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화
골렘을 이용한 기습은 언제나처럼 혁혁한 성과를 가져왔다.
이 깜짝 쇼는 겪어 보지 않으면 반응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 수준이었기에 암만 커멘더급 괴물들이라고 해도 선기를 내줄 수밖에 없다.
“чалавека!!”
“그워어억!!”
“키에엑!!”
쾅!
콰앙!
“여섯이서 하나를 맡아!”
나는 십이지신(十二支神)의 습격에 대항하지 못하고 바닥을 구르는 커멘더들을 세 개 조로 떼어 냈다.
자신(子神)부터 사신(巳神)까지가 1조로 뭉쳐 철갑 사자를, 오신(午神)부터 해신(亥神)까지가 2조로 묶여 이족 보행 악어를, 마지막으로 내가 3조가 되어 어인에게 달려들었다.
이쪽을 담당하기로 한 건.
당연하게도 가장 위험한 놈이 저 어인이기 때문이었다. 능력치를 본 적은 없지만, 육감의 눈은 정확하다.
[가속]
[돌진]
슈우욱!
목표가 선 순간 뻗은 다리.
갈라진 대기가 살갗을 스쳐 지나가는 촉감을 즐기며 한걸음에 어인의 면전에 도달한 나는 마력이 일렁이는 주먹을 안면에 꽂아 넣었다.
[마력 유체]
[스트랭스]
[강격]
[오르그의 파괴 본능]
우우우우웅!!
‘가속’과 ‘돌진’으로 기반을 다지고, 각종 기술을 얹어 완성한 일격.
후우욱―
콰아아아앙!!
지축이 뒤흔들리는 폭발음이 울려 퍼지며 붕 떠오른 어인의 몸뚱어리가 수십 미터를 날아 벽에 부딪쳤다.
석벽을 부수며 대자로 틀어박히는 모습에 어쩐지 어릴 적 즐겨 보던 애니메이션이 오버랩됐다.
물론.
꾸우우욱―
[돌진]
쾅!
감상은 잠시였다.
한 방 제대로 두들겨 주긴 했지만, 묵직한 손맛과는 달리 육감은 여전히 레이더를 바짝 세우고 있다는 것은 대미지가 거의 없었다는 경고일지니.
“하아!”
[순간 회귀 : 발록의 왼팔]
[베어 내기]
안주는 금물이다.
우득―
촤아아아악!!
대지를 박차고 전속력으로 질주해 휘두른 왼팔.
마력을 머금어 한껏 날카로워진 발록의 손톱이 위에서 아래로 대각선을 그리며 전방을 베어 버린다.
그러나.
후화하학!
카아앙!!
“음!”
다섯 줄기의 참격은 상대의 목을 취하지 못했다.
별안간 튀어나온 백색의 창대가 역방향으로 솟구치며 내 공격을 깔끔하게 막아 낸 탓이었다.
하여 창대라도 잘라 내려 힘을 줬으나.
꽈아아아아악!!
카각―
칵―
흠집이 조금 생겼을 뿐, 느닷없이 낭창낭창하게 휘어지는 바람에 압력이 분산되어 바라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뭐지?’
기이한 감촉이었다.
쇠처럼 딱딱하던 게 갑자기 고무처럼 부드럽게 구부러지다니. 기술의 영역인가? 아니면 무기 본연의 성질?
뭔진 몰라도 처음 접해 보는 몹시 독특한 유형의 무기였다.
“памерц? чалакам!!”
쾅!
뇌 내에 새로운 정보를 입력하는 사이 파묻혀 있던 곳에서 빠져나온 어인이 추락하던 내게 쇄도해 왔다.
창을 곧게 세워 찌르고 들어오는데.
벽을 지지대 삼아 도약하며 받은 추진력 덕에 벼락이 치든 듯 속도가 엄청났다.
더군다나.
푸화하하하학―!
‘물?!’
놈의 주위로 사방에서 수증기가 모여들고 있었다.
[마력 방패]
단순한 찌르기가 아님을 파악하자마자 방패를 비스듬히 소환해 창로를 틀며 오른발을 뒤로 빼 반보를 물러났다.
반투명한 격류를 휘감은 창날은 에너지 막을 종잇장처럼 꿰뚫고 끝까지 날 노렸으나.
[강격]
[베어 내기]
후우웅!
쾅!
뒤이어 펼친 내려 긋기와 추돌해 결국 경로가 사선으로 굴절돼 땅바닥과 충돌했다.
그로 인해 제 갈 길을 잃고 지하로 처박혀 애꿎은 지면을 헤집는 물줄기.
촤좌좌좌좌좌작!!
흡사 수십 자루의 칼날이 휘둘러진 듯, 풀과 꽃으로 무성하던 초지가 조각조각으로 나뉘어 잘려 나간다.
그 진동이 전해지기도 전에 재빨리 몸을 일으키며 공세를 이어 가려는 놈.
하지만.
탁!
지금부터는 내 차례였다.
[티그리스의 대지 비틀기]
콰직―
쿠구구구구궁!!
“гэта?!”
급격하게 붕괴하는 지반에 놀라 괴성을 지르는 어인.
난데없는 뒤틀림 당황한 놈이 뒷걸음질을 치며 퇴각하려는 스탠스를 취했으나.
쿠웅!
퍼어억!
“кехэк!!”
재수 없게도 하필이면 디딤 발로 밟은 위치가 거석이 튀어나오는 지점이었다.
뭐든 간에 예측하지 못한 피해는 더 아프게 다가오는 법.
이를 증명하듯 정강이를 찍힌 어인의 아가리에서 고통으로 범벅이 된 비명이 쏟아져 나오더니, 충격이 생각보다 심했는지 균형이 무너져 고꾸라지기까지 했다.
나에겐 최적의 기회였다.
‘흐읍― 하!’
확 하고 들이마신 호흡.
체내로 공급된 산소가 전신을 뜨겁게 달군 찰나.
[가속]
[순간 회귀 : 오르그의 오른팔]
[강격]
[오르그의 파괴 본능]
보폭을 크게 내디디며 치명적인 상처를 새겨 주리라는 각오로 팔다리를 허우적허우적 땅 짚고 헤엄을 치는 어인의 명치를 두들겼다.
그러자.
“лускаваты даспех!!”
슈욱!
텁!
놈도 이 공격의 심각성을 읽었을까.
일순간 출렁거리는 파도에 저항하기를 포기하더니, 바윗덩어리가 온몸을 짓뭉개도 아랑곳하지 않고 뜬금없이 제 가슴을 손바닥으로 덮는다.
‘……?’
괴상한 광경에 의아해지려던 그때.
우웅!
촤르르르륵―!
짤막한 기운의 파동이 놈의 온몸을 뒤덮었고, 직후에 급속도로 자라난 뭔가가 놈의 육체를 물들였다.
물결치는 파도 무늬 같은 그것은.
‘비늘?’
어류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비늘’.
또 다른 명칭으로는.
후우우우욱―
쿵!
진심이 담긴 내 권격을 튕겨 내는 ‘갑옷’이었다.
‘저거였나?!’
나는 복부를 찢어발겼어도 모자랄 마력이 허무하게 흩어지는 걸 보며 깨달았다.
저 어린갑(魚鱗甲, Scale armour)이 녀석의 방패였음을.
헌데.
동시에 한 가지 의문점이 뇌리를 관통했다.
‘…왜 이제야 꺼낸 거지?’
연계기라고 해야 할지, 합성기라고 해야 할지.
딱히 정해 둔 이름은 없지만, 여하튼 시너지를 내는 몇 개의 기술을 조합해 내지른 일격도 간단하게 흘려 낸 대단한 갑주였다.
허면 꼭꼭 숨길 게 아니라 전투 초기부터 착용하는 게 옳은 판단이지 않던가.
그런데.
무슨 영문인지 놈은 십이지신(十二支神)의 몰매도, 내 첫 타와 ‘티그리스의 대지 비틀기’도 시원하게 허용했다.
과정에서 신음을 토해 낼 정도로 통증이 동반됐음에도.
골렘들의 기습이야 워낙 급작스러웠으니 어떻게든 납득해 보겠다만, 그 외에는 굳이 맞아 줄 필요가 없었다.
나에 대해 아예 무지하다면 모를까.
대면하자마자 처맞으며 데이터베이스도 충분하게 확보했을 터인데.
“ой! Я заб'ю цябе!!”
‘그렇군.’
나는 더 이상 거석과의 부대낌에도 아무렇지 않아 하는 놈을 응시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답을 알 것 같았으니까.
쿨타임이 긴 단발성 기술이거나, 또는 유지 비용으로 나가는 마력 소모량이 무지막지해서 지속 시간이 매우 짧거나.
이 두 가지 중 하나였다.
내지는 둘 다거나.
고로.
“Даведайцеся!!”
“곧 사라진다는 뜻일 테니.”
내가 할 일은 명확해졌다.
전자건, 후자건, 전부이건 상관할 거 없이 시간만 끌면 해결된다고. 설설 달래 주며 놀아 주면 알아서 해제될 거니 그 시점을 노려 패 주면 만사 오케이라고.
씨익―
[가속]
쾅!
* * *
“чалавек! чалавек!! стаяць там гэты ебаць!!”
뒤편에서 치솟은 울분에 찬 포효가 공터를 쩌렁쩌렁하게 울리며 내 귓가를 파고들어 왔다.
가뿐하게 씹어 주며 물러나길 10여 초.
촤륵―
촤르륵―
드디어 어인의 육신을 둘러싸고 있던 찰갑에 변화의 조심이 보였다.
스타트는 발이었다.
발가락까지 촘촘하게 감겨 있던 비늘이 흔들거린다 싶더니, 야금야금 본래의 피부로 되돌아간 것이다. 그걸 확인한 내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반격의 시기가 도래했음에 피어난 자연스러운 미소였다.
“чорт вазьм?!!”
그 위기를 스스로도 자각한 듯.
놈의 발악도 거세졌다.
내내 쥐고 있었던 창을 투척할 만큼.
허나,
탓―
‘어딜.’
[돌진]
쿠웅!
“Шыбаааа!!”
작정하고 회피하는 날 맞힐 확률은 사실상 제로에 수렴했다.
그러는 동안 90%, 85%, 80%……. 갑주는 속절없이 소멸되어 갔고, 채 30초가 지나기도 전에 대가리를 제외한 모든 부분이 사그라들어 맨살을 노출시켰다.
즉.
툭―
“끝났나?”
“…….”
진격의 시간이었다.
[급속 회복]
[소모된 체력의 10%를 회복합니다.]
화아악!
[일기당천]
[‘기술 : 일기당천’의 효과로 5분간 모든 능력치가 10% 상승합니다.]
우득―
입가의 웃음기가 점점 진해질수록 차오르는 생기.
“…….”
저벅―
그게 생존 본능을 자극한 듯 저도 모르게 퇴보를 밟는 어인.
다만.
지X 발광을 하느라 체력이 소진된 놈이 ‘급속 회복’과 ‘일기당천’으로 충전한 내게서 도망칠 방법 따윈 없었다.
[가속]
[돌진]
쾅!
한순간에 간극을 좁힌 나는 느려진 흐름 안에서 침을 꿀꺽 삼키는 놈의 목젖을 구경하며 배때기에 주먹을 찔렀다.
[강격]
[오르그의 파괴 본능]
마력 양이 간당간당한 선에 닿았으나 아낄 수 없었다.
어차피 어인을 마무리 짓지 않으면 말짱 꽝인지라 형편을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슈우우욱―
콰아앙!!
“кек!!”
힘차게 찔러 넣은 일권에 허리가 접혀 푸른 피를 게워 내는 놈.
그러면서도 무의식적으로 도주하려던 걸.
[순간 회귀 : 발록의 왼팔]
우득―
우드드득―
화악!
텁!
거대해진 왼팔로 머리통을 붙잡아 세웠다.
최적화된 상태에서도 어지간한 건 다 움켜쥘 수 있던 왼손을 원래대로 복원시키니 2m가 넘어가는 어인의 신체일지라도 거미줄에 걸린 나비인 양 옴짝달싹조차 하지 못하게 봉쇄할 수 있었다.
그 후로는?
[오르그의 파괴 본능 : 마력 권갑화]
“죽어.”
폭력의 연속이었다.
쾅!
쾅!
쾅!
쾅!
뱃가죽을 박살 내겠다는 일념으로.
“*@&^#*&@^#*&^!!”
놈은 쉴 새 없이 난타당하면서도 탈출하기 위해 몸부림을 쳐 댔으나.
[순간 회귀 : 스랄레오의 골갑]
[도검불침]
[마력 유체]
[마력 방패]
캉!
카가가강!
아무리 신묘한 창을 동원한들.
꺾일 대로 꺾인 기세로 내가 지닌 4단계의 방벽을 무력화시키기란 불가능했다.
어린갑(魚鱗甲)에 비비기는 힘들지라도, 마구잡이로 날뛰는 괴물의 발버둥쯤은 무난히 방어해 낼 수 있었으니까.
그렇게.
“하아아!!”
후우우우우욱―
콰직!
[축하합니다!]
승리를 거머쥐었다.
[‘이벤트 : 절망의 파도’ 최초로 「커멘더」를 사냥했습니다.]
[경이적인 위업을 달성한 당신에게 ‘대단한 보상’이 주어집니다.]
[‘공적치’가 10,000 상승합니다.]
[당신과 함께 파도를 맞이한 이들의 ‘공적치’가 3,000 상승합니다.]
[모든 ‘상태 이상’ 효과가 제거되고, 소모된 체력과 마력이 전부 회복됩니다.]
우수수 드랍되는 보상.
꿀보다 달콤한 승전보를 만끽하며 어인의 사체를 밟고 선 나는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그워어어!”
“키에에엑!!”
각기 여섯 기의 십이지신(十二支神)과 대등하게, 아니,)오히려 한 수 앞서는 실력을 선보여 주는 두 마리의 커멘더.
그들의 심장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