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화
* * *
“죽어!”
휘우우우욱―
콰직!
“키에에에에엑!!”
조이령의 창날이 바람을 가르고 쏘아져 분전하던 괴물의 가슴팍에 꽂힌다.
사마귀를 닮은 듯한 놈은 패배했다는 현실이 원통한지 노성을 토해 보지만, 도와주는 이 하나 없다.
쿠우웅!
“키에엑― 키에엑…….”
쓰러져 죽음을 맞이하는 최후까지도.
어쩔 수 없었다.
툭―
[축하합니다!]
[두 번째 파도를 ‘모두’ 막아 냈습니다.]
[다음 파도가 밀려오기 전까지 공백기가 주어집니다.]
[다음 검색까지 남은 시간 : 291분 13초]
“…됐다!”
녀석이 다 시체가 되어 눈구덩이에 처박힌 상태였으니까.
8분 47초.
채 10분이 걸리기도 전에 전쟁은 끝나 있었다.
“후아, 드디어 다 잡았네.”
“그러게. 얼른 근원석 회수하고 쉬자!”
“제가 저쪽으로 갈게요!”
“그럼 저는 여기로 가겠습니다.”
도합 육백육개체.
1등급 600마리와 2등급 6마리로 구성된 대군을 물리친 한세정들은 승리를 자축하며 홀가분한 표정으로 전장 곳곳으로 퍼져 근원석을 회수하기 시작했다.
물론.
나도 놀지는 않았다.
양이 양인지라.
손이 한 개라도 비면 그만큼 다른 사람이 힘들어진다. 그게 아니더라도 본래 ‘추출 작업’ 자체가 본인이 사냥한 시체만 가능한 시스템이라 어차피 전후 노동은 필수였고.
“육백…육! 끝! 다 수거했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공들이고 나서야 마무리된 횟수 작업.
각자 적게는 수십 개에서 많게는 수백 개에 달하는 근원석 주머니를 한 보따리씩 이고 거점에 들어와 그대로 드러누웠다.
앞서 세 시간의 공백기가 제공되었다지만.
전투 시간을 제하고 나면 실질적으로 150분도 안 되는 여유만으로 수백 마리의 괴물과 싸우며 쌓인 피로감을 말끔하게 해소하기란 턱없이 모자라다.
그런 데다가 다시 대규모 교전 피로를 더하고, 심지어 금번에는 ‘절망의 파도 10분 컷’이라는 시간제한으로 압박감까지 추가됐으니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한계에 봉착했을 게 뻔했다.
하여.
“우선은 쉬고 세 시간 후에 모이자.”
무슨 아이템을 얻었으며, 근원석 처분은 어떻게 할 것인지 등등.
여러 가지 사안에 대한 처리는 내가 고민해서 결정키로 하고 한세정들은 오로지 쉬며 회복하는 데에만 신경 쓰도록 했다.
“오빠, 여기 물이요.”
“쉬라니까.”
“이게 쉬는 거죠. 헤헤.”
쉬라고 해도 일거리를 찾아다녀서 문제였지만.
“…쯧.”
나는 넉살 좋게 다가와 물병을 건네며 궁둥이를 붙이고 앉는 한세정의 태도에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다시금 바닥에 팔을 뻗었다.
발치에 잔뜩 늘어놓은 근원석들을 향하여.
《1등급 근원석 : 켈타》
《1등급 근원석 : 플라밍》
《1등급 근원석 : 콜크세티아》
몇 종인지 세기도 어려운 양의 근원석을 이리 두고 구경하는 연유는, 이것들을 ‘복용’하려 마음먹었기 때문이었다.
제일 시급했던 장비와 기술 부분을 모두 구비했으니 이젠 신체를 강화할 때였다.
인스턴스 던전을 공략하며 꾸준하게 ‘복용용 근원석’을 확보하고 있기는 하나, 그것들은 일반 근원석에 비해 성능이 10분의 1밖에 되지 않아 아무래도 부족한 게 사실.
따라서.
이번에는 근원석을 상승 스탯별로 분류해 두고, 본인들의 니즈에 맞게 분배해 줄 예정이었다.
또한.
그 잔치에는 나도 낄 요량이다.
《1등급 근원석 : 칼리아스》
- 대상 ‘칼리아스’의 에너지를 품고 있는 근원석이다. 복용 시 ‘마력’ 또는 ‘내구’가 상승하며 낮은 확률로 기술 ‘마력 방패’를 획득한다.
“…이거 오랜만이네.”
으적―
[‘1등급 근원석’을 복용했습니다.]
[마력이 1 상승합니다.]
이른바 초인의 영역이라 불리는 ‘100’.
현재 ‘마력’과 ‘감각’이 각기 90과 83으로 그 벽에 다다라 있어, 이 기회에 100을 찍어 놓을 심산.
먹으려면 더 먹을 수는 있으나.
지금은 한세정들이 강해지는 게 당면 과제인 만큼 나머지는 양보한다.
“아, 여기 있네.”
으적―
[‘1등급 근원석’을 복용했습니다.]
[감각이 1 상승합니다.]
“여기도 있어요!”
그 일념으로 중간에 합세한 한세정의 지원을 받아 약 서른 개가량의 근원석을 흡수한 끝에.
“마지막.”
콰직―
[‘1등급 근원석’을 복용했습니다.]
[마력이 1 상승합니다.]
마침내 두 개 스탯을 100으로 올려놓을 수 있었다.
[축하합니다!]
[‘신체 능력 : 마력’이 「100」을 돌파했습니다.]
[‘신체 능력 : 감각’이 「100」을 돌파했습니다.]
더불어.
[보상으로 ‘칭호 : 한계 돌파―마력’을 습득합니다.]
[보상으로 ‘칭호 : 한계 돌파―감각’을 습득합니다.]
[기술 ‘마력 유체’를 습득합니다.]
[기술 ‘감각 증폭’을 습득합니다.]
[마력과 감각이 3씩 상승합니다.]
메인이라 할 수 있는 기술도 얻게 되었고.
《기술 : 마력 유체》
- 등급 : 특수
- 단계 : ―
- 설명 : 신체 능력치 중 ‘마력’이 「100」을 돌파했을 시 부여되는 기술입니다. 이를 통해 체내의 마력을 체외로 끌어내어 그 자체로 무기와 방어구처럼 활용 가능하며, 혹은 장비에 덧씌워 공격력과 방어력을 극대화할 수 있습니다.
《기술 : 감각 증폭》
- 등급 : 특수
- 단계 : ―
- 설명 : 신체 능력치 중 ‘감각’이 「100」을 돌파했을 시 부여되는 기술입니다. 순간적으로 특정 감각을 몇 배로 증폭시켜 사용할 수 있습니다.
“마력 유체, 감각 증폭.”
시야 한쪽에 출력된 홀로그램 화면을 보며 새로 익힌 기술에 관한 설명을 쭉 읽어 내려간 나는 위력이나 효과를 확실히 알아보고자 곧바로 마력을 순환시켜 기술들을 발동해 봤다.
[마력 유체]
우우우우웅―
“음, 이런 식인가.”
먼저 ‘마력 유체’는 판타지 소설에 흔히 등장하는 ‘오러 블레이드’와 ‘오러 아머’를 하나로 합친 기술이었다.
그 덕택에 따로 시간을 들여 배우지 않아도 될 듯했다.
다만.
[감각 증폭]
[증폭할 감각 선택]
[1. 시각 / 2. 청각 / 3. 후각 / 4. 미각 / 5. 촉각]
[시각]
슈화하하하학―!
“음……!”
두 번째 기술인 ‘감각 증폭’은 조금 달랐다.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기존의 감각이 일순간 급격하게 상승하는 탓에 무엇보다 괴리감이 굉장히 컸다.
시각은 초점을 맞추기가 어렵고, 청각은 소음이 걸러지질 않아 귀가 먹먹했고, 후각은 향기고 악취고 구분할 거 없이 죄다 코를 찌르는 등 여러모로 단점이 몹시 크게 작용하는지라 오랜 수련이 뒤따르지 않는 한 제대로 써먹긴 그른 것 같았다.
[감각 증폭 : 후각]
“…크읍!”
* * *
“저부터 공개할게요.”
꿀 같은 휴식을 보내고 모인 자리.
중앙에 공간을 비워 두고 빙 둘러앉아 이제야 히든 피스로 뭘 획득했는지 개봉하는 시간을 가졌다.
첫 주자는 한세정.
그녀가 품속에서 꺼낸 건 두툼하며 빳빳함이 느껴지는 ‘책’으로.
《쌍독사》
- 등급 : 비범
- 분류 : 소모품
- 설명 : 특별한 술식을 이용해 독(毒)으로 이루어진 두 마리의 뱀을 소환해 투척한다. 타격과 동시에 폭발한 독사는 주변으로 독무를 내뿜어 적아를 구분하지 않고 중독시킨다.
- 옵션 : 탐독 시 사본(寫本) 등급 기술 ‘쌍독사’ 습득
“…기술서?”
그 정체는 다름 아닌 기술서였다.
“장비가 아니라 이게 나왔네요……?”
내가 장비를 받았기에 당연히 한세정들도 장비를 받을 거라 여겼다.
허나.
이는 내 막연한 선입견에 불과했다.
나와 달리 저들은 무장이 완벽한 상황. 고로 한세정들에게 있어서 ‘가장 필요한 보상’이 반드시 장비일 거란 근거는 어디에도 없었다.
“어? 나도 기술서 나왔는데?”
“이령이 너도?”
“저도…….”
“지유도?”
조이령과 신지유도 한세정과 마찬가지로 기술서를 얻은 것처럼.
“…한번 보자.”
그 진실에 잠시 벙쪄 있었던 나는 헛웃음을 내뱉으며 자연스레 두 여인의 기술서 설명 창을 열었다.
《랜스 차지》
- 등급 : 비범
- 분류 : 소모품
- 설명 : 창을 쥔 기사라면 누구나 배우는 기술. 최소 10m 이상의 돌격 거리가 요구되며, 창을 세워 돌진해 처음 적중한 대상을 기점으로 큰 폭발을 일으킨다. 본디 마상에서 행하는 기술이나 ‘마력’을 소모하며 지상에서도 능히 펼칠 수 있게 개조되었다.
- 옵션 : 탐독 시 사본(寫本) 등급 기술 ‘랜스 차지’ 습득
《인라지 플렌츠》
- 등급 : 비범
- 분류 : 소모품
- 설명 : 어느 차원의 마법사가 개발한 마법으로, 지정한 식물의 ‘크기’를 기하급수적으로 확대시키는 마법이다.
- 옵션 : 탐독 시 사본(寫本) 등급 기술 ‘인라지 플렌츠’ 습득
조이령과 신지유에게 지급된 기술들은 앞으로의 전쟁에서 꽤나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는 것들이었다.
하나같이 단일 대상뿐 아니라 일정 범위 전체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종류였으니까.
“…음, 그런 건가.”
한세정의 ‘쌍독사’도 그러하더니, 세 여인이 전부 범위형 기술을 선물 받았다.
어째서?
원인이야 명백하다. 필시 연속해서 치러야 할 대규모 전투를 기준점으로 놓고 보상안을 구상했겠지.
“잘됐네.”
안 그래도 나 이외에는 이렇다 할 광역기가 없어 불안했는데.
가히 대박이라 칭해도 될 성과에 속으로 손뼉을 치며 세 여인에게는 바로 나가서 연습할 것을 주문한 뒤.
곽재우와 신지운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저는 이겁니다.”
“제 건 이거에요.”
나와 동일하게 장비를 습득한 둘.
특이하게도 두 남자 다 ‘장신구’를 쥐고 있었다.
《시나타스 이고》
- 등급 : 비범
- 분류 : 장신구
- 설명 : 착용자의 생명력을 회복시켜 주는 광석 ‘시나타스’를 깎아 제작한 귀걸이.
- 옵션 : 체력 +12 / 체력 회복 속도 5% 상승 / ‘상태 이상 : 출혈’ 14% 확률로 저항
《평정의 목걸이》
- 등급 : 비범
- 분류 : 장신구
- 설명 : 평생을 정서적으로 불안했던 아들을 위해 제작한 목걸이. 착용자의 정신적인 면을 강화시켜 준다.
- 옵션 : 정신력 향상 / 집중력 향상 / 평정심 유지
“괜찮네.”
살펴보니 둘에게 딱 적절한 아이템이었다.
개중 특히 반가운 것은 신지운의 귀걸이.
저게 있으면.
‘미래 예지’의 최대 약점인 허상과 실제를 분리하는 단계에서 쌓이는 피로도나, 그 난해한 사용법 때문에 발생할 수 있는 실수를 줄이는 데 큰 도움이 될 테니까.
거기까지 생각을 정리한 나는.
‘이 정도면 3차 파도는 무난하겠어.’
자연스레 3차 파도와 한세정들의 전력을 비교하며 혹여 2등급 개체들이 무더기로 몰려오더라도 괜찮겠다는 판단이 섰다.
각자 손에 넣은 히든 피스와 곧 복용할 근원석을 계산하면 족히 몇 계단은 발전했을 터.
그래서였을까?
“…수를 늘려 볼까.”
곰곰이 사색에 빠져 있던 내 머릿속으로 불현듯 또 하나의 새로운 계획안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