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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메라의 기억법-142화 (142/232)

142화

“꾸이이이이익!!”

귓가를 찌르는 괴성.

지렁이인지 돼지인지 구별이 안 되는 괴물에게 일격을 먹인 나는 잠시 흐트러진 호흡을 가다듬고자 잠시 뒤로 물러났다.

시야를 가득 채웠던 독무(毒霧)가 서서히 걷혀 가는 전장.

“꾸이이익!!”

쿵!

쿠웅!

그 덕에 통증을 호소하는 괴물의 표정이 숨김없이 드러났다.

거진 5분여를 쉬지 않고 공격한 결과가 허탕이 아니었음을 증명하는 광경에 절로 피어나는 미소.

솔직히.

많이 걱정했었다.

겉으론 담담한 척, 평온한 척 불안한 속내를 감추려 안간힘을 썼으나.

‘…해서 이번 전투에선 너희 셋에게 커맨더급 개체를 한 마리씩 붙일 예정이야.’

무려 커맨더급 개체와의 일대일 결전을 준비하라는 아윤 오빠의 말을 처음 들었을 땐 심장이 튀어나올 것처럼 긴장됐었다.

패배할까 봐.

혹시라도 크게 다치거나 목숨을 잃게 될까 봐 겁이 나서?

그럴 리가.

함께 지명된 이령이나 재우 씨는 어떨지 미지수지만, 적어도 내가 긴장한 이유는 하나였다.

단순히 좋은 공부가 되길 바라는 아윤의 계획에 ‘승전’이라는 기대 이상의 성과로 답해 주고 싶었으니까.

어렵다는 건 안다.

스탯 면에서는 비슷할지라도 모든 스킬이 원본(原本)급인, 그것도 체화(體化) 직전의 마스터 단계로 추정하는 기술들을 보유한 적에 비해 나는 이제 막 ‘용독술’과 ‘베놈 포그’가 사본(寫本) 등급을 벗어난 레벨에 불과했기에.

정상적으로 붙는다면 열 번에 일고여덟 번은 패배가 예견되는 베팅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목표를 잡은 까닭은.

‘나라면 할 수 있다.’

내가 가진 한 방.

제아무리 우주 장벽을 건너 지구를 침공해 온 괴물들일지언정 무시 못 할 ‘독(毒)’이라는 힘을 신뢰했기 때문.

본디 독이란.

자신보다 강한 자를 해하기 위한, 절대적인 무력 간극을 메꾸기 위해 개발된 비수.

나는 그 점에 중점을 뒀고.

‘거의 다 왔어.’

현재에 이르렀다.

전신이 보라색으로 채색된 괴물.

중독 증세가 완연한 모습에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눈앞에 새겨진 빅토리라는 글자가 점점 선명해는 것 같았다.

허나.

방심은 금물.

나는 흠잡을 데 없는 완벽한 승리를 원했다.

이령이도 있고, 재우 씨나 지유, 지운이도 있지만… 여전히 제일 믿음직한 사람은 나라는 걸 되새겨 줄.

고로 실수는 사절이다.

그리 다짐하던 직후였다.

“꾸이이이익!!”

후우우욱!

투우우웅!

“……?!”

갑작스레 괴성을 내지른 괴물이 몸뚱어리를 웅크렸다 펴며 그 반동으로 스프링 튕기듯 하늘로 뛰어올랐다가.

슈우우우우욱―

콰앙!!

맨땅에 헤딩이라도 하는 것처럼 지면에 대가리를 처박았다.

무슨 짓이지?

혹 정신 이상을 유발케 하는 ‘착란액’으로 인한 발광인가 의심하던 찰나.

콰직!

콰드드드득―!!

괴물의 육신이 삽시간에 사라지기 시작했다.

‘…아!’

평범한 방식으로는 도저히 전세를 뒤집을 수 없을 거라 판단한 놈이 본인에게 유리한 지하로 스테이지를 옮기려는 것이었다.

막아야 한다.

가만히 내버려 뒀다가는 위험해질 거라는 본능적인 직감에 앞뒤 재지 않고 마력을 끌어모으며 몸을 던졌다.

[가속]

타앗!

맹렬한 속도로 뛰쳐나가 뻗는 칼날.

[독살]

우우우우웅―!!

찐득하게 변색된 기운이 흉흉한 기세를 뿜어내며 초승달을 그렸으나.

후우우욱―

퍼억!

“……!”

철판이라도 너끈히 갈라 버릴 듯했던 포스와 달리 검은 괴물의 근처도 가지 못했다.

푸화하하하학!!

흐트러졌던 숨을 정리한다고 스스로 거리를 벌렸던 데다 놈이 주둥이로 파먹은 흙과 바위를 항문으로 배출해 일정 반경 내의 접근을 봉쇄하는 장벽을 만든 탓이었다.

기술의 일종인지 저지력이 ‘안전지대’ 방벽에 버금가는 수준.

어찌어찌 뚫어 냈을 시점엔 이미 도주한 뒤였다.

이에.

후화하학―!

나는 일말의 망설임 없이 온몸의 감각을 일깨우며 자세를 바로 했다.

당혹스러운 기분이 가슴을 짓누르고 있으나.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후회와 복기는 임무가 종결된 다음에 해도 충분한 법. 일단은 정신 바짝 차리고 반격에 대응하는 게 먼저였다.

더군다나.

‘아직 승기는 나한테 있어.’

돌발적인 변수 발생을 감안하더라도 매우 매우 낙관적인 실정이었다.

땅밑으로 숨는다 한들.

체내에 파고든 독기로 육신은 계속해서 바스러지고 있거니와 놈은 보통의 괴물과 다르게 불리하다고 도망칠 수도 없었다.

‘어택 or 데스’만이 존재하는 시스템에 얽매인 상태였으니까.

즉.

‘기다리면 온다, 반드시……!’

시간은 이쪽 편이었기에, 나로서는 다가올 기습만 대비하면 되는 일방적인―

쿠궁!

‘왔다!’

[단거리 공간 이동]

번쩍!

콰아아앙!!

일순간 피부를 자극하는 섬뜩한 느낌에 망설이지 않고 문을 지나자마자 굉음이 울려 퍼진다 싶더니 대지가 박살 나며 거대한 물체가 하늘로 솟구쳤다.

하울링을 동반하며 등장한 괴물…이 아니라.

투후우우웅!!

‘……!’

거석과 모래가 뒤섞인 포탄이였다.

눈속임.

공간 이동으로 피할 거란 내 움직임을 예측해 1차적으로 페이크를 걸고.

슈우우욱―

탁!

“꾸이이이이이익!!”

콰아아앙!!

한 타이밍 늦게 돌출해서 대미지를 극대화시킨, 일반적인 짐승은 꿈도 못 꾸는 트리키한 플레이였다.

만약.

[단거리 공간 이동]

“어딜!”

번쩍!

연속 이동이 불가했다면 말이다.

후우우욱―

터업!

위기를 감지한 즉시 펼쳐진 탈출에 벌려졌던 이빨은 허무히 허공을 부수는 데 그쳤다.

아슬아슬했으나 단지 그뿐.

날렵한 스피드보다는 체중이 실린 근력 올인의 느릿느릿한 속력으로는 이게 한계였다.

내가.

그리고 우리는 세 마리의 커맨더들을 놓고 상대를 정할 때 아무렇게나 고르지 않았다.

정보라고는 외형이 전부였으나.

나름의 근거와 기준을 두고 선택한 대상이었기에 지금의 난관도 유려하게 파훼해 낼 수 있었고.

“이젠 내 차례야.”

스윽―

[인첸트―포이즌]

[산공독]

[강격]

[가속]

[독살]

이는 곧 덩그러니 노출된 뱃가죽에 칼날을 박아 넣는 기회가 되었다.

쐐에에에에엑―!

콰직!

살갗을 찢고 틀어박힌 검신.

이중삼중으로 더해진 버프가 제 위력을 고스란히 발산하며 괴물의 몸통을 헤집고 빠져나오자 놈의 입에서 원통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꾸이이이이익!!”

회심의 한 수가 실패한 것과 이어진 카운터가 한데 맞물리며 더더욱 치명적으로 작용한 듯.

재차 땅속으로 달아나지도 못하고 그대로 땅바닥에 쓰러져 바들바들 떨기만 했다. 일시적으로 마력 유동을 제한하는 ‘산공독’의 영향일지도 몰랐다.

다시 말해.

[독살]

“하아!!”

여기서 마무리를 지어야 한다는 의미였다.

슈우우우우욱―

콰직!!

* * *

콰직!!

“…허.”

끔찍한 파육음을 내며 결국 커맨더급 개체의 머리통을 꿰뚫은 한세정의 검격에 나는 경악성을 터트렸다.

저걸 기어코 잡아 내다니.

최후에 최후까지 도와주러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많았는데.

확실히.

“달라.”

한세정은 나머지 네 사람과 달랐다.

‘고유 능력’의 사기성이 한몫하긴 했지만, 그걸 고려해도 분명 심상치 않은 실력.

방향을 잘 정한 덕택일 공산도 컸다.

독공을 수련하며 파워 밸런스를 어느 정도 패스할 수 있게 되었으니.

“뭐가 됐든 잘하는 걸 보니까 마음은 놓이네.”

누나의 그림자가 덧씌워졌던 여인이라서였는지 한세정이 잘하는 걸 보니 퍽 기꺼웠다.

안심도 되고.

“오빠! 저 해냈어요! 제가 잡았어요!!!”

괴물의 체액과 핏물을 뒤집어쓴 채로도 방방 뛰며 나부터 찾는 걸 보면 귀엽기도 하고.

단지.

“헤헤…….”

웃는 얼굴과 마주하고 있으면 변함없이 어색했다.

호감을 넘어선 애정이 조금은 부담스러워서.

혹자는 이런 내게 받아 주면 그만 아니냐, 답답하게 뭘 그러냐고 얘기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아직 연애에 에너지를 소비하고픈 생각이 없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잠깐의 즐거움은 물론 행복이라는 감정 자체를 멀리할 작정이다.

미안했다.

동생을 고통으로 점철된 삶에서 빼내 주고자 제 손으로 짧은 생에 마침표를 찍은 누나를 두고 행복해진다는 게.

혼자만의 압박감일지라도 개의치 않는다.

‘누나와 함께하기 전까지는……!’

나는 작심했고.

조만간 한세정에게도 이 다짐을 명확하게 밝힐 요량이다. 몇 날 며칠이 걸릴지 확신하기 힘든 나 같은 놈 말고, 서로 편히 사랑해 주는 다른 사람을 찾으라고.

만일.

그 과정에서 상처 입은 한세정이 날 떠난다 해도…….

“어쩔 수 없지.”

괜찮았다.

운명이든 인연이든 우리에겐 관련 없는 이야기였다고 여길 거니까.

그거면 되겠지.

“오빠!”

“…수고했어.”

“보셨죠? 저! 제가 커맨더급 사냥한 거! 제가 말이죠…!”

아마도.

* * *

[축하합니다!]

[두 번째 파도를 ‘모두’ 막아 냈습니다.]

[다음 파도가 밀려오기 전까지 공백기가 주어집니다.]

[다음 검색까지 남은 시간 : 453분 38초]

한세정이 ‘어스웜’이라는 명칭의 커맨더급 개체를 처치한 이후.

안타깝게 패배한 조이령과 곽재우를 1조, 신지유와 신지운을 2조로 묶어 남은 두 마리를 재차 맡긴 전투는 대략 한 시간여가 흘러서야 엔딩을 맞이했다.

내가 묶어 두는 동안 휴식을 취한 터라 이 대 일로는 무난하게 목을 베어 낸 넷.

그치만 내심 단독으로 승부를 본 한세정이 부러웠는지.

근원석 수거 및 분류 작업을 마치자 내 옆에 들러붙어 은근한 눈치를 내보였다. 여건이 된다면 복용을 하고프다는 간절한 눈빛.

뭐.

어차피 흡수 외에는 딱히 쓸 만한 부분이 없는지라.

“이건 저기 주고.”

“제가 갔다 오겠습니다.”

근원석 정리를 도운 원앙 부대에 2등급으로 500개를 내어 주고는 여유분을 모조리 스탯 성장에 투자했다.

3등급이 세 개, 2등급이 2,300여 개에 1등급이 800개가량 되던 양.

“각자 180까지 올려.”

비용이 꽤 나가긴 하겠지만, 폭업을 하기엔 모자랄 게 없었다.

나아가.

금번에는 아예 특수 능력치도 일정량 이상 도달하게끔 투입했다.

2차 환골탈태를 하고 나면 정신 관련 스탯이 150이나 주어진다지만, 그걸로도 부족한 게 사실이라 이참에 최소한의 기반은 마련해 두자는 취지였다.

때문에 2등급 근원석이고 1등급 근원석이고 죄다 소멸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중급 물약 세트’도 한 묶음 갖춰 둬야 했고.

통장에 입금됐던 월급이 눈 깜짝할 새에 없어지는 건 종말 이전이나 작금이나 동일했다.

그렇게.

이래저래 할 일을 다 하고 나선 다시금 도심으로 발걸음을 떼었다.

공략법도 알았으니.

세 번째 파도를 맞이하기 전에 미궁을 털어 보고자 길거리를 배회했다. ‘완성된 지도’가 있기에 수색은 수월했고, 다음 파도가 몰아치기 직전까지 세 곳이나 파괴해 공적치를 쏠쏠하게 챙길 수 있었다.

각기 조이령, 곽재우, 신지운에게 챙겨 줬고.

제외된 한세정은 범위기가 있는 걸 활용해 세 번째 파도를 시원하게 몰아 먹으며 균형을 맞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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