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화
반복적인 활동을 하다 보면 하루하루가 빠르게 지나가고는 한다.
우리의 일상이 그러했다.
[축하합니다!]
[모든 생존자가 ‘절망의 파도’를 막아 냈습니다.]
[3일 차가 종료되었습니다.]
[각자의 ‘공적치’를 토대로 「순위」를 산정 중입니다.]
비가 오려는지 먹구름이 끼어 어두컴컴한 하늘 아래 3일 차 순위 발표식의 막이 열렸다 싶더니만.
눈을 몇 번 감았다 뜨자.
[곧 4일 차 ‘이벤트 : 절망의 파도’가 개최됩니다.]
[때가 도래했습니다.]
[당신의 위치를 기준으로 ‘5km 내’에 존재하는 생존자를 탐색합니다.]
[…완료!]
[검색된 인원 : 열세 명]
[다음 검색까지 남은 시간 : 300분]
금세 4일 차의 아침이 밝았고.
[〈차원 : 테라〉에 진입한 모든 「침략군」의 신체 능력이 21% 상승합니다.]
[〈차원 : 테라〉에 진입한 모든 「침략군」의 기술 위력이 19% 상승합니다.]
[〈차원 : 테라〉에 진입한 모든 「침략군」의 특성 효력이 17% 상승합니다.]
[위와 같이 변화된 항목을 참고하여 끊임없이 몰아치는 파도 앞에서 살아남으십시오.]
어제와 별다를 바 없는 일정을 치르다 보니 동쪽에서 떠올랐던 태양이 어느새 서쪽으로 저물어 갔다.
이는.
새로 맞이한 5일 차도 마찬가지였다.
전쟁, 미궁, 전쟁, 미궁, 전쟁.
숨 가쁘게 짜여 있는 스케줄을 따라가다 보면 여명(黎明)의 햇살은 황혼(黃昏)의 달빛이 되기 일쑤. 달력은 연거푸 넘어갔고, 시계는 배속을 걸어 둔 것처럼 빠르게 돌아갔다.
물론.
그 피땀 어린 노력에 우린 항상 상위권 성적을 유지했고, 나 또한 5일 연속 1등이라는 과업을 달성하는 쾌거를 이뤘다.
왕좌를 빼앗기지 않으려 이 악물고 노력한 보람이 있었다.
단지 아쉬운 점이라면.
《골렘 강화석 : 퍼펙트 엘리멘탈 가드》
- 등급 : 특별
- 분류 : 소모품
- 설명 : 「이벤트 : 절망의 파도」 순위 발표식에서 누구보다 높은 성적을 기록한 당신에게 지급된 보상입니다. 사용 시 지정된 골렘의 ‘모든 속성 저항력’이 향상됩니다. 단, 이 아이템은 1기당 1회 수여할 수 있으니 신중하게 결정하기 바랍니다.
- 옵션 : 모든 속성 저항력 27% 상승 / 일정 확률로 속성 공격 피해 30% 절감 / 내구도 15% 상승
“이번에도 골렘 전용이네.”
2일 차에서 영약이 제공된 뒤로 쭉 골렘과 관련된 아이템만 공급된다는 것.
[3일 차 : 명장의 주문 제작 무기 교환권―골렘 전용]
《명장의 주문 제작 무기 교환권―골렘 전용》
- 등급 : 특별
- 분류 : 소모품
- 설명 : 「이벤트 : 절망의 파도」 순위 발표식에서 누구보다 높은 성적을 기록한 당신에게 지급된 보상입니다. 사용 시 명장이 제작한, 오직 「골렘」만이 착용 가능한 무기 중 하나를 마음대로 골라 교환할 수 있습니다.
- 옵션 : 명장급 무기 교환
[4일 차 : 기술서―블러드 골렘]
《기술서 : 블러드 골렘》
- 등급 : 특별
- 분류 : 소모품
- 설명 : 「이벤트 : 절망의 파도」 순위 발표식에서 누구보다 높은 성적을 기록한 당신에게 지급된 보상입니다. 사용 시 지정된 골렘에게 기술 ‘블러드 골렘’이 부여됩니다.
- 옵션 : 원본(原本) 등급 기술 ‘블러드 골렘’ 부여
*기술―블러드 골렘 : 전장에 흐르는 피를 흡수하여 ‘중상’ 이하의 손상을 완전하게 복구한다. 흡수된 혈액의 양이 일정량을 초과할 경우 일시적으로 ‘근력, 순발력, 체력, 내구’에 보너스 효과가 적용된다.
이렇게 말이지.
소수 정예로 활동하는 우리에게 있어서 보조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골렘의 능력이 향상되는 건 틀림없이 만족스러운데…….
영약을 한번 맛봐서 그런가.
아무튼.
그러한 연유로 그저께부터는 벌어들인 돈으로 차곡차곡 3등급 골렘을 추가 생산하는 중이다. 기왕 확보한 아이템들을 유용하게 써먹으려면 거기에 걸맞은 녀석들이 필요했다.
한두 개도 아니고.
날마다 여섯 개씩 쏟아지고 있어 묵혀 두기도, 팔아 치우기도 애매한 상황이라…….
다만.
결정적인 계기는 따로 있었다.
[‘신체 능력 : 근력’이 「250」에 도달했습니다.]
[능력치 ‘근력’에 한하여 「내성 : 2단계」가 적용됩니다.]
이 ‘2단계 내성’이라는 놈으로 인해.
《특이 사항 : 내성―2단계》
- 〈차원 : 테라〉를 침략한 「침략군」의 근원을 흡수하여 ‘2차 한계’마저 돌파한 당신. 완연한 초인의 영역에 들어선 당신에게 더 이상 하등한 품질의 근원석은 효과가 발휘되지 않습니다.
- 지금부터 「250」에 이른 능력치는 ‘2등급 근원석’으로 향상시킬 수 없습니다.
더 이상의 성장이 불가능해졌기 때문이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악재였다.
‘특이 사항’란의 한 칸을 떡하니 차지하고 있는 만큼 언젠가는 발목을 붙잡힐 거라 짐작은 했지만, 설마 고작 50단위로 태클 걸 줄이야.
다소 당황스러운 광경이었다.
그러나 어쩌랴.
시스템에 의한 제지는 내가 아무리 발버둥 친들 바뀌지 않는 법. 해서 우선은 한세정들을 비롯해 나도 250 선에 맞춰 두는 걸로 합의를 보고 골렘 제작에 열을 올리게 된 것이다.
장비도 기술도.
그 외 대부분의 항목은 대체로 만점에 가까웠던 데다 그나마 미처 놓치거나 빠트리는 구석마저 타임 어택 특전이 챙겨 주고 있었으니까.
여러모로.
공방에 매달리기 딱 좋은 환경이었다.
* * *
[‘방어구 강화석’을 사용합니다.]
《방어구 강화석》
- 등급 : 특별
- 분류 : 소모품
- 설명 : 방어구에 한하여 특수한 옵션을 추가해 주는 아이템입니다. 사용 시 ‘물리 피해 감소’, ‘속성 피해 감소’, ‘신체 능력치―내구 증가’, ‘방어 관련 지속형 기술’ 이 네 가지 사항 중 하나가 무작위로 부여됩니다.
- 옵션 : 특수 기능 부여
[강화할 아이템을 지정해 주십시오.]
“복원형 의복.”
천천히 동이 트는 무렵.
새벽 일찍 일어나 간단한 스트레칭으로 밤사이 굳은 육체를 풀어 준 나는 갈증으로 타들어 가는 목을 축이며 아이템 강화를 시도했다.
[선택이 완료되었습니다.]
[‘복원형 의복’이 강화되었습니다.]
‘복원형 의복’과 ‘방어구 강화석’.
각기 4일 차와 5일 차 타임 어택 특전을 통해 획득한 물품들로, 특히 저 ‘복원형 의복’은 내가 아끼는 물건이기도 했다.
옵션이 대단해서라기보단.
《복원형 의복》
- 등급 : 특별
- 분류 : 방어구
- 설명 : 착용자의 신체를 스캔하여 자동으로 변형되는 옷. 풀 플레이트 아머 등 방호성 면에서는 약간 떨어지지만, 편의성만큼은 무엇과 비교해도 뒤처지지 않는다.
- 옵션 : 지속형 기술 ‘자동 변형’ 상시 적용 / 상시 자가 수복 / 내구 9% 상승 / 내구 +13
- 강화 : 물리 피해 11% 감소
이로써,
더는 ‘순간 회귀’를 쓰더라도 맨살이 노출될 일이 없는, 키메라의 최대 단점이 보완된 덕분이었다.
스윽―
슥―
탁!
가지런히 개어 두었던 옷을 입고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곧 6일 차 ‘이벤트 : 절망의 파도’가 개최됩니다.]
[때가 도래했습니다.]
[당신의 위치를 기준으로 ‘7km 내’에 존재하는 생존자를 탐색합니다.]
[…완료!]
[검색된 인원 : 열세 명]
[다음 검색까지 남은 시간 : 300분]
때마침 출력되는 메시지.
“벌써 6일 차인가.”
“그러게요. 어제만 해도 2일 차니 3일 차니 했던 거 같은데…….”
“다 끝나면 하루는 늘어지게 쉬는 거 어때요?”
내 옆으로 따라붙으며 허공을 응시하던 한세정들은, 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에 활기를 띠었다.
난이도와는 별개로 피로도가 무지막지하게 쌓이는 이벤트라 1초라도 빨리 종결짓고 싶은 모양.
원앙 부대 쪽은 완전히 축제였다.
“이틀이다, 이틀!!”
“형님, 내일만 지나면 이제 도윤 형님 데리고 복귀하는 거요?!!”
“아으으……. 끝이 나긴 하는구나…….”
“진짜 눈물이 다 난다…….”
“아직 안 끝났어, 이 자식들아.”
협력.
그러나 갑과 을이 극명하게 갈린 극단적 수직 관계라 이틀만 더 참으면 자유의 몸이 될 수 있다는 점이 유독 달가운 듯했다.
[더불어 시작 전 6일 차에 적용된 「설정」에 대하여 알려 드립니다.]
하여 전반적으로 공지에 대해 즐겁게 받아들이는 와중.
더욱 기쁜 소식이 날아들었다.
다름 아닌.
[‘차원 상점’ 내부에 「기부처」가 신설됩니다.]
[해당 부서를 통하여 ‘차원 상점’의 레벨을 올릴 수 있습니다.]
‘차원 상점’ 업그레이드에 관한 이야기였다.
‘특수 퀘스트’ 5회 클리어로 2레벨이 된 지도 한참이 지난 바.
게다가 ‘이벤트 : 절망의 파도’로 2등급 근원석도 엄청나게 풀렸고, 슬슬 3등급 근원석마저 수급되는 형편이라 상위 단계로의 승급을 희망하고 있었는데.
드디어 올 게. 왔다.
‘3레벨은 뭘 구할 수 있으려나.’
특별 등급은 당연히 있을 테고.
혹시 유일 등급 아이템도 판매하려나?
궁금하네.
머릿속으로 딱 그러한 사색에 빠져 있던 참이었다.
[또한.]
“음?”
본래라면 괴물들의 스탯이나 기술 위력 등이 상승한다는 문구가 떠야 할 대목이거늘.
마침표 대신 쉼표가 찍혔다.
뭐지?
의아한 눈으로 정면을 주시하니 이내 뜸을 들이듯 흐렷된 뒷말의 내용이 공개됐다.
[지금으로부터 열두 시간 후, 〈차원 : 테라〉 곳곳에 「축제의 문」이 세워질 예정입니다.]
[생존자 전원에게 〈이벤트 전용 퀘스트 : 페스티벌〉이 부여됩니다.]
《이벤트 전용 퀘스트 : 페스티벌》
- 이 퀘스트는 오로지 ‘이벤트 : 절망의 파도’ 중에 진행 가능합니다. 본 퀘스트의 과제는 〈차원 : 테라〉 전역에 생성될 「축제의 문」을 찾아 개방하는 것으로, ‘선착순 개방자 10,000명(국가 : 한국)’에 한하여 특별한 보상이 주어집니다. 실패 및 불참에 따른 불이익은 없으나, ‘무궁무진’한 기회를 붙잡길 바랍니다.
└현재 확인된 ‘축제의 문’ 개방자 : (0/10,000)
└‘축제의 문’ 생성까지 남은 시간 : 11시간 59분 59초
“…퀘스트?”
놀랍게도.
퀘스트에 대한 얘기였다.
그것도.
생존자 전원을 대상으로 하는 선착순 퀘스트.
보상으로 뭘 내어 줄는지는 알 수 없으나.
말미에 ‘무궁무진한 기회’란 미사여구를 붙이면서까지 대대적으로 광고하는 걸로 보아 정말 어마어마한 보물이라도 내어 줄 기세.
그 말인즉슨.
“해야 한다.”
무조건 참여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기적의 조각’ 완성과 신(新)한국 정부 및 성십자가 클랜을 향한 복수극, 이 두 가지를 이뤄야 하는 나로서는 저 축제에 필참해야 할 뚜렷한 사유가 존재했으니까.
뭣보다.
“10,000명이라.”
저 정도면 거저 주는 난이도였다.
한국 전체를 두고 100명을 선발하는 순위 발표식에서도 왕관을 내려놓은 적이 없던 나다.
사실상 다 차려진 밥상에 수저만 들고 가면 되는 미션인데.
“당연히 도전해야지.”
이만하면 포기하는 게 더더욱 이상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