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화
* * *
“그래서. 당신들은 신(新) 한국 소속 ‘원앙’의 부대원들이다, 이겁니까?”
“예.”
“원앙 부대가 이곳에 오게 된 원인은 날 죽이려 했기 때문이고?”
“…예.”
“헌데 막상 파견된 시점에 이벤트가 터져서 50명이었던 인원이 일곱 명으로 줄고, 대원들을 살리려던 대장은 저리됐다?”
“…예.”
“하.”
5분여에 달하던 애달픈 스토리를 세 줄로 축약한 나는 헛웃음을 지었다.
살려 달라고 애걸복걸하던 이들의 정체가 사실은 날 죽이려고 출장 나온 암살자들이라고 하니 어처구니가 없어서 도저히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방금 전에도 비슷한 고민을 했었는데, 이전과는 사뭇 달라진 감정선이 모두에게 느껴졌을까.
움찔―
움찔―
내 눈빛이 전신을 훑을 때마다 고해 성사처럼 진실을 고백한 남자의 몸이 바들바들 떨린다.
여차하면 죽을 수 있음을 인지한 듯.
“그런데.”
“……?”
“정부에서 절 노리는 이유가 뭐죠?”
의자에 앉아 골몰히 고심하던 찰나.
불현듯.
원론적인 의문이 들었다.
아무리 과거를 돌이켜 봐도 신(新) 한국 정부와 나 사이에는 어떠한 마찰도 없었다. 마찰은커녕 접점도 없지.
그나마 꼽을 거라고는 착호 부대 정도?
허나.
그들과도 좋게 좋게 헤어졌다.
다소 일방적인 이별이긴 했으나, 그날의 만남을 끝으로 다시는 찾아오지 않은 걸 보면 나에게서 완전히 관심을 끊었다고 여겨도 무방했다.
고로.
정부든 군대든 나와는 아무런 관계가 아닐 터인데, 대관절 무슨 억하심정으로 50인이나 되는 부대를 출정시킨 걸까.
더군다나.
의문점은 또 있다.
“그리고, 내가 여기 있는 건 어찌 알았습니까.”
이 사람들은 내 위치를 정확하게 특정했다.
조철영 무리처럼 농자재 백화점으로 가려다가 우연히 대면한 게 아니라, 처음부터 이쪽으로 목적지를 설정해 두고 움직였다.
마치.
누가 알려 주기라도 한 듯.
해서 이 두 가지 미스터리로 상당히 의아했는데.
“그건…….”
의외로 답은 간단했다.
“며칠 전, ‘성십자가 클랜’이 전하를 찾아뵈웠습니다.”
성십자가 클랜.
그 이름으로 귀결되었으니까.
“성십자가 클랜?”
“예. 자세한 건 대장님이 아시지만, 여하튼 황선아라는 여자가 왕성에 방문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상부로부터 공격 명령을 하달받았습니다. 그때 듣게 됐습니다. 당신과 당신의 거점에 대하여.”
황선아.
그 여자가 이 사건의 범인이었다.
순위 발표식 당시만 해도 그저 독하게 수련 중이구나 싶었거늘. 내게 패배한 아픔이 그렇게나 컸던 건가.
정부를 끌어들일 만큼.
‘아, 혹시 그놈이 불구 신세를 못 면했나?’
그런 거라면 이해가 되긴 한다.
제멋대로 날 악마 취급하다 일어난 사달이지만, 하여간 믿고 따르던 수장이 거꾸러졌으니 가용 가능한 모든 방법을 써서라도 복수하고 싶었을 테니.
다만.
냉철하게 따져 보면 그 가정도 맞지 않다. 피에 사무친 원한을 갚으려고 다짐했다면 남의 칼을 빌리지 않고 직접 처단하려 마음먹었겠지.
게다가…….
“날 아는 놈들이, 겨우 50명으로 만족했을 리 없지.”
50명.
결코 적은 숫자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 세 배인 150여 명으로도 상대하지 못했던 나를 이 전력으로 죽여 달라 사주한다?
그거야말로 어불성설.
허면.
의도가 뭘까.
“…흐음.”
모르겠다.
암만 머리를 굴려 본들 편린에 불과한 정보들로는 해석이 불가능했다.
하여.
우선은 성십자가 클랜과 정부에 대한 생각을 멈추고서.
“궁금한 게 있는데.”
주제를 바꿨다.
물을 건 많았다.
대표적으로.
“왜 대통령을 전하라고 부르는 겁니까. 왕성은 또 뭐고.”
이것.
대화 내내 몇 번이나 갸웃거렸는지 모른다.
왕정제가 폐지된 지 수십 년도 더 지난 국가에서 과거로 역행한 듯한 발언을 내뱉은 까닭이 무엇인지.
* * *
“…라네.”
병마와 싸우느라 의식 불명인 대장 정도윤을 대신해 나와 긴 시간 대담을 나눈 최홍진.
그와 담소를 마치고 한세정들과 모여 앉아 나눴던 담화 내용을 한 자도 빠짐없이 쭉 알려 주었다.
중간중간 틀리는 대목이 생길 걸 대비해 중요한 포인트는 적어 두었던지라 모난 데 없이 전달하자.
“…그게 정말이에요?”
“미쳤네, 미쳤어.”
“말씀만 하십시오. 제가 다 처리하고 오겠습니다.”
마침표가 찍힘과 동시에 잠자코 듣던 한세정들의 눈매가 한껏 사나워졌다.
나름대로 열과 성을 다해 치료해 준 자들이 실상은 칼날을 품고 달려온 암살자라고 하니 배신감이라도 든 모양. 당장에라도 팔다리를 꺾어 놓으려는 이들을 진정시킨 나는 추가로 확보한 자료를 더 풀어 주었다.
종말 이전의 정부와 작금의 정부가 어떤 식으로 변했는지를.
“가장 큰 변화는 현 정부가 왕정제를 선포했다는 거야. 그것도 절대 왕정을.”
“절대 왕정제라고 하면…….”
“대통령이 아니라 왕이 되었다는 뜻이지.”
“그걸 사람들이 받아들여요?”
“정확한 내막은 알 수 없지만, 살아남은 군대 장성들과 국회 의원들이 종말 초기부터 그를 지지하면서 세력을 공고히 한 덕에 별다른 이슈는 발생하지 않은 것 같아.”
“맙소사, 유럽이면 몰라도 한국에 왕이라니.”
“그 밖에 자리 잡은 지역을 ‘한양’으로 명명하고 능력자들을 동원해 성을 세운 것 같아.”
“성이요?”
세상이 무너지고 기껏해야 세 달.
이 짧은 기간에 성을 건축하는 건 상식적으로 이루어지기 힘든 미션이지만, 정부는 이를 수도 방위군과 시민병으로 구성된 막대한 인력을 투입해 극복해 냈다.
그 결실로.
지금은 중축을 거치면서 세 겹의 성벽을 앞세워 30km까지 넓어진 한양성을 기준으로 동서남북에 각각 ‘고구려’와 ‘신라’, ‘백제’ 그리고 ‘발해’가 완공되어 거주민을 모집하는 중이라고.
여기에 차이점을 또 한 가지 꼽자면.
“군부대도 많이 달라졌다고 해.”
“군부대요?”
“수가 모자라거나 상급자가 전부 사망해 부대 유지가 어려운 곳도 있고 해서 아예 통폐합을 진행했나 봐.”
군부대의 통폐합을 들 수 있다.
“통폐합이라고 하시면.”
“군인들과 시민병들을 묶어서 스무 개 부대로 재편한 거지. 저 원앙 부대도 그중 하나고.”
“아.”
줄어든 인구를 고려해 일전에 충돌이 있었던 착호 부대처럼 군단에서 분대까지 거창했던 편제를 전체 ‘부대 단위’로 축소하는 등 깔끔하게 손을 보았다고.
구(舊) 한국과 신(新) 한국의 굵직한 차이점은 대충 이 정도였다.
최홍진은 더 많은 것을 설명했으나 별로 기억할 만한 포인트는 없었기에 종이와 펜을 주고 아는 걸 적어 달라 부탁했다.
말이 부탁이지.
거의 협박에 가까웠지만, 대장을 살려 줬기 때문인지 그의 태도는 굉장히 협조적이었다.
“그나저나… 그럼 이제 어떻게 하실 거예요?”
길었던 이야기를 마치고 난 후.
잠시 조용해졌던 침묵을 깨고 한세정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돌고 돌아 다시금 원앙 부대의 처분을 결정할 때가 된 것이다.
스으윽―
대검 손잡이를 만지작거리는 걸 보니 곽재우는 깔끔하게 죽여 없애길 원하는 눈치다.
명분도 있겠다.
뒤탈이 생기지 않게끔 확실하게 처리하자 말하듯이. 한세정도 그 의견에 동감하는지 눈에 살기가 감돌았다.
조이령과 신씨 남매도 살인까진 아닐지언정 최소한 쫓아내야 한다는 쪽인지 대놓고 반감을 드러내는 상황.
하기에.
질질 끌지 않고 바로 알려 주었다.
“죽이지도, 내쫓지도 않을 생각이야.”
라는 결심을.
“…네?”
“오빠?”
“그게 무슨…….”
그 결단에 한세정들의 표정이 황당함으로 물든다.
당연했다.
암살자를 곁에 두겠다는데 누가 당황하지 않을까.
하지만.
나는 확고했다.
“저들을 옆에 두고 이용할 예정이야.”
원앙 부대.
대장을 포함한 7인을 써먹을 심산이었기에.
“저 사람들로 뭘 하시려고…….”
뭐긴.
“2일 차 파도의 난이도를 올리는 용도로.”
계산을 해 봤다.
원앙 부대를 저울에 올려놓고서 감정을 철저히 배제한 채 오직 이성적으로 판단했을 때 우리에게 가장 이득이 될 선택이 무엇일지.
그러다 떠올린 게 ‘절망의 파도’였다.
파도의 규모를 키우는 것만으로 세 가지 이점이 뒤따라 오기 때문이었다.
“세 가지요……?”
“첫째, 근원석.”
가장 직관적이면서도 본질적인 문제.
자금난이 해소된다.
여태 그러했듯 앞으로도 많은 기술을 익혀야 하고, 또 ‘단계 향상의 돌’과 ‘한계 돌파 의뢰서’를 비롯해 장비 업그레이드나 비상용 포션 구비까지 다양한 방면에 근원석을 투자해야 하는 바.
벌이를 늘릴 수 있다면 쌍수를 들고 환영해야 한다.
“두 번째는요?”
“공적치.”
“아.”
이번 순위 발표식을 통해 보상을 받은 사람들은 공적치를 쌓아야만 하는 이유를 명확하게 깨달았다.
그 말인즉슨.
2일 차부터는 공적치 경쟁이 심화된되는 걸 의미하는데, 과연 오늘처럼 진행한다면 남들보다 앞설 수 있을까? 1등 탈환을 위해 작정하고 몰아준다면 6인 파티로 고정된 우리로서는 패배할 공산이 크다.
따라서.
격차를 벌리려면 판정 인원을 늘릴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인질이야.”
원앙 부대는 정부 소속 군인들.
그러니 언젠가 신(新) 한국과의 분쟁이 일어났을 때 방패막으로든 교환용으로든 쓸 수 있을 것이다. 이건 정부 관계자들이 자국민과 자국 병을 아껴야만 성립되는 부분이기는 한데, 사람 속마음은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
아무튼.
“이런 연유로 일단은 데리고 있을 계획이야.”
조목조목 얘기를 끝나자 한세정들이 제대로 납득한 듯 주억거린다.
암살자를 지근거리에 둔다는 데에 여전히 불안함을 표하기도 했지만, ‘공적치 경쟁’을 포기할 수는 없었기에 결국 내 주장이 받아들여졌고 그 후로는 일사천리였다.
“지유야.”
“네?”
“드라이어드. 몇 분이나 소환해 둘 수 있어?”
거점 1층 구석에 최홍진을 위시한 부대원 6인이 머물 공간을 꾸려 놓고서 감시역으로는 나무의 정령인 드라이어드를 세웠다.
평범한 눈으로는 존재를 보는 것조차 불허한 정령에게 경계병이란 그야말로 최적의 배역.
걱정이라면 유지 비용이었는데.
“소환하는 것 자체는 하루 종일도 괜찮아요.”
“그래? 그럼 감시는 이렇게 하자.”
초인화 작업으로 마력 통이 장난 아니게 커진 데다가 ‘안전지대’의 회복 효과도 있어 365일을 내리 세워 둬도 괜찮다고 하니 감시자 설정은 됐고.
“최홍진 씨.”
“예?”
“할 얘기가 있습니다.”
“어떤…….”
“정도윤 씨에 관한 것입니다.”
“아, 예. 말씀하시죠.”
“조금 전에 치료만 해 준다면 대가로 뭐든 하겠다 말씀하신 거, 아직 유효합니까?”
“당연히. 대장만 살릴 수 있다면 저도 대원들도 뭐든 하겠습니다.”
“그래서 말입니다…….”
대장을 치료하는 조건으로 향후 6일간 이곳에 머물러야 한다는 약속도 무난하게 받아 냈다.
무장 해제와 소란을 피우지 않는다는 점만 지키면 식사와 잠자리를 제공해 준다고 하니 딱히 반발은 없었다.
그렇게.
우린 일시적으로나마 여섯 명의 불청객을 일행으로 맞이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