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화
“1등급이 804개, 2등급이 87개네요.”
“와… 상당히 벌었네.”
한세정의 결과 보고에 조이령이 입을 떡 벌린다.
물론.
곽재우나 신씨 남매를 비롯해 나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총 합계만 900여 개.
2등급은 1등급의 50배 가치로 책정되는 점을 참고해 계산하면 전쟁 한 번으로 5,157개라는 어마 무시한 양을 벌어들인 셈.
이러니 동요하지 않을 수 있나.
“…능력치부터 올리자.”
압도적인 물량에 잠깐 사고 회로가 정지했던 나는 이내 흐물거리던 정신 줄을 팽팽하게 당기며 미리 정해 둔 매뉴얼대로 근원석을 나눴다.
1번은 진정한 초인화(超人化).
적게는 두 개에서 많게는 네 개까지 미달된 분량을 ‘100’으로 맞춰 두는 것.
[한세정 : 체력, 내구, 순발력]
[조이령 : 체력, 순발력]
[곽재우 : 근력, 순발력]
[신지유 : 근력, 체력, 내구, 순발력]
[신지운 : 근력, 체력, 내구]
이러한 미달성 리스트를 싹 지우려면 근원석이 꽤나 소모될 테지만, 아까 먹여 둔 걸 감안해 넉넉잡아 4~500개쯤 투자하면 무리 없이 초인이 될 듯했다.
804개를 모조리 사용해야 한다고 해도 마땅히 그럴 거지만 말이다.
하여튼.
“각자 체크 잘하면서 먹어.”
“당연하지. 이 귀한 걸 어떻게 그냥 먹어.”
“알겠습니다.”
“네.”
“넵!”
“좋아. 그럼 먹자.”
한세정을 필두로 재차 근원석 폭식이 시작됐다.
근력, 순발력, 체력, 내구.
그 밖에 여타 특수한 스탯들까지.
파직―
파직―
‘기운이 점점 늘어나는군.’
시간이 흐르고 복용량이 늘어날수록 점점 강하게 신호를 보내는 감각.
그러다 어느 시점에.
“아!”
한세정이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드러눕는다.
원인이야 뻔하다.
신체 개조.
고습진 단어로 표현하자면 ‘환골탈태’라고 불리는 그것이 그녀의 육체를 진화시키는 중이었다.
“악!”
“커헉!”
“…으아악!”
“읍!”
조이령, 곽재우, 신지운, 신지유.
네 사람도 순서대로 통증에 신음을 토해 내며 먹던 근원석을 팽개치고 쓰러진다. 시기를 맞추기라도 한 모양인지 참 공교로운 단체 환골탈태.
그러길 10여 초가 지나자 하나둘 일어나더니 제 몸을 돌아본다.
예외없이 감탄하며.
아마.
내가 그러했듯이 ‘진짜 초인’이 된 자신을 만끽하는 것이리라. 하늘이 땅이 되는 아주 드라마틱한 변화가 생기고 그런 건 아니지만, 그래도 충분히 실감할 수 있는 정도라 원 없이 즐기게 놔두었다.
때가 되면.
“오빠!”
어련히 돌아오니까.
* * *
“저부터 말해 보자면, 저는…….”
초인화를 마치고 일단락된 자리.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전에 각자 초인된 기념으로 어떤 특성을 받게 되었는지 알아볼 겸 빙 둘러앉아 공개 식을 가지려는데.
“그게…….”
어째서인지 늘상 당당하게 선두 주자를 맡았던 한세정이 오늘따라 안절부절못하며 유달리 주저하는 모습을 보인다.
왜지?
혹시.
“…특성이 별로 안 좋아서 그래?”
뭐든 간에.
웬만해서는 없는 것보단 있는 게 나은 법이라지만, 그게 매번 통용되는 건 아니니.
다만.
그녀가 설령 쓰레기를 뽑았다 하더라도 나는 별로 상관없었다.
상점에서 판매하는 2등급 근원석 50개짜리 ‘특성 개방의 돌’을 구입했다가 꽝을 뽑은 거라면 몰라도 땡전 한 푼 들이지 않았으니 아무짝에 쓸모없는…….
“그, 그게… ‘절애’라고…….”
“…절애?”
“네…….”
“낭떠러지?”
“는 아니고… 사, 사랑하는…….”
《특성 : 절애》
- 설명 : 초인의 영역에 든 당신의 업적을 기념하며 선물 받은 특성이다. 선결 과제를 이행할 시 특별한 힘이 부여된다.
- 과제 : 지정한 대상(지정 시 대상이 ‘사망’하지 않는 한 변경 불가, 지정 가능한 대상의 성별은 ‘남(男)’으로 고정)이 300m 이내에 한 시간 이상 위치할 것.
- 옵션 : 선결 과제 달성 시 모든 능력치 3% 상승, 범위에서 벗어날 경우 10분 후 효과 소멸
“…….”
음.
이제 알겠다.
무엇 때문에 대답을 망설였는지. 절애라는 말이 이 절애(絕崖)가 아니라 그 절애(切愛)였으니 머뭇거릴 수밖에.
완전히 대놓고 얘기하는 거니까.
날.
좋아한다고.
‘으음.’
그 깨달음에 무안해진 나는 연신 헛기침을 하며 침묵해야 했다.
대화를 이어 갈 만한 분위기가 아니었다.
한세정도 민망한지 빨갛게 물든 얼굴을 푹 숙인 채 손가락만 꼼지락거렸고, 조이령은 잘됐다 싶은지 이참에 고백하라며 다 들리게 속닥거렸으며, 곽재우와 신지유는 슬며시 고개를 돌렸으나 신지운은 외려 초롱초롱하게 눈을 빛내고 있으니…….
다들 알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마음을.
하루도 쉬지 않고 드러내는데 모를 리가 있나.
다만.
‘그게 왜 특성으로 발현이 되는 거냔 말이야…….’
툭―
잔뜩 어색해진 공기에 넌지시 곽재우를 건드렸다.
그를 떠밀어 돌파구를 만들어 보려는 것이었다.
“아, 아… 저는 그러니까.”
다행히 곽재우는 내 속내를 알아들어 주었다.
“철벽, 철벽이라고 합니다.”
《특성 : 철벽》
- 설명 : 초인의 영역에 든 당신의 업적을 기념하며 선물 받은 특성이다. 선결 과제를 이행할 시 특별한 힘이 부여된다.
- 과제 : 100m 이내 ‘아군’이 본인보다 ‘뒤’ 존재할 것, 500m 이내에 ‘적’이 ‘아군’보다 열 배 이상 많을 것.
- 옵션 : 선결 과제 달성 시, ‘아군’과 ‘적’ 숫자의 차이에 비례해 「내구」 상승
당황스러운지 더듬거리면서도 제 특성을 설명하는 곽재우.
힘겹게 이야기하는 것과는 별개로 그가 획득한 ‘철벽’의 효능은 굉장히 좋은 편이었다. 선결 과제도 소수 정예로 활동하는 우리 기준에서는 그닥 까다롭지 않았고.
사실.
발동 조건만 따진다면 한세정의 것 역―
“음, 좋네. 다음은.”
“흐으음……. 제 걸 알려 드릴게요. 저는 ‘강인함’이라고 하네요. 선결 과제는…….”
《특성 : 강인함》
- 설명 : 초인의 영역에 든 당신의 업적을 기념하며 선물 받은 특성이다. 선결 과제를 이행할 시 특별한 힘이 부여된다.
- 과제 : ‘저주’, ‘속성 공격’ 등 상태 이상을 유발하는 공격에 3회 이상 피격될 것.
- 옵션 : 선결 과제 달성 시, 피격량에 비례하여 ‘저항력’ 상승
애써 머리에 떠오르는 상념을 털어 내며 들은 조이령의 특성 ‘강인함’. 이건 충족 요건이 다소 위험하긴 하나, 옵션 자체는 썩 나무랄 게 없었다.
무려 ‘저항력’을 올려 줬으니까.
성십자가 클랜과의 전투에서 저항력의 위력은 여실히 증명됐다. 각종 디버프가 걸리는 족족 파훼하던 그 힘, 조이령으로서는 대박이 터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정.말. 좋.네.요.”
지금의 그녀는 특성보다 다른 데 관심이 있는 것 같았지만 말이다.
여하간.
“너희는 어때.”
슬슬 정상 궤도에 들어온 나는 제법 안정감을 찾은 목소리로 신씨 남매에게 물었다.
앞서 세 개의 특성이 너나 할 거 없이 평균적으로 수작은 하는지라 신지유와 신지운의 건 또 어떨지 기대감인 서린 음성.
그리고.
두 사람은 내 믿음을 배신하지 않았다.
“저는 ‘재배’예요.”
“재배?”
“네.”
먼저 신지유.
《특성 : 재배》
- 설명 : 초인의 영역에 든 당신의 업적을 기념하며 선물 받은 특성이다. 선결 과제를 이행할 시 특별한 힘이 부여된다.
- 과제 : 100m 이내 존재하는 ‘식물’과 최소 777시간 동거할 것.
- 옵션 : 선결 과제 달성 시, 식물 성장 시간이 단축되며 수확량이 증가한다.
나무의 정령 드라이어드와 계약한 정령사여서인 걸까.
신지유의 특성은 비슷한 계열의 것으로, 직접 농작물을 키워 식량을 확보하려는 우리에게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능력이었다.
식량 공급도 식량 공급이지만.
무엇보다 우리에게는 복용 시 ‘근력’을 향상시켜 주는 ‘렌티아 열매’가 있었으니까.
그 보물의 수확량을 늘릴 수 있다니.
끄덕―
나는 절로 그려지는 아름다운 미래에 신지유에게 만족스러운 눈빛을 보내며 고개를 끄덕였디.
“제 건 이거에요!”
그즈음 제 것도 봐 달라며 종이를 건네는 신지운.
녀석의 특성은.
“…심안?”
상당히 특이한 종류였다.
《특성 : 심안》
- 설명 : 초인의 영역에 든 당신의 업적을 기념하며 선물 받은 특성이다. 선결 과제를 이행할 시 특별한 힘이 부여된다.
- 과제 : 마음을 읽고자 하는 대상과 ‘손’을 맞잡은 채로 5초간 ‘시선’을 마주할 것.
- 옵션 : 선결 과제 달성 시, 대상의 감성과 생각을 단편적으로 읽어 낸다.
독심술이라니.
“어때요?”
나는 눈동자를 빛내며 묻는 신지운을 잠시 바라보다가.
스으으윽―
손을 내밀었다.
스스로 투시 대상이 되어 체험해 볼 심산이었다.
“한번 해 봐.”
“아, 네!”
텁―
악수를 받는 신지운.
이윽고.
고요한 가운데 속으로 ‘내 예상보다 훨씬 좋아 보인다’라고 반복해서 중얼거리길 약 5초.
“…좋다. 좋다! 예상보다 좋다, 라고 하셨죠?!”
내 생각을 거의 완벽하게 읽어 낸 신지운이 함박웃음을 짓는다.
단편적이라고 하기에 정확도가 어떻게 될는지 알고 싶었는데, 이만하면 퍽 괜찮은 타율이었다.
이로써 체크를 마친 다섯 개의 특성들.
‘뺄 게 없다.’
한세정…에서부터 신지운에 이르기까지.
전반적으로 흡족했다.
점수로 논한다면 10점 만점에 7~8점은 거뜬한 수준. 무작위라는 타이틀이 붙은 것치고 무척이나 기꺼운 결과였다.
해서.
‘…무작위는 아니야.’
불현듯 메시지에 적힌 ‘무작위’라는 단어에 관심이 쏠렸다.
시스템은 랜덤을 주장하고 있었지만.
내가 얻었던 ‘다 대 일’도 그렇고, 한세정들의 특성도 그렇고…….
전반적으로 각자에게 딱 어울리는 게 주어진 느낌이라. 아무래도 ‘한 가지를 무작위로’라는 문장 앞에 ‘제일 잘 어울리는 것 중’ 따위의 수식어가 숨겨져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숨긴 이유는 습득한 대상이 좀 더 행복해할 수 있게?
“…그럴 일은 없겠지만.”
“네?”
“아냐.”
시답잖은 잡념을 하던 나는 곽재우의 반문에 손을 휘휘 저으며 시선을 공중으로 옮겼다.
때마침.
[모든 생존자가 ‘절망의 파도’를 막아 냈습니다.]
[1일 차가 종료되었습니다.]
[각자의 ‘공적치’를 토대로 「순위」를 산정 중입니다.]
[남은 시간 : 59초]
[남은 시간 : 58초]
[남은 시간 : 57초]
‘이벤트 : 절망의 파도’의 1일 차 종료 공지와 더불어 랭킹이 발표되려 했기 때문이었다.
과연 나는 몇 등을 했을까.
또.
한세정들은 몇 등일까.
궁금증을 품고서 허공을 응시하자 이내 60초 카운트가 끝나며 눈앞에 대문짝만한 홀로그램 화면이 나타났다.
일반적인 메시지와 달리 ‘개인 정보를 개방한 생존자라면 모두가 볼 수 있는 특별한 스크린으로.
[「1일 차 순위」를 발표합니다.]
[100위 : 김도영]
[99위 : 성효정]
아래서 역순으로.
그곳에는.
[84위 : 곽재우]
“어?”
곽재우의 이름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