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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메라의 기억법-134화 (134/232)

134화

‘깃발 뺏기’라는 새로운 진행 방식이 공개되었을 때.

우리는 당연하게도 수색에 나섰다.

랭킹 보상의 위대함을 알았기에, ‘10,000’의 공적치를 포기할 수가 없었다. 당장 탐사대를 조직했고, 여유가 생기는 대로 외부를 이 잡듯이 뒤졌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이들이 죽고 다쳤지만.

보물을 갖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은 이미 걷잡을 수 없이 커져 버려 누군가의 죽음을 ‘훌륭한 희생’이란 단어로 포장할 뿐, 멈춰 서는 일은 없었다.

“멍청하게도 말이지.”

우리는 알아야 했다.

아름다운 버섯이 독을 품고 있다는 걸. 전설과 신화가 그러하듯, 모두가 갈구하는 보물은 항상 가장 위험한 장소에 비치되어 있다는 것을 말이다.

-‘누군가의 회고록 : 미궁편’에서 발췌

* * *

[현재 위치에서 커맨더급 개체는 포착되지 않았습니다.]

집을 떠나 걷길 5분여.

지속적으로 탐색을 해 보고 있으나, 아직까진 잡히는 게 없다. 그래서 우선은 고기도 더 확보할 겸 스랄레오들이 있는 ‘골갑의 초원’을 경유지로 잡고 전진하는 중이다.

절망의 파도로 세상이 난장판이 됐지만, 던전은 그대로였다.

아니.

외려 더욱 넓어진 듯, 한층 풍성하고 푸르러진 초원에 입장하자.

[〈던전 : 골갑의 초원〉에 입장하셨습니다.]

“꾸이이이이익!!”

“꾸이익!!”

방문 알림 문구를 기점으로 여기저기서 스랄레오들이 모여든다.

대략 스무 마리.

‘나이트급 둘에 나머지는 솔져인가.’

곳곳에 커맨더급 개체들이 돌아다니고 있으나 아직 던전에는 변화의 조짐이 없는 것인지. 감각을 활짝 열어 살펴봤으나 나이트급을 넘어서는 괴물은 보이질 않는다.

“제가 다녀올게요.”

“언니, 같이 가요.”

“그럴래?”

출몰한 스랄레오들은 한세정과 신지유가 처리에 나섰다.

드라이어드의 능력으로 팔다리를 묶어 놓고 정확하게 목만 베어 피를 빼내는 방식으로. 혈액이 완전히 제거된 사체는 가죽을 벗기고 살점을 분리한 뒤.

떼어 낸 골갑을 그릇처럼 이용해 그 위에 얹어 나무 상자에 담는다.

아주 깔끔한 도축이었다.

“이건 여기에 두자.”

“네. 땅지기, 눈꽃송이.”

순식간에 20마리 분량의 스랄레오 고기 공정을 마친 한세정이 신지유에게 부탁하자.

곧.

소형 골렘의 형상을 닮은 ‘땅지기’에 의해 땅이 파였고, 입으로 얼음을 쏘아 내던 프라구스와 비스무리한 ‘눈꽃송이’는 구덩이를 냉기로 채웠다.

우리들만의 천연 냉동고였다.

“가자.”

“넵!”

“넵!”

“넵!”

“넵!”

“넵!”

흔적을 지우고 표식을 새겨 넣은 후 다시금 직진해 나갔다.

어느덧 집에서 약 15분 거리까지 왔다.

그리고 그때쯤.

삑!

[「완전한 지도」가 커맨더급 개체를 발견했습니다.]

드디어 만족스러운 소식이 들려왔다.

지이이잉―

[‘맵’ 기능이 활성화됩니다.]

[포착된 대상의 위치가 표시합니다.]

‘고주파 신호기’를 사용할 때와 동일하게 홀로그램 화면이 펼쳐졌고, 동그란 원 가장자리에 붉은색으로 괴물 이미지가 떠올랐다.

혹시 저 이미지를 통해 상대의 외형을 알 수 있을까 싶었으나.

어린아이들에게나 먹힐 조악한 캐리커처 스타일이라 정보로서의 가치는 없을 것 같았다.

뭐.

실제로 확인해 보기 전까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나는 표적이 뜨자 한세정들을 이끌고 목표를 향해 부리나케 발을 내디뎠다.

타아앗!

후우욱―

후욱!

경쾌한 보폭.

칼바람을 등에 이고 길목마다 널부러져 있는 현재의 잔재를 부수고 피하길 거듭하며 맵을 따라 질주하길 3분여.

일반인들은 상상할 수 없는 속력으로 도착지에 당도하자마자.

파직!

‘열한 시 방향인가.’

날카롭게 벼려진 육감이 커맨더의 위치를 특정해 냈다.

놈은 한자리에 고정된 게 아니라 계속해서 어딘가로 이동하는 중이었는데, 쫓아가 보니 막 폐허가 된 편의점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녀석의 외관은 꽤나 특이했다.

‘…새? 뱀?’

부리와 날개가 달린 건 분명 새의 그것인데, 정작 하체는 다리가 아닌 구렁이의 몸이 붙어 있었으니까. 고양이와 뱀이 혼합되어 있던 쌍두묘사가 오버랩되는 형상이었다.

몸 길이는 대강 9~10m 남짓.

거기에 체폭이 50cm를 넘어가는 터라 웬만한 골렘도 가볍게 조를 수 있을 법한 거구였다. 그러한 탓인지 날개가 작아도 너무 작게 느껴졌다.

‘저 몸뚱어리로는 날긴 어렵겠네.’

기껏해야 30cm도 안 되는 날갯죽지로 비행을 도전했다가는 추락사를 면치 못하리라.

나는 그런 감상평을 내리며 한세정들을 돌아봤다.

마침 커맨더 한 마리에 불과하니.

이 기회에 한세정들에게도 상위 개체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경험시켜 주려는 의도였다. 이런 내 생각을 이해한 한세정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오른손을 들어 수신호를 보낸다.

슥―

스윽―

검지와 중지를 세워 이쪽저쪽으로 가리키길 몇 차례.

이내.

우우우웅―!

번쩍!

마력이 방출된 찰나에 한세정들이 내 주위에서 사라졌다.

유일하게.

“흐아아아!!”

[하울링]

곽재우를 제외하고서.

[‘하울링’이 울려 퍼집니다.]

[음파가 닿는 거리 내에 존재하는 모든 「적」의 시선이 모여듭니다.]

그는.

어그로를 담당할 탱커였기 때문이었다.

[내려찍기]

“하압!”

부우우웅―!

콰아앙!!

“키아아아아악!!”

일부러 모습을 드러낸 곽재우는 양손에 ‘분쇄’와 ‘철벽’을 나눠 쥐고 용감하게 괴조사와 몸을 부딪쳤다. ‘가속’으로 순발력을 올려 기습의 묘미를 살린 그의 철퇴가 옆구리를 두들기자 깜짝 놀라 괴성을 지르며 꼬리를 휘두르는 놈.

마치 거인의 채찍을 연상케 했다.

그 반격에 미련없이 물러난 방패 ‘철벽’을 치켜드는 곽재우.

[방패 치기]

후웅―

쿠우웅!!

마력이 넘실거리는 방패와 꼬리의 충돌에 강렬한 기파가 퍼져 나온다.

마스터 레벨의 기술과 세트 아이템 효과.

여기에 개인의 용력이 더해져 빚어낸 방어는 제아무리 커맨더급이라 할지라도 쉽사리 뚫어 내지 못했고.

“키아아악!!”

그 점에 분노하는 동안.

[인라지 플렌츠]

“얘들아! 공격해!!”

불쑥 사각에서 튀어나온 신지유가 곽재우의 배턴을 이어받으며 총공세 명령을 하달했다.

드라이어드, 도깨비불, 눈꽃송이, 실바람, 땅지기.

무려 다섯이나 되는 소환수가 토해 내는 집중 포화는 가히 융단 폭격에 가까웠다.

촤르르르륵―!

쿠구구구궁!

화르륵!

쩌저저적!

휘위이이잉―!

품속에서 꺼내 던진 나무 조각들이 커짐과 동시에 드라이어드의 조종을 받아 괴물을 속박하길 잠시, 대지가 일어나 육체를 감싸며 구속력을 더했고.

완전히 움직임을 봉쇄당한 놈의 대가리를 화염과 바람이, 꼬리는 백색의 결정이 노려 짓이겼다.

“키아아아아악!!”

대미지가 상당한지 놈의 주둥아리에서 고통에 찬 비명이 쉴 새 없이 터져 나온다.

물론.

후웅―

콰아아앙!!

명색이 커맨더급.

다소 경망스럽기는 하나 어찌어찌 견뎌 내더니 기어코 구속에서 빠져나와 고슴도치의 가시인 양 뾰족하게 선 깃털 수백 개를 사방으로 날려 보냈다.

파리 떼처럼 공중을 뒤덮은 초록색 깃은 하나하나가 투창에 비견되는 파괴력을 자랑했다.

단지 안타까운 점은.

그 강력한 일격을 아무도 맞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곽재우야 포격에 휩쓸리지 않으려 진작에 후퇴했고, 신지유도 한바탕 터트리고는 바로 물러났으니까.

애당초.

반항할 것을 계산해 두고 시행한 플레이였다.

“키아아아아악!!”

쿠웅!

쿵!

놈은 자신이 농락당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분개하여 발광했으나, 그런다고 현실이 달라지지는 않았다.

영리한 사냥꾼들은.

[진격의 함성]

“흐아아아아!!”

후웅!

[‘진격의 함성’을 들었습니다.]

[5분간 아군의 공격력이 9% 향상됩니다.]

“지운아! 가자!”

“아자!!”

[인첸트―샤프니스]

[10분간 ‘속성 : 날카로움’이 함께합니다.]

난동 부리던 사냥감이 지치는 타이밍에 맞춰 좌우에서 튀어나와 2차, 3차 공격을 가할 따름이었다.

[돌진]

[돌진]

쿠웅!

[폭발하는 뱀]

[다중 베기]

우우우웅!!

콰아앙!

서걱!

휘황찬란하게 빛나는 창과 검이 괴물을 찌르고 벤다.

두 사람은 타격을 가한 즉시 회피를 선택했고, 어느 틈에 빈 공간을 차지하고서 철퇴로 잃어버렸던 어그로를 되찾아온다.

톱니바퀴같이 맞물리는 도돌이표였다.

그러다 녀석의 신경이 오로지 넷에게 집중되어 있던 그때.

[가속]

[스트랭스]

[마력 유체]

쿠우우웅!!

[단거리 공간 이동]

번쩍!

처음부터 끝까지 숨어 있던 한세정이 허공을 점하고 나타나.

[독살]

쐐애애애액!

콰직!!!

괴물의 미간을 보랏빛 칼날로 찍어 눌렀다.

위력이야,

“키아아아아악!!”

두말하면 입 아플 정도였다.

쿠우웅!

“잘 잡네.”

나는 10여 미터에 달하는 거체가 힘없이 쓰러지는 걸 보며 한세정들의 퍼포먼스에 손뼉을 쳤다.

커맨더급은 결코 만만한 대상이 아니거늘.

그럼에도 한세정들은 완벽한 전술로 한 명의 부상자 없이 승리를 따냈다. 기본적으로 적이 단일 개체였기에 성공한 전법이었지만, 어쨌거나 내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실력이었다.

더구나.

특히 기특한 건.

“마무리하자!”

상대가 무력화되었음에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 부분이었다.

공적치 시스템 덕분에 생사 여부가 명백하게 공개되는 만큼, 수치에 변화가 생기기 전까지는 절대로 방심하지 말라 신신당부하긴 했으나 사람 마음이라는 게 흔들릴 법도 하기에 내심 우려했건만.

보아 하니 쓸데없는 고민은 하지 않아도 될 듯―

파직!

‘……?’

흡족한 눈빛으로 주억거리던 순간.

전신의 솜털이 곤두섰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무척 단순했다.

“물러나!”

위기.

그걸 너무나도 잘 알기에 반사적으로 퇴각할 것을 지시했지만, 상황이 좋지 않았다. 실낱같은 괴물의 생명선을 끊어 내기 위해 안쪽으로 파고들어 가던 직후였으니까.

그로 인해 누구도 탈출하기 어려웠고.

파직!

파지직!

촤아아악!!

“……!!”

이내 일대를 휘감는 붉은 기운에 먹혀 들어갔다.

그 속에서 내가 마지막으로 본 건.

후화하하학!!

‘깃, 발?!’

세계를 잠식할 것처럼 등장한 초대형 ‘깃발’과.

[「깃발의 수호자」가 ‘최후의 몸부림’을 선언했습니다.]

[현재 위치에 ‘깃발’이 설치되었습니다.]

[‘깃발’을 중심으로 직경 1km에 이르는 공간에 일시적으로 〈미궁〉이 설치됩니다.]

이 세 줄의 문구였다.

* * *

번쩍!

“아!”

정신이 든다.

시야를 가리던 붉은 기운이 사라지기 무섭게 둘러본 주위는 온통 어두컴컴한 어둠으로 둘러싸인 벽으로 가득했다.

벽과 벽 사이의 너비는 대강 5m 내외.

그리 넓지도, 그렇다고 좁다고 하기도 뭐한 폭이었는데…….

“젠장.”

문제는 이 생소한 환경에 나 ‘홀로’ 서 있다는 점이다.

한세정, 조이령, 곽재우, 신지유, 신지운. ‘감각 증폭’으로 청력을 강화해 주변을 싹 훑어봤으나 잡히는 이가 없었다.

겨우 포착해 낸 거라고는.

“케륵―”

“케르륵―”

개구리인지 두꺼비인지 모를 놈들의 합창 소리가 전부였다.

동행한 이래로 처음.

타의에 의해 여섯 명이 뿔뿔이 흩어졌다는 의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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