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화
‘어디냐, 어디 있는 거냐……!’
탁―
콰앙!
발끝이 지면을 박찰 때마다 폭음이 터져 나올 정도로 온 힘을 다해 뛰고 또 뛰었다.
갈라지고 꼬여 있는 비포장도로.
시야 확보도 안 되는 데다가 워낙 얽히고설켜 있는 탓에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인지조차 알기 힘든 길이지만, 한시도 속력을 줄이지 않고 나아간다.
신지운의 안전.
오로지 그 일념하에 무리해서라도 미궁 내부를 샅샅이 수색했다.
쿵!
‘젠장……!’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로운 소년과의 재회는 매번 실패로 돌아갔다.
나는.
‘방식을, 바꿔야 한다.’
인정해야 했다.
신지운이 어떤 상태인지 알지 못해 자꾸만 조급해지려는 머리를 비워 내고 철저하게 이성적으로 명확한 계획을 두고 움직여야 한다는 걸.
무작정 동분서주한다고 답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허면.
이러할 때엔 어찌하는 게 제일 좋을까? 참 다행스럽게도 그 물음의 정답을 맞히는 건 무척이나 쉬웠다.
‘‘찢어진 쪽지’ 획득 확률이 30% 상승합니다.’
‘또한, 정해진 법칙에 의거하여 ‘특수한 조건’이 개방됩니다.’
‘특수 조건 : 1. 병사 100기 처치 / 2. 기사 3기 처치 / 3. 지휘관 1기 처치’
‘달성 보상 : 1. 미보유 ‘찢어진 조각’ / 2. ‘찢어진 조각 : 지정형’ 두 개 / 3. 조각 완성’
여기 아주 친절하게 적혀 있었으니까.
[조건 달성률]
- 1번 항목 : 0/100
- 2번 항목 : 0/3
- 3번 항목 : 0/1
초반에 사냥했던 개구리들은 카운팅하지 않는지 죄다 0으로 표기되어 있어 조금 아쉽기는 하다만.
제로가 된 수치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온 신경을 청각에 집중했다.
[감각 증폭 : 청각]
슈우우욱!
틱―
휘우우우웅!
사각사각사각―
일시적으로 증폭되는 이력(耳力).
그에 맞춰 사방에서 오만가지 잡음이 밀려와 멘탈을 흐리기 시작한다.
‘아니다, 이것도, 이것도 아니야.’
모조리 걷어 낸다.
귀찮고 난잡해도 일일이 소거해 나가다 보면.
케륵―
“…찾았다.”
마침내 바라마지않던 하나의 줄기만 남으리라.
[가속]
[돌진]
쿠우웅!!
* * *
[군단을 파괴하는 본능]
우우우우우우우웅!!
콰아앙!
콰앙!
콰아아앙!!
“케에에엑!!”
“케륵―”
“케르륵―”
포착 즉시 내지른 일격.
단 1초도 지체하지 않으려는 각오가 고스란히 담긴 권격에 떼거지로 몰려 있던 개구리들이 일거에 소멸된다.
미궁의 병사고, 미궁의 기사고 체화(體化)급 기술 위력 아래에선 평등했다.
시스템의 비호를 받는 미궁 그 자체만이 겨우 버텨 낼 따름이었다.
[‘찢어진 조각 No. 4’를 습득합니다.]
[‘찢어진 조각 No. 5’를 습득합니다.]
확률이 올라갔다더니.
그 부분을 확연히 체감시켜 주듯 바스러지는 괴물들 사이로 조각들이 주르륵 드랍된다.
좋다.
좋은데.
‘하필.’
문제라면 서로의 조각이 공유되지 않는 점 때문에 이미 체크를 끝낸 방면의 것들이 튀어나왔다는 점이다.
현재 내가 구해야 할 조각은 7, 8, 10.
운이 따라 주어 초반에 금방 만나 함께 탐사를 다녔다던 한세정과 조이령도 4번과 5번, 6번밖에 얻지 못한 터라 후반부는 9번 외엔 아직도 텅텅 비어 있다.
고로.
[조건 달성률]
- 1번 항목 : 24/100
- 2번 항목 : 2/3
- 3번 항목 : 0/1
더 많은 먹잇감이 필요했다.
혹은.
‘지휘관…….’
한 마리만 사냥해도 조각이 완성되는 ‘미궁의 지휘관’이라는 놈을 잡아 죽이거나. 가급적이면 후자를 노리고 싶었다.
그게 훨씬 빠르고 간편하기에.
단지.
‘허락되지 않았던 ‘미궁의 지휘관’이 출전 자격을 얻어 〈미궁〉 곳곳에 출몰합니다.’
이 메시지를 봐서는 미궁당 한 마리만 존재하는 것 같아 집착할 마음은 없었다.
케륵!
케르륵!
“열두 시 방향인가.”
뭐든.
쉽게 얻으려 하면 더더욱 어려워지는 게 우리네 인생이었다.
[돌진]
쿵!
바닥을 박차고 도약해 바람을 타고 전해지는 음파를 길잡이 삼아 새롭게 캐치한 개구리들을 쫓아 내딛는 걸음.
그닥 멀지 않은 지점에 모여 있던 덕택에.
“케에에에엑!!”
“케르르륵!”
채 3분이 가기도 전에 커다란 공동 중앙에 자리한 보물 상자를 지키고 선 괴물들과 마주할 수 있었다.
숫자는 삼십여.
다른 것보다 기사가 둘이나 포함된 굉장히 먹음직스러운 부대였다.
[발록의 투기]
후우욱!
한 놈도 도망치지 못하게끔 최대 범위로 뿜어낸 투기가 적 병력의 발목을 붙잡는다.
트래져 박스가 있기에 폭발력이 강한 기술 대신.
[베어 내기]
슈화하학―!
서거걱!
“켁―”
“케에엑―”
베고.
[연속 찌르기]
슈욱―
촤좌좌좍!!
콰드득!
찌른다.
“연속 찌르기, 쓸 만하네.”
‘베어 내기’와 연계한 기술 ‘연속 찌르기’는 2일 차 근원석 폭식 당시 시야 확장기인 ‘멀리 보기’와 같이 획득한 것으로 첫 실전 사용이었다.
단계를 마스터 레벨로 향상시켜 둬서 그런지 찌를 때마다 마력으로 생성된 창날이 뻗어 나가 전방을 휩쓰는 통에 5m 안쪽에 선 놈들에게도 유효타가 들어갔다.
근접전에서 잘만 활용하면 상당히 위협적인 공격을 가할 수 있을 듯했다.
그렇게.
머리는 머리대로, 몸은 몸대로 따로 놀리며 최후의 한 마리까지 깔끔하게 처리하자.
삑―
[‘특수 조건 : 2’가 달성되었습니다.]
[‘찢어진 조각 : 지정형’ 두 개를 습득합니다.]
고대하던 문구가 나타났다.
그에.
“7번과 8번.”
[‘찢어진 조각 No. 7’을 습득합니다.]
[‘찢어진 조각 No. 8’을 습득합니다.]
나는 주저 없이 외쳤고.
세계를 물들였던 암흑이 걷힌 공간에서.
삑―
“아.”
날 기다리는 소년의 형상‘과’.
삑!
[경고]
[미궁의 지휘관]
소년의 목을 베려는 적장의 형상을 동시에 발견하게 되었다.
* * *
후우우웅―
카아앙!!
칼과 칼이 뒤엉키며 튕겨 나온 청명한 소리가 공동 전체로 퍼져 나간다.
“크읍, 하… 하아…….”
그 위로 더해지는 거칠고 억눌린 호흡.
나는 근육이 뒤틀리는 통증을 참으며 어떻게든 몸을 일으키려 애썼다.
5분.
고작 5분이 지났을 뿐인데, 전신이 땀과 피로 젖어 목욕한 듯 축축했다.
아마.
“케르륵, 케륵.”
‘온다……!’
[미래 예지]
후우욱!
‘열한 시!’
타앗!
예지력이 없었더라면, 해서 미리 투로를 읽지 못했더라면…….
슈욱―
촤아아아아악!!
필시 저 거대한 참격 앞에선 목숨이 열 개였더라도 살아남지 못했으리라.
물론.
내가 생존하는 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방패는 역시나 길몽이다.
그가.
아윤 형으로 추정되는 구원자의 등장을 예고한 꿈이 나를 일으켜 세워 주는 원동력이었다. 아무리 강대한 적이라도 아윤 형에게는 꼼짝도 못 할 테니까.
다만.
이따금씩 그런 생각이 들기는 했다.
1분, 2분.
[‘미궁의 지휘관’이 가장 취약한 상대를 찾아 나섭니다.]
라는 메시지를 내뱉으며 갑작스레 출현한 괴물과 대적하며 시간은 점점 흘러가고 나는 점점 쓰러져 가는데. 정작 아무도 도와주러 오질 않자 혹시 어제의 그 영상이 누구나 꾸는 ‘평범한 꿈’은 아니었을까 하는.
영혼에 깃든 신기(神氣)는 틀림없이 예지몽이라 주장했으나 나는 확신할 수 없었다.
믿음이 흔들렸다.
“케에에에엑!!”
부우우웅!!
콰아앙!!
“크아악!”
후우우웅―
퍽!
6분이 되고, 7분이 되고…….
기어코 10분이 되었음에도 쓰러짐과 일어섬이 반복되는 전장에는 나와 저 괴물 둘이 전부였기 때문이었다.
불현듯.
‘누나…….’
친누나의 얼굴이 떠오른 것도 그즈음이었다.
보통의 남매 같지 않아 동생을 끔찍이도 아껴 주던, 동생을 위한 일이라면 설령 악마의 손길이라도 거부하지 않았던, 그 진실한 애정을 알기에 나에게도 보물이자 모든 것이 된 누나의 미소가 허공에 그려지더니.
사르르륵―
이내 어린 시절부터 쌓아 온 누나와의 추억들이 한 편의 영화인 양 눈앞에 펼쳐졌다.
‘아…….’
나는 그 수천, 수만 장에 달하는 과거를 보고 들으며 본능적으로 죽음이 코앞에 다다랐음을 인지했다.
단순한 감이 아니었다.
누나가 싫어할까 봐 얘기하지 않았지만.
- 이제 오는 거야?
- 드디어! 드디어!
- 오래 기다렸다! 어서 와!
귀신들.
신력(神力)을 가진 육체를 빼앗으려 언제나 주위를 떠돌던 수십 명의 귀신의 환호성이 들렸거든.
내내 강령을 거부했던 나를 직접적으로 괴롭힐 수 있게 됐음에 기뻐하는―
- 지운아.
죽음이라는 공포에 파묻혀 가던 찰나.
낯익은 목소리가 나를 일깨웠다.
‘…할머니?’
할머니셨다.
정확하게는 주마등같이 흘러가던 흐름의 한 페이지 속, 할머니와 대화 나누던 장면이 재생되는 중이었다.
초등학교에 막 입학하던 시점.
- 네가 본 꿈에는 힘이 있단다.
- 꿈에요……?
꿈의 내용이 그대로 이루어졌음에 놀라고 신기해서 흥분한 내게 대단하다 칭찬하며 여러 가지를 조언을 해 주시던 그 대목이었다.
최초의 예지몽을 꾸었던 그날이기에 또렷하게 기억이 났다.
그래서였을까?
- 그러니 꿈을 무시하지 말거라.
- 네!
이 장면만큼은 유독 길고 선명하게 보였다.
흡사.
꼭 봐야만 하는 장면이라고 말하듯이.
왜지?
나는 그 기묘한 위화감에 의아해졌고, 오래지 않아 해답을 알게 됐다.
- 만약에 말이다.
- 네!
- 밤새 꾼 꿈이 현실에서도 벌어질 것처럼 느껴지는데도 통 일어나지 않는다면 이렇게 해 보아라.
- 어떻게요?
- 네가, 그 꿈을 재현해 내는 거다.
- 재…현?
- 주인공, 주인공이 돼 보는 게다. 해서 꿈과 현실을 최대한 비슷하게 만드는 게다. 그리한다면, 네 간절함을 들어주실 게다.
- 주인공!!
이거였다.
파앗!
그걸 깨닫자마자 방금 전까지 주변을 맴돌던 귀신들이 사라졌고, 아득하던 정신도 정상으로 되돌아왔다.
나는 이 상황이 의미하는 바를 명확하게 이해했다.
‘꿈의 재현!’
스스로 탑에 갇힌 공주님이 되어야 한다는 걸.
헛된 도박일지도 모르나.
할머니의 조언을 따르기로 결심했다. 애당초 할머니께서 이어주신 목숨, 내가 갈 길은 하나였다.
“케에에에에엑!!”
후우우웅!
괴물의 태도(太刀)가 날아든다.
상체를 갈라 버릴 듯 치고 들어오는 공세에 난 마력을 짜내며 칼을 움켜쥐었다.
아홉 번째였나, 열 번째였나.
까마득한 근력 차이에 더 오기를 부렸다간 손목이 부러진다는 걸 감지하고서 번번이 회피를 선택했었으나 이번엔 그러지 않았다.
힘껏 부딪쳐야 했다.
충돌 직전에 점프하는 것으로 이 무지막지한 충격파를 이용해.
탁―
콰앙!!
“끄읍!”
‘탑’과 비견되는 ‘높이’까지 뛰어오르자.
그게 내가 채택한 재현법이었다.
다양한 과정을 겪어봐야 한다는 취지로 훈련 중 몇 번 해봤던 동작이라 시도하는 게 그리 낯설지는 않았다.
후우우욱!
밀려오는 고통을 어금니 꽉 깨물고 떨쳐 내며 붕 솟구친 나는 사력을 다해 벽을 붙잡으려 손을 뻗었다.
팔이 덜덜 떨리고, 체력은 한계치에 내몰렸지만.
[스트랭스]
[금속 회복]
강제로 끌어내서라도 달라붙으려 안간힘을 다했고.
슈우우우욱―
터업!
‘돼, 됐다……!’
기어이 고목나무에 붙은 매미처럼. 벽과 하나가 된 직후.
“아윤 혀어어어어엉!!”
난 목청을 쥐어짜며 울부짖었다.
할 수 있는 걸 다했으니.
이젠 왕자님께서 나타날 타이밍이라고.
그 순간.
우우우우웅―!!
신묘한 기운이 소용돌이치며.
번쩍!
“……신지운?”
꿈이 현실이 됐다.
[‘제3의 영역 : 신력(神力)’을 개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