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키메라의 기억법-121화 (121/232)

121화

오리지널 기술?

알지.

알다마다.

공식적으로 밝혀진 건 없지만, 우리가 ‘최초 목격자’일 거거든.

아아.

얼마나 강렬했던지.

아직도 그날의 풍경이 생생해. 죽는 날까지도 절대 잊지 못할 거야. 까먹으려야 까먹을 수가 없지.

왜냐고?

매우매우매우… 강력했거든.

응?

좀 더 자세히 말해 달라고?

흐음.

이것보다 더 완벽한 표현은 없는데.

그래. 그나마 네가 공감할 수 있는 단어를 찾았다.

“뭔데요?”

“핵폭탄.”

“…예?”

“대충 그런 느낌이었어.”

-‘오리지널 기술에 대한 고찰’ 인터뷰 中 일부 발췌

* * *

되도록이면 신중하게, 다양한 선택지를 깔아 두고 골라 보고 싶었다.

그러나.

세상이 내게 여유로운 셀렉 기회를 승인해 주지 않았기에 결단을 내렸다. 후회하진 않는다. 아쉬움이 조금 남기는 하나, 이 또한 운명이라 여겼다.

저벅―

나는 그리 감정을 다스리며 한 걸음 내디뎌 단상 끝자락에 섰다.

가까이 근접하기만 해도 피부를 뜨겁게 달구는 열기와 화염이 토해 내는 검은 구름에 독무(毒霧)의 잔향까지 어지럽게 뒤섞여 한 치 앞의 시야도 제대로 확보되지 않는 구덩이 안쪽을 굽어보며 쥐어 보는 주먹.

꽈아아아아악―

벌어진 장포를 헤치고 나오는 오른팔에 새겨진 푸른 줄무늬가 유난히 뚜렷하다.

호랑이의 털가죽을 연상케 하는 그 선명한 패턴에 많은 양의 마력을 불어 넣어 빛무리를 덧씌워 주자.

우우우우웅!!

쿠웅!

매서운 속도로 체내를 순환하며 활약할 무대만을 고대하던 마력의 격렬한 호응에 팔이 온통 광휘로 물들었고, 그 기세에 짓눌린 대기는 파동을 일으키며 사방으로 퍼져 나간다.

그저 자세를 취했을진대 이런 이펙트라니.

하지만.

어쩌면 당연한 걸지도 몰랐다.

“후아!”

아주 오랜만에 ‘전력(全力)’으로 주먹을 내지르고 있었으니까.

후우우우욱!!

짤막한 기합을 신호 삼아 뻗는 주먹.

단단하게 지지대가 되어 주는 다리를 타고 전해진 힘에 허리에 회전을 가미해 어깨로 받아 손끝으로 방출한 찰나.

번쩍!

한 줄기 빛이 번뜩였다.

그 섬광이 내 영역에서부터 쭉쭉 나아가 지옥에 닿은 후 우리는 목도할 수 있었다.

지상을 목표로 내리꽂히던 일직선의 운석이.

툭―

투둑―

투두두둑!

촤아아아아아악!!

일시에 수십, 수백 갈래로 갈라져 유성우(流星雨)로 변모하는 아름답고도 경이로운 천체 쇼를.

딱.

《오리지널 기술 : 군단을 파괴하는 본능》

- 등급 : 체화

- 단계 : 1/7

- 설명 : 행성 ‘웨이노르(Waynor)’의 지배종인 「오르그」만이 개화 가능한 기술이었으나, 이제는 누군가의 개성이 더해져 새로운 방식으로 진화된 기예(技藝)일지니. 특성 ‘다대일’과의 결합으로 특히 대군(大群)을 격파하고 군단(群團)을 괴멸하는 데 특화되었다.

전방을 향해 발포된 마공포를 수십, 수백 개의 조각으로 분열시켜 최소 50m에서 최대 100m에 달하는 범위를 초토화시킨다. 타격 지점의 면적에 따라 분열되는 편린의 개수가 달라지며, 편린 하나하나의 파괴력은 양이 줄어들수록 강해진다.

폭발이 가라앉은 뒤 살아남은 대상은 ‘잃은 체력’에 비례하여 ‘혼란(50% 이하)’, ‘공포(75% 이하)’, ‘절망(90% 이하)’이 부여된다.

[현재 과제 진행 중]

[달성률 : 0%]

[남은 시간 : 29일 23시간 59초]]

새롭게 새겨진 낯설고도 익숙한 기술 설명에 나온 그대로였다.

마공포라는 본체에서 흩어진 각각의 덩어리가 개미지옥으로 빨려 들어가며 그려 내는 그림은 그야말로 장관이 따로 없었고.

콰과과과과과과광―!!

연쇄적으로 일어난 폭발은 귀를 먹먹하게 만들며 닿는 모든 대상을 핏물 한 점 남겨 두지 않고 깔끔하게 소멸시켜 버렸다.

잃은 체력이 뭐 어쩌고저쩌고.

등급이 등급이니만큼 단순히 뛰어난 위력을 바탕으로 찍어 누르는 것 이외에도 여러 가지 추가 효과가 즐비했으나, 그런 걸 일일이 적용할 필요조차 없었다.

아무도 버텨 내지 못했으니까.

생명체든 시체든.

구덩이 내부는 흙과 바위가 굴러다니던 초기의 모습으로 되돌아간 상태였다.

달라진 게 있다면.

본래의 크기보다 넓어졌다는 점? 그것을 제외하고는 ‘리셋’ 버튼을 누른 것처럼 말끔했다.

“아…….”

“어, 언니……. 이게 뭐예요……?”

그 환상적인 현장을 두 눈으로 똑똑하게 지켜본 한세정과 신지유의 입에서는 감탄사를 가장한 경악성이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어이가 없기도 하고, 허탈하기도 한 듯.

다만.

놀라는 건 한순간이었다.

“키에에에에엑!!”

“크르아아아아!!”

이제 겨우 수백 마리를 죽여 없앴을 뿐.

우리가 막아야 할 파도는 한결같이 크고 거대했다.

“쌍독사!”

“드라이어드! 도깨비불!”

* * *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다음 검색까지 남은 시간 : 472분 34초]

친절한 알리미 덕에 무려 20여 분째 개미지옥을 비우고 채워 넣은 중노동에 임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 여파로 한세정과 신지유의 얼굴이 좋지 않았다.

여섯 명이 함께 하던 걸.

보다 정확하게는 여섯 명과 골렘 열네 기가 합심해서 처리하던 일거리를 고작 세 명이서 분담하고 있으니 소모되는 마력을 감당하지 못해 서서히 말라 가는 상황이었다.

동일한 작업량을 줘도 쓰러질 지경인데, 심지어 노동량도 다섯 배로 늘어났으니.

‘회복할 타이밍을 벌어야 한다.’

조만간 쓰러질 기미가 명백한 두 여인의 안색에 나는 때가 됐단 생각에 허리춤을 더듬어 ‘고주파 신호기’를 작동시켰다.

삑!

[‘고주파 신호기’가 작동되었습니다.]

[‘반대편 신호기’로 당신의 위치 정보가 전달됩니다.]

원래 신호기는 나와 한세정이 소지하고 있었으나.

부대를 나누는 과정에서 우리 둘이 한 조로 묶여 한시적으로 신호병 직책을 곽재우에게 일임해 둔 터라.

“형님!”

“오빠!”

“형!”

평소와 달리 곽재우의 묵직한 음성이 내 이름을 부르며 곁으로 달려온다.

[투르바의 포효]

“흐아!”

[‘포효’를 듣고 찾아오는 아군의 모든 신체 능력치가 5% 상승합니다.]

나는 빠르게 합류하는 세 사람의 능력치를 향상시키며 서둘러 임무를 하달했다.

“괴물들이 넘어오지 못하게 막아! 세정이와 지유가 마력을 회복할 틈만 만들면 된다! 지운이는 와서 둘을 보호해!”

“철혈의 술!”

“마력 분사막!”

“으워어어어어어―!!”

“으워어어어!!”

오로지 방어.

한 줌의 마력이라도 낭비하지 않도록 가급적이면 방패를 들게 했다. 공격과 방어, 두 가지를 동시에 담당하는 것보단 한곳에 올인하는 게 훨씬 효율적일 테니까.

적극적인 공세는 내가 도맡으면 된다.

[일기당천]

[강격]

[오르그의 파괴 본능]

[베어 내기]

나도 마력이 남아도는 건 아니다.

오히려 ‘마력’ 스탯이 한세정들에게 따라잡혀 총량만 놓고 계산하면 엇비슷한 편이었다.

유일+ 등급의 ‘기적의 조각 : 2단계’나 ‘자가 수복 장포’ 등의 아이템으로 마력 통이 강화된 데다가 ‘일당백’ 같은 칭호로 마력 회복 속도가 올라가 아슬아슬한 선을 유지하고 있을 따름이지.

그렇지만.

여기서 나까지 휴식에 돌입하면 제아무리 골렘들이 보조를 맞춰 준다 해도 곽재우나 조이령이 저 개떼처럼 몰려오는 괴물들을 저지하기란 불가능하기에 이를 꽉 깨물고 지옥에서 빠져나오려는 놈들을 찢어발기는 데 몰두했다.

덕분에 전선이 절묘하게 유지되는 것 같던 그때.

파직!

‘……?!’

두꺼비를 닮은 괴물의 두개골을 으깨던 나는 뭔가를 포착하고 보내는 감각의 시그널에 고개를 쳐들었다.

심장을 저릿하게 자극하는 맹렬하면서도 사나운 무언가를 찾고자.

‘뭐냐……!’

심상치 않은 기운에 위험하다는 판단이 든 나는 행동을 멈추고 시선을 옮기며 ‘통로’를 주시했다.

내 눈길이 닿은 균열에선 막 한 마리의 괴물이 걸어 나오는 중이었다.

침 이상하게도.

파도라는 명칭에 걸맞게 무더기로 쏟아져 나오는 게 아니라 오직 한 마리가 고고한 발걸음으로 세계를 건너온 것이다.

그 현상을 목격한 나는 본능적으로 녀석의 정체를 직감했다.

굳이 미주알고주알 떠들어 주지 않아도 파악하는 건 쉬웠다. 몇천 단위의 나이트급도 함부로 동행하지 못하는 개체는 현재로서 단 하나밖에 없었다.

‘절망의 파도’를 통해 등장을 알린 침략자들의 사령관이자 군단을 지휘하는 지휘관.

“커멘더!”

3등급 괴물 ‘커멘더’였다.

최악이었다.

이 시기에 커멘더의 출현이라니. 정말이지, ‘하필’이란 소리가 턱 밑까지 차올라 어른거렸다.

허나 욕을 할 수도 없었다.

커멘더가 나타난 건 전적으로 내 책임이기 때문이었다.

내가.

‘지도’를 완성시켰으니 말이다.

《완전한 지도》

- 등급 : 특별

- 분류 : 소모품

- 설명 : ‘이벤트 : 절망의 파도’ 진행 중에 숨겨진 조건을 충족하여 습득할 수 있는 지도. 두 번의 복구 과정을 거쳐 완전한 모습으로 복원되며 감춰져 있던 능력이 돌아왔다. 이 지도의 역할은 크게 두 가지. 「인력」과 「탐사력」이다.

- 옵션 : ‘지도’의 기운을 탐지하여 ‘이벤트 : 절망의 파도’ 진행 중 ‘커멘더’가 찾아올 확률 5% 증가(파도 규모에 따라 최대 30% 증가) / 주문 ‘탐사력’ 발동 가능

《주문 : 탐사력》

- ‘지도’ 소유자를 기준으로 인근 5km 내에 「커멘더」의 위치를 찾아낸다.

괴물들의 혈액과 대량의 근원석을 투여해 원형으로 되돌려 놓은 ‘지도’. 이게 커멘더를 이 전장에 끌어들인 원흉이었다.

이런 옵션이 들어가 있을 거라고는 전혀 짐작하지 못했다.

‘탐사력’이야 본디 지도라는 것의 역할이 대개 목적지나 목표물을 찾아가는 데에 있기에 얼추 예측 범위 내였지만.

설마 반대의 경우로도, 적에게도 키로써 쓰이게 될 줄이야.

아마,

저 ‘인력’을 기반으로 이벤트 후반부의 공적치 경쟁을 심화시키려던 의도 같은데, 문제는 내가 이걸 너무 빨리 복원했다는 것이었다.

보통은 6,666의 공적치를 달성하는 데만 며칠이 걸릴 테고.

설령 습득 조건을 뚫고 1차 해금 요건마저 충족하더라도 근원석 수백 개를 투자하기가 쉽지 않아 적어도 3~4일 차는 가야 복구될 운명이었을진대, 나는 2일 차 첫 번째 파도 만에 끝내 버렸다.

그래 봐야 5% 확률에 불과하니 이쪽에서 칼을 빼 들지 않는 한 웬만해서는 먼 얘기라고 생각했는데.

“신한국……!”

신(新)한국 정부의 테러가 ‘미약한 가능성’이란 불씨에 기름을 끼얹었다.

그로 인해.

각자 떼어 놓으면 별거 아닌 악재들이 모이고 모이며 끝끝내 작금의 재앙을 초래해 버렸다.

물론.

혹자는 이 이야기를 다 듣고 나면 이리 질문할 거다.

실수 아닌 실수와 외부 요인이 겹쳐 커멘더를 소환해 낸 것까지는 알겠는데, 여섯 명이나 되는 초인이라면 충분히 상대할 수 있지 않느냐고.

맞는 소리였다.

아무리 3등급 괴물이라도 한 마리라면 솔직히 우리가 뭉칠 것도 없이, 나 혼자 나서서 짓뭉개고 이식거리 없나 뒤적거릴 거다.

꼴랑.

“그워어어어어어!!”

“크르르륵! 키에에에엑!!”

한 마리였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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