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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메라의 기억법-107화 (107/232)

107화

* * *

“여기 남은―”

“그건 조금 있다가 포션을 좀 사 오고 앉아라. 할 얘기가 있으니까.”

“아, 네.”

신씨 남매의 장비 구매까지 완료하며 얼추 정리된 이후.

팍팍 쓰고 남은 백여 개 남짓의 근원석을 돌려주려는 신지유에게 손을 내저으며 휴식을 취하고 있는 한세정들을 불러 모았다.

“쉬면서 들어.”

히든 피스에 대해 알려 주고자.

사락―

“오빠, 그건…….”

“비범 등급의 아이템 ‘자가 수복 장포’. 아무리 파괴돼도 절반 이상으로만 남아 있으면 원형이 복구되는 옷이야.”

“……!!”

“이걸 얻게 된 건…….”

증거품…이라고 하긴 뭐하지만, 여하튼 ‘자가 수복 장포’가 있어 정보를 공유해 주는 건 어렵지 않았다.

내 얘기가 끝났을 때 한세정들이 표정엔 하나같이 경악이 담겨 있었다.

아이템을 착용함으로써 능력이 얼마나 강해지는진 나보다 그들이 더 잘 알고 있으니 말이다.

덕분에.

“…해서 앞으로 가능하다면 히든 피스 획득에 도전해 볼 계획이야.”

새로운 목표를 심어 주는 것도 수월했다.

보상이 좋은 만큼 난이도 역시 굉장하기에 누군가 한 명쯤은 거부감을 표하거나 반발할 수도 있음을 염두에 두었으나.

“비범 등급 아이템이 일곱 개……. 무조건 해야죠.”

“와……. 생각만 해도 눈이 번쩍 뜨이네. 다 얻을 수 있겠지?”

“전 무조건 하겠습니다.”

걱정했던 사태는 없었다.

외려.

긍정적이어도 너무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내가 누나와의 재회를 꿈꾸듯. 한세정들에게도 소중한 사람들과의 만남이라는 분명한 목표가 있기 때문이었다.

즉.

저들은 성장할 계기만 주어진다면 설령 맨몸으로 불구덩이를 파헤치는 임무일지라도 시도할 용의가 충분했다.

‘좋아.’

나는 그 뜨거운 의지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저 결의라면 목적한 바를 훌륭히 달성해 낼 수 있을 듯싶어 무척이나 만족스러웠다.

* * *

소모된 체력과 마력을 회복하며 기다리길 3시간여.

[다음 검색까지 남은 시간 : 4분 59초]

드디어 2차 파도가 몰아칠 시기가 되자.

“5분…….”

스으으윽―

나는 5분대 안쪽으로 진입한 시곗바늘을 응시하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으으읏―, 차.”

“세정아, 나 팔 좀 잡아 줘.”

“후우.”

덩달아 스트레칭 등으로 굳었던 육체를 풀어 주며 본인들의 애병을 꼬나쥐고서 전투태세를 갖추는 한세정들.

아직 전쟁이 벌어지기까지는 5분이나 남았건만.

우리가 벌써부터 분주하게 구는 까닭은 그만한 사유가 있어서였다.

저 5분이 소요되기 전에.

“각자 방향 숙지 다 했지?”

“응, 나는 두 시.”

“제가 네 시.”

“저는 여덟 시.”

“전 열 시요!”

각자 맡은 위치로 ‘거점을 떠나’ 이동해야 했기에.

왜?

“명심해. 검색이 끝나고 나면 바로 돌아오는 거야.”

‘검색’을 ‘외부’에서 받기 위함이었다

‘이벤트 : 절망의 파도’의 가장 큰 맹점을 이용하고자.

더 자세하게 풀이하자면.

검색 과정에서 1인 판정을 받고 파도의 규모를 최소 단위인 1백 마리로 절감시키기 위함이었다.

공백기 내내 머리를 맞대고 고민을 해 봤다.

어떻게 해야 히든 피스를 안정적으로 수급할 수 있을지 그 방법에 대하여.

그러다 나온 것이 일단 괴물의 숫자를 줄여 보자는 제안이었다. 수가 적으면 사냥은 쉬워질 거고, 사냥이 쉬워지면 10분 안에 파도를 물리쳐야 하는 조건을 달성할 확률로 오를 터.

그리한들 여전히 6백이라는 무지막지한 분량의 괴물들을 처죽여야 하지만…….

적어도 ‘6인’으로 기준점이 잡히는 것보단 나을 거라는 게 우리의 판단이었다.

“출발하자.”

“네!”

“네!”

“네!”

“네!”

“네!”

끼이이이이이익―!

문이 열린다.

만반의 준비를 마친 우린 각기 세 갈래로 찢어졌다.

두 시와 네 시 방향의 조이령&곽재우 팀, 여섯 시와 여덟 시의 한세정&신지유 팀, 열 시와 열두 시의 신지운&아윤 팀.

조 편성을 이리 구성한 건.

1인 판정 후 2차 파도가 시작되었을 때 서로 뭉쳐 낙오자 없이 무사하게 복귀할 수 있게끔 조치한 결과였다.

나와 한세정은 신씨 남매의 보호 자격으로, 조이령과 곽재우는 등을 믿고 맡길 동행자랄까.

“…가자.”

“네!”

대강 그러한 느낌으로 하나둘 사라지는 일행들의 뒷모습을 지켜보다 마지막으로 신지운을 데리고 열 시를 향해 발자국을 내디뎠다.

이벤트의 여파인가.

경로상에는 눈 외에 개미 새끼 한 마리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래서인지 슬그머니 호기심이 생겼다.

파도에 쓰이는 괴물들은 어디서 오는 걸까 하고.

‘…던전에 설치된 균열인가?’

아마도 확률상으론 그편이 제일 타당하다만, 왠지 던전 외에도 다른 통로가 있을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뭐 그런 시답잖은 상념을 하며 움직이길 몇 분.

“이쯤이면 되겠다.”

열심히 걷다 보니 신지운의 스타팅 포인트로 삼을 만한 장소에 다다랐다.

폭격이라도 당했는지 3층 위로는 송두리째 박살 난 상가 빌딩.

올라가는 길이 가동을 멈춘 엘리베이터와 좌측의 계단밖에 없는지라 실상 계단 쪽만 막아 놓으면 제아무리 신지운이라고 해도 5분 이상은 너끈히 버틸 폐건물이었다.

물론.

애당초 5분이나 버틸 필요도 없다.

“1분이면 될 거다.”

112나 되는 순발력 스탯에 각종 아이템 효과, 여기에 ‘돌진’과 ‘가속’까지 더해지면 1km 주파하는 데 30초도 안 걸릴 테니까.

“쓰읍, 후우, 쓰읍, 후……. 네! 형 오실 때까지 잘 기다리고 있을게요!”

“그래.”

나는 외딴곳에 혼자 남겨져야 하는 탓에 몹시 긴장한 신지운의 어깨를 두드리며 토닥거려 주고는 아래로 내려오며 계단에 손을 뻗었다.

[오르그의 파괴 본능]

우우우웅―!

콰앙!!

통행로 폐쇄는 내 담당이었다.

“형도 조심하세요!”

“그래.”

일을 끝내고 서둘러 열두 시 부근으로 달리는 날 배웅하며 손을 흔드는 신지운.

그 인사를 뒤로하고 북진해 어느 정도 멀어졌다 싶을 즈음 서서히 속도를 늦추자 때마침 종소리가 귓가를 간질인다.

[다음 검색까지 남은 시간 : 0분]

[때가 도래했습니다.]

[당신의 위치를 기준으로 ‘1km 내’에 존재하는 생존자를 탐색합니다.]

[…완료!]

[검색된 인원 : 한 명]

[다음 검색까지 남은 시간 : 300분]

[파악된 인원수에 걸맞은 크기의 파도가 들이닥칩니다.]

“됐다.”

검색 인원 한 명.

주르륵 나타나는 메시지에 우뚝 서서 허공을 주시하던 나는, 다음번 검색 시간이 180분에서 300분으로 늘어났다는 변경점을 제외하곤 처음과 똑같은 내용에 더 체크할 게 없음을 확인하곤 지체 없이 반전해 무릎을 굽혔다.

[가속]

[돌진]

꾸우우우우욱!

원하던 그림을 완성했으니 돌아갈 시간이었다.

콰아앙!!

* * *

슈우우우욱―

탓!

“…형?”

20초대.

[다음 검색까지 남은 시간 : 299분 37초]

정확하게는 23초 만에 1km를 돌파해 신지운 곁에 착지하자 검과 방패를 쥐고 지상을 경계하려던 소년이 얼빵한 표정으로 날 바라본다.

1분이면 된다고 얘기하긴 했으나.

설마 정말로 이렇게 빨리 와 줄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듯했다.

“가자.”

“네? 네, 네…….”

나는 얼떨떨한 기색이 역력한 신지운을 옆구리에 끼고 발을 굴렀다.

늑장 부릴 겨를이 없다.

10분은 길지 않다. 조각조각 나누어졌던 여섯 명이 재차 모여 본격적으로 전쟁을 노릴 즈음이면 못해도 2~3분은 소모될 거다.

허면.

실질적으로 ‘히든 피스 사냥’에 써먹을 수 있는 건 7분에서 길어야 8분 내외. 타이트하게 진행하지 않으면 미션에 실패할 수도 있는 터라.

“꽉 잡아라.”

“ㄴ―”

쾅!

“으으읍!!”

1분 1초를 아껴 가며 공간을 접듯이 거점으로 귀환했다.

[‘혹한의 안전지대’에 들어왔습니다.]

[모든 신체 능력치가 5% 상승합니다.]

[체력 및 마력 재생 속도가 10% 상승합니다.]

전속력으로 뛰어와 도착한 집.

[다음 검색까지 남은 시간 : 299분 07초]

“1분.”

막 298분으로 떨어지고 있는 시계에 머리를 끄덕인 나는 롤러코스터를 처음 탄 아이처럼 해롱거리는 신지운을 안에 던져 놓고 밖으로 나왔다.

다른 조가 오는 동안 먼저 사냥에 돌입할 작정이었다.

한세정들을 마중 나갈 수도 있지만, 괜히 나섰다가 길이 엇갈리며 예정에 없던 불상사가 연출될지도 모르니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키에에에엑!!”

“크에엑!!”

“왔나.”

저기.

힘겹게 우릴 쫓아온 놈들에게 편안한 안식이라는 선물을 내어 주는 게 훨씬 나은 선택이었다.

[발록의 투기]

후화하학!!

[돌진]

탓―

쿠우웅!!

가볍게 도약해 단박에 괴물들의 목전에 도달한 난 마력이 함유된 투기(鬪氣)로 인해 공포로 얼어붙은 먹잇감들의 대가리에 주먹을 내리꽂았다.

[오르그의 파괴 본능]

우우우웅!

콰아아아앙!!

푸른빛의 마력이 넘실거리는 일격이 땅을 두들기자 맥없이 쓸려 나가는 십수 마리의 괴물들.

비명 한 번 지르지 못하고 나가떨어지는 놈들을 짓밟으며 나아가려는데.

“그웨에에에에엑!!”

쿠웅!

불현듯 괴성과 함께 발밑에서 수십 개의 뿔이 달린 커다란 팔뚝이 날아들었다.

‘오르그의 파괴 본능’을 처맞고 아스팔트를 구르던 시체들 가운데서 겨우 목숨을 건진 녀석이었다.

‘2등급.’

‘공적치 산술법’상에서 나이트로 표기되는 2등급 개체였다.

2차 파도.

여기서부터는 2등급 개체가 포함되는 모양이었다.

헌데.

숫자가 적다.

‘…하나?’

한 마리가 고작이었으니까.

마치.

병사들만 투입해 패배를 맛봤으니, 요번에는 병사 일백에 기사까지 파견하여 반드시 승리를 쟁취하겠다 얘기하듯.

뭐가 어찌 되었든.

[마력 방패]

쿵!

발아래로 방패부터 설치하자 내 다리를 노리던 팔뚝이 공중에서 가로막힌다.

기세와 달리 매우 약한 타격력.

철컥!

“……?!”

퍼어엉!!

무시해도 되겠거니 싶은 순간 폭음이 전장에 울려 퍼졌다. 녀석의 팔뚝은 애초에 타격이 주가 아니었다.

방아쇠.

슈슈슈슈슈슈슈슉!!

파바바바박!!

팔뚝에 빼곡하게 솟은 뿔을 쏘아 내는 기폭제였다.

시끄러운 소음을 동반하며 사방으로 날아가 깊숙하게 틀어박히는 각우(角雨).

“그웨에에에엑!!”

그 여파 속에서 제 기습이 어떠냐고 묻는 듯 하울링을 터트리는 놈.

거친 함성엔 기대감이 한가득 깃들어 있었다. 내가 꼼짝없이 당했을 거라 단정 지은 것 같았다

아쉽게도.

[도검불침]

[순간 회귀 : 스랄레오의 골갑]

카각―

칵―

후두두둑―

“…끝?”

경미한 부상조차 내지 못하고 튕겨 나갔는데 말이지.

“그웨에엑? 그웨에에에에엑!!”

[베어 내기]

후우우욱―

서걱!!

2등급으로는 날 상대하긴 부족하다.

옷깃도 스치지 못할 만큼 한참.

[스트랭스]

[순간 회귀 : 오르그의 오른팔]

우득―

우드드득!

‘그러니…….’

[가속]

[돌진]

탁―

슈우욱!

그만 날뛰고 얌전히 공적치로 환산되길 바란다.

“크라라라라라라!!”

“빼에에에엑!”

“후읍, 후.”

[오르그의 파괴 본능]

콰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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