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화
[연속 찌르기]
슈우우욱!
콰직!
콰드드득!
콰득―
“케에에에…엑…….”
쿵!
털썩―
[‘미궁의 지휘관’을 처치했습니다.]
[‘모든 조각’을 습득합니다.]
[〈미궁 전용 퀘스트 : 조각 완성〉의 과제가 달성되었습니다.]
[‘미궁 전체도’가 완성되었습니다.]
[감춰져 있던 「깃발」의 위치가 드러났습니다.]
간결한 한 수에 신체 곳곳이 뚫려 나간 놈이 태도(太刀)를 떨구며 쓰러지는 걸 끝으로 고요해진 전장.
나는 승전 축하 메시지와 함께 확 밝아지는 맵을 슬쩍 체크하고는 천천히 내려오는 신지운의 손을 잡아 주며 전반적인 상황에 대해 전해 들었다.
“가장 취약한 상대라…….”
“그 메시지가 출력되더니 눈앞에 소환되더라구요.”
그 과정에서 이 사달의 원인이 전적으로 시스템에 의한 사고였음을 알게 된 나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혹시라도 자만심이 극에 달해 빚어진 자발적인 교전이었으면 어쩌나 내내 우려했거늘.
종말의 여파로 철이 일찍 든 아이라 그런지.
나이는 어릴지언정 충분히 어른스러웠다. 이걸 좋다고 박수 치기는 뭐하지만 말이다.
여하간.
“잘 버텼다.”
덕분에 근심거리가 사라진 나는 한시름 놓은 얼굴로 소년의 어깨를 토닥이며 ‘고주파 신호기’를 누르고는, 적당한 곳에 앉아 본격적으로 궁금했던 점들을 물었다.
“그나저나 어떻게 된 거냐.”
“네?”
“오리지널 기술 신력 발현.”
“아! 그게 말이죠…….”
사고 원인 만큼이나 호기심을 일게 했던 오리지널 기술의 획득 경로와 해당 기술의 정체가 무엇인지.
묻고 싶은 게 너무나도 많았다.
“꿈을 재현하려고 했어요.”
“…꿈?”
“네. 어젯밤에…….”
그 열렬한 궁금증을 풀어 주기 위하여 신지운은 입수 계기부터 차근차근하게 설명을 이었다.
어젯밤에 꾸었던 예지몽을 시작으로 전투 중에 주마등을 체험한 일, 그러다 돌아가신 할머니와의 대화가 유난히 생생하게 떠올라 밑져야 본전이겠거니 하는 결심으로 꿈을 직접 재현해 내는 도박수를 던졌다가 ‘신력(神力)’이 생겨난 결말까지.
과장이나 허세 없이 담담하게 풀어내는 이야기는 상당히 흥미로웠다.
“…해서 할머니 말씀대로 했더니 신력이라는 게 몸에 깃들었고, 형을 부르는 목소리에 반응했어요.”
“흐음.”
전반적인 진행 과정이 상식적인 선을 아득히 벗어난 터라 다소 애매모호한 감이 없잖아 있지만.
어쨌거나.
현실 세계를 몽상 세계와 일치시켜 특수한 능력을 가지게 되다니.
참.
따라 하고픈 욕구가 말끔히 사라지게 만드는 스토리였다.
‘괜찮으면 카피하려고 했더니만… 이건 안 되겠어.’
그러려면 예지몽이 베이스로 깔려야 할진대, 내겐 예지력이 없었으니까.
친가도, 외가도.
하다못해 지인들도 다들 평범한 직업군이라 신(神)하고는 접점이 생길 건더기조차 없는 형편이라 아쉽더라도 이쪽으로는 관심을 끊으리라 결정한 나는 다음 주제로 넘어갔다.
“아, 신력의 정확한 능력이 뭐냐면 말이죠…….”
소모된 체력도 회복할 겸 물 대용으로 포션을 쭉 들이켠 신지운이 입가를 쓱 닦으며 말을 이었다.
2페이지는 ‘신력’과 ‘신력 발현’의 상세한 소개였다.
《제3의 영역 : 신력》
- 설명 : 보통의 생명체가 발휘하는 힘은 대개 두 가지로 정의된다. 나고 자란 육체로 뿜어내는 「체력(體力)」. 육체적 한계를 돌파하게 해 주는 「마력(魔力)」.
허나.
세상엔 ‘보통의 범주’를 초월한, 이른바 제3의 영역으로 불리는 힘들이 더러 존재하니 개중 하나가 바로 이것.
허락된 자에겐 기적을, 허락되지 않은 자에겐 천벌을 내리는 권능. 필멸의 고리를 탈피한 ‘신(神)’의 편린이라 칭해지는 「신력(神力)」이다.
매우 극소수만이 다룰 수 있으며, 설령 그릇이 되었더라도 최소한의 자격을 증명하지 못할 경우 매 사용 시마다 〈반동〉에 내몰릴지니 사용자는 스스로에 대한 고찰을 멈추지 말아야 하리라.
- 현재 신력 적응률 : 1%
*초심자의 행운 적용 중 : 1회에 한해 반동 무시
《신력 발현》
등급 : 특수(特殊)
단계 : -
설명 : 「신력(神力)」의 소유자만이 습득 가능한 기술이다. 체내에 깃든 신의 힘을 빌려 이적을 행한다.
두 개의 화면을 띄우고, 한 자 한 자 빠짐없이 읽어주는 신지운.
나는 머릿속에 새로운 데이터를 입력하며 특히 ‘신력 발현’ 기술에 주목했다.
“이적을 행한다…라.”
짤막한 문구에 대비되는 어마 무시한 단어.
어떠한 전조 현상도 없이 저 멀리 떨어져 있던 나를 전이시켰을 때부터 짐작은 했으나.
확실히 입이 떡 벌어지는 기술이었다.
물론.
‘신력’의 말미를 보아하니 마구잡이로 써먹긴 힘들어 보였다. 반동이라는 제약이 떡하니 붙어 있으니.
몸소 경험해 본 소견상.
함부로 썼다가는 외려 제 목숨에 칼을 들이밀 수도 있는, 그야말로 양날의 검이 될 듯했다.
적응률이란 게 상승하면 반동의 효력도 줄어드는 것 같기는 한데.
“그게 쉬울 리는 없겠지.”
“그렇겠죠……?”
“그래. 그러니까 잘 생각하고 써라. 피시전자인 나조차도 간신히 견디는 수준이었으니까.”
“…네!”
나는 신지운에게 단단히 주의를 줬다.
실수가 곧 죽음이 되는 시대.
더군다나.
한둘쯤 무리해도 상관없는 대규모 집단과 달리 소수 정예로 활동하는 우린 한 사람 한 사람이 제 역할을 다해내며 유기적으로 어우러져야 하는 톱니바퀴였다.
어느 한쪽이 고장 나는 순간 걷잡을 수 없이 망가져 버릴지도 모르는.
고로 설혹 실전에서 사용할 일이 발생한다면 최대한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판단해서 활용해 주기를 거의 경고에 가깝게 신신당부했다.
“당연하죠!”
딱 그에 관한 약조를 받아 내던 와중이었다.
“오빠!! 아윤 오빠!!”
“지운아! 신지운!!”
“누나!”
후방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겹쳐서 공동을 울렸다.
한세정들이었다.
조금 전.
1차 신호를 보냈을 때 곧장 추적에 나섰었는지 2차 신호가 가고 채 5분이 안 돼 합류한 그들은, 나를 발견하자마자 주위를 살피더니 이내 반갑게 손을 흔드는 신지운을 확인하고는 녀석에게로 우르르 몰려갔다.
“지운아, 어디 다친 덴 없어?”
“우리 지운이, 괜찮아?”
“상처는?”
“왜 이렇게 거지꼴이 됐어!”
“아음… 잠시, 잠시만…….”
그러고는 전신을 꼼꼼하게 훑으며 부상 등을 검사하는데.
신지유나 곽재우는 두말할 거 없고 과격하게 표현하진 않았지만 한세정이나 조이령도 내심 막내가 많이 걱정됐던 모양인지 자그마한 부상 하나에도 리액션이 무척 컸다.
역시.
막내는 막내였다.
“가자.”
“네!”
“네!”
“네!”
“네!”
“네!”
그렇게 한동안 열띤 재회의 기쁨을 만끽하던 한세정들을 이끌고 나는 전방위가 훤해진 미궁 내부를 산책하듯 앞장서서 걸었다.
6번 지형 부근에서 ‘깃발’도 모습을 드러냈을 테니 슬슬 집으로 귀환할 시간이었다.
그 전에.
“아, 저기 있네.”
“저건…….”
“곽재우, 수거해 와.”
“예.”
미개봉된 보물 상자 좀 털고.
남겨 둔다고 누구도 칭찬해 주지 않는다.
철컥―
* * *
“저게 깃발인가.”
총 여섯 개의 트래져 박스를 확보해 추가로 ‘천리향’ 세 병과 ‘미궁 전용 횃불’이라는 랜턴 비스무리한 아이템을 챙기고서 당도한 6번 루트의 광장.
뭔가 있어 보이길 원했나.
대개 괴물들로 득실거리던 공간에 커다란 제단이 세워져 있었다. 제법 웅장한 분위기를 연출해 내는 광경에 감상을 하듯 주변을 둘러본 나는 한세정들을 뒤편에 세워 두고 홀로 계단을 올랐다.
만에 하나 있을 위험한 함정이나 기묘한 술수에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저벅―
저벅―
저벅―
성큼성큼 내딛는 발걸음.
차가운 촉감이 몇 차례 다리를 치고 올라올 즈음 5m 남짓한 제단을 등정한 난 언제든 미리미리 대처할 수 있도록 사방에 ‘마력 방패’를 깔아 놓으며 깃발에 팔을 뻗었다.
후우우우욱―
툭!
파지직!
깃대에서 스파크가 튄다.
강제로 찍어누르며 쥐고 뽑아내자 비로소 원하던 메시지가 주르륵 나타났다.
[「깃발」을 쟁취하셨습니다.]
[‘공적치’가 10,000 상승합니다.]
오로지 개인에게 한정된 것과.
[〈미궁〉을 정복했습니다.]
[〈미궁〉 정복에 동원된 모든 이에게 ‘공적치’가 3,000 부여됩니다.]
단체에게 주는 선물.
더불어.
[축하합니다!]
[최초로 〈미궁〉 정복에 성공하셨습니다.]
[놀라운 업적을 달성한 「최초의 미궁 정복자」들에게 ‘특별한 선물’이 주어집니다.]
[보상으로 ‘기술 등급 성장권’을 습득했습니다.]
《기술 등급 성장권》
- 등급 : 특별
- 분류 : 소모품
- 설명 : 사본(寫本) 등급의 기술을 강제 원본(原本)화시키는 주문서다. 단, 격의 성장을 이루고자 한다면 적어도 한계에 도달한 상태여야만 한다.
- 옵션 : 기술 등급 강제 성장
이번에도 최초라는 타이틀에 걸맞은 보상까지.
“호?!”
나는 다른 것보다 마지막 문단이 굉장히 기꺼웠다.
안 그래도 최근 들어 나나 한세정들이나 기술 등급 업을 위해 부단히 공들이는 중이었는데, 설마 여기서 그 과제를 해결할 방안이 생기다니.
겨우 한 장이라 노력은 여전히 계속되어야겠지만.
“이거라도 얻은 게 어디야.”
벌써부터 뭘 업그레이드해야 할지 행복한 고민이 뇌리를 자극한다.
[정산이 완료되었습니다.]
[〈미궁〉이 제거됩니다.]
[〈미궁〉을 생성해 냈던 제물의 생명이 소멸됩니다.]
[해당 개체의 ‘공적치’는 가장 높은 기여도를 쌓은 생존자에게 부여됩니다.]
* * *
후우우우욱―
콰직!
“크아아악!!”
바람을 가르며 휘둘러진 칼날이 누군가의 등판을 꿰뚫자 일대를 쩌렁쩌렁 울리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아으으…….”
고통에 몸부림쳐 봐도 도와주는 이 하나 없다.
되레.
슈우우욱―
서걱!
서슬 퍼런 예기(銳氣)로 번뜩이는 칼날이 재차 날아들어 발목을 자르고, 양팔을 베어 내며, 종국에는 복부에 틀어박힌다.
끔찍한 참극.
“살려, 살…….”
통증을 이겨 내지 못하고 눈물로 뒤범벅된 이가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주절거린다.
제발.
목숨만은 살려 달라고.
부디 죽이지만 말아 달라고 빌고 또 빌었다.
쐐에에에엑!!
콰직!
제 심장이 짓이겨지는 최후까지도.
“…후.”
한 인간의 생명을 짓밟은 남자는 상대의 목숨이 완전히 끊어지고 나서야 참고 있던 호흡을 내쉰 남자는 칼을 뽑아 핏물을 닦으며 고개를 들었다.
그곳에는.
[축하합니다!]
[〈전직 퀘스트 : 빛을 저버린 구원자〉가 완료되었습니다.]
[「아카식 레코드」에 당신의 ‘정보’가 기록되는 중입니다.]
[당신의 희생과 순결한 보상으로 ‘마기(魔氣)’를 습득합니다.]
[‘제3의 영역 : 마기(魔氣)’를 개방했습니다.]
[‘오리지널 기술 : 악마와의 거래’를 습득합니다.]
《제3의 영역 : 마기》
- 설명 : 보통의 생명체가 발휘하는 힘은 대개 두 가지로 정의된다. 나고 자란 육체로 뿜어내는 「체력(體力)」. 육체적 한계를 돌파하게 해 주는 「마력(魔力)」.
허나.
세상엔 ‘보통의 범주’를 초월한, 이른바 제3의 영역으로 불리는 힘들이 더러 존재하니 개중 하나가 바로 이것.
무언가를 죽여 없애는 데에 특화된 「마기(魔氣)」다.
매우 극소수만이 다룰 수 있으며, 설령 그릇이 되었더라도 최소한의 자격을 증명하지 못할 경우 매 사용 시마다 〈반동〉에 내몰릴지니 사용자는 스스로에 대한 고찰을 멈추지 말아야 하리라.
- 현재 신력 적응률 : 1%
선혈로 써 내려간 듯 검붉은색으로 빛나는 문자가 하늘을 뒤덮으며 남자를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