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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메라의 기억법-144화 (144/232)

144화

“키에에에에엑!!”

“크르르륵!!”

온갖 종류의 하울링을 터트리며 밀려 들어오는 수천 마리의 괴물들.

그 거대한 물결 앞에 선 나는 다 차치하고서 하나만 쫓았다.

“넷, 다섯, 여섯… 열넷. 열다섯 마리.”

저 무리 내부에 있는 커맨더급의 숫자.

이제 스탯을 올리려면 3등급 근원석이 요구되는 터라 무의식적으로 품질 좋은 사냥감이 몇인지를 먼저 살피게 된다.

다행히 수는 적지 않았다.

날이 갈수록 거세지는 파도의 영향이기도 하고, ‘완전한 지도’의 커맨더급 개체 출현율 증가 옵션도 한몫했다.

“중앙은 재우 씨, 지유가 같이 맡고… 이령이와 지운이는 각각 사이드로 가고 나는 프리 롤로 할게. 골렘들은 재우 씨가 지휘해.”

“오케이.”

“알겠습니다.”

“언니, 조심해요.”

“아자 아자!”

내가 토실토실하게 살찐 먹잇감들을 향해 이빨을 들이미는 사이.

한세정의 주도하에 포메이션을 구축한 일행은 각자에게 부여된 임무를 수행하러 여기저기로 나눠진다.

벌써 6일째.

지겹도록 익숙해진 전쟁이고, 늘상 승전으로 기록되는 만큼 다들 해이해질 만도 할진대 누구도 긴장의 끈을 놓는 이가 없었다.

이유라면 단순했다.

우리가 발전하는 게 아니었으니까.

상대도.

저 ‘침략군’들도 매일 평균적으로 20%씩 강해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우주 장벽을 건너며 약해졌던 힘이 원래의 격을 되찾아가는 것인지, 진화를 거듭하며 초인으로 변모해 가는 인간과 대응한 싸움을 벌이게끔 해 주는 시스템의 배려인지 정확한 원인은 몰라도 어쨌든 ‘성장(成長)’이란 단어는 동일하게 적용됐기에.

“다치지 말고.”

“네!”

“네!”

“네!”

“네!”

“네!”

안일한 태도 따윈 저 멀리 던져 버리고서 주문인 듯 염원인 듯 서로의 안녕을 비는 한마디를 주고받으며 전방으로 몸을 날렸다.

[돌진]

[그림자 걸음]

탁―

쿠웅!

땅을 박차며 가볍게 구른 발.

충돌 직전 펼친 기술로 적의 시야를 속이며 뒤를 완벽하게 점한 나는 개전과 동시에 마력을 불살랐다.

[오리지널 기술 : 군단을 파괴하는 본능]

투웅―

손끝을 타고 나가는 일격.

쾅!

콰과과과과광!!

순식간에 수십 갈래로 쪼개진 마력은 후방 일대를 뒤흔들며 전장을 짓뭉갰다.

연달아 치솟는 폭음과 먼지 구름.

초전부터 날린 전력 투구의 참상을 바라보던 나는 슬쩍 공중으로 시선을 보냈다.

《한계 돌파 : 오르그의 파괴 본능》

- 설명 : 행성 ‘웨이노르(Waynor)’의 지배종인 「오르그」만이 개화 가능한 기술을 베껴 피나는 노력 끝에 원류와 비견될 정도로 완숙의 경지에 다다른 그대. 이제는 ‘남의 것’을 ‘자신만의 것’으로 가다듬을 시간입니다.

당신이 지닌 ‘특성’을 가미해 원류를 뛰어넘을 본인의 길을 제시해 보십시오.

- 과제 : 1. 특성 결합 / 2. 적 10,000개체 파괴

- 달성률 : 92%

이곳으로.

2일 차에 시작했던 과제가 어느덧 100%를 목전에 두고 있었다.

적 10,000마리를 기술 ‘군단을 파괴하는 본능’으로만 처치해야 하는 탓에 미션 완수까지 넉넉하게 한 달이나 주는 걸 단 4일 만에 해치웠다니.

‘이벤트 : 절망의 파도’가 겹쳤기에 이룩할 수 있었던 성과였다.

나아가.

꽈아아아아악―!

“끝내 보자.”

현시점에서 종지부가 찍힐 과업이기도 했다.

우우우우웅!!

[오리지널 기술 : 군단을 파괴하는 본능]

“후아!”

후우욱!

콰아아앙!

[축하합니다!]

[2차 과제의 달성률이 100%에 도달했습니다.]

[「오리지널 기술 : 군단을 파괴하는 본능」이 온전하게 체화됩니다.]

[최초로 ‘체화(體化)’ 등급 기술을 보유했습니다.]

[「아카식 레코드」에 당신의 ‘정보’가 기록되는 중입니다.]

[당신의 위대한 업적을 치하하며 그에 걸맞은 선물이 주어집니다.]

[보상으로 ‘기술 등급 성장권’을 습득합니다.]

[보상으로 칭호 ‘기술자’를 습득합니다.]

짧은 기합과 함께 내지른 권격이 지옥도를 방불케 하던 공간을 다시금 찢어발긴 순간 대여섯 줄의 축하 메시지가 눈앞을 가득 채운다.

《칭호 : 기술자》

- 최초로 「체화(體化)」 등급의 기술을 ‘온전히’ 습득한 자에게만 부여되는 칭호. 보유 중인 모든 기술의 위력 및 효과가 5% 향상되며, 단계 성장 속도가 5% 증가한다.

“오.”

정해진 기간 내에 과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어떤 제약이 발생하는지 드러난 바가 없기에 불상사를 피하고자 되도록 빨리 마무리 지으려고 했다.

헌데.

그게 이런 호재로 작용하다니.

아마 ‘기억 포식’으로 남들보다 한발 앞서 원본(原本))급 기술을 배웠던 것이 지금의 결과를 낳은 듯싶었다.

“좋네.”

문자 그대로 깜짝 선물을 받은 기분.

입가에 절로 미소가 드리워졌다.

그래서인지.

자연스레 다음이란 글자가 뇌리를 간지럽혔다.

과연.

최종 형태인 ‘각성(覺醒)’ 등급으로 넘어가게 된다면, 그때에도 최초 타이틀을 거머쥔다면 또 무얼 내줄는지.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기대감이 차올랐다.

* * *

[‘골렘 제작 도면 : 3등급’을 사용합니다.]

[모든 재료가 충족되었습니다.]

[골렘 제작을 시작합니다.]

[남은 시간 : 10분(촉진제 효과 적용 중)]

기이이이이잉―!

공방이 돌아간다.

나는 한가득 쌓아 둔 흑철석이 여덟 번째 흑기사로 변화되어 가는 공정을 잠시 관망하다 밖으로 나와 한세정들과 모여 앉았다.

곧 있을 미궁 탐사 전에 타임 어택 특전을 확인하고자 렌티아 열매와 따듯한 물 한 잔으로 간단히 배를 채우며 열린 자리.

“저는 이거 나왔어요!”

“어? 나랑 똑같네?”

“그래?”

“전 이게 나왔습니다.”

한세정의 발언을 시발점으로 하나둘 아이템을 꺼내 놓는데, 다들 보상이 비슷비슷했다.

[특전 목록]

[한세정 : 장신구 강화석]

[조이령 : 장신구 강화석]

[곽재우 : 방어구 강화석]

[신지유 : 무기 강화석]

[신지운 : 장신구 강화석]

다섯 명 중 세 명이 ‘장신구 강화석’에 나머지도 방어구냐 무기냐 차이만 있을 뿐.

대동소이했다.

그렇다고 해서 강화석이 나쁜 건 아니다만, 기본적으로 여타 아이템에 비해 등급 대비 가치도 낮았거니와 다양성을 바라는지라 썩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심지어.

《방어구 강화석》

나도 이런 데다가 원앙 부대원들마저 무기나 방어구만 뽑아 우리가 쓸 만한 게 없는, 아주 오랜만에 빛 좋은 개살구 꼴이 났다.

“하다못해 포션 세트라도 떴으면 좋았을 텐데 말입니다.”

“어쩔 수 없지. 처분하고 와.”

“예.”

전반적으로 평타에 불과한 품평회를 마친 나는 곽재우에게 맡겨 아이템들을 포션으로라도 교환하도록 지시했다.

헐값에 판매한 후 구매하는 과정이라 손실은 있겠으나.

적어도 창고에 묵혀 두는 것보다야 백배 나았다.

더군다나.

‘3회차 연속 획득’ 히든 룰로 전부 특별 등급 아이템이 드랍된 덕에 설사 손해를 본다 해도 수중에 떨어지는 금액 단위가 상당해 포션 확보엔 무리가 없었다.

“참, 오빠 상점 업그레이드는 언제쯤 하실 거에요?”

곽재우를 돕겠다며 따라나선 신지운의 뒷모습을 지켜보며 따듯한 물로 목을 축이던 나는 한세정의 질문에 컵을 내려놓고 방금 공방을 들리는 김에 체크했던 사항을 알려 주었다.

“상점을 3레벨로 올리려면 근원석이 필요해.”

“얼마나요?”

“1등급 오백 개, 2등급 백 개, 3등급 오십 개.”

“아.”

‘기부처’라는 명칭이 말해 주듯 이번 업그레이드의 핵심은 돈이었다.

가격은 생각보다 괜찮았다.

3등급 오십 개가 다소 튀긴 하다만, 현물과 화폐가 둘 다 가능하기에 2등급으로 2,610개만 준비하면 되는 무난한 수준이었다.

다만.

[‘차원 상점’을 업그레이드하시겠습니까?]

[업그레이드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상점 기능이 정지됩니다.]

[업그레이드 완료까지 걸리는 시간 : 666분]

“…하는 문제가 있어서 웬만하면 6일 차가 종료되고 나면 하려고. 언제 또 쓸지 모르니까.”

“아아.”

힌세정은 내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고는 오물거리던 렌티아 열매를 깨끗하게 먹어 치우며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 장비를 챙겼다.

그러자.

덩달아 휴식을 파하며 무장을 가다듬는 조이령과 신씨 남매.

기껏해야 10분을 채 못 쉬었으나.

오늘은 일정이 빠듯해 느긋하게 떠들 여유가 없었다. 본래 전쟁과 미궁 공략으로 반복되던 일상에 ‘축제의 문 수색’이라는 일과가 추가됐기 때문이었다.

내비게이션 못지않은 지도의 도움으로 순조롭게 탐사헤 나갈 수 있는 미궁과 달리.

저건 순전히 천운이 따라 줘야 하는 주먹구구식 수사가 될 것이 뻔해 시간 소모가 막대할 터라 공적치를 올리는 데 투자할 타이밍은 이때가 유일했다.

쥐어짠다면 두 번째 파도 이후의 공백기를 이용해도 되긴 한데.

문 수색에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 정보가 없으니 그때는 되도록 아무것도 하지 않고 풀 컨디션을 유지할 요량이라 비교적 한가로운 이 시점을 십분 활용해야 했다.

“가자.”

“네!”

“다녀오십쇼! 여긴 저희가 안전하게 지키고 있겠습니다!”

“그워어어어어어!!”

“그워어어!!”

* * *

최홍진과 원앙 부대원들을 위시한 골렘들의 배웅을 받으며 활보하는 도심.

[「탐사력」을 발동합니다.]

[반경 5km 내에 위치한 커맨더급 개체를 탐색합니다.]

삑!

‘바로?’

[「완전한 지도」가 커맨더급 개체를 발견했습니다.]

지이이잉―

[‘맵’ 기능이 활성화됩니다.]

[포착된 대상의 위치가 표시됩니다.]

운이 좋았는지.

거점을 나온 지 15분여 만에 레이더에 미궁이 걸렸다. 정확하게는 미궁의 설치 권한을 가진 커맨더급 개체의 발견이지만.

여하튼 낚싯대를 드리우자마자 입질이 온 듯한 분위기에 속보로 화답하며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신년을 코앞에 둬 한결 매서워진 겨울바람을 가르며 나아가는 길.

한달음에 도착한 웬 빌딩에서 마주친 괴물을 두들겨 팬 우린 미궁이 개설되는 걸 본 즉시 ‘천리향’을 몸에 뿌렸다.

[‘천리향’이 코끝을 스칩니다.]

[「깃발의 수호자」가 ‘최후의 몸부림’을 선언했습니다.]

[현재 위치에 ‘깃발’이 설치되었습니다.]

[‘깃발’을 중심으로 직경 1km에 이르는 공간에 일시적으로 〈미궁〉이 설치됩니다.]

뿔뿔이 흩어지는 것과 거의 동시에 이뤄진 행동으로 서로에게 끈을 연결한 우린 신속하게 재결합하며 ‘미궁의 지휘관’을 소환시켰다.

이놈만 잡으면 미궁 전역을 한눈에 굽어볼 수 있는 만큼.

보물 상자고 여타 병사들이고 죄다 무시하고 지휘관 소환 및 사냥에 집중했다. 이편이 미궁 공략 시간을 줄이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오빠! 여기에요!”

“크라라라라라!!”

[웨루카의 베어 가르기]

슈우우우욱!

서걱!!

일전의 신지운처럼.

마지막 합류자인 조이령의 근처에 생성된 지휘관의 목을, 원본(原本)급으로 격상한 베어 내기로 단숨에 갈라 버리며.

[‘미궁 전체도’가 완성되었습니다.]

[감춰져 있던 「깃발」의 위치가 드러났습니다.]

장소가 특정된 깃발을 찾아 부쉈다.

매우 깔끔한 결말이었다.

[축하합니다!]

[‘단서 001’을 습득했습니다.]

“…응?”

요 하나를 제외하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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