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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메라의 기억법-138화 (138/232)

138화

우리 가문은 대대로 무당을 배출했던 신가(神家)였다.

심마니셨던 조상께서 골짜기 깊은 숲 한가운데에 쓰러져 가던 사당을 보수하시며 연이 닿아 비롯된 혈족의 발원은, 조선 초기부터 이어져 대를 거듭할수록 점차 더 강해져 전국 각지에서 객이 방문해 올 정도로 융성해졌다.

그 세가 정점에 이르렀을 때.

우리 아이들은 특별한 능력을 얻게 되었다.

예지몽(豫知夢).

꿈을 통해 미래의 길흉화복을 점치는 힘이었다.

작게는 일상생활에서 크게는 나라의 국운이 걸린 사건까지. 이에 사람들은 반신반의하다가도 예견하는 것은 반드시 적중했기에 종래에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 지나친 승승장구로 인해 질시와 비난의 눈길을 받기도 했으되.

우리는 개의치 않았다.

신(神)께서 항상 말씀하셨기에.

‘나 ‘모르페우스’가 약속했으니, 너희의 핏줄은 절대로 끊기지 않으리라. 그게 너희의 선조가 베푼 자비의 대가이며, 내가 이 동방 자그한 일국의 핏줄을 지켜보는 이유로다.’

- 어느 가문에 내려오는 비사 中

* * *

시간을 되돌려.

신지운이 날 소환하기 3분 전.

삑―

[‘고주파 신호기’가 작동되었습니다.]

[‘반대편 신호기’로 당신의 위치 정보가 전달됩니다.]

새로 획득한 조각에서 드디어 신지운의 위치를 특정하게 된 나는 반사적으로 ‘고주파 신호기’를 켰다.

한세정들에게 알려 주려는 거다.

‘신지운을 찾았다.’

‘따라오고 싶다면 이곳으로 와라.’

대충 이런 뜻으로.

이는 온갖 불안한 상상으로 피폐해져 갈 신지유의 걱정을 덜어 주기 위해 약속된 행동이었다.

물론.

임시방편이었다.

실제로 신지운을 구출하지 않는 한, 신지유는 다시 무너질 터.

‘괜한 짓 말고 기다려라……!’

[돌진]

쿠웅!

나는 모두의 정신적, 실질적 안정을 위하여 필사적으로 미궁을 질주했다.

어째서인지.

방향을 알아냈음에도 가슴을 가득 채운 조급함은 가라앉을 줄 모른다. 아무래도 신지운이 하필이면 미궁의 지휘관과 전투 중이란 정보 때문인 거 같았다.

가진 힘에 취해 치기 어린 마음으로 일부러 싸움을 걸었는지.

아님.

시스템 또는 피치 못할 사정으로 싸움에 걸렸는지는 물어봐야겠지만, 늑장 부렸다간 신지운의 목숨이 정말로 위험해졌기에 체력이고 마력이고 아낄 틈 없이 전심전력으로 미궁을 주파하려 했다…만.

“케에에에엑!!”

“케르륽!”

“케르르륵!”

“또냐…….”

그게 말처럼 간단하지 않았다.

지휘관급의 능력인지.

가까이 다가갈수록 괴물들의 등장 빈도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탓이었다.

그래 봐야 병사고 기사.

[오르그의 파괴 본능]

우우우웅―!

콰아앙!!

“케에에엑―”

“켁―!”

놈들은 여전히 손짓 한 번이면 지워지는 쭉정이였으나, 중요한 건 이러한 교전으로 진퇴가 지연됐다는 점이었다.

1분 1초가 아쉬운 마당인데.

‘무시하고 달리자.’

결국.

세 번째 격전에서 나는 괴물들이 있든 말든 개의치 않고 달리기로 작심했다.

밀집 대형에 각 무리의 규모가 제법 컸지만.

[순간 회귀 : 스랄레오의 골갑]

우득―

우드드득―

촤르르르륵!!

백색의 갑주를 착용하고서,

[돌진]

문자 그대로 불도저처럼 날 가로막는 장애물들을 깡그리 밀어 버리려 하던 차에―

우우우웅!

“……?”

어디선가 불어온 따스한 기운이 나를 휘감았다.

‘…버프?’

온통 서늘한 사기(死氣)로 빽빽하던 미궁 속에서 온기라니.

무의식적으로 한세정들이 내게 버프를 걸어 줬나 싶어 후방을 돌아봤다.

그러나.

저 멀리 떨어져 있는 일행이 그 먼 거리를 단숨에 이동한다는 건 상식적으로 불가능했다.

즉.

이건 버프보단 미궁 내에서 발산된 디버프일 공산이 크다.

헌데.

저주 따위의 상태 악화형 기술이 원래 이렇게 따듯하고 평안한 느낌이던가?

성십자가 클랜 등 디버퍼들에 노려졌을 땐 더럽고 역겨운―

툭―

[‘오리지널 기술 : 신력 발현’이 발동되었습니다.]

[시전자 〈신지운〉이 대상자 〈아윤〉을 부르는 중입니다.]

[제안에 응하시겠습니까?]

[예/아니오]

“…신지운?”

음?

내가 잘못 본 건가?

생각을 거듭하며 자연스레 방어 태세를 갖춰 가던 나는 뜬금없이 출력된 메시지 내용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저 이름이 왜 여기서 튀어나오는 거지?

게다가.

“오리지널 기술? 오리지널 기술이라고?”

느닷없이 신지운이 언급된 것도 당황스러울 지경인데, ‘오리지널 기술’이라니.

당혹감을 넘어선 황당함에 속내를 입 밖으로 중얼거렸다.

만일.

“케에에에에엑!!”

후우우욱―

카앙!

좌측에서 휘둘러진 칼날이 갑옷을 두들겨 주지 않았더라면, 영영 환상이라 여겼을지 몰랐다.

그만큼 충격적이었다.

“대체, 뭘 하고 있는 거냐……?”

어처구니가 없어진 나는 헛웃음을 토하며 손가락으로 홀로그램 화면을 터치했다.

‘신력 발현’이라는 게 무엇인지.

응하면 내게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신지운이 내게 헛젓거리를 할 인물은 아니니, 뇌리를 짓누르는 의문들을 해소이고 싶어서라도 긍정적인 답변을 보냈고.

[제안에 응하셨습니다.]

[신력에 대한 적응력이 현저히 부족합니다.]

[약간의 어지럼증이 발생할 수 있으니 주의를 요합니다.]

슈우우우우우욱―!!

번쩍!!

그에 맞춰 치솟았던 빛이 사그라들었을 때.

탁―

“…어어엉! 아윤 혀어어어엉!!”

“…신지운?”

나는 벽에 딱 붙어 고래고래 소리치는 신지운과 대면할 수 있었다.

* * *

“너 거기서―”

뭐 하냐.

라는 질문이 턱 끝까지 차올랐으나 마저 잇지 못했다.

채 말을 마치기도 전에.

“케에에에에에엑!!”

후우웅―

콰아아앙!!

미궁의 지휘관.

저 괴물들의 수장이 나를 덮쳤기 때문이었다. 놈은 신지운을 놓쳐 심기가 상했는지 내가 소환되자마자 저돌적으로 달려들었다.

추정치 커맨더급 이상.

놈은 내 예측에 걸맞게 눈부신 실력을 선보이며 잘 벼려진 칼날로 공간을 찢어발겼다.

촤아아악!!

촤악!

도가 그려 내는 궤도마다 솟구치는 마력이 매서운 기세로 다가오는데, 한 대로 직격당한다면 꽤나 치명적인 상처가 예상됐다.

허나.

결코 막지 못하거나, 피하기 힘든 수준은 아니었다. 당장 몇 간 전만 해도 커맨더급 개체를 일대일로 가지고 놀던 나였다.

미궁의 지휘괸이 서너 마리씩 한꺼번에 몰려온다면 모를까.

이런 수준이면 길어야 5분.

짧으면 3분 안에도 죽여 없앨 수 있다.

이.

[신력에 대한 적응력이 현저히 부족합니다.]

[약간의 어지럼증이 발생할 수 있으니 주의를 요합니다.]

빌어먹을 현기증만 아니었다면.

“케에에에에엑!!”

후우우우욱―

쾅!

“크읍!”

분명 ‘약간의 어지럼증’이라고 하지 않았나?

이 증세를 의사들에게 설명하고 약간(若干)이 맞느냐고 물어보면 헛소리, 아니, 개소리하지 말라고 욕을 먹었을 거다.

거진.

뇌진탕에 준하는 대미지가 머리통을 흔들어 젖혀 댔으니.

‘제엔, 젱…!’

뇌에 비상이 걸리니.

“케에에에엑!!”

케에에에엑!!

케에에엑!!

케에엑!!

케엑!

일단 감각이 엉망이 됐다.

괴물의 하울링이 십여 갈래로 나뉘어 귓속을 울렸고, 대각선으로 젖혀 드는 칼날은 분산되어 실체인지 환영인지 분간이 안 갔다.

[마력 방패]

[머메른의 갑주]

우우웅―!

촤르르륵!

‘스랄레오의 골갑’과 ‘머메른의 갑주’.

‘도검불침’과 ‘위력 감소’에 ‘마력 방패’라는 훌륭한 방어 수단이 있어서 망정이지.

까딱하면 대응은커녕 일방적으로 처맞다 패배할 뻔했다.

‘후우, 후…….’

하여 뭘 하기보단 먼저 회복에 힘썼다.

어지럼증을 해결하지 않고서 저 괴물을 상대하는 건 자살행위였다.

[급속 회복]

효능이 있을는지는 미지수이나.

우선 회복기를 발동하고서.

“케에에에엑―!”

부우웅―

쿠웅!

발치를 노리던 칼날을 피해 물러나며 허리춤을 뒤져 포션을 쥐었다.

무려 중급 회복 물약 한 입이 털어 넣길 잠시.

꿀꺽!

달콤한 향기가 체내로 파고들자 골머리를 썩이던 두통이 조금씩 가라앉는다.

아낌없이 투자한 보람이 있음을 확인한 나는.

뽕―!

꿀꺽!

내친김에 한 병을 더 들이부었다.

뭘로 만들었는지.

지구의 약물과 달리 포션은 오남용을 해도 내성이 생긴다거나 부작용이 발발하지 않기에 마시는데 주저할 필요가 없었다.

이 돈 지X은.

콰직―

콰직―

내리 두 병을 더 까고 나서야 제동이 걸렸다.

도합 네 명.

2등급 근원석으로 2백 개가량을 태워 버리고 나서야 멈춘 것이다.

거점처럼 ‘안전지대’로 둘러싸여 보호받는 형편이 아닌지라 단기간에 효과를 보려면 어쩔 수 없는 손실이었―

“아―”

잠시만.

‘안전지대’에 대해 떠들다 보니 생각이 났다.

내가.

이동용이자 휴대용 ‘안전지대 설치기’를 소유 중이라는 걸.

《기적의 조각 : 2단계》

- 등급 : 유일+

- 분류 : 소모품

- 설명 : 이름 그대로 「기적」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신묘한 ‘마석(魔石)’의 조각이다. 본래는 하나의 차원을 온전히 발아래에 둔 지배자에게 수여되는 보물이나, 이따금씩 해당 조각처럼 주인 잃은 별을 떠나 우주를 떠돌다 운명적인 만남을 가지기도 한다.

총 ‘여섯 개’를 모아야 진정한 힘을 발휘하나, 단지 조각을 지닌 것만으로도 적잖은 능력을 손에 넣기도 한다.

현재 ‘두 개의 조각’이 융합된 상태이며 〈특수 퀘스트 : 선택〉을 훌륭히 완수함에 따라 「추가 옵션」이 부여되었다.

- 옵션 : 신체 능력치 19% 상승 / 체력 및 마력의 회복 속도 17% 상승 / 모든 속성 저항력 8% 상승 / 양도 불가 / 소유주 사망 시 무작위 전이

- 추가 옵션 : 특수 기능 ‘임시 안전지대’ 생성 가능

《특수 기능 : 임시 안전지대》

- 설명 : 발동 시 ‘기적의 조각’ 소유자를 중심으로 두는 폭 30m에 이르는 안전지대(Lv. 1)가 생성된다. 어디까지나 임시이기에 지속 시간은 10분이며, 생성 시마다 수식어가 무작위로 결정된다.

온/오프 주문으로 자유롭게 설치하고 해제할 수 있으나, 한번 발동 시 파괴 여부와 관계없이 일주일의 재사용 대기 시간을 가진다.

‘…….’

자주는 고사하고 성십자가 클랜과의 결전 이후로 단 한 차례도.

심지어 신(新)한국 정부에 의해 위기에 놓였을 때에도 쓰질 않았던 탓에 이 기능을 새카맣게 잊고 있었다.

기껏해야 ‘임시 안전지대’로 시간을 얼마나 끌 수 있겠느냐만은, 최소한 포선 한두 병은 아꼈을 건데 그걸 내가 손수 걷어차 버렸다는 자괴감에 못내 허탈했다.

1등급 근원석 한 개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그나마 이벤트 기간이라 다행인가.”

엎질러진 물을 주워 담지는 못해도 최소한 새 물을 사 올 자금 마련의 기회는 있으니. 그걸로라도 실수를 메꿔야겠다.

그 전에.

“케에에에에엑!!”

저 시끄러운 주둥아리부터 닥치게 해 놓아야지.

내가 두통에 시달려야 했던 것도, 포션을 낭비하게 된 것도 결과적으로 저놈이 원이었으니까.

우우우우우우웅―!!

[스트랭스]

[강격]

[가속]

[그림자 걸음]

[오르그의 파괴 본능]

“뒈져.”

후우우우우욱―!

콰아아아아아아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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