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화
병사, 기사.
‘…에서 갑자기 신(神)이라니.’
이 피라미드 중간에 어떤 계급이 더 숨겨져 있는지 궁금해지는 명칭에 나도, 한세정들도 하나같이 당황해서 가지런히 정리된 열두 기의 골렘을 멍하니 바라봤다.
물론.
진짜 신이 아니라는 건 나도 안다.
베이스로 삼은 원형이 십이지신(十二支神)이었기에 그 네이밍이 입혀졌을 뿐, 어디까지나 골렘일 뿐이니까.
단지.
그럼에도 제작자의 자신감이 물씬 풍기는 수식어에 자꾸만 기대치가 치솟는다.
“하지만.”
“……?”
“가동은 나중에.”
나는 곧장 달려 나가 ‘봉인 해제’ 주문을 외우고 싶은 걸 참았다.
제일 맛있는 음식은 나중에 먹는 것처럼.
이왕에 얻은 ‘유일’급 소환수, 그 힘을 완벽하게 드러낼 수 있는 전장에서 불러내고프기 때문이었다.
이 결정에 한세정들이 굉장한 안타까운 눈빛을 보냈으나.
스으으윽―
꽈악!
소형화된 상태에서 편이하게 휴대하게끔 골렘들의 등 쪽에 나 있는 끈을 허리춤에 묶어 장포 안으로 감춰 버렸다.
아직 할 일이 있지 않던가.
근원석 처리.
“근원석 얼마나 남았어?”
“네? 아, 네. 현재 1등급이 217개, 2등급은 87개 그대로예요.”
초인화 작업에 투자하고서도 상당한 수량.
당초 예측보다 1등급 근원석이 80여 개 정도 더 나가긴 했지만, 그거야 딱히 개의치 않는 부분이다.
80개가 아니라 800개를 모조리 투입해서라도 꼭 해결해야 하는 과정이었으니.
몇 개를 썼는지는 됐고.
“가서 이걸로 단계 향상의 돌을 사.”
2등급 근원석 75개를 내주며 ‘단계 향상의 돌’을 구입해서 복용할 것을 지시했다.
스탯이 충족되었으니.
이번에는 기술을 레벨 업시킬 순서였다.
비록.
돈이 약간 모자라 등급을 진일보시켜 주는 ‘한계 돌파 의뢰서’까지는 단번에 구매해 주지 못하지만, 일단 아까 것과 합쳐 한세정들의 주력 기술을 마스터시켜 놓을 심산이었다.
그리하고서 나는.
으적―
[‘1등급 근원석’을 복용했습니다.]
[순발력이 1 상승합니다.]
[‘1등급 근원석’을 복용했습니다.]
[근력이 1 상승합니다.]
한세정들이 남긴 200여 개의 1등급 근원석을 하나둘 흡수하기 시작했다.
퍼 줄 만큼 퍼 주었으니.
이제 내가 성장할 시간이었다.
[축하합니다!]
[‘신체 능력 : 근력’이 「200」을 돌파했습니다.]
그렇게 빠른 속도로 능력치를 올려 가던 와중에 먼저 근력이 200에 도달했다는 소식이 메시지로 출력됐다.
이미 150을 넘겼던 터라 반가운 뉴스를 접하는 것도 금방이었다.
[보상으로 ‘칭호 : 2차 한계 돌파―근력’을 습득합니다.]
[기술 ‘강격’을 습득합니다.]
[근력이 5 상승합니다.]
《칭호 : 2차 한계 돌파―근력》
- 신체 능력 중 ‘근력’이 「200」을 돌파했을 때 부여되는 칭호. 근력과 관련된 신체 능력 및 모든 기술의 위력이 10% 상승한다. ‘한계 돌파―근력’과 중첩 적용한다.
《기술 : 강격》
- 등급 : 특수
- 단계 : -
- 설명 : 신체 능력치 중 ‘근력’이 「200」을 돌파했을 시 부여되는 기술입니다. 순간적으로 전신의 근력을 강화시켜, 다음 타격 시의 파괴력을 극대화합니다.
“강격, 강격. 좋네.”
나는 기다렸던 메시지에 고개를 끄덕였다.
칭호의 효과인지.
온몸의 근육이 세차게 꿈틀거리는 기분.
해서 기분 좋게 다시 근원석을 입으로 가져가려는데.
[「아카식 레코드」에 당신의 ‘정보’ 기록이 완료되었습니다.]
뜬금없이 오랜만에 보는 단어가 눈앞을 가리더니.
[정해진 법칙에 의거하여 지금부터 〈대상 : 아윤〉의 신체에 ‘내성’이 부여됩니다.]
[‘특이 사항’란에 「내성」 항목이 추가됩니다.]
…라는 문장이 연이어 출력됐다.
“내성?”
갑자기 이게 뭐지 싶어 ‘개인 정보’를 열고 최하단을 확인하자 ‘인간성’과 ‘기적의 조각’ 등의 아래로 ‘내성’이 기입되어 있는 게 보였다.
내 성장에.
《특이 사항 : 내성》
- 〈차원 : 테라〉를 침략한 「침략군」의 근원을 흡수하여 ‘2차 한계’마저 돌파한 당신. 완연한 초인의 영역에 들어선 당신에게 더 이상 하등한 품질의 근원석은 효과가 발휘되지 않습니다.
- 지금부터 「200」에 이른 능력치는 ‘1등급 근원석’으로 향상시킬 수 없습니다.
- 본 ‘내성’ 효과는 「프레데터」의 포식으로도 거스를 수 없습니다.
제동을 거는 제약이 말이다.
“음…….”
설마. 이런 규정이 존재할 줄이야.
게다가.
‘프레데터’의 능력으로도 뚫지 못한다니. 상상치도 못한 급작스런 허들에 미간이 찌푸려졌다.
‘어쩐지, 근원석을 퍼 준다 싶더니만…….’
젠장.
으적―
[‘1등급 근원석’을 복용했습니다.]
[「내성」으로 인해 아무런 효과가 발동되지 않습니다.]
시험 삼아 근원석을 하나 삼켰는데, 칼같이 잘려 나간다.
그 냉정함에 혀를 찬 나는 근력 향상용은 죄다 옆으로 뺐다.
“쯧.”
보통.
‘근력 or 순발력’같이 되어 있어 아예 무용지물로 치부할 건 아니었지만, 괜히 ‘내성’에 걸려 허무하게 낭비하는 사태를 초래할 바에야 100% 피드백이 돌아오는 한세정들에게 쓰는 게 나았다.
다행히 그 양도 많지 않아 결과적으로 난 대략 150여 개가량의 근원석을 배 속으로 욱여넣었고.
꿀꺽―
[‘1등급 근원석’을 복용했습니다.]
[순발력이 1 상승합니다.]
“…다 먹었나?”
그 덕분에.
[개인 정보]
*기본 사항
- 설명 : 아윤
- 종족 : 키메라―프레데터
- 칭호 : 인류 최초의 키메라(대표 칭호 변경▼)
- 고유 능력 : 프레데터의 기억 포식
- 특성 : 불굴(대표 특성 변경▼)
*신체
- 근력 : 205
- 체력 : 151
- 내구 : 138
- 순발력 : 131
- 마력 : 103
- 감각 : 107
- 저항 : 52
- 제어 : 37
- 투기 : 29
- 재주 : 2
- 소환(임시) : 33][합동(임시) : 25]
*기술
- 프레데터의 중위 진화론 [특수(特殊)]
- 신체 최적화 [특수(特殊)]
- 순간 회귀 [특수(特殊)]
- 스트랭스 [특수(特殊)]
- 급속 회복 [특수(特殊)]
- 도검불침 [특수(特殊)]
- 가속 [특수(特殊)]
- 마력 유체 [특수(特殊)]
- 감각 증폭 [특수(特殊)]
- 비밀 엿보기 [특수(特殊)]
- 일기당천 [특수(特殊)]
- 오르그의 파괴 본능 [원본(原本) / 체화(體化) 진행 중 : 4/5]
- 발록의 투기 [원본(原本) / 체화(體化) 진행 중 : 1/5]
- 티그리스의 대지 비틀기 [원본(原本) / 체화(體化) 진행 중 : 4/5]
- 투르바의 포효 [원본(原本) / 체화(體化) 진행 중 : 2/5]
- 끈질긴 추적 [사본(寫本) / 원본(原本)화 진행 중 : 1/3]
- 돌진 [사본(寫本) / 원본(原本)화 “직전” : 3/3]
- 베어 내기 [사본(寫本) / 원본(原本)화 진행 중 : 2/3]
- 마력 방패 [사본(寫本) / 원본(原本)화 진행 중 : 2/3]
- 무기 활용 [사본(寫本) / 원본(原本)화 진행 중 : 1/3]
[단계 설명▼]
*특이 사항
- 인간성 : 100% / -
- ‘기적의 조각(2/6)’ 보유 중
- ‘혹한의 안전지대’ 효과 적용 중
- 내성
간만에 펼쳐 본 ‘개인 정보’는 이리 바뀌어 있었다.
이래저래 일을 겪으며 폭발적으로 진화를 거듭했던 경험이 온전하게 기록된 화면. 끝단에 ‘내성’이 끼어 있는 게 옥의 티처럼 느껴졌으나, 머리를 휘휘 저으며 기술란으로 시선을 옮겼다.
하단에 위치한 ‘돌진’이.
“…원본화 직전?”
마스터 단계에 이르렀기 때문이었다.
아이템의 도움 없이, 순전히 잦은 활용만으로 숙련도를 높이는 중이었기에 신경 쓰지 않았는데.
이거.
한세정들에게만 ‘한계 돌파 의뢰서’를 사 줄 게 아니라 나도 몇 장 구비해 둬야 할 듯싶었다.
조만간 ‘마력 방패’와 ‘베어 내기’도 마스터 레벨에 다다를 거로 추정됐거니와.
“저것들도 4단계였네.”
내 주력기인 ‘오르그의 파괴 본능’과 ‘티그리스의 대지 비틀기’도 끝자락이었다.
일전에 보니.
사본에서 원본으로 발전시키는 데 2등급 열다섯 개가 필요하고 원본에서 체화로 발전시키는 데엔 50개가 필요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돈을 잔뜩 벌어야겠군.”
한두 푼으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리라.
‘개인 정보’를 닫으며 그런 결론을 내리던 참이었다.
쿵!
[‘혹한의 방벽’이 공격받고 있습니다.]
“……?”
난데없는 이야기가 들려온 건.
1일 차 ‘절망의 파도’도 종료되었고, 거점 입구에 즐비했던 괴물들의 시체와 핏자국도 깔끔하게 정리해 뒀기에 무슨 일이 벌어질 일은 없을 거라 믿었다.
헌데.
공격이라니.
“제가 가 보겠습니다!”
느닷없는 급보에 상점에서 뛰쳐나온 곽재우가 입구로 달려간다.
나도 천천히 뒤를 따랐다.
이윽고.
목도할 수 있었다.
쾅!
쾅!
쾅!
“살려 주시오!”
“제발!”
“한 번만 도와주시오!”
기시감이 드는 장면을.
* * *
“…뭡니까.”
연이은 전쟁의 여파로 지반 자체가 대량 소실되어 간단하게 제작해 둔 계단에 서서 사람들에게 물었다.
다해서 일곱 명의 건장한 남성들로 꾸려진 무리.
그들을 향해 질문을 던지자 30대로 보이는 남자 하나가 후다닥 튀어나와 넙죽 엎드리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제발! 제발! 저희 대장님 좀 살려 주십쇼!”
라고.
그가 지칭하는 대장이 누구인지는 따로 묻지 않았다. 얼기설기 만든 들것에 누워 숨을 헐떡이는 이를 중심으로 단체 오체투지를 하는 중이었으니까.
대장의 상태는 몹시 위중했다.
괴물에게 당했는지 옆구리가 큼지막하게 뜯겨 나간 데다가.
“환부가 파랗게 물든 게 중독된 거 같아요.”
요즘 들어 한창 독에 관해 공부하고 있는 한세정의 의견에 의하면 해독약까지 필요한 상황이니.
웬만해서는 살기 힘든 지경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제발… 대장님을 살려만 주신다면 뭐든 하겠습니다!”
“뭐든 하겠습니다!”
남자들은 절박하게 통곡했다.
본인들도 팔다리에 한두 군데씩 상처를 달고 있었으나, 통증을 잊은 양 이마를 땅에 처박으며 구원을 요청했다.
‘음…….’
어찌해야 좋을까.
“곽재우, 데려와. 깨끗하게 씻기고 회복시켜 줘. 세정이가 돕고.”
“알겠습니다.”
“네!”
고민은 짧았다.
할 수 있는데, 방치하고픈 생각은 없었다.
다만.
“감사! 감사합―”
“조이령, 신지유, 신지운. 셋은 저들을 감시해. 헛짓거리한다면 죽여도 좋아.”
“네.”
“…네.”
“네!”
안전장치는 채워 놓고.
애절한 동료애로 똘똘 뭉친 집단일 수도 있지만, 불곰파와 같은 개새끼들일 확률도 배제할 수 없으니.
“그쪽 분은 저와 대화 좀 하시죠.”
“저, 저요?”
“예.”
“알겠습니다.”
경계하고 있음을 분명히 알려 주고서 부책임자로 짐작되는 남자를 데리고 토크 테이블을 마련했다.
이후.
아주아주 ‘재미난’ 얘기를 듣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