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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메라의 기억법-118화 (118/232)

118화

“음……. 우선 수량부터 말씀드릴게요.”

1층으로 내려와 여전히 턱이 떡 벌어져 있는 원앙 부대원들을 외부 경계를 명분 삼아 한시적으로 장비를 내어 주며 잠깐 내보내고서 가릴 거 없이 시원하게 현황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13인 판정으로 치른 2일 차 첫 번째 파도.

그 결과 우리 손에 들어온 근원석은 ‘지도’를 복원하는 데 쓴 걸 빼고도 1등급이 1,047개에 2등급 627개였다.

내가 개별적으로 차출해 간 것을 더하면 솔져가 1,547마리에 나이트가 677마리였다는 의미였다.

“대략 2천 마리. 비율은 2.5 대 1 정도인가.”

어제만 하더라도 나이트의 수가 맥시멈 7~80마리 내외였던 걸 감안하면 확실히 13인 판정의 포스가 대단하긴 하다.

더불어.

그러한 대규모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 데 고작 10분이 안 걸렸다는 점이 다시금 놀랍게 느껴졌다. 나를 포함해 한세정들의 성장세가 여실히 체감되는 성과랄까.

거기에 본격적으로 동원해 본 건 처음이었다만···….

공중 낙하로 수십 마리의 나이트를 찍어 누르며 등장했던 십이지신(十二支神)과 수호 기사, 수호병 등 골렘들의 역할도 지대했지.

그 덕택에.

‘이 템포로만 가면 2일 차 순위 발표식도 볼만하겠어.’

확신할 수 있었다.

비록 한세정들 전원을 올리기는 힘들어도, 최소한 여타 생존자들과 압도적으로 차이를 벌리며 1위의 권좌를 거듭 석권할 수 있으리라고.

“…해서 5대(근력, 체력, 순발력, 내구, 마력) 능력치만 붙은 건 1,319개, 특수 능력치 상승이 붙은 건 355개에요.”

“분류하느라 수고했어.”

“에이, 뭘요.”

“1차 배분은 이렇게 하자.”

보고를 끝낸 조이령과 고생해 준 이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표한 나는 먼저 1등급, 2등급 구분 없이 근원석을 나눠 주며 5대 능력치를 100까지 올리도록 지시했다.

그런 뒤.

특수 능력치 상승용을 쫙 늘어놓고 각자 미보유 스탯을 개방하도록 일렀다. 예를 들어 ‘감각’ 스탯이 없으면 해당 스탯과 관련된 근원석을 하나 복용하는 것이다.

수치가 높든 낮든 상관하지 않고 일단 벽을 뚫어 ‘개인 정보’란에 기재되게끔.

‘1’일지언정 기록만 되어 있으면 ‘저주가 5 존재하여 ‘디버프 ○○○’의 효과가 소폭 하락합니다.’ 같은 식으로 시스템 보정을 받기 때문이었다.

저 한 줄의 메시지를 보느냐 마느냐로 삶과 죽음의 운명이 뒤바뀔 수도 있기에 주머니 사정이 두둑할 때 미리미리 해 두는 게 좋았다.

고로.

으적―

[‘1등급 근원석’을 복용했습니다.]

[소환이 1 상승합니다.]

[‘1등급 근원석’을 복용했습니다.]

[협동이 1 상승합니다.]

한세정들과 마찬가지로 나 또한 흡수를 시작했는데, 의외로 개방시켜야 할 목록이 생각보다 많았다.

‘소환’, ‘협동’, ‘동화’, ‘적응’ 등등등.

이미 기반을 튼튼하게 다져 놓았다 자신하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다 합쳐서 여덟 개의 스탯이 생성되었으니까.

*신체

[소환 : 2] [협동 : 1] [동화 : 2] [적응 : 1]

[순환 : 3] [인내 : 2] [속성 : 4] [교감 : 3]

┗아이템에 의하여 ‘임시’로 적용되었던 수치가 본인의 실제 수치로 조정됩니다.

‘아직도 이렇게 많을 줄이야.’

내심 어이가 없으면서도 한편으론 궁금해졌다.

과연.

몇 개를 더 모아야 100% 채웠다고 선언할 수 있을지.

‘앞으로는 이 작업을 첫 번째로 해야겠어.’

“1등급은 52개, 2등급은 307개 남았네요.”

나름대로 다짐을 하는 사이 한세정이 남은 개수를 계산해서 알려 줬다.

잔뜩 먹어 치워 버려 양이 급격하게 줄어 있었다.

하기사.

대충 1,300개를 배 속으로 밀어 넣었으니.

“이건 어떻게 할까요?”

“2등급으로는 한계 돌파 의뢰서를 한 장씩 사서 기술 등급 업그레이드하는 데 쓰고, 나머지는 단계 향상의 돌로 바꿔서 2순위 기술 레벨을 올려 둬.”

“전부 다요?”

“장비 교체에 쓰기엔 한참 모자라니 차라리 기술부터 올리는 게 좋겠어.”

“아, 넵! 바로 사 올게요.”

“그래.”

활기차게 대답한 한세정이 후다닥 상점으로 가 주문했던 것들을 구매해 왔다. 즉시 사용하게 하자 곧 다섯 명이 두 개씩 지급받은 ‘단계 향상의 돌’을 원하는 기술에 투자하더니 ‘한계 돌파 의뢰서’를 손에 쥔다.

다들 사전에 어떤 걸 원본(原本)으로 강화할 것인지 결정해 두었던 듯 주저함이 없었다.

하여.

스윽―

나도 품에서 타임 어택 특전으로 제공된 ‘한계 돌파 의뢰서 : 체화’를 꺼냈다.

전투 종료 이후.

정리 시간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던 근원석 배분도 대충 끝난 지금, 마침 한세정들도 ‘한계 돌파 의뢰서’를 찢으려 하고 있으니 나 역시도 그에 맞춰서 의뢰서를 갈라 볼 심산이었다.

안에 뭐가 들었는지 한번 보자고.

“그건?”

“나도 하나 받았어. 타임 어택 특전으로.”

“아!”

“뭐가 나올지 모르니까 긴장들 하고.”

“네!”

“네!”

“네!”

“네!”

“네!”

찌이이익―

화르륵!

[‘한계 돌파 의뢰서 : 체화’를 사용합니다.]

돌돌 말아 두었던 의뢰서를 빳빳하게 펴서 중간을 붙잡고 잡아당기자 반으로 갈라진 문서가 순간 불길에 휘감기며 자동으로 ‘개인 정보’ 창이 열린다.

[기술을 선택해 주십시오.]

안내 문구에 따라 유일한 마스터 레벨 기술 ‘오르그의 파괴 본능’을 터치하길 잠시.

[기술 ‘오르그의 파괴 본능’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예/아니오]

번복하지 않겠다는 확고함을 보여 주자 눈앞에 커다란 홀로그램 화면이 출력되었다.

[해당 기술이 ‘한계’에 다다랐음을 확인했습니다.]

[해당 기술의 한계를 돌파하는 데 필요한 임무가 주어집니다.]

《한계 돌파 : 오르그의 파괴 본능》

- 설명 : 행성 ‘웨이노르(Waynor)’의 지배종인 「오르그」만이 개화 가능한 기술을 베껴 피나는 노력 끝에 원류와 비견될 정도로 완숙의 경지에 다다른 그대. 이제는 ‘남의 것’을 ‘자신만의 것’으로 가다듬을 시간입니다.

당신이 지닌 ‘특성’을 가미해 원류를 뛰어넘을 본인의 길을 제시해 보십시오.

- 과제 : 1. 특성 결합 / ?

- 현재 결합 가능한 특성 : 불굴, 다대일

기술이 체화(體化) 등급에 이르려면 ‘특성’을 융합시켜야 한다.

이 ‘특성’이란 건.

최소 한 개 이상의 원본 등급 기술을 소유하고서 상점에서 판매하는 ‘특성 개방의 돌’의 도움을 받거나 혹은 근력, 체력, 순발력, 내구가 전부 100에 올라 ‘초인’이 되면 특전 보상으로 획득 가능하다.

그 외에 특별한 루트로도 입수할 수 있는데.

난 전자의 경우로 ‘다대일’을, 후자의 방식으로 ‘불굴’을 확보해 둔 상황이라.

“흐음……. 뭘 결합하는 게 좋으려나.”

제법 여유롭게 사색에 빠졌다.

이대로 불굴이나 다대일과 결합하느냐, 아니면 다음번 파도를 막고 번 돈으로 특성을 추가해 재진행하느냐.

내 머릿속을 헤집는 난제는 이 두 가지.

짧지만 신중하게 고뇌하다 마침내 결정을 내렸다.

“미루자.”

보류하기로.

끊임없이 들이닥치는 ‘절망의 파도’에 아예 감동하지 못하는 지경이라면 모를까. 또는 시간제한이 걸려 있어 몇 분 내에 고르지 않으면 ‘한계 돌파 의뢰서’가 소멸하는 긴급한 형식도 아니니.

기왕이면 가진 패를 죄다 까 보고 나서 결단을 내리는 게 베스트라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의 정신을 떠올리는 동안.

임무를 부여받은 한세정들이 허공에서 시선을 거두며 내게 자신들의 미션을 공유해 주었다.

“저는 하독 33회, 해독 33회, 배합 33회에 상대를 독으로 죽이기 1회예요.”

“전 칼론드 창술만으로 적 100개체와 싸워 승리하기.”

“저는 혈벽으로 공격 100회 방어하는 겁니다, 형님.”

“전 정령과의 합작 100번이에요.”

“저는 괴물 100마리를 사냥하면 된대요!”

저마다 과정은 다르지만, 모두 100번의 무언가로 맞춰져 있는 과제.

그거 말고는 딱히 난이도가 어렵다거나 하는 부분은 보이지 않는다. 등급이 등급이라 가급적이면 무난히 클리어할 수 있게 설정된 모양이었다.

하면.

이로써 굵직한 항목들은 빠짐없이 처리한 것 같으니.

“올라가서 각자 자기 아이템 챙겨서 쉬어.”

나는 이만 한세정들의 휴식을 권유했다.

전체 추출 기능의 도입으로 한결 편해진 건 분명하나 피로하긴 매한가지.

이제 혹사당한 육체를 회복시킬 순서였다.

추위에 벌벌 떨고 있을 원앙 부대원들도 그만 들어오게 했다.

우리의 무력이 어떠한지 명확하게 깨달았기 때문인지, 입 밖으로 한 점의 불평불만도 내뱉지 않고 경계 업무를 완수한 그들은 알아서 무장을 해제하더니 질서 정연하게 구석으로 이동했다.

굽힐 땐 굽혀야 한다는 인생의 진리를 아는 작자들이었다.

“미안하지만, 따듯한 물 좀 가져다줘.”

“저만 믿으세요, 형!”

그 안쓰러운 모습에 신지운을 불러 부탁하곤 문 너머를 주시했다.

휘이이잉―

한 발자국을 기점으로 온기와 냉기가 교차하는 출입구에서 서서 감상하는 풍경.

잠잠하던 하늘이 어느새 새하얀 눈송이를 펑펑 뿌려 대는 중이었다. 사납게 쏟아지는 것이 족히 5~60cm는 쌓일 기세.

대설이 의심되는 눈보라에 살짝 이마를 찡그렸다.

날씨만 괜찮았다면 밖으로 나갈 요량이었는데, 기상이 이래서야 출타하기는 그른 듯싶었으니.

“기껏 완벽하게 복구해 놓고 못 써먹는 건 아니겠지.”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던 난 이내 고개를 휘휘 저으며 문을 닫았다.

모쪼록 날이 풀리기를 기원하며.

* * *

[다음 검색까지 남은 시간 : 3분 13초]

[다음 검색까지 남은 시간 : 3분 12초]

[다음 검색까지 남은 시간 : 3분 11초]

아침 일찍 일어나느라 모자란 수면을 보충하거나 인스턴스 던전에서 강해진 신체에 적응하기도 하며 보낸 네 시간여.

텀이 길어져 충분히 안식을 취하다 3분 카운팅에 돌입할 무렵 만반의 준비를 갖춘 한세정들이 자연스레 입구로 모여든다. 앞서 첫 번째 파도를 흠잡을 곳 없이 퍼펙트하게 물리친 터라 얼굴엔 자신감이 가득했다.

우리의 기운에 전염되었는지.

“내기할까?”

“뭔 내기요.”

“10분 안에 끝낸다에 딱밤 한 대.”

“딱밤? 그거 좋지. 난 9분 컷에 겁니다.”

원앙 부대마저도 느긋했다.

경험 한 번으로 불안함과 공포는 모조리 떨쳐 내 버린 듯 농담 섞인 내기를 운운하기도 한다.

여기가 적진이라는 걸 잊은 건지.

그 모습에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지은 나는 한세정들과 눈을 마주치며 출병 직전에 경고성 멘트를 던졌다.

“긴장은 풀되 방심은 하지 마.”

전장이란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누구도 짐작할 수 없는 장소.

적어도 일말의 경계심은 가지고 있도록 주의를 주며 문고리를 회전시켰다.

[남은 시간 : 0분 0초]

[때가 도래했습니다.]

[당신의 위치를 기준으로 1km 내에 존재하는 생존자를 탐색합니다.]

“잘해 보자.”

이번에도 한 명의 사상자, 아니, 부상자 없이 깔끔하게 승전을 거둬 보자는 응원을 보내며.

그리고.

삐이익!

[…완료!]

[검색된 인원 : 69명]

[다음 검색까지 남은 시간 : 500분]

“……?!”

우린 군단을 맞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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