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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메라의 기억법-146화 (146/232)

146화

가로 5m, 세로 10m.

거인들이나 쓸 법한 이 거대한 석문은 화려한 색채도, 보석 따위의 치장도 없었으나 압도적인 크기로 하여금 보는 이에게 웅장한 분위기를 선사했다.

물론.

텁―

감상은 잠시였다.

나는 감탄사를 내뱉는 와중에도 얼른 손을 가져다 댔다.

이번 퀘스트에서 중점은 ‘선착순’이었다.

우리처럼 ‘단서’를 풀었을 사람, 마침 교회를 거주지로 정하고 살아가던 사람, 아무런 기반 없이 떠돌아다니다 운 좋게 문을 발견했을 사람 등등등.

이러저러한 이유로 1분 1초마다 운명이 갈리고 있을 터였다.

따라서 우리라고 안심할 수 없으니 잠깐의 여유도 금물이었다. 그랬다가 10,000명 내에 들지 못하게 된다면 그거야말로 최악의 사태가 될 테니.

우우우우우웅―!!

‘마력이…….’

서둘러 가져다 댄 손바닥.

살갗에 차디찬 감촉이 느껴진 순간 체내의 마력이 꿈틀거리며 내 의지와 무관하게 석문으로 흘러 들어갔고.

그그그그그그긍―!!

기묘한 진동을 발하며 석문이 서서히 개방되기 시작했다.

문고리가 중상부에 위치한 탓에 단이라도 쌓아 올려야 하나 싶었는데, 일정량의 마력만 주입해 주면 개폐는 자동으로 이루어지는 방식이었다.

그렇게 느리되 꾸준하게 열리던 문이 완전히 벌어졌을 때.

쿠웅!

[축하합니다!]

[「축제의 문」을 개방했습니다]

[현재 ‘124명’의 개방자가 존재합니다.]

[〈이벤트 전용 퀘스트 : 페스티벌〉의 달성 요건을 충족하셨습니다.]

[보상으로 ‘진퇴권’을 습득합니다.]

[본격적인 〈축제의 땅〉 입장은 ‘7일 차’에 가능합니다.]

우렁찬 굉음과 함께 공중에 모여든 빛무리가 하나의 티켓을 만들어 냈다.

《진퇴권》

- 등급 : 특별

- 분류 : 소모품

- 설명 : 오직 〈축제의 장〉에서만 가동되는 티켓이다. 사용 시 지면에 ‘포탈’이 기록되며, 이를 통해 외부로의 퇴장 및 재입장이 가능해진다. 단, 퇴장 후 재입장의 기회는 한 번뿐이며 소유주 외의 타인이 포탈을 이용할 수 없다.

- 옵션 : 반절 시 ‘포탈’ 생성

‘진퇴권……? 축제의 땅?’

나는 반사적으로 아이템의 정보를 살펴보다 의아해졌다. 밖으로 나갔다 돌아올 수 있게끔 해 주는 기능이라니.

이런 티켓을 준 까닭이 뭘까?

“설마 한 번 들어가면 이 티켓 없이는 자유로운 퇴장이 불가능한 건가?”

예상치 못했던 생뚱맞은 아이템의 지급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문’이라는 게 세워졌으니 다른 공간으로의 이동쯤이야 예견한 바였기에 입장 역시도 자연스러운 수순이라 여겼거늘…….

만약 임의로 오고 가는 게 제한되는 세상이라면.

과연 넘어가는 것이 좋은 행동인지 의문으로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오빠, 그게 뭐예요?”

“설명은 나중에, 일단 문부터.”

“넵!”

미간을 찌푸리며 고심하던 나는 우선 한세정들이 보상을 챙기도록 지시했다.

지금은 출입이 규제되는 세계를 들어갈지 말지 고뇌할 시기가 아니다.

당장은 티켓을 확보하는 게 급선무였다.

하여.

한세정의 물음에도 대답을 미루고 명령을 내렸으나.

텁―

“오빠.”

“……?”

나는 곧 내가 얼마나 멍청한 소리를 주절거렸는지 알게 되었다.

“이미 개방된 문이라는데요……?”

닫히지도 않은 문을 다시 오픈하라고 했으니 말이다.

상정하지 못한 문제로 머리가 혼란스러워지면서 생긴 실수였다.

허나.

당연히 자책할 틈은 없었다.

이 시간에도 개방자는 늘어나고 있을지니 한시라도 빨리 기동해야 했다.

* * *

“오빠, 저기!”

혼자보단 둘이 나을 거란 판단하에 두 명씩 짝을 이뤄 도로를 질주하던 차에.

나와 페어를 이룬 한세정이 고함을 질렀다.

고개를 돌려보니 그녀가 열 시 방향으로 달려가는 중이었고, 그 끝자락에 꽤나 굳건한 모습으로 자리를 지키고 선 ‘현청 감리 교회’라는 현판이 보였다.

[풀루스의 돌진]

타앗―

콰아앙!

이를 인지하자마자 전력으로 나아가 달과 별이 걸린 지붕 밑에 다다른 직후.

“…어?”

“……?”

우리 입에선 기쁨과 환호의 느낌표가… 아닌 당황과 곤혹스러운 감정이 담긴 물음표가 튀어나왔다.

눈앞에 교회가 있는데.

“왜 문이…….”

설치돼 있어야 할 석문이 보이질 않았으니까.

혹 건물 내부에 들어서기도 하는 건가 싶어 실내를 체크해 봤으나 어두컴컴한 안쪽에는 먼지만이 가득할 따름이었다.

뭐지?

당혹감에 물든 눈으로 구석구석을 훑어봤으나, 달라지는 건 없었다.

그 말인즉슨.

교회라고 해서 다 퀘스트와 관련 있진 않단 뜻이었다.

허면.

우리가 놓친 조건은 무엇일까. 휘광 교회와 이곳의 차이점은 어떤 것인가.

당면한 위기를 해결하고자 맹렬하게 회전하는 두뇌.

그때.

불현듯 한 뭔가가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휘광 교회에서 마주했던, 눈에 파묻혀 있었으나 외형만큼은 온전함을 잃지 않았던 ‘십자가’의 이미지였다.

그와 동시에 시야가 올라갔고.

“……!”

나는 볼 수 있었다.

뭐에 부딪혔는지 십자가의 왼편이 부서져 있는 광경을.

아아.

그제야 깨달았다.

‘축제의 문’을 불러내는 데 가장 중요한 요건은 바로 ‘온전한 십자가’라는 걸. 정확하게는 ‘일정 규격 이상의 흠결 없는 교회의 십자가’였으리라.

아니었다면 내 목에 걸려 있는 목걸이로도 석문이 나타났겠지.

여하간.

비밀을 알게 된 나는 이를 한세정에게 알려 주며 그녀를 이끌고 다시금 거리로 나섰다.

원인을 파악했으니.

그에 맞게 수정된 탐색 및 결과물을 내놓을 차례였다.

가능하다면 곽재우나 조이령 등에게도 이 정보를 전해 주고팠으나, 워낙 뿔뿔이 흩어진 마당이라 통신 수단이 없는 현재로서는 행운이 따라 주기만을 빌어야 했다.

* * *

시간이 흐르고.

[다음 검색까지 남은 시간 : 3분 14초]

[다음 검색까지 남은 시간 : 3분 13초]

[다음 검색까지 남은 시간 : 3분 12초]

세 번째 파도가 몰아치기 약 3분 전.

“…옵니다! 왔습니다!”

신지유가 손수 건축한 목조 빌딩 1층에서 최홍진의 다급한 음성이 들려 아래로 내려가니 경계 근무를 서던 원앙 부대원들이 쫙 내려앉은 어둠을 가르며 뛰어오는 누군가를 마중 나가고 있었다.

“이령아! 재우 씨!”

곽재우와 조이령을 향해.

석문 찾기를 나서고는 쭉 감감무소식이었던 두 사람이 이제야 귀환한 것이다.

남동부 지역으로 내려갔던 둘이 이토록 오래 걸린 연유는 무척이나 단순했다.

“하아, 하……. 제대로 된, 교회가, 없었습니다……. 후…….”

파괴로 인한 부재.

고의적이었든 의도치 않은 사건 때문이었든, 이래저래 죄다 박살 나 동남부 일대에는 멀쩡한 곳이 없었던 것 같았다.

지형 일부를 송두리째 바꿔 버리는 던전에 휘말려 소멸됐지도 모르지.

“수고했다.”

따라서,

둘을 책망하는 일은 없어야 했다.

단지.

아쉬운 거라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됐습니까.”

“지유 말고는 전원 실패다.”

“아…….”

한 시간을 넘게 떠돌아다녔음에도 결국 우리가 손에 넣은 ‘진퇴권’은 두 장이 전부라는 점이다.

쉽게 봤던 난이도치고 초라한 성적.

해서.

얘기를 나눠 봐야 했다.

“축제의 땅에 대해,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는 데다가 오가는 것마저 자유롭지 않은 상황이라면. 안전을 위해서라도 둘 중 하나로 갔으면 한다.”

“다 들어갈지, 진퇴권이 있는 사람만 들어갈지… 말이죠?”

“그래.”

개인적으로 나는 후자였다.

무엇도 목숨보다 우선시되진 않았으니까.

그러므로 기왕이면 나와 동행할 한 명을 골라 가는 게 어떠냐고 얘기하려던 와중.

“이러면 어떨까요?”

“……?”

신지유가 손을 들었다.

“진퇴권의 옵션을 보면 어쨌든 들어갔다가 나올 수 있는 거니까… 저나 오빠가 먼저 입장해서 티켓 없이도 퇴장이 가능한지 확인해 보고, 된다면 그때 포탈을 열고 나가서 언니나 오빠를 데려와도 될 것 같아서요.”

아.

홀로 고민하다 꺼낸 소녀의 의견은 굉장히 그럴싸했다.

잘 풀리면 ‘진퇴권’ 한 장으로 일행 모두가 함께할 수 있게 되는 거고, 틀어진다 해도 나와 동행인은 그대로 ‘축제의 땅’을 주유하면 되니.

그야말로 절충안이었다.

“그렇게 하는 게 좋겠다.”

나는 신지유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한세정이나 곽재우 등도 그 방법이 제일 타당하다 여겼는지 가타부타 불만 없이 수긍하며 회의는 일사천리로 끝났다.

동행인을 선정하는 것도 금방이었다.

“나, 나? 내가 같이 가라고?”

“너 아니면 누가 가겠어. 만에 하나 사고 생기면 니 능력으로 도망쳐야 하잖아.”

“그건 그렇지만…….”

“그리고, 티켓을 뚫어지게 쳐다보는데 누가 나서겠어? 가고 싶다고 말하면 싸움 날 판인데.”

“야, 야! 내가 언제 뚫어지게 쳐다봤다고…….”

“엥? 지유야, 지운아. 내 말이 틀렸어? 이 기지배가 방금 전까지…….”

“아, 알았으니까 조용히 해!”

이런저런 사유로 넷이서 한세정을 밀어줬기 때문이었다.

‘공간 이동 탈출’이라는 절대적인 명분이 있는지라 나로서도 부담된다고 밀어내기 어려운 터라.

“…잘됐지.”

나는 차라리 이 기회에 내 진심을 전하기로 결심했다.

‘진퇴권’도 있겠다.

마음이 틀어졌을 때 몰래, 또 홀로 떠나기 좋은 배경이기도 했으니.

[때가 도래했습니다.]

[당신의 위치를 기준으로 ‘7km 내’에 존재하는 생존자를 탐색합니다.]

[…완료!]

[검색된 인원 : 열세 명]

[다음 검색까지 남은 시간 : 300분]

우린 얼추 마무리된 안건을 뒤로하고 금일의 마지막 파도와 몸을 부딪쳤고,

순위 발표식까진 순식간이었다.

* * *

[축하합니다!]

[‘이벤트 : 절망의 파도’의 6일 차 순위 발표식을 종료합니다.]

[각자 등수에 맞는 특별한 보상이 지급될 예정입니다.]

[이를 발판 삼아 앞으로의 시련 또한 훌륭히 이겨 내시길 기원하며.]

[끝으로 다시 한번 순위 발표식에서 「1위」에 오르신 〈생존자 : 아윤〉 님의 업적에 무한한 찬사를 보냅니다.]

《영약 : 테라》

- 등급 : 유일

- 분류 : 소모품

- 설명 : 「이벤트 : 절망의 파도」 순위 발표식에서 누구보다 높은 성적을 기록한 당신에게 지급된 「영약 : 테라」입니다.

우주의 에너지와 〈차원 : 테라〉의 기운이 하나로 섞여 탄생한 이 유일무이한 영약을 복용할 시 ‘근력, 체력, 내구, 순발력, 마력’ 다섯 가지와 개방되지 않은 특수한 능력치 다섯 가지를 선택해 향상시킬 수 있습니다.

- 옵션 : 신체 능력치 대폭 향상

흑야로 드리워진 밤.

성대하게 치러진 5일 차의 순위 발표식에서도 나는 당당히 1등을 거머쥘 수 있었다.

두 번째 파도와 세 번째 파도 사이의 공백기를 휴식과 수색으로 이용하느라 공적치가 부족하진 않을까 불안했는데.

곽재우의 양보로 세 번째 파도를 물아 먹은 게 주효하게 작용한 듯싶었다.

“그나저나…….”

장장 4일 내내 골렘과 연결된 것만 나오다 오늘에서야 갑자기 영약이라.

이 또한 ‘축제의 땅’과 연관된 사인일까?

막혀 있던 250 선을 뚫을 수 있게 되어 좋으면서도 왠지 모를 꺼림칙한 기분이 6일 차 밤을 보내는 내 가슴을 무겁게 짓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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