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화
사건이 발발하기 약 3분 전.
‘중급 해독 물약’을 갖고 정도윤에게 다다른 한세정은.
딸깍―
비싼 값을 자랑하듯 딱히 힘을 주지 않아도 스르륵 열리는 물약 뚜껑을 주머니에 넣고서, 열린 틈으로 새어 나오는 산뜻한 향기를 맡으며 독기가 넘실거리는 옆구리에 조금씩 부어 흡수시켰다.
약효가 드는지.
분홍색의 해독제가 환부를 핑크빛으로 물들이자, 시퍼런 피부가 차차 옅어져 간다.
“오! 오오!!”
상당히 빠른 피드백에 근처에 앉아 관찰하던 최홍진의 얼굴에 완연한 안도감이 감돌았고, 좋은 소식을 고대하던 원앙 부대원들도 마찬가지로 서로를 얼싸 안으며 입을 모아 환호했다.
그 모습에 ‘암살자만 아니었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남몰래 중얼거린 한세정은 용독술을 활성화하며 마지막으로 정도윤의 증세를 체크했다.
꼼꼼하고 면밀하게 확인해 본 결과 독기는 말끔하게 사라졌다.
중독 증세를 극복했더라도 살점이 뜯겨 나가는 중상을 입었었기에 아예 정상이라고 판정을 내리긴 뭐하지만, 이 역시도 곽재우의 꾸준한 케어가 더해지면 조만간 잘 해결되리라.
작게 주억거리며 상념을 마친 한세정은.
“…해서 며칠만 더 요양하면 될 것 같아요.”
자신의 소견을 밝히며 살짝 물러났다.
역할을 다했으니 복귀하겠다는 의사 표시였는데.
텁―
별안간 누군가가 그녀의 가녀린 팔목을 붙잡는다.
난데없는 속박에 화들짝 쳐다보니.
“……?”
“으, 으음…….”
독기가 소멸되며 정신을 차린 모양인지.
잠을 자는 듯하던 정도윤이 신음을 흘리며 그녀를 붙들고 있었다.
“홍진아, 최홍진…….”
그러나 아직 확실하게 깨어난 건 아닌지, 한세정을 두고 최홍진의 이름을 부르짖는다.
아무래도.
부대장의 특성상 대장을 보좌하고자 곁에 있는 경우가 많다 보니, 느껴진 인기척의 주인이 최홍진이라고 착각한건지.
하여.
“홍진 씨, 이분 좀…….”
환자임을 감안해, 강하게 뿌리치기보단 조심스럽게 떼어 낸 한세정이 최홍진을 불렀다.
“혀, 형님. 저 여깄습니다!”
안 그래도 다가올 타이밍만 노리던 최홍진은 와도 좋다는 사인에 급하게 달려와 제 상관의 손을 잡았다.
그 투박한 촉감이 정도윤의 영혼에 닿았을까?
번쩍!
“아!”
어두운 방을 밝히고자 전구 스위치를 켜는 것처럼, 움찔움찔하던 눈이 팍 하고 떠졌다.
드디어 올바르게 조성된 재회의 장.
“형님!”
“도윤 형님!!”
“대자아앙!!”
최홍진을 필두로 대장의 귀환을 반기며 원앙 부대원들이 한꺼번에 안기려던 그때.
“…아! 아아아! 으아아아아아아!!”
눈동자를 데구루루 굴려 부하들에게 시선을 보낸 정도윤이 느닷없이 발작을 일으키며 비명을 토해 냈다.
너무나도 급작스러운 사태에 모두가 멍해진 사이.
타다다닷!
“비켜 봐요!”
반쯤 멀어졌던 한세정이 되돌아와 원앙 부대원들을 밀어내고 정도윤의 상태를 살펴봤으나.
사실 그녀가 진찰한다고 드라마틱하게 달라지는 건 없었다.
‘독기는 제거됐는데 왜 그러지? 옆구리 통증이 원인인가?!’
용독술을 통해 배운 독학(毒學)은 엄연히 말해서 의학이라기엔 무리였으니까.
즉.
독에 관련된 사항을 제외하면 한세정의 의료 지식은 지극히 상식적인 민간요법 수준에 불과했다.
단지 그녀가 어버버대는 원앙 부대원들보다 나은 건.
뽕!
여분의 포션을 보유했다는 점이었다.
기껏해야 하급에 개수도 두 개가 전부였지만, 이마저도 없어 자연 치유에 기대거나 회복계 능력자를 찾아다니는 생존자들도 있을 지경이니.
하여간.
한세정은 허리춤을 뒤져 빼어 든 체력 물약을 지체 없이 정도윤의 입에 들이부었다.
별로 아깝지는 않았다.
아윤에게 이 남자를 살리라는 특명을 받았다. 정확하게는 ‘해독해 줘라’였다만, 전자나 후자나 사실상 의도는 동일한 바.
“잠시만 눌러 주세요. 체력 포션하고 수면제 좀 놓을게요.”
“아, 알겠습니다! 뭣들 해! 팔다리 잡아!”
“옛!”
“으으, 으아아아!!”
최선을 다해 정도윤을 진정시키려 열중했다.
정 안 되면.
“꽉 잡아요! 여차하면 아윤 오빠께 상등품의 포션이 있는지 여쭤볼 테니!”
아윤에게 알려서라도 치료해 줄 각오로―
우뚝―
“…어?”
“형, 님?”
억지로라도 포션을 먹이려던 찰나.
미친 듯이 발광하던 정도윤이 거짓말처럼 움직임을 멈췄다. 사신이 쫓아오기라도 하는 양 몸부림치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당최 종잡을 수 없는 패턴에 당황스러워하고 있자니.
후우욱!
이번에는 멀쩡한 일어나기까지 한다.
“…….”
괜찮아진 걸까?
아님.
저러다 또 난동 부리려는 걸까?
스으으윽―
말없이 예의 주시하는 차에 전방을 응시하던 그가 천천히 좌측으로 고개를 틀어 한세정에게 시선을 고정한다.
헌데.
동공이 퀭했다.
단순히 피곤해하는 사람이나 아픈 사람에게 쓰는 일상적인 비유가 아니라, 흡사 영혼이 빠져나가고 육신만 남은 것처럼 기괴하다는 감정이 들 정도로 텅 비어 있었다.
설마…….
독을 제때 떨쳐 내지 못한 부작용인 건가?
그럴지도 모르겠단 생각에 한세정은 자동으로 이를 어떻게 고쳐 줘야 할지 고민하며 나직하게 물었다.
당장 곁으로 보이는 건 안구 외에 없으니.
자세한 진찰을 위해서라도 몇 마디 대화를 나눠 볼 심산이었다.
“저기, 좀 정신이 드시나요……?”
그런데.
최대한 자극하지 않으려 나긋나긋하게 던진 물음에 돌아온 대답이 매우 쌩뚱 맞았다.
어째서인지.
“아, 윤.”
많고 많은 단어 중 그가 내놓은 응답은 ‘아윤’이라는 두 글자였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아윤, 아윤! 아유우우운!!”
어금니를 꽉 깨물며 뇌까리는 ‘적의(敵意)’와 ‘살의(殺意)’가 잔뜩 스며든 말투로. 그 진한 살기가 피부를 찔렀을 때.
한세정은 직감했다.
이 남자와는 대화도, 타협도 불가능하다는 걸.
아윤 오빠.
후화하학!
친근하게 불렀다는 동기 하나로 단 1초도 망설이지 않고 공격하는 자와 얘기는 무슨 얘기.
‘흡!’
한세정은 손날을 세워 찍어 누르는 정도윤의 공세에 발뒤꿈치로 땅을 차 백 스탭을 밟으며 주먹을 뻗어 맞부딪쳤다.
당혹스러울 만도 하건만.
그녀의 대응은 놀랍도록 빠르고 절묘했다.
상념은 상념대로 이어 가면서도 회피와 반격을 한꺼번에 해내다니. 여태껏 단련해 왔던 과거의 노력이 빛을 발하는 신속한 반응이었다.
허나.
완벽한 조치에도 한 가지 결점이 있었으니.
슈욱―!
“……!”
정도윤의 ‘고유 능력’.
정면에서 치고 들어가는 척 시야를 속이고, 실상은 ‘등 뒤’에서 칼날을 소환해 뿌리는 ‘이면의 칼날’이 있었기에 암살자로 채택되었다던 이야기를.
촤아아아악!
콰직!
“이, 건…….”
피격당하고 나서야 떠올렸다는 것이었다.
털썩―
다리에 힘이 풀린다.
하필이면 척추나 신경에 문제가 생겼는지, 어서 도망쳐야 하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다만.
우우웅!
다행스럽게도 탈출 방법은 하나가 아니었다.
[단거리 공간 이동]
번쩍!
일순간 전신을 감싸는 빛.
상처 부위에서 치솟는 통증을 인내하며 공간을 넘자.
“혀, 형님! 도윤 형님! 왜―”
멀리서 정도윤을 말리는 최홍진의 음성이 들렸다.
그걸로 상대와의 간극을 가늠해 봤다.
‘15m…….’
여전히 가까운 위치.
하지만.
‘이 정도면 됐어.’
[급속 회복]
한세정은 계속해서 공간의 문을 열기보다는 치료하는 데 몰두했다.
더 이상.
도주할 필요가 없었다.
“세정아!!”
그가.
날 향해 와 주고 있었으니까.
* * *
[가속]
[돌진]
콰아아앙!!
한세정이 쓰러지는 걸 목도함과 동시에 내뻗은 보폭.
삽시간에 느려지는 흐름을 거스르며 나아가길 3초, 어느덧 본래의 리듬을 찾아가는 세계를 질주하며 목적지에 당도한 나는 일말의 머뭇거림 없이 정도윤에게 일격을 꽂았다.
후우우우욱―
콰아앙!!
200의 벽을 깨트린 근력으로 가한 권격.
피륙이 충돌했다고는 믿어지지 않을 커다란 폭발음이 울려 퍼지며 정도윤의 몸뚱어리가 십수 미터를 날아 땅바닥에 처박힌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미동도 없는 그를 무시하고 한세정에게 달려갔다.
“세정아!”
“오, 오빠…….”
황급히 다가 들자.
한세정이 복부에 구멍이 뚫린 채로 아픔을 참으며 날 보고 웃는다.
괜찮으니 걱정 말라는 듯.
고통스러울 게 뻔한데도 애써 미소를 짓는 창백한 얼굴에 나는 서둘러 그녀를 안고서 중급 포션을 개봉해 입가에 흘려보냈다.
꿀꺽―
마지막 한 방울까지 탈탈 털어 먹이자 확실히 등급이 등급이라서 그런지 한세정의 표정이 눈에 띄게 환해졌고.
“후으, 후……. 후으…….”
거칠게 몰아쉬는 호흡도 점차 안정되어 간다.
그제야 한시름 놓은 나는 빈 병을 대충 버리고 새로운 걸 꺼내 환부에 뿌렸다. 포션의 장점은 치유 효능 이외에도 그 자체로 소독약을 겸한다는 것이다.
깨끗한 물을 대신하는 최고의 살균제였다.
“아! 아으……! 오, 오빠……. 살살……!”
“다 했으니까 버둥거리지 마.”
“아픈, 데…….”
진통 효과는 없다는 게 흠이었지만.
여하튼.
무려 중급 포션을 두 병이나 부어 응급 치료를 끝낸 나는 그녀를 다시금 눕혀 주고 곽재우를 불러들였다.
일이 잘못됐음을 인지하자마자 이미 부리나케 뛰어오던 곽재우는 뒷말을 잇지 않았음에도 즉시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마력을 끌어올리며 치유 마법을 연거푸 발동했다.
“치유!”
우우우웅!!
큼지막한 손바닥에서 생성된 따스한 기운이 한세정의 상처를 감싸자, 쩍 하고 벌어져 있던 살점이 서서히 아물어 간다.
호전되려면 한참이 걸리겠지만, 일단 위급한 고비는 넘긴 것 같았다.
허면.
지금부터는 죗값을 받아 낼 시간이리니.
“갔다 올 테니 나머지는 한세정을 지켜. 누구도 다가오지 못하게.”
“네!”
“네!”
“네!”
“네!”
혹시 모를 만일을 대비해 조이령을 필두로 십이지신(十二支神)들까지 전부 세워 두고 정도윤에게로 걸었다.
좀 전의 주먹질로 죽었으면 어쩌나 싶었는데.
“아으, 으……!”
재수가 억세게 좋은 놈인지 감사하게도 목숨이 붙어 있었다.
해서.
고맙단 인사를 겸해 살기(殺氣)를 발산하며 전진해 가자.
“저, 저기……!”
“잠시―”
얼른 내 앞을 가로막는 원앙 부대원들.
우리만큼이나 저들도 현재의 상황을 명확히 이해하지 못해 어리둥절한 눈빛이었지만, 그와는 별개로 나를 저지하지 않으면 정도윤의 목숨이 위험하다는 걸 감지하고서 나선 듯했다.
그래서 친절하게 알려 주었다.
“안 죽일 테니 걱정 마.”
반드시 살려 둘 거라고.
죽이는 건 쉽다.
그러니 최소한 한세정이 받은 아픔의 백 배를 선사해 줄 때까지는 절대 죽여서는 안 된다.
더군다나.
“물어볼 것도 있고.”
‘각인’이라고 했던가.
이 사달의 시발점이 된 신(神) 한국 총수 이회건의 ‘고유 능력’이라던 그것에 대해 궁금한 게 참 많다.
최홍진도 나름 알고 있는 듯하나.
모름지기 몸소 체험한 정도윤이 제일 잘 알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복수와 공부, 이 두 가지 질문에 대해 충분한 답변을 듣기 전에는 심장을 짓이길 마음이 없었다.
“으아아아아아아!!”
콰아앙!
마침.
저쪽도 한 대 처맞았다고 후다닥 꼬리 내리고 오체투지를 하진 않을 기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