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화
[괴물 사냥꾼의 도살검]
[괴물 사냥꾼의 가죽 갑옷―상의]
[번치의 날갯깃 장식]
다소 극단적이기까지 했던 1차 개봉기를 파하고 원앙 부대원들의 특전으로 시선을 옮겼다.
이쪽은 무기나 방어구, 장신구 등 종류가 다양했다.
나쁘게 말하면 온갖 군데를 손봐야 한다는 뜻이라 썩 좋은 의미로 해석하긴 어렵겠지만…….
뭐.
그래도 볼거리가 많으니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리라는 심정으로 관찰하던 와중에 하나 의아한 점이 발견됐다.
“…비범?”
그건.
앞선 여섯 개와 뒤의 일곱 개 아이템의 ‘등급’이 다르다는 것이었다.
‘특별’과 ‘비범’으로.
혹시 잘못 보았나 싶어 다시 확인해 봤으나 오인이나 착각은 아니었다.
“왜지……?”
몇 번을 봐도, 몇 개를 봐도 분명 달랐다.
의아했다.
사유가 뭐길래, 같은 3일 차 특전의 등급이 이리 갈리는 건지.
그저 단어 차이에 지나지 않는다고 넘어가기에는 두 등급 간의 갭이 너무나도 큰 터라 가급적이면 원인을 규명해 보고자 머리를 굴렸다.
부지불식간에 히든 트리거 같은 걸 건드려 본래는 비범 등급으로 나와야 할 아이템이 특별 등급으로 업그레이드된 거라면 앞으로도 계속 이용하여야 하니 말이다.
하여 곰곰이 생각해 본 결과.
대략 두 가지.
1일 차부터 끊기지 않고 연속으로 특전을 획득했다는 점과 최초의 미궁 정복자 타이틀이 제일 유력한 가설로 떠올랐다.
“어느 쪽이 맞을는지는 내일이 돼 보면 알 수 있겠지.”
개중 뭐가 옳은지는 하루를 기다려 보기로 했다.
4일 차가 되면 원앙 부대원들도 3일 연속 취득자 신분이 될 터이니 그때 답이 나오겠지.
혼자 자문자답을 하며 결론을 내린 나는 고개를 끄덕이곤 도로 아이템 정보 창에 눈길을 주었다.
“챙길 만한 건 이거 두 개려나.”
형태와 옵션 등.
공을 들여 여러모로 꼼꼼하게 체크하고 나니, 나머지 일곱 개 사이에서 우리가 쓸 만한 건 기술서 한 권과 ‘번치의 날갯깃 장식’이라는 장신구로 줄여졌다.
《번치의 날갯깃 장식》
- 등급 : 비범
- 분류 : 장신구
- 설명 : 행성 ‘아우카(Auca)’의 지배종 「번치」의 날갯깃에 여러 가지 주문을 더하여 제작한 장식이다. 투구에 부착하는 형식으로 마력이 연동되면 착용자에게 하늘을 나는 것 같은 빠른 발놀림을 선물해 준다고 전해진다.
- 옵션 : 순발력 +13 / 하루 3회 사본(寫本) 등급 기술 ‘헤이스트’ 발동 가능 / ‘상황 : 추락’ 시 피해 일부 감소
“한세정에게 주면 되려나?”
‘번치의 날갯깃 장식’은 속도전에 능한 한세정에게 딱 알맞은 물건이었다.
암살자의 길에 가까워지고 있는 그녀라면 이 아이템의 효율을 십분 끌어내리라.
혹은.
반대로 비교적 속도전에 취약한 곽재우에게 전해 주는 것도 좋아 보였다.
저 ‘헤이스트’의 효능이 어떠한지는 모르겠지만.
‘가속’을 빼면 이렇다 할 이동기가 없는 그의 단점을 제법 커버해 주겠지.
“그래, 이건 곽재우에게 주는 게 낫겠어.”
검은색과 하얀색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날갯깃을 붙잡고 계산을 하던 나는 장식을 곽재우의 이름이 적힌 상자에 담은 뒤.
스으윽―
“이건…….”
턱―
추가로 옆에 있던 ‘신지유’의 상자를 가져와 그 안에 유일하게 가치가 있다 평가한 기술서를 넣었다.
이걸 이쪽에다 두는 연유는 명료했다.
‘칼론드 기사단 단원 배지’가 조이령 맞춤이었던 듯이.
《계약서 : 정전기》
- 등급 : 비범
- 분류 : 소모품
- 설명 : 환계(幻界)의 수많은 존재 중 ‘전격’ 속성의 작은 벼락 「정전기」와 인연을 맺어 주는 계약서. 신체 능력 ‘소환’과 ‘교감’에 따라 소환수의 힘이 달라진다.
- 옵션 : 탐독 시 사본(寫本) 등급 기술 ‘정전기 소환’ 습득
이 역시 신지유가 소화해야 최고의 성능을 낼 수 있었으니까…….
도깨비불을 얻었던 어제와 마찬가지였다.
기분 탓인가.
사건 사고가 하도 잦아서 그런지 어제라기보단 한 1~2주전의 일처럼 느껴진다만.
아무튼.
이건 조서웅이라고 하는 대원이 특전으로 받은 기술서였다.
그는 초목의 정령 드라이어드가 감시 역을 맡았을 때 거기서 탈출하려던 마음이 상극 속성인 도깨비불과의 계약서 지급으로 연결됐던 인물로.
원앙 부대 내에서도 유독 나를 무서워하는 사람이었다.
필시.
대장인 정도윤을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두들겨 팬 일 때문에 공포가 극대화된 모양인데. 그래서 많고 많은 소환수 중 ‘전격 계열’이 튀어나온 듯했다.
기본적으로 이 타임 어택 특전은 ‘대상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채워 주려는 용도.
따라서 시스템은 조서웅에게.
아윤이란 작자가 그토록 두렵다면 최근 어인 머메른의 피부를 이식하며 상대적으로 전격 속성에 취약해졌으니 그걸 공략해 보라고 속삭인 것이다.
“재밌네.”
이런 걸 두고 고약하다고 표현하는 건가.
다만.
싫지는 않았다.
오히려 기꺼웠다.
조서웅의 공포가 커지면 커질수록 내 아킬레스건을 노릴 비수도 점차 날카로워지는 만큼. 그걸 잘만 역이용하면 오히려 약점이 뭔지, 어떻게 해결하는지 방법을 알게 될 테니까.
설령 두려움에 잠식되어 미쳐 날뛴다고 한들 실력 격차가 워낙 심대한지라 위험해질 형편도 아니니.
나로서는 쌍수 들고 환영해야 할 상황이었다.
* * *
띠링―!
[다음 검색까지 남은 시간 : 0분]
[때가 도래했습니다.]
[당신의 위치를 기준으로 ‘3km 내’에 존재하는 생존자를 탐색합니다.]
[…완료!]
[검색된 인원 : 열세 명]
[다음 검색까지 남은 시간 : 500분]
[파악된 인원수에 걸맞은 크기의 파도가 들이닥칩니다.]
시간이 흐르고.
어느덧 3일 차 두 번째 파도가 몰려왔다.
커맨더급 개체가 셋으로 불어난 이번 교전에서 핵심은 한세정들과 커맨더급의 일대일 전투.
“한세정, 조이령, 곽재우. 셋이 선발대야. 지유는 골렘들과 전체를 담당하고, 지운이는 지유 가드해. 최홍진, 너와 원앙 부대는 입구에서 거점을 공격하는 놈들만 막아.”
일명 경험치 쌓기를 위하여 지시를 내리자 짧게 대답한 이들이 각자의 포지션을 빠르게 흩어져 무기를 꼬나쥔다.
그리고 발발한 싸움.
전황은 계획대로 흘러갔다.
“내가 가운데로 갈게!”
“나는 왼쪽.”
“제가 오른쪽, 알겠습니다. 다들 조심하십시오.”
“재우 씨도 조심해!”
“예.”
우선적으로 지목된 셋이 튀어 나가고.
우우우우웅―!!
“후우우…….”
곽재우가 빠져 빈 어그로꾼 역할을 맡고자 한 발자국 앞으로 걸어 나온 신지유가 가볍게 호흡을 내뱉고는 전방위적으로 마력을 개방했다.
“드라이어드, 도깨비불, 눈꽃송이, 실바람, 땅지기, 정전기.”
하나하나 호명할 때마다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내며 생성되는 한 마리의 정령과 다섯의 소환수들.
그러나.
소녀는 이걸로 만족하지 않는 듯.
“더블링.”
자신이 가진 최고의 패를 함께 꺼내 들었다.
하루에 한 번.
소환수의 숫자를 두 배로 불리는 주문을.
내가 옆에 있다지만.
공적치를 균등하게 분배하고자 되도록 덜 나서려고 하는 데다가 주력인 셋이 빠져 실상 단신으로 광범위한 전장을 책임지는 신지유로서는 카드를 아끼면 안 된다고 여긴 듯싶었다.
좋은 자세였다.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쓰지 않으려 함은 어디까지나 환경적으로 급박하지 않은 덕분이다.
허나.
항시 생사의 갈림길에 서는 입장에선 호랑이 잡는 칼이든 용 잡는 칼이든 총동원해야 하는 바.
그래야 실수가 나오더라도 죽음을 면할 수 있으리니.
“퍼부어.”
전력을 다한 소녀의 작은 입에서 발포 명령이 떨어진다.
그것이 곧.
지옥문을 개방하는 순간이었다.
촤르르르륵!!
기하급수적으로 자라난 초목이 일대를 뒤엎고, 그 위로 얹어진 불길과 바람이 연옥의 화마(火魔)를 불러온다.
위풍당당하게 등장했던 괴물들은 금세 아수라장이 된 공간에서 도망치고자 발버둥을 쳤으나 불가능했다.
쿠웅―
쿠구국구구구궁!!
좌측은 땅지기들이 세워 올린 암벽이.
촤아악!
촤좌좌좌좌좍!!
우측은 눈꽃송이들의 백색 빙벽이 가로막았으며.
“내리쳐!”
파직!
파지직!
콰아아앙!!
콰앙!
새로 합류한 정전기들이 뽑아 든 수백 줄기의 벼락도 전신을 마비시키며 자연재해를 방불케 하는 항거 불능의 폭력을 선사하는 중이었다.
아득바득 이 악물고 빠져나와도 문제였다.
“그워어어어어어!!”
“그워어어어어!!”
쿵!
쿠웅!
십이지신(十二支神) 12기, 수호 기사 1기, 수호병 1기.
더불어.
자본을 쏟아부어 제작한, 주원료인 흑철의 색을 따 편하게 ‘흑기사’로 명명한 3등급 골렘 1기.
도합 15기의 골렘들이 전 방위를 에워싸고서 창칼을 휘두르고 있었다.
거기에 원앙 부대의 협력과 호위를 가장한 신지운의 칼부림까지 합쳐지니, 수천 단위의 괴물들이 모여 있음에도 파괴적인 위용은커녕 일방적인 학살이 이루어졌다.
늘 그러하듯이.
[단거리 공간 이동]
번쩍―
그 어시스트를 발판 삼아 달려 나간 한세정이 첫 주자로 커맨더급 개체와 대면했다.
쓸데없는 변수를 제거하고자 개전과 동시에 미리 설계해 둔 장소로 떼 놓았기에 주위 신경 쓰지 않고 온전히 적에게만 집중 가능한 현장.
지렁이를 닮은 듯한 놈의 머리 위로 이동한 그녀의 초수는 무대를 송두리째 집어삼키는 독이었다.
[베놈 포그]
[용독술―하독편 : 착란액]
*착란액 : 정신 분열 증세를 야기하는 액체 독
보랏빛으로 물든 안개에 교묘히 액체 독을 섞어 분사하더니 과감하게 그 안으로 뛰어든다.
독(毒)이란 적아를 가리지 않는 양날의 검.
설사 주인이라고 할지언정 안전을 장담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녀는 상관없다는 듯 담담하게 강행 돌파했다.
목에 걸린 구슬을 믿었고.
화아악!
[‘피독주’가 체내로 침투하는 독을 흡수합니다.]
신뢰를 배신당하는 일은 없었다.
‘하앗!’
[독살]
후우우우욱―!!
콰앙!!
칼날이 파고든다.
“꾸에에에에에엑!!”
생긴 건 지렁이 주제에 돼지 멱 따는 소리를 내는 괴물.
동굴을 연상케 하는 거대한 주둥아리에서 튀어나온 촉수와 이빨로 비명을 토해 내며 고통에 몸부림치는 놈을 목도한 한세정은.
[단거리 공간 이동]
[베어 내기]
번쩍!
서걱!
[단거리 공간 이동]
[기초 투척술―삼중 투척]
번쩍!
콰드득!
[단거리 공간 이동]
번쩍!
[쌍독사]
“하앗!”
콰아아앙!!
본인의 장기를 100% 발휘하며 괴물을 난도질해 갔다.
“꾸이이이익!!”
후우웅!
쿵!
콰드드드드득!!
괴물이 제 몸을 비틀며 사방을 부수고, 주둥이로 드래곤 브레스인 양 모래 폭풍을 쏘아 내 반격에 나섰으나.
“어딜.”
[단거리 공간 이동]
번쩍!
“꾸이이이이이이익!!”
쿠우웅!!
자유자재로 공간을 넘나드는 그녀를 붙잡기란 하늘의 별 따기.
그 압도적인 공세에.
‘잡아 내나……?’
팔짱을 끼고 관전하던 내 눈동자에 빛이 반짝였다.
힘들 거라고 예상했는데.
어쩌면 단독으로도 커맨더급 개체를 찢어 죽일지 모르겠단 생각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었다.
괄목상대(刮目相對).
묵묵하게 갈아 왔던 칼날은 어느새 무엇이든 베어 낼 명검이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