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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메라의 기억법-127화 (127/232)

127화

【 거인의 시대 】

‘골렘(Golem)’.

인류와 그 거대 병기와의 만남이 성사된 건 종말이 있었던 후로 석 달여가 되던 12월 말.

가까스로 살아남은 이들을 다시금 나락으로 몰아붙이는 ‘이벤트 : 절망의 파도’가 발발하여 ‘차원 : 테라’의 전역을 짓밟는 괴물들의 물결에, 힘겹게 피워올렸던 생명의 불씨가 꺼지려던 벼랑의 끝자락이었다.

끊임없는 물량 공세에 간신히 되찾았던 삶의 기반이 무너지던 그때.

‘공적치 순위 100위 한정 특전’이라는 명칭으로 지급된 골렘들은 실로 기적과도 같았다.

10m에 이르는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힘은 솔져든 나이트든 가리지 않고 종잇장처럼 찢어발겼으며, 온갖 공세에도 물러섬 없이 당당하게 맞서는 강인한 몸체는 능히 철벽과 비견됐으니까.

다만.

문제가 있다면 초기에 보급된 골렘의 수가 기껏해야 백여 기 남짓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이벤트 : 기수 사냥’을 기점으로 전 인류의 80%가 사망했다고 하나.

80억을 바라보던 인구임을 고려하면 여전히 15억 명가량이 이를 악물고 버티고 있는데 고작 100기라니, 이게 말이나 되는가.

그런 탓에 기적의 산물이라던 이명(異名)처럼, 대부분의 생존자들에게 있어서 골렘은 몇몇 소수에게만 주어지는 특별한 선물에 지나지 않았다.

딱.

절망의 파도 2일 차의 밤이 가고 3일 차의 아침 해가 떠오르기 전까지는. 인식의 변화가 생긴 것은 채 30시간 만이었다.

부러움과 질시로 이글거리던 모두의 눈앞에.

[곧 3일 차 ‘이벤트 : 절망의 파도’가 개최됩니다.]

[더불어 시작 전 3일 차에 적용된 「설정」에 대하여 알려 드립니다.]

[‘차원 상점’에서 「골렘 제작 도면」 및 관련 재료 판매처가 개설됩니다.]

[해당 아이템들은 ‘이벤트 : 절망의 파도’가 진행되는 동안 특수한 조건 달성으로도 획득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공지가 등장했기 때문이었다.

“상점에서 골렘 제작 도면을 판매한다!”

“상점에서 골렘 제작에 필요한 재료들을 판매한다!!”

“이제 우리도 기적을 손에 쥘 수 있다!!”

우와아아아아아!!

겨우 몇 줄의 문장이었으나.

생존자들의 태도는 전날과 180도 달라졌다.

곧.

고정 상점과 여분의 근원석을 보유한 자들이 너도나도 도면과 재료를 구매해 골렘을 생산해 내기 시작했다.

비록 그 성능이 첫날 공급된…….

‘인류 최초의 골렘’임을 감안해 격을 높여 부르는 ‘가디언’에 비할 바는 못 되었지만, 누구도 불평하는 이가 없었다. 배신과 음모가 난무하는 인간사에서 내 등을 믿고 맡길 권속이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했기에.

게다가.

시일이 흐르는 사이 각고의 노력을 통해 ‘차원 상점’ 혹은 각자의 ‘고유 능력’ 등 여러 방법으로 다소 부족했던 기능을 개선할 수 있음이 밝혀졌으니.

인류는 그것으로 흡족해하며 새로 맞이한 신년의 태양을 향해 이렇게 외쳤다.

세상은 이제.

대골렘의 시대가 되었노라고.

-서적 『인류의 역사를 풀다 Part_2 : 골렘의 시대』 中 일부 발췌

* * *

우드득!

[축하합니다!]

[「머메른 : 3등급」의 ‘가죽’ 이식에 성공했습니다.]

[대상 「머메른 : 3등급」이 보유 중이던 신체 능력 일부가 전이되었습니다.]

[「인간성」 25%를 소모합니다.]

마지막 뼈가 맞춰지며 고통이 사라지고 온몸에 활력이 차오른다.

역시 커멘더인 건가.

후우우욱!

퍼엉!

“…이 정도로 상승한다고.”

나는 살짝 움켜쥔 주먹을 내질러 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오직 신체 능력만으로 행한 정권 지르기 한 방에 폭발음이 터져 나오며 대기가 와르르 갈라지는 꼴을 보고 있자니 입을 안 벌릴 수가 없다.

물론.

메인은 피부다.

꾸우우욱―

꾸욱―

매우 탄력적인 살갗.

흡사 고무를 누르듯 딴딴하면서도 팽팽한 감촉은 꼭 갑옷을 씌우지 않더라도 타격기에 한해서는 엄청난 대항력을 가지리란 게 여실히 느껴졌다.

단지.

좋은 소식이 있으면 나쁜 소식도 있는 법.

“어린갑은… 기술의 영역이었나.”

다 좋은데 반해 정작 가장 소망했던 어린갑(魚鱗甲)은 신체 능력만으로 생성이 불가능했다.

흡수된 세포의 기억에 의하면.

어린갑이란 최소 나이트급에 오른 어인이 습득하는 기술로, 투입한 마력 양과 주변 수분을 합하여 소환하는 액티브 스킬이었다. 해서 ‘순간 회귀’를 발동하면 손과 발에 물갈퀴가 생길 뿐.

촤르르륵 하고 전신 갑주가 나타나는 장면은 연출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는 이미 예측했던 악재.

“쯧.”

나는 혀를 차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래고 땅바닥에 몸을 뉘이며 눈을 감았다.

[그러나 ‘가죽’에 남아 있는 「머메른 : 3등급」의 기억마저 포식하지 않는 한 불완전한 성장에 지나지 않습니다.]

[온전한 진화를 위해 지금부터 ‘666초’ 내에 「기억 포식」을 성공해 내야 합니다.]

[「기억 포식」에 실패하거나 혹 「기억 포식」 행위 자체를 시도하지 않을 경우 향상된 능력은 4분의 1로 하락합니다.]

[남은 시간 : 666초]

[남은 시간 : 581초]

감상은 다 했으니.

슬슬 ‘포식의 땅’으로 여행 갈 순서였다.

“3등급 포식의 땅이라……. 이번엔 뭐가 달라지려나.”

풀 한 포기 없는 황무지에 달랑 한 마리가 출현하던 1등급 포식의 땅, 적수는 열두 마리로 늘어나고 필드도 해당 괴물에게 적합하게 변형되는 2등급 포식의 땅.

허면.

3등급은?

‘바닷속만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프레데터의 기억 포식]

우우우우웅!!

[‘고유 능력 : 프레데터의 기억 포식’이 발동됩니다.]

[당신의 영혼이 〈포식의 땅 : 2등급〉으로 이동합니다.]

경험해 보지 못한 미지의 공간이 주는 불안함에 제발이란 두 글자를 되뇌며 이차원의 세계에 발을 디뎠다.

* * *

쏴아아아아아아아―

파도 소리가 들린다.

시원한 바람이 살갗을 스쳐 지나가고, 비릿한 바다 내음이 코끝을 맴돈다. 깨어나 보니 내가 누워 있던 장소는 여름날 일광욕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인 해변가였다.

더 정확하게는 눈같이 희고 고운 모래로 뒤덮인 백사장이다.

“다행이네.”

나는 배경이 수중이 아니라는 사실에 우선 안도한 한숨을 내쉬었다.

물갈퀴를 쓸 수 있게 됐다만.

실제로 써 본 적이 없어 적응 훈련이 절실한 상태라 그대로 전장에 투입되면 어쩌나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는데 적어도 다짜고짜 물속에 처박아 넣진 않을 모양이었다.

허나.

아직 안심할 단계라고 하기는 어렵다. 정면에 펼쳐진 바다가 입수를 의미하는 사인일 수도 있기 때문에 전방을 주시하며 경계에 돌입했다.

‘어디냐…….’

또.

몇 놈이냐.

‘성장의 땅’에서처럼 무식하게 수십 단위로 쏟아져 나올지도 모른단 가정하에 감각을 곤두세우길 1분여.

촤아악!

촤악!

“……!”

숨죽여 기다리고 있자니, 드디어 물살 가르는 소음이 귓가를 간지럽혀 왔다.

[감각 증폭 : 청력]

후욱!

귀에 마력을 더해 집중하자 어지럽고 난해하던 소리의 파장이 여러 갈래로 분해되며 어인들을 찾아 나선다.

기술 습득 이후로 나름대로 열심히 연습한 데다가 마침 주변에 다른 노이즈가 없어 점차 선명해지는 파동.

그 덕택에.

본격적으로 마주치기 이전임에도 완전하게 읽어 낼 수 있었다.

“부대로군.”

적군이 물경 100여 마리나 되는 군대이며.

나아가.

해당 부대의 구성원이 커멘더 한 개체와 나이트 30개체에 솔져 70개체로 구성되어 있음을.

아마도 ‘포식의 땅 : 3등급’의 테마는 개인 대 조직인 듯싶었다.

“좋네.”

아주 마음에 드는 타입이었다.

왜?

[일기당천]

[스트랭스]

“알아서 뭉쳐 주면.”

콰득!

[강격]

우우우우우웅!!

후욱!

“나야 고맙지.”

나는 군단을 파괴하는 파괴자의 길을 걷고 있었으니까.

[오리지널 기술 : 군단을 파괴하는 본능]

번쩍!

각종 버프를 더하고서 거침없이 내지른 오른손에서 빠져나간 광휘가 일직선의 궤적을 그리며 수면 위로 날아든다.

촤아아악!

촤악!

“заб?ць!!”

“чалавек!!”

그 타이밍에 맞춰 물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어인들.

아니다.

이건 ‘기막힌 우연’보다는 ‘설계된 운명’이었다.

날카로운 감각을 발판 삼아 빚어낸.

콰아아아앙!!

콰아아아앙!!

콰과과과과광!!

잔혹한 도살의 운명.

“……!!”

“……!”

인스턴스 던전 ‘쌍수 증량의 폭력’에서 사냥한 어인과 동일하게 전원 순백색의 창으로 무장한 군대는 지상의 공기를 들이마심과 동시에 마력 덩어리에 저격당해 단말마의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소멸당했다.

저항은 불허하는 일격.

일말의 자비도 없는 파멸의 빛은 백여 마리를 빠짐없이 훑고 짓뭉개 버렸고, 그 파멸의 빛이 휩쓴 자리에 남은 건 그나마 어린갑의 방호력이 제일 뛰어났던 커멘더가 끝이었다.

“дзя, рмо……!”

물론.

놈도 멀쩡하지는 않았다. 육체 이식으로 진화된 능력을 온전하게 담아낸 공세였기에 죽음을 모면했을 따름이지.

상체 절반이 소실되어 사실상 죽은 것과 진배없는 산송장이었다.

이것이.

전력을 다한 ‘체화(體化)’ 등급의 기술 위력이었다.

“만들어 두길 잘했어.”

불가피하게 탄생한 것이긴 하지만.

결과적으로 절망의 파도도, 저 어인의 군대도 손쉽게 멸절시켰으니 어쨌든 잘한 일이 됐다.

“Памрэ… жа……!”

[오르그의 파괴 본능]

후우욱―

콰아아앙!!

푸르른 피를 게워 내는 커멘더급 어인의 원한 섞인 음성을 들으며 가한 최후의 공격.

필사적으로 창을 휘둘러 보려던 놈의 안면을 직격한 빛무리가 머리를 송두리째 지워 버리며 전투의 종료를 알렸다.

3등급 포식의 땅이라 긴장한 것치고는 생각보다 허무한 결말이었다.

아마.

시간을 끌지 않은 게 주효했으리라.

어영부영 지체됐으면 지능적인 놈들인 만큼 날 바닷속으로 끌어들이려 했을 거고, 그랬다면 꽤나 난처해졌을 테니까.

여하간.

[‘고유 능력 : 프레데터의 기억 포식’ 시뮬레이션이 종료되었습니다.]

[정해진 시간 내에 ‘기억 포식’을 성공하셨습니다.]

[육체가 온전한 진화를 이룩해 냅니다.]

[대상 「머메른의 가죽」에 담긴 ‘기억’을 포식합니다.]

나는 승전을 축하하며 잔뜩 밀려드는 메시지들을 쭉쭉 넘기며 아랫단으로 시선을 옮겼다.

[포식하고자 하는 ‘기억의 갈래’를 선택해 주십시오.]

스랄레오나 발록을 포식하던 때에 보았던 ‘기억의 갈래’ 초이스 창.

“뭐가 추가됐으려나.”

등급도 올랐겠다.

혹시 ‘기술’과 ‘특성’ 이외에 새로운 항목이 추가되어 있진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안고 눈길을 준 직후.

“…이게 뭐야.”

내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졌다.

[현재 당신이 흡수한 대상의 등급은 「3」입니다.]

[대상의 등급에 따라 포식 가능한 ‘기억’의 폭이 늘어납니다.]

[1. 기술(선택 1)]

[머메른의 해류창 / 머메른의 갑주 / 머메른의 수류격]

[2. 특성(선택 1)]

[수신일체 / 집단 지력]

[포식하고자 하는 ‘기억의 갈래’를 선택해 주십시오.]

[선택되지 않는 ‘기억’은 자동 삭제됩니다.]

선택 창은 확실히 향상되었으나.

[‘기억 포식’의 대상이 「커멘드」 등급임을 확인했습니다.]

[‘특이 사항’란에 「동화 : 바다의 기사」가 추가됩니다.]

그걸 상회하는 ‘단점’이 시야를 채운 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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