발음이 인 찰나.

[축하합니다!]

[솔져급 「살라만드라」를 처치했습니다.]

[보상으로 ‘퇴장권 파편’을 습득했습니다.]

[‘기여도’가 0.01% 상승합니다.]

[‘퇴장권 파편’ 습득 영향으로 〈축제의 땅 전용 퀘스트 : 복원〉이 부여되었습니다.]

기대 어린 눈빛으로 서 있던 내 앞에 몇 줄의 메시지가 연거푸 출력됐다.

“…전부.”

성체든 알이든 판정은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의미로 점철된 문장이었다.

이에.

나는 곧장 명령했다.

“부숴.”

“네!”

“네!”

“네!”

“네!”

“네!”

싸그리 파괴해 버리라고.

아마.

누구라도 우리와 같은 선택을 취했을 거다.

잘 차려진 밥상이 눈앞에 세팅돼 있는데, 가만히 놔둘 리가 없지 않은가.

물론.

후우우욱―

콰직!

[축하합니다!]

[열 개체 이상의 ‘유체’가 사망했습니다.]

[당신의 ‘기여도’가 일정 수치에 도달했습니다.]

[〈축제의 땅〉에 설정된 규칙 중 하나가 무작위로 공개됩니다.]

[…완료!]

[당신에게 공개된 규칙은 이것입니다.]

[살라만드라들은 새끼를 무척 아껴, 그 피가 닿은 존재를 절대로 살려 두지 않는다.

그 결정에 대한 책임을 질 각오가 돼 있어야겠지만 말이다.]

‘……?!’

띠링!

[축하합니다!]

[〈특수 퀘스트 : 살라만드라의 분노〉가 발동됩니다.]

《특수 퀘스트 : 살라만드라의 분노》

- 행성 ‘라세트라(Lacerta)’의 지배종 「살라만드라」는 유독 동족애가 강한 개체입니다. 보다 정확하게는 새끼를 보호하는 데 광적인 면모를 가진 종족, 때문에 유체 혹은 알을 잘못 건드렸다가는 화를 당하기 일쑤입니다.

하여, 때때로 자신이 전사임을 증명하고자 하는 이들은 일부러 저들을 자극해 시련을 자처하고 이겨 내려 합니다. 그러니 보여 주십시오. 당신이 얼마나 강한지, 당신의 능력을. 이 난관을 극복해 냈을 때 모두가 당신을 우러러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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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위 개체를 사냥할 경우 수치가 추가 적용됩니다.

└솔져 1, 나이트 4, 커맨더 10

└남은 시간 : 2일 23시간 59분 59초

* * *

“키에에에에엑!!”

“키에에에엑!”

“키에엑!”

“…이런.”

나는 새카맣게 몰려드는 도마뱀들의 진격에 미간을 구기며 한세정들을 불러 모았다.

설마.

알을 부순 게 ‘특수 퀘스트’의 히든 트리거로 작용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만.

그렇다고 넋 놓고 서서 목을 내줄 마음은 전혀 없었다.

“곽재우! 전위를 맡아!”

“예!”

“지유는 재우를 도와서 벽을 세워. 입구를 좁혀서 한 번에 달려들지 못하도록.”

“네! 땅지기! 눈꽃송이!”

나는 사방에서 조여 오는 살기를 바람에 흘리며 전쟁을 맞이했다.

개전의 신호탄은.

‘선수 필승.’

내가 직접 쏘아 올렸다.

아주.

[오리지널 기술 : 군단을 파괴하는 본능]

화려하게.

우우우우우웅!!

후욱!

콰아아아아아아아앙!!

콰과과과광!!

지면을 밀며 솟아올라 쏟아 낸 공세.

마력을 최대치로 투입해 투하한 폭격은 그 위력을 여실히 드러내며 100여 미터에 이르는 전방 전역을 뒤흔들었다.

타격 범위가 넓어질수록 폭발력이 줄어드는 탓에 가능하면 집중 포화를 선사하고 싶었으나.

전산이 구축될 때까지 저지하는 역할도 함께 수행해야 하기에 스케일을 키웠음에도 불구하고 맥없이 쓸려 나가는 살라만드라들. 역시 체화(體化)급 기술은 체화(體化)급 기술이었다.

[‘기여도’가 0.01% 상승합니다.]

[‘기여도’가 0.05% 상승합니다.]

[‘기여도’가 0.1% 상승합니다.]

[‘기여도’가 0.01% 상승합니다.]

‘미친 듯이 올라가는군.’

나는 여기저기서 솟구치는 먼지 구름을 보며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거.

어쩌면 오히려 잘된 일 같다고.

누구도 다치지 않고 승전을 거둘 수만 있다면… 쓸데없는 체력 낭비, 시간 낭비 없이 우리보다 일찍 ‘축제의 땅’에 들어온 자들의 기여도를 단박에 따라잡는 계기가 될 듯싶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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