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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메라의 기억법-136화 (136/232)

136화

“…해서 떠돌다가 찢어진 조각을 통해 여기에 보물 상자가 있다는 걸 확인하고 오게 됐습니다. 추가로 안에는 천리향이라는 아이템이 한 병 들어 있었습니다.”

곽재우와 합류 후.

지금까지 있었던 과정을 간략하게 전해 들었는데, 나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함정을 피하고, 괴물들을 상대하고.

차이점이 있다면.

“1번, 2번, 3번. 이렇게 모았습니다.”

“1번?”

내게 없는 1번 조각을 가졌다는 것.

그게 다였다.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여기서 위로 올라가는 3번 쪽엔 아무것도 없으니 왼쪽으로 꺾자.”

“일겠습니다.”

대화를 마친 우린 속보(速步)로 어두컴컴한 영역에 발을 디뎠다.

여태껏 지도를 보며 돌아다니다 아무런 정보도 없는 무지한 세계를 거닐려고 하니 막다른 곳에 부딪히거나 길을 헤매 빙빙 도는 경우가 왕왕 발생해, 그럴 때마다 그냥 벽을 부숴 버리고 싶은 감정이 불쑥불쑥 차올랐으나.

시스템의 영향인 것인지.

미궁의 벽은 전력을 다해도 흠집 하나 나지 않는 탓에 얌전히 달리는 데 주력해야 했다.

그러다 우연찮게 텅 빈 광장에 들어섰을 즈음.

―!!

“…음?”

내 귓가로 흐릿하지만 날카로운 고성이 스쳐 지나갔다.

“왜 그러십니까?”

곽재우는 듣지 못한 듯 갑자기 제동을 건 내게 의아한 표정을 지었으나.

내가 손바닥을 들며 잠시 조용히 해 달라는 수신호를 보내자.

척―

곧장 질문을 자제하고서 옆으로 물러나 사주 경계에 돌입했다.

그러는 동안.

나는 고함이 들렸던 위치로 귀를 기울이며 청력을 증폭시켰다.

[감각 증폭 : 청력]

사아아아아아―

급격하게 시끄러워지는 주변.

바람 소리, 벌레 기어 다니는 소리, 곁에 있는 곽재우의 숨소리 등.

온갖 노이즈로 가득한 공간 속에서 원하는 타깃만을 정확하게 노려본다.

아직 자유자재로 쓸 수준은 아니었지만.

개구리들도 없는 데다가 곽재우도 필사적으로 침묵을 지켜 주려 한 덕에 서서히 목소리가 선명해졌다.

“…드!!”

짧고 굵지만, 여전히 앳된 티가 남아 있는 소녀.

“신지유.”

음성의 주인은 신지유였다.

“지유입니까?”

“저쪽이다.”

“알겠습니다!”

입을 꾹 다문 채로 경계를 서던 곽재우는 신지유를 발견했다는 말에 눈빛을 번뜩이며 급발진하듯 내가 가리킨 방향으로 부리나케 달려 나갔다.

신지유나 신지운이나.

곽재우에 비해 결코 떨어지지 않는 레벨이었지만, 불곰파에 의해 동생을 잃은 그에게 있어서 새롭게 맞이한 동생들은 혈육만큼이나 소중한 존재였다.

능력이 어쩌고, 강함이 어쩌고 그런 건 일절 고려 항목이 아니었다.

그저 ‘동생’이라면.

목숨을 걸고서라도 지켜야 할 대상이었다.

다소 과도한…….

솔직하게 말하자면 상식선을 벗어난 정신병에 준하는 광적인 증상이었으나.

나는 따로 지적하고 싶지 않았다.

이해했으니까.

가족을 잃은 슬픔과 그로 인해 생기는 부작용을.

당장 나부터가 누나와 비슷한 처지에 놓인 이들을 마주하면 손 내밀고 보지 않던가.

“이쪽이다.”

“예!”

그러니 곽재우가 조급해하는 걸 십분 공감하며, 그가 안도할 수 있게끔 신지유를 향해 가는 보보(步步)에 가속을 더해 미로를 주파했다.

* * *

“저깄다.”

“아!”

질주하다시피 하며 분전한 끝에.

“땅지기! 묶어! 도깨비불과 눈꽃송이는 공격하고 실바람은 저 액체가 닿지 않게 밀어내! 드라이어드는 날 보호하고!”

“케르륵!”

“케에에엑!!”

개구리들과 무참하게 도살하고 있는 신지유와 대면하게 되었다.

정령 드라이어드의 가드 아래 각종 소환수를 앞세워 괴물들을 철저하게 분쇄해 나가는 소녀의 뒷모습은 상상 속의 마법사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불과 얼음, 바람과 땅, 그리고 나무.

쉴 새 없이 휘몰아치는 공세에 개구리들은 반경 10m의 선조차 넘지 못하고 바스러졌다.

‘저기에 더블링까지 사용하면… 한세정 같은 이동계 능력자가 아니면 웬만한 놈들은 접근하기도 어렵겠네.’

나는 대마법사가 현신한 양 전장을 휩쓰는 신지유를 관찰하며 문득 일행 내의 가장 강한 무력의 소유자가 아닐까 하는 상념에 잠겼다.

상성에서 우위를 점하지 않는 한 다가가기도 전에 갈려 나가는 장면이 선했다.

“재우 오빠? 아, 아윤 오빠도 계셨네요? 여긴 어떻게…….”

잡념에 빠져 있는 사이 무언가가 내게 날아왔다.

작고 푸르스름한 물체의 방문에 사색에서 깨어나 정면으로 고개를 돌리니.

“드라이어드?”

“…….”

드라이어드가 나와 곽재우 주위를 비행하고 있었다.

정령의 언어를 알아들을 지식이 없는지라 뭐라고 하는진 모르겠지만, 헤실헤실 웃고 있는 걸 보아하니 우릴 꽤나 반기는 모양새였다.

그런 드라이어드와 인사를 나누고 있자니.

“드라이어드 어디, 재우 오빠?! 아, 아윤 오빠도 계셨네요? 여긴 어떻게…….”

정령의 돌발 행동에 당황하며 뒤따라오던 신지유가 그제서야 우리를 알아보고서 깜짝 놀란 얼굴로 눈을 껌뻑이다 서둘러 허리를 숙였다.

동행을 하게 된 이후로 편하게 대해도 좋다고 여러 번 얘기했었으나, 붙임성 좋게 관계를 형성하는 신지운과 달리 신지유는 늘상 깍듯하게 예의를 차렸다.

그나마 언니인 한세정과 조이령에게는 마음을 터놓는 것 같다만.

조철영에게 끌려다니면서 성적으로 학대받을 뻔했던 터라 ‘남성’이라는 성별에 본능적인 기피 증세가 가시지 않은 듯싶었다. 이건 무작정 노력한다고 고칠 수 있는 부분이 아니기에 시간을 들여 차차 완화시킬 요량이었다.

여하간.

“혼자 다니느라 고생했다.”

“아, 아니에요.”

신지유에게 물병을 건네주며 이제 같이 다니자고, 우선은 조각부터 모을 예정이라고 말해 주던 그때였다.

삑―

“……?”

뜬금없이 울리는 신호에 어리둥절해하던 차에 문장과 문장이 허공을 요란하게 수놓았다.

온통.

[경고!]

[〈미궁〉을 떠돌던 인간의 50%가 한곳에 뭉쳤습니다.]

[〈미궁〉의 숨겨진 기능이 발현됩니다.]

[‘미궁의 병사’의 모든 능력치가 30% 향상됩니다.]

[‘미궁의 기사’의 모든 능력치가 33% 향상됩니다.]

[허락되지 않았던 ‘미궁의 지휘관’이 출전 자격을 얻어 〈미궁〉 곳곳에 출몰합니다.]

경고 메시지였다.

“…이런, 젠장.”

그걸 본 직후 내 가슴속에서 육두문자가 절로 튀어나왔다.

마구잡이로 떨어뜨리는 걸로도 모자라 연대 자체를 봉쇄하고 싶은 것인가?

당황스러운 히든 룰에 인상이 찡그려진다.

물론.

불리한 조항만 추가된 건 아니다.

[‘찢어진 쪽지’ 획득 확률이 30% 상승합니다.]

[또한, 정해진 법칙에 의거하여 ‘특수한 조건’이 개방됩니다.]

[특수한 조건 : 1. 병사 100기 처치 / 2. 기사 3기 처지 / 3. 지휘관 1기 처치]

[달성 보상 : 1. 미보유 ‘찢어진 조각’ / 2. ‘찢어진 조각 : 지정형’ 두 개 / 3. 조각 완성]

[〈미궁〉 곳곳에 「혈과 나무」가 생성됩니다.]

*혈과 나무 : 과실 복용 시 소모된 체력과 마력 회복 속도 향상, 상처 치유 효과 적용, 상태 이상 및 저주 등 해제

‘찢어진 조각’ 수급이 한층 수월해졌고, ‘혈과 나무’로 포션 대용품이 생겼으니까.

허나 약효보다 독성이 더욱 강력했기에.

나는 곽재우 신지유 두 사람을 데리고 급하게 길을 나섰다. 이전과 달리 따로 떨어져 있는 한세정, 조이령, 신지운의 안전을 자신할 수 없는 형편이기에 한시라도 빨리 찾아야 했다.

“아! 저!”

초조한 기색을 애써 감추며 이를 악물고 미궁을 방랑하던 차에 신지유가 어딘가를 주시하며 우릴 불렀다.

1번, 2번, 3번, 6번, 9번에 포함되지 않는.

4번과 5번을 가진 신지유가 해당 조각을 통해 셋 중 하나를…….

아니.

“두 사람이에요!”

둘을 찾아낸 것이었다.

“어디야!”

“아홉 시요!”

신지유의 급박한 안내를 받으며 아홉 시 구간으로 진입하자.

몇 분 지나지 않아 저쪽에서도 우리 쪽으로 근접해 오고 있다는 외침이 서너 차례 울려 퍼졌다.

누굴까.

또.

혼자가 된 사람은 누구일까.

‘기왕이면…….’

미안하지만 되도록 한세정이 분리된 1인이길 바랐다.

조이령이나 신지운과 다르게 도주에 특화된 그녀라면 함정이든 미궁의 지휘관이든 옷깃도 허용치 않을 테니.

“오빠!”

“아윤 오빠?! 재우 씨! 지유야!!”

이걸 안타깝다고 해야 할지.

굽이진 통로를 지나 해후한 이들은 한세정과 조이령이었다.

즉.

홀로 남겨진 인물은 신지운이라는 뜻이었다.

“지, 지운이가……!”

이에.

신지유의 안색이 급속도로 파리해졌다.

그 무엇보다 끔찍이 아끼는 유일한 피붙이가 위기에 봉착했다는 최악의 소식이 소녀의 정신을 갉아먹어 갔다.

“지운, 지운아…….”

핼쑥해진 낯빛으로 신지운의 이름을 되뇌는 신지유.

턱―

“걱정하지 마라. 바로 찾을 거니까.”

그 모습이 마치 과거 교통사고를 당하고 병상에 누워 있던 날 위해 밤새도록 울던 누나와 같아 입술을 깨문 나는 사시나무처럼 떨리는 신지유의 어깨를 붙잡으며 이야기했다.

절대.

결단코 아무 일도 없을 거라고. 내가 반드시 약속한다고.

[일기당천]

[가속]

[그림자 걸음]

[돌진]

콰아아앙!!

“아윤 오빠아!!”

“형, 형님!”

나는 그 한마디를 내뱉고 한세정들을 뒤로하고 신지운을 찾아 어둠 속으로 몸을 던졌다.

* * *

내가 처음 귀신을 본 건 네 살 때였다.

사실 그전엔 기억이 잘 나지 않아서 확실치는 않다.

무튼.

무당이셨던 할머니의 피가 이어져 어린 나이부터 귀신을 보았고,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일반인들은 알지 못하는 이면의 세상과 계속해서 친밀해졌다.

할머니께서는 이런 나를 안쓰럽게 여기셨다.

항상 신(神)과 엮이는 건 자신이 마지막이길 희망하셨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감사했다.

“할머니 손자였던 덕분에.”

스르르릉―

“인간 같지 않은 인간들의 손에서도, 저런 괴물들의 손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거든요.”

어제도.

“케에에에에엑!!”

그리고 오늘도.

[인첸트―샤프니스]

사아아악!

[마력 유체]

[강격]

[가속]

[돌진]

쿠우웅!

[다중 베기]

“하압!”

후화화아악!!

콰아앙!

콰앙!

‘크읍!’

나는 2m는 될 법한 태도(太刀)에 맞서 ‘용병 길드 주문 제작―특등검’을 휘둘렀다.

한 번의 격돌에서 만만치 않은 상대임을 직감했으나.

[지속형 기술 ‘예리한 감각’이 발동됩니다.]

갖가지 자체 버프가 더해지니 거듭된 충돌에서도 어렵사리 대응이 가능했다.

더군다나.

나에게는 할머니의 유산이 있었다.

[미래 예지]

‘좌측 대각 베기!’

미래를 읽는 눈.

“흐압!”

이게 있는 이상 나는 쓰러지지 않는다.

그러자 더더욱 묵직한 무게감으로 찍어 누르는 괴물.

“케에에엑!!”

부우우웅―

콰앙!!

“크으읍!”

흡사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버티기만 해서 뭐가 바뀌느냐고.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하지만.

개의치 않았다.

조롱을 해도 좋고, 놀려도 좋았다. 버티기만 해서는 분명 승리하지 못한다는 거 잘 알고 있으나 상관없었다.

마침.

“아주 좋은 꿈을 꾸었거든.”

백마 탄 왕자님께서 공주님을 납치한 마왕의 목을 베어 버리고 해피 엔딩을 맞이하는 ‘길몽(吉夢)’을 말이야.

씨이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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