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화
【 미궁 】
“이 정도 무게는 견딜 만한가.”
나는 지면에 처박힌 놈을 바라보며 근력이 얼마나 강해졌는지를 명확하게 체감했다.
4m를.
그것도 돌진해 오는 커맨더급 상대를 붙들고 던져 버리는 힘이라니. 이거 원, 어느 쪽이 괴물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원래도 피지컬이 밀리지 않았는데, 좀 전에 ‘영약 : 테라’까지 흡수하면서 ‘근력’이 250을 돌파해 버린 게 주요 요인이리라.
참고로 ‘영약 : 테라’는.
근력, 체력, 내구, 순발력, 마력에 지정 목록인 감각, 저항, 속성, 용기, 의지를 각각 30씩 올려 주었다.
총합 300이나 되는 어마어마한 수치였다.
그 덕에 저항이 100을 넘으면서 ‘한계 돌파 : 저항’ 칭호와 상시 정신 보호 기술인 ‘멘탈리티 가드’를 배울 수 있었다.
여하간.
“무으으어어어어!!”
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고통에 발광하는 놈에게 다가가 뿔이 여섯 개나 솟아 있는 대가리를 주먹으로 내리쳤다.
후우우욱―
콰앙!
“무어억!”
기술도, 마력도 가미되지 않은 주먹질임에도 불구하고 폭발음이 들리더니 손끝으로 놈의 머리뼈가 박살 났다는 촉감이 생생하게 전달됐다.
어인이나 철갑 사자처럼 내구 타입이었다면 버터 냈을 테지만.
딱 봐도 근력으로 올인한 것 같은 몸뚱어리로 내 일격을 받아 내기에는 무리였다.
[베어 내기]
서걱!
쿵!
훈련용 허수아비 역할도 못 해 주는 놈을 더 괴롭혀 봐야 시간 낭비라 목을 깔끔하게 베어 사망 선고를 내렸다.
[「절망의 파도」를 막아 냈습니다.]
[‘공적치’가 상승합니다.]
[현재 나의 공적치 : 100(산술법 확인▼)]
시체가 되어 쓰러진 놈의 머리 위로 솟구치는 메시지.
“100, 100이라.”
리셋당한 탓에 몇만 단위에 이르던 공적치가 소멸되고, 고작 100이 찍혀 있는 게 보였다.
왠지 허탈하고 허무한 기분이나.
떼를 써 봐야 달라질 게 없음을 알기에 혀를 차며 잡념을 털어 내고는 한세정들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치열한 접전…이라기보단 일방적인 학살에 가까운 교전은 어느새 마침표를 찍어 가는 중이었다.
끽해야 5분.
변수가 발생해도 10분이면 처리할 걸로 추정되는 형국이라 굳이 도와주지 않아도 될 듯하다만, 타임 어택 특전도 있고 탐사도 나가 봐야 하는 터라 질질 끌어서 좋을 게 없었기에.
우우우우웅―!!
[오리지널 기술 : 군단을 파괴하는 본능]
번쩍!
콰아아아앙!!
콰아아앙!!
콰앙!
후방을 화끈하게 뒤집어엎었다.
한세정들이 휘말릴 수도 있기에 최소치로 쏘아 냈음에도 수백 단위가 일거에 쓸려 나간다.
이게.
삑!
[현재 나의 공적치 : 3,280(산술법 확인▼)]
폭증한 능력과 오리지널 기술의 연계가 이룩한 업적이었다. 그 뒤로 몇 번의 푸닥거리를 반복하니 오래가지 않아 전쟁은 종결되었다.
“흐합!”
후우웅―
쾅!
콰드드득―!!
곽재우가 휘두른 철퇴 ‘분쇄’가 최후까지 발악하던 괴물의 대가리를 짓이기는 것으로 고요해진 전장.
[축하합니다!]
[첫 번째 파도를 ‘모두’ 막아 냈습니다.]
[압도적인 속도로 「파도」를 방어해 냈습니다.]
[소요 시간 : 7분 6초]
[뛰어난 성적으로 승리를 거머쥔 당신에게 ‘특별한 보상’을 선물합니다.]
[해당 보상은 ‘20분 이내(3일 차 기준)’로 「파도」를 방어해 낸 생존자에게만 주어집니다.]
[현재의 당신에게 가장 필요한 보상을 선정 중입니다.]
2천여 마리를 사냥하는 데 7분이면 충분했다는 찬사를 받으며 종지부를 찍은 우리에게 열세 개의 보상이 주어졌다.
“여기, 여깄습니다…….”
“제, 제건 여기…….”
전투가 벌어진 이후 일거리를 찾아다니던 원앙 부대원들은 자신들이 뭘 하기도 전에 종결된 싸움에 넋이 나갔는지 부르기도 전에 달려와서 특전을 넘겼다.
눈을 피하는 게.
항거 못 할 무력을 지닌 우리가 두려운 모양이었다. 하기사 솔져도 아닌 나이트급 군단을 모래성 허물 듯 밀어 버렸으니 무서워하는 것이 이해됐다.
어쩐지.
어저께부터 대화는커녕 마주치는 것조차 슬금슬금 피하더니만. 나는 특전을 전달하자마자 도망치는 최홍진과 원앙 부대원들을 쳐다보다가 절레절레 고개를 젓고는 한세정들과 근원석을 수거한 뒤, 집에 들러 피땀 흘려 모은 자금을 전량 챙겨 상점으로 향했다.
탐색도 좋고, 다 좋은데.
그 전에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이었다.
두말할 거 없이.
[골렘 공방]
골렘 제작이었다.
보다 정확하게는 ‘안전지대 생성’. 뭘 하든 간에 후방이 든든해야 하는 법이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고 하지 않던가. 수신제가 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말도 있고 해서 먼저 집 안을 튼튼히 하고자 골렘 공방에 들린 것까지는 좋았는데.
《골렘 제작 도면 : 1등급》
- 등급 : 비범
- 분류 : 소모품
- 설명 : 「골렘」 제작에 쓰이는 도면입니다. 사용 후 요구 조건 충족 시 ‘1등급’ 골렘을 제작할 수 있습니다.
- 옵션 : 골렘 제작(1등급)
[구매가 : 2등급 근원석 500개]
“…500개?”
실지로 골렘 제작에 필수인 도면을 구입하려고 하니 다른 것보다 비용이 눈에 들어왔다.
2등급으로 500개.
심지어.
이건 제일 낮은 등급이었다.
근원석과 마찬가지로 숫자가 높을수록 좋은 골렘은 한 등급을 올릴 때마다 1,000개씩 가격이 치솟았다.
“너, 너무 비싼 거 아니에요?”
“그러게……. 천 개라니.”
“차라리 복용이나 기술 구매는 어떠십니까, 형님.”
그 천문학적인 코스트에 한세정들도 우려를 표했고, 나도 비슷한 감정이었다.
그러나.
“1등급과 3등급을 구매한다.”
나는 금액에 휘둘리지 않기로 결심했다.
적이 없었다면 몰라도.
현재로서는 언제 또 신(新)한국 정부와 성십자가 클랜이 우릴 노릴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어제처럼 ‘이벤트 : 절망의 파도’를 활용해 암살을 시도한다면 나뿐만 아니라 한세정들이 위험해질 수도 있는 만큼.
[‘골렘 제작 도면 : 1등급’을 구입합니다.]
[‘골렘 제작 도면 : 3등급’을 구입합니다.]
과감하게 투자 서류에 도장을 찍었고, 납품이 된 즉시 생산에 돌입했다.
[‘골렘 제작 도면 : 1등급’을 사용합니다.]
공방 한쪽에 마련된 ‘제작실’ 벽면에 도면을 가져다 대자 윙윙거리는 진동음이 들리더니, 몇 줄의 문장과 함께 재료 리스트가 주르륵 출력된다.
[핵 : 1등급 근원석(종류 무관)]
[육체 : 돌 10톤(변경 불가)]
[무기 : -(착용 불가)]
[기타 : 마력 전이제, 촉진제(선택 사항), 피 10ml]
1등급이라 그런 것인지 의외로 별것 없었다.
돌 10톤을 구해 오라는 게 그나마 가장 어려운 임무랄까. 하지만 이 또한 바깥에서 드잡이질 몇 번만 하면 금방 가져올 수 있는지라 신속하게 재료를 가져왔다.
쿠웅!
부피가 큰 돌부터 채우고.
공방에서 2등급 근원석 50씩에 판매하는, 골렘의 핵과 육체를 연결해 가동케 해 주는 ‘마력 전이제’와 골렘 제작 기간을 단축시켜 주는 ‘촉진제’, 그리고 내 피를 흘려 넣자.
[모든 재료가 충족되었습니다.]
[골렘 제작을 시작합니다.]
[남은 시간 : 10분(촉진제 효과 적용 중)]
우우우우우웅―!!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울려 퍼지며 너저분하게 널려 있던 돌과 유달리 작아 보이는 근원석이 하나로 합쳐지며 점차 골렘의 형태를 갖춰 간다.
다만.
“…좀 작네요?”
한세정의 말처럼 신형 골렘의 체구가 기존 골렘의 절반도 채 되지 않았다.
5m만 돼도 대단한 거구임은 부정할 수 없지만, 10m짜리를 동원하다 반토막이 된 녀석을 끌고 다니려니 영 믿음이 가질 않았다.
아무래도.
랭킹 특전으로 얻은 골렘과 제작형 사이에 성능 차이가 존재하는 모양이었다.
‘하긴, 그래야 특전을 노리는 의미가 있겠지.’
나는 당연한 처사에 주억거리며 소형화된 골렘을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다른 점을 찾았는데, 제작형 골렘의 경우에는 한번 거대해지면 더는 크기를 줄이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휴대성.
이것도 특전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이었다.
[‘골렘 제작 도면 : 3등급’을 사용합니다.]
[핵 : 3등급 근원석(종류 무관 / 종류에 따라 옵션 적용)]
[육체 : 돌 10톤(변경 가능)]
[무기 : -]
[방어구 : -]
[기술 : -(개수 제한 2)]
[기타 : 마력 전이제x3, 촉진제x3(선택 사항), 피 10ml]
3등급 골렘은 몸체를 넘어 무기와 방어구에 심지어 기술까지. 많은 것이 커스텀 가능했다.
다시 말해.
돈 잡아먹는 하마라는 소리였다.
“…기왕 만드는 거, 제대로 만들자.”
나는 이를 악물고 상자를 열었다.
괜히 덜떨어지게 설계해서 나중에 후회하느니, 할 때 확실하게 하는 게 나았으니까.
그 결단 끝에.
[핵 : 3등급 근원석―머메른 / 무기 활용 능력 향상, 수(水) 속성 방어력 향상]
[육체 : 흑철석 10톤 / 물리 방어력 증가, 내구도 대폭 향상]
[무기 : 흑철창]
[방어구 : 흑철 갑주]
[기술 : 골렘 전용 창술, 골렘 전용 박투술]
[기타 : 마력 전이제x3, 촉진제x3(선택 사항), 피 10ml]
3등급 골렘의 소재는 이렇게 정해졌다. 2등급 근원석 500개를 추가 투입한 결과물이었다.
* * *
푹―
[‘선택형 안전지대 생성권’을 사용합니다.]
[골렘 1기가 소모됩니다.]
[‘안전지대’ 설치를 시작합니다.]
거점 중앙.
바람에 나부끼던 깃발을 꽂고 물러나자, 땅에 누워 있던 소형화 상태의 골렘(1등급)이 벌떡 일어났다.
그러곤 명령을 내리지도 않았거늘 알아서 봉인을 해제하고는 깃발 옆으로 성큼성큼 걸어가 한쪽 무릎을 꿇고 가슴에 양손을 엑스자로 모은다.
흡사.
마을 어귀에 세워 둔 장승처럼.
그러자.
우우우웅―!!
이내 깃발에서 흘러나온 막대한 양의 마력이 골렘과 결합하며 사방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고.
[선택의 차례입니다.]
[‘수식어’와 ‘추가 옵션’을 결정해 주십시오.]
[1. 수식어▼ / 한 가지 선택 ]
[2. 추가 옵션▼ / 세 가지 선택]
이내 눈앞에 카테고리마다 십수 개의 선택지가 정돈되어 나타났다. 허나 고르는 데 딱히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1. 수식어 / 초목의―‘안전지대’ 내부에 자란 각종 꽃과 식물이 허가되지 않은 대상을 속박하고 중독(마비, 수면, 혼란)시킨다.]
[2. 추가 옵션 / 체력 및 마력 회복 속도 증가, 피로 회복 속도 증가, 방벽 방어력 강화―속성]
목조 건물과 어울리는, 혹은 필요한 것들만 딱딱 골라 주면 됐기 때문이었다.
[‘초목의 안전지대’ 설치가 완료되었습니다.]
“됐나.”
좋다.
이것으로 집 안 정리는 마쳤다.
허면 이제 남은 건.
“가자.”
“네!”
“제가 우측 경계 서겠습니다.”
“그럼 내가 왼쪽으로 갈게.”
본격적인 탐색의 시간이었다.
[「탐사력」을 발동합니다.]
[반경 5km 내에 위치한 커맨더급 개체를 탐색합니다.]
부디.
내 가설이 맞길. 기대와 걱정을 품고서 ‘이벤트 : 절망의 파도’가 실시된 이래로 첫 외출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