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화
* * *
“이쪽은 마력 위주의 근원석으로… 복용자는 한세정, 신지유. 비율은 3 대 7. 가져가.”
“네!”
“네.”
한세정과 신지유가 지시에 맞춰 한가득 쌓여 있던 140여 개의 근원석을 나눠 가지고는 적당히 거리를 벌려 앉아 입으로 밀어 넣는다.
나는 두 여자의 먹방 아닌 먹방을 지켜보다가.
“다음, 곽재우.”
“예.”
다음 타자로 곽재우를 불러 한 움큼의 근원석을 넘겨주었다.
총합 120개.
그가 수령해 간 건 대체로 ‘체력’과 ‘내구’를 증가시키는, 늘상 선두에서 적을 맞이하는 전위에게 최우선시되는 스탯이었다.
이윽고 마지막 순번으로 찾아온 조이령과 신지운.
“둘은 이걸 가져가.”
둘에게는 주로 ‘근력’과 ‘순발력’이 올라가는 근원석 약 200여 개를 배급했다.
자.
분배는 끝났다.
아직 1등급 100여 개와 2등급 여섯 개가 남아 있지만, 일단은 여기서 멈추고 한세정들의 섭취를 기다렸다.
나머지 분량은 경과에 따라 차등 배분할 예정이기 때문이었다.
‘100’.
그 선에 기준을 두고서.
맞다.
난 오늘 한세정들의 스탯 중 최소 한 가지는 100으로 올려놓을 작정이었다.
행운이 깃든다면 두 가지를 달성하는 사람도 나오겠지만, 욕심이 과하면 실패했을 때의 아쉬움도 크다고 하니 일부러라도 기대감을 낮추고 대기하길 5분여.
“아!”
근원석을 씹는 일정한 음율 이외에는 조용하던 공간에 한세정의 탄성이 울려 퍼졌다.
배급량이 적어 빨리 끝난 모양.
해서 그녀를 바라보는데, 한세정의 동공이 멍하게 풀려 허공으로 향한다. 저런 경우 답은 하나뿐이다.
두말할 거 없이.
“오빠! 저 됐어요!”
100에 진입했다는 소리였다.
운이 좋았다.
목표치에 닿을 수 있게끔 충분한 몫을 떼어 주기는 했다. 다만, 근원석이라는 게 ‘근력 or 순발력’ 또는 ‘마력 or 내구’와 같이 여러 항목을 던져 주고 그중 하나를 무작위로 선택해 능력치로 바꿔 주는 터라 재수가 없으면 주구장창 다른 스탯만 올라가는 허무한 꼴을 볼 수도 있었으니까.
우우우우웅―!!
“아, 이게 마력 유체구나.”
하여 걱정을 했는데, 참 다행스럽게도 한세정은 원하던 곳에 집중되어 한계 돌파 보상인 ‘마력 유체’까지 얻는 데 성공했다.
이에.
나는 안도감에 한숨을 내쉬며 신지유에게 눈을 돌렸다.
“으음, 음…….”
으적―
으적―
막바지에 이르러 서너 개씩을 동시에 씹어 삼키는 소녀.
이윽고.
으적!
“으읍, 음!”
거의 백 개에 달하던 근원석을 목구멍에 들이붓다시피한 신지유가 한동안 공중을 응시하다 나와 눈동자를 마주치며 주억거린다.
한세정에 이어 신지유도 내가 내 준 숙제를 훌륭하게 이수해 냈다는 뜻이었다.
아무래도.
오늘은 행운의 여신이 웃어 주는 날인 것 같았다.
“저도 됐네요. 근력이 105예요.”
“저는 순발력이요!”
조이령도, 신지운도 합류한 데다가,
“저는 체력과 내구가 둘 다 100을 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형님.”
곽재우는 아예 두 가지를 모조리 찍 어버리는 쾌거를 이룩했으니 말이다.
나는 심히 흡족 서러운 성과에 미소를 숨기지 않으며 허리를 숙여 감사를 표하는 거구를 일으켜 세운 후.
한세정, 조이령, 신지유, 신지운.
넷에게만 100에 근접한 스탯이 있는지를 물어보았다.
“저는 근력하고 내구가…….”
“세정이 너도? 나도 그런데.”
“정말?”
“저는 근력이 60을 조금 넘었어요.”
“저도 근력이 제일 높아요!”
최근에 스랄레오와 포타우스를 사냥해서 그런가.
두 종(種) 다 ‘근력’과 ‘내구’를 올려 주는 근원석을 드랍하다 보니 다들 그쪽으로 치우쳐져 있었다.
뭐.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었기에.
“이렇게 하자.”
나는 저마다의 특성을 고려해 남은 백여 개를 적절히 내어 줬고, 그 결과로 한세정이 ‘스트랭스’를 배울 수 있었다.
조이령도 ‘한계 돌파―내구’와 함께 ‘도검불침’을 배웠다.
신지유와 신지운은 합류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두 번째 돌파까지는 힘들었지만, 3차 파도가 금방이니 금세 ‘초인’의 영역에 발을 들이리라 싶었다.
‘그러다 보면 나도 따라잡히겠군.’
농담이 아니다.
의도적이긴 하나 근원석을 밀어 주고 있는 만큼, 뭐라도 이식하지 않으면 적어도 능력치 부분에서는 대등해지겠지.
다만 실력 차는 여전할 거다.
기술 등급의 차이.
사본이냐 원본이냐 하는 그 간극을 무시할 수는 없을―
“…아!”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상념을 이어 가던 와중.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던 무언가가 뇌리를 세게 강타했다.
기술 등급을 얘기하고 나서야 가까스로 기억해 낸 그것은… 일전에 ‘특수 퀘스트’ 5회 클리어 기념 특전으로 주어진.
달그락―
달그락―
툭―
《단계 향상의 돌》
기술 등급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켜 주는, 무려 ‘비범’ 등급의 아이템 ‘단계 향상의 돌’이었다.
《단계 향상의 돌》
- 등급 : 비범
- 분류 : 소모품
- 설명 : 기술의 단계를 향상시켜 주는 돌. 복용 후 보유 중인 기술을 지정하면 해당 기술의 단계가 상승한다. 단, 한계에 다다른 기술은 성장시킬 수 없으며, 원본(原本) 등급 이상의 기술 또한 효과가 적용되지 않는다.
- 옵션 : 기술 단계 1 향상
“…이걸 깜빡했다니.”
난 황급히 허리춤에 매어 둔 휴대용 주머니들 가운데 제일 안쪽 옆구리 부근에 달아 둔 황토색 주머니에서 꺼낸 푸르스름한 돌멩이를 손가락으로 들어 올리며 허탈하게 웃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이런 중요한 걸 썩혀 두고 있었다는 게 어이가 없어서.
하기야.
변명을 하자면 중간에 이래저래 사연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이벤트 : 절망의 파도’의 발발을 알리는 메시지에, 조철영 무리와의 마찰과 신씨 남매 구출기, 뭘 좀 해결했다 싶으니 ‘기적의 조각’이 설계한 운명으로 성십자가 클랜과 부딪쳐 죽을 뻔하기도 하는 등.
이러니 안 까먹을 수 있나.
“오빠, 왜 그러세요?”
“그게.”
나는 실수 인정과 자기 합리화를 병행하며 갑작스러운 행동으로 당황한 한세정들에게 ‘단계 향상의 돌’에 관해 말해 주었다.
그러고는.
“각자 하나씩 받아.”
“네? 오빠가 안 쓰시고요?”
“난 알다시피 원본 등급이 대부분이야. 사본이라고 해 봐야 세 개가 전부고. 그러니 나보다는 너희가 쓰는 게 좋아.”
한세정들에게 하나씩 지급하고 사용하도록 종용했다.
사본(寫本)과 원본(原本)의 격차는 상상 이상으로 크다. 이건 직접 체감해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글자 하나의 변화가 미치는 파급력을.
허니.
가르쳐 줘야 했다.
우물 너머로 펼쳐진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를.
“그래서 말인데.”
“네?”
그렇기에 마음을 먹었다.
“…우린 앞으로 6인 판정을 받아 파도를 상대할 거야.”
파도의 규모를, 괴물들의 숫자를, 더 어렵고 고된 수준의 전쟁이 되도록 난이도를 끌어올리기로.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난 지금 이걸 실현키로 결심한 것이다.
아니다.
실은 조금 다르다.
강해진 한세정들의 능력과 나.
이 두 개의 조합이 합쳐진다면, ‘하이 리스크 하이 티턴’이라기보단 ‘로우 리스크, 하이 리턴’이 될 게 분명하니까.
따라서.
우린 무조건 도전해야 했다.
100%에 가까운 안전성을 자랑하면서도 고수익률을 보장해 주는데 그런 상품을 놓치는 건 바보 같은 짓.
더군다나.
“괜찮, 을까요?”
“괜찮아. 그리고.”
“……?”
늦고 빠르고의 문제일 뿐이지.
“우리로서는 선택 사항도 아니야.”
“네? 그게 무슨…….”
이건 애당초 하고 말고의 영역을 벗어나 있었다.
파도가 회차가 거듭될수록 점점 더 위험해지기 때문이었다.
즉.
앞으로 시간이 더 지나면 제아무리 미친 듯한 성장세를 보이는 우리라 할지라도 생존을 장담할 수 없었다.
다시 말해.
적들이 약할 때를 노려 최대한 강해져야 향후에 집채만 한 해일이 몰려오더라도 버텨 낼 수 있다는 의미였다.
“아……!”
“오빠 말씀 듣고 보니까 반드시 해야겠네요.”
“저는 뭐든 좋습니다.”
그 점을 명확하게 설명해 주자 한세정들의 표정에도 긴장감이 서린다. 다들 완벽하게 이해한 듯했다.
내 결단에 불만을 토로하거나 토를 달지 않았다는 게 그 증거.
척―
척―
오히려.
“얘들아, 연습하러 가자.”
“그래야지.”
“예.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저 화살만 채워 올게요.”
“네!”
처지를 깨닫자마자 내려놓았던 무기를 꼬나쥐며 거점 1층 가장자리에 개설해 둔 인스턴스 던전 통로로 들어갈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다음 검색까지 남은 시간 : 57분 13초]
3차 파도까지 남은 60분여.
어영부영 노닥거릴 시간에 1분 1초라도 더 빨리 던전에 들어가 늘어난 힘이 정확히 어느 정도인지 점검해 보고, 실전을 치르며 적응 훈련을 할 셈인 것 같았다.
물론.
스으윽―
“오빠도 가시게요?”
“나도 가야지.”
노력해야 하는 건 나 또한 매한가지였다.
[〈인스턴스 던전 : 쌍수 증량의 폭력〉에 입장합니다.]
[복귀를 원할 경우 ‘퇴장’ 주문을 외워 주십시오.]
* * *
[다음 검색까지 남은 시간 : 0분]
[때가 도래했습니다.]
[당신의 위치를 기준으로 ‘1km 내’에 존재하는 생존자를 탐색합니다.]
[…완료!]
[검색된 인원 : 여섯 명]
[1일 차 마지막 파도가 파악된 인원수에 걸맞은 규모로 들이닥칩니다.]
“…마지막?”
인스턴스 던전에서 30분을 보내고 정비를 마친 뒤 맞이한 3차 파도.
헌데.
주르륵 올라오는 메시지에 ‘마지막 파도’라는 내용이 첨가되어 있었다. 그래도 잠은 잘 수 있게 배려해 주겠다는 건가?
나는 눈앞에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문장들을 보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끼에에에에엑!!”
“크아아앙!!”
장포를 쫙 걸치며 입구로 다가가기 무섭게 멀리서 제 존재감을 팍팍 드러내는 하울링이 들려왔다.
벽을 사이에 뒀고, 거리도 있는데 귀가 따갑다.
대체 몇이나 몰려오길래.
‘감각 증― 아니, 됐다.’
청력을 증폭시켜 대강이라도 감을 잡아 보려다 참았다.
길어 봐야 1분 내에 알게 될 터인데 구태여 아까운 마력을 낭비할 이유가 있나.
게다가.
“철혈의 술.”
“인라지 플렌츠.”
쿵―
쿠구구구구구궁―!!
촤르르르륵!!
촤르르륵!
한창 임시 성벽 건설로 인해 소음이 극심했다.
이런 시기에 청각을 키워 봤자 고막만 아플 뿐이지.
“설치 완료했습니다.”
“저도 다 됐어요.”
시답잖은 잡념으로 몇 초를 보냈을 무렵 곽재우와 신지유가 각자의 스타일대로 성벽을 구축하고서 보고를 올린다.
나는 두 사람의 얘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입구를 활짝 개방하고서 밖으로 발걸음을 내디뎠다.
그 뒤를 쫓아오는 다섯 명의 전사.
하나같이 담담하고 무덤덤한 얼굴이다. 두려워하거나 불안해하는 이가 없다. 외려 고고한 자태에서 언뜻언뜻 자신감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명확하게 체감했으니까.
자신들의 무력이, 본인들의 레벨이 어떠한지를.
그러하기에.
모두가 믿어 의심치 않았다.
두 번의 승전처럼.
“키에에에에엑!!”
“크워어어어어어!!”
“가자.”
목전에 다다른 세 번째 전쟁 역시 승리로 기록될 것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