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화
【 누릴 수 있는 권리 】
보통.
축제(祝祭)라고 하면 사람들은 대개 ‘희망’적인 장면을 떠올린다.
종말 이전의 사회에서 페스티벌(Festival)이라 함은 모름지기 행복을 나누고 웃음을 전하는 잔치이지 않던가.
그래서.
일곱째 날이 도래했을 때.
우린 망설임 없이 문 너머로 발을 내디뎠다. 그만하고 싶었다. 지난 6일간 계속됐던 지독하리만치 거칠고 난폭했던 격류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피혜해진 정신을 조금이나마 회복하길 바라는 간절함에서 비롯된 선택이었다.
혹은.
‘보상’이란 단어가 주는 달콤한 유혹에 빠진 걸지도 몰랐다.
지구인지 지옥인지 분간 안 되는 이 빌어먹을 땅에서 살아남으려면 뭐라도 하나 더 가져야 한다는 생존자들의 심리를 파고들기에 더할 나위 없이 탐스러운 미끼였으니까.
살랑살랑 흔들리는 먹잇감 뒤에.
‘나락(羅絡)’이라는 이름의 괴물이 주둥아리를 쩍 벌리고 있었는데도 알지 못하게끔.
-‘축제의 땅’ 어딘가에 버려져 있던 누군가의 일기장 中 발췌
* * *
7일 차의 아침을 맞이하기 직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새벽 일찍 일어나 몸을 풀어 준 나는 식사 전에 어제 취득한 ‘영약 : 테라’를 삼켰다.
이걸로 뭘 올려야 할지 결심이 섰기 때문이었다.
으적―
우우우웅!
치아가 으깨지도 않았는데 스르륵 녹아내린 약기가 식도를 타고 체내로 스며들어 가며 전신에 열기를 채운다.
이윽고.
[보유한 ‘특수 능력치’ 중 다섯 가지를 선택해 주십시오.]
결정을 촉구하는 메시지에 일말의 지체 없이 하나둘 생각한 바를 지정해 주자.
[‘저항’, ‘제어’, ‘투기’, ‘순환’, ‘속성’ 능력치가 최소 20에서 최대 30까지 향상됩니다.]
몸속을 감돌던 기운이 전신으로 퍼져 나가며 흡수된다.
[축하합니다!]
[‘신체 능력 : 제어’가 「100」을 돌파했습니다.]
[‘신체 능력 : 투기’가 「100」을 돌파했습니다.]
[보상으로 ‘칭호 : 한계 돌파―제어’를 습득합니다.]
[보상으로 ‘칭호 : 한계 돌파―투기’를 습득합니다.]
그 덕에.
[기술 ‘세밀한 컨트롤’을 습득합니다.]
[기술 ‘전투광’을 습득합니다.]
[제어와 투기가 3씩 상승합니다.]
두 개의 기술을 추가로 획득하게 되었다.
둘 다.
《기술 : 세밀한 컨트롤》
- 등급 : 특수
- 단계 : -
- 설명 : 신체 능력치 중 ‘제어’가 「100」을 돌파했을 시 부여되는 기술입니다. 이를 통해 쓸데없이 낭비되는 에너지 소모를 최소한으로 절약하여 장시간 활동에도 덜 피로해지고 활기를 더욱 오래 유지할 수 있게 됩니다.
《기술 : 전투광》
- 등급 : 특수
- 단계 : -
- 설명 : 신체 능력치 중 ‘투기’가 「100」을 돌파했을 시 부여되는 기술입니다. ‘환경 : 전투’에 돌입했을 시 피가 끓어오르는 「혈력 가속화」 상태가 활성화되며, 이를 지속하는 동안 체력이 5% 이하로 하락하기 전까지 절망감에 빠져들지 않습니다.
패시브류였다.
확실히.
“저항 때도 그러더니…….”
근력이나 체력 등 기본 스탯으로 분류되는 능력치와 달리.
저항이나 제어와 같이 특수 스탯 구분되는 능력치들은 대체로 패시브 기술을 많이 주는 느낌이다.
‘감각 증폭’을 제외하면 ‘멘탈리티 가드’에서부터 ‘전투광’까지 연달아 세 개가 내리 그랬으니.
뭐.
나쁘다는 건 아니다.
효율이 떨어지거나 사용법이 난해해 적응하기 힘든 액티브를 얻느니, 따로 신경 안 써도 잘 돌아가는 패시브가 훨씬 낫지.
적극적인 변수 창출을 노린다면 반대가 유리하겠지만.
아무튼.
“대충 이런 느낌인가.”
나는 저장된 지식을 바탕으로 적당히 연습을 기울이며 떠오르는 태양과 대면했다.
해가 구름 위로 솟구칠 즈음 슬그머니 기상하는 한세정들.
“오빠! 안녕히 주무셨어요!”
“흐으으으……. 졸리다.”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형님.”
“안녕하세요. 오빠.”
“형! 오늘도 엄청 빨리 깨셨네요?!”
나 못지않게 부지런히 일어난 그들은 식사 대용으로 렌티아 열매를 사과처럼 씹어 삼키며 밤새 굳었던 육체를 풀었다.
짧지만 착실하게 워밍업을 마치고 나니.
[곧 3일 차 ‘이벤트 : 절망의 파도’가 개최됩니다.]
[남은 시간 : 33초]
[남은 시간 : 32초]
[남은 시간 : 31초]
금세 30초 대로 접어든 타이머.
그 타이밍에 맞춰 무장을 갖추고 밖으로 나온 우린 익숙한 포지션을 잡으며 7일 차의 전쟁 선언문을 경청했다.
[때가 도래했습니다.]
[당신의 위치를 기준으로 ‘10km 내’에 존재하는 생존자를 탐색합니다.]
[…완료!]
[검색된 인원 : 열세 명]
[다음 검색까지 남은 시간 : 150분]
종료일이라 그런가.
판정 거리가 10km로 확 증가한 반면 파도 간의 틈은 150분으로 훅 줄었다.
방어력이 부족한 이들에겐 청천벽력에 준하는 소식이었다.
단축된 공백기로 휴식을 취하기가 고되진 데다가 자칫하다간 연거푸 밀려오는 파도가 겹치고 겹치며 해일이 되어 한순간에 거점을 휩쓸어 버리는 사태가 빚어질 터이니.
딱히 내가 어찌할 부분은 아니다만.
“쯧.”
휘적휘적―
혀를 차며 잡념을 털어 내는 동안 거듭 출력되는 문장.
[더불어 시작 전 7일 차에 적용된 「설정」에 대하여 알려 드립니다.]
[「축제의 문」을 통한 〈축제의 땅〉으로의 이동이 가능해집니다.]
그다지 눈여겨볼 대목은 없었다.
별도 멘트라고 해 봐야 한 줄이 다였고.
[〈차원 : 테라〉에 진입한 모든 「침략군」의 신체 능력이 20% 상승합니다.]
[〈차원 : 테라〉에 진입한 모든 「침략군」의 기술 위력이 20% 상승합니다.]
[〈차원 : 테라〉에 진입한 모든 「침략군」의 특성 효력이 20% 상승합니다.]
[위와 같이 변화된 항목을 참고하여 끊임없이 몰아치는 파도 앞에서 살아남으십시오.]
나머지는 익숙한 밸런스 조정이었으니, 수치만 잘 기억해 두고 교전에 돌입했다.
* * *
“지금쯤 다들 들어가기 시작했으려나…….”
꾸이이이익―!!
키에에엑!!
몰려왔던 괴물들의 비명 소리를 백그라운드 뮤직으로 깔아 두고서 휘광 교회가 있는 방향을 향해 시선을 옮긴 나는 나지막하게 중얼거리며 생존자들의 동향을 상상해 봤다.
궁금했다.
다들 어떠한 스탠스를 취했을지.
또.
현 시각 ‘축제의 땅’에서는 어떠한 일이 벌어지고 있을는지.
아직 20여 분밖에 경과하지 않은지라 대부분은 첫 번째 파도와 부대끼고 있을 공산이 크나, 몇몇 이들은 7일 차가 개시되자마자 석문을 넘었을 성싶기도 했다.
잘만 하면 괴물들과의 전투를 회피하는 묘수로 활용될 수도 있기에.
‘점령의 구슬’로 만들어 낸 통로도 가볍게 뚫는 것으로 보아 석문이라고 한들 불가침의 영역이라 단정 짓기는 애매하다만, 만일 인간 전용 콘텐츠라면 열심히 달려오던 ‘침략군’ 입장에선 닭 쫓던 개 꼴이 될지니.
고로 호기심이 인 나는 당장에라도 석문을 통과하고픈 충동과 당면해야 했다.
다만.
욕구에 잡아먹히는 불상사는 없었다.
“아직은, 아니야.”
‘축제의 땅’이 금은보화로 가득한 보물섬일 확률을 무시 못 하는 터라, 늑장 부리는 사이에 남들이 단물 속 빼먹고 황무지로 변해 버린 대지에 발을 디디게 되면 어쩌나 걱정이 되어도.
도저히 타임 어택 특전과 랭킹 특전을 포기하기가 힘든 탓이었다.
습득 유무가 불확실한 저쪽에 비해 이쪽은 노력하기에 따라 거의 확정적으로 손에 넣을 수 있었기에.
특별급, 유일급 아이템을 구할 찬스는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는다.
수확할 수 있을 때 왕창 수확해 둬야 했다.
본디 가뭄과 흉년은 늘 예고 없이 찾아오는 법일지니.
[축하합니다!]
[첫 번째 파도를 ‘모두’ 막아 냈습니다.]
[압도적인 속도로 「파도」를 방어해 냈습니다.]
[소요 시간 : 22분 16초]
[뛰어난 성적으로 승리를 거머쥔 당신에게 ‘특별한 보상’을 선물합니다.]
[해당 보상은 ‘40분 이내(7일 차 기준)’로 「파도」를 방어해 낸 생존자에게만 주어집니다.]
[현재의 당신에게 가장 필요한 보상을 선정 중입니다.]
“아, 끝났나.”
사색을 이어 가는 찰나.
한세정들이 괴물들을 모조리 때려눕혔는지, 드디어 승전 공지와 함께 일곱 번째 타임 어택 특전이 우리에게 주어졌다.
헌데.
“……?”
막상 물건을 받아 든 내 표정에 약간의 아리송한 기색이 감돌았다.
어딜 다쳤거나, 해독하지 못한 독에 중독되었거나, 치명상을 입어 골골대는 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보상으로 ‘상급 회복 물약(x3)’을 습득했습니다.]
《신속 회복 물약》
- 등급 : 특별
- 분류 : 소모품
- 설명 : 복용 시 소모된 체력의 15% 급속도로 회복시켜 주는 물약이다. ‘중경상’ 이하(손가락 절단 등)의 상처가 바로 복원되며 10분간 자연 치유력을 150%까지 향상시켜 주는 신묘한 힘이 깃들어있다.
- 옵션 : 복용 시 체력 회복 및 자연 치유력 대폭 향상
“…포션?”
뜬금없이 물약이 ‘가장 필요한 아이템’으로 선정되어 제공됐기 때문이었다.
나는 매우 얼떨떨한 심경으로 눈썹을 치켜세웠다.
하고많은 아이템 중 어째서 포션을 내준 것인지 당최 이해가 되질 않아서.
내가 지금 이걸 쓸데가 어디―
“…설마?”
어리둥절하게 손바닥을 내려다보던 나는 순간적으로 뇌를 강타하는 가설에 입을 다물었다.
이 시점에서 내가 상등품의 포션을 보충해야만 하는 근거는 단 하나뿐이었으니까.
‘축제의 땅’.
그곳에 내가 포션을 필수적으로 마련해야 될 만큼 강력한 무안가가 존재한다는 의미였다.
이 추측에 힘을 실어 주는 사람이 있었으니.
“저는… 포션이네요?”
동행자로 선정된 한세정.
조이령, 곽재우, 신씨 남매 등등.
이 자리에서 유일하게 그녀만이 나와 동일한 ‘신속 회복 물약’을 받은 실정이었다.
여기까지 왔다면 더 이상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대체 뭐길래…….”
영약과 포션.
그 연속된 대비책의 등장을 경험한 내 눈동자가 미세하게 좌우로 흔들렸다.
이거.
어째 여기저기서 ‘축제의 땅’에 가지 말라고 날 말리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말이지.
“…….”
제지하면 더욱 하고 싶어지는 인간의 본성이 그러하듯. 내 눈길도 점차 휘광 교회로 고정되어서는 못이라도 박힌 양 떠나갈 줄을 몰랐다.
위험하다는 게 뻔히 보이는데… 외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란 문구가 점점 선명해져 허공을 꽉 채워 나갔다.
그 번민의 끄트머리에서.
“그래.”
나는 결단을 내렸다.
무모한 도전으로 기록될지, 위대한 업적으로 장식될지 미래는 누구도 알지 못하나. 적어도 도전조차 하지 않고 물러서지는 말자고.
더군다나.
역전시켜서 따져 보면 내겐 호기일 수도 있었다.
결국.
250의 한계를 깨부수는 비약을 섭취했으며, 난관에 봉착하더라도 파훼할 포션들을 갖췄다.
여기에 만에 하나 위급한 형세에 탈출용 로프로 쓰일 ‘진퇴권’마저 구비했다.
이 정도로 완벽하게 준비한 나라면.
“가능하다.”
설령 악마가 이빨을 들이밀어도 충분히 싸워 볼 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