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화
【 히든 피스 】
흔히.
홀로 뛰어난 무용을 발휘해 수많은 적을 베어 냈을 때, 그를 일컬어 토끼 무리에 떨어진 호랑이와 같다 표현한다.
당장에 내가 그랬다.
“케에에에엑!!”
‘다리.’
슈우우우욱―
콰직!
대각으로 찔러 들어오던 촉수에.
[베어 내기]
서걱!
“케에엑― 켁…….”
쿵!
[현재 나의 공적치 : 166(산술법 확인▼)]
오른발을 살짝 빼 회피하며 자연스럽게 왼발에 힘을 실어 돌진해 뻗은 왼팔로 괴물 하나를 갈라 공적치로 환산하길 잠시.
“크르륵! 크하아아!”
투우웅―!!
‘공기탄?’
[마력 방패]
손끝에 묻은 핏물을 털어 낸 나는 후방에서 날아든 총탄 형식의 풍압에 방패를 비스듬하게 세워 방어하고서.
‘원거리엔―’
텁!
꽈아아아악!!
‘원거리로.’
일어나던 자세 그대로 반으로 베여 죽은 괴물의 시체를 쥐어틀며 100kg도 넘을 듯한 살덩어리를 야구공인 양 뒤로 내던진다.
“하아!”
후우웅―
콰아아앙!!
변변찮은 기술도 섞이지 않은, 온전히 순수한 근력만으로 쏘아 냈으나.
흡사 전차에서 미사일을 발포하기라도 한 것처럼 굉음을 내며 적잖은 사상자를 발생시킨다.
[현재 나의 공적치 : 167(산술법 확인▼)]
[현재 나의 공적치 : 168(산술법 확인▼)]
[현재 나의 공적치 : 169(산술법 확인▼)]
[현재 나의 공적치 : 174(산술법 확인▼)]
그 이펙트에 비례해서 무더기로 쌓이는 공적치.
나는 꾸준하게 증가하는 숫자를 힐끔 쳐다보며 쉬지 않고 마력을 전장에 쏟아부었다.
[티그리스의 대지 비틀기]
쿵―
쿠구구구구궁!!
발길질 한 번으로 반경 15m를 뒤집어 놓으며.
쿵!
[돌진]
콰앙!
발길질 두 번으로 돌격.
그리고 일권(一拳).
툭―
“키엑?”
[오르그의 파괴 본능]
콰아아아아앙!!
“키에에에엑!!”
“그어어억!”
[현재 나의 공적치 : 174(산술법 확인▼)]
삑―
[현재 나의 공적치 : 219(산술법 확인▼)]
“후.”
토끼 떼를 바라보는 호랑이의 심정이 어떠할는지 확실하게 알 것 같았다.
* * *
[혹한의 방벽이 공격받고 있습니다.]
[혹한의 방벽이 공격받고 있습니다.]
[혹한의 방벽이 공격받고 있습니다.]
“…저게 뭐야.”
“…다 괴물이라고?!”
느닷없이 공습 소식에 인스턴스 던전을 공략하다 말고 즉각 퇴장해 입구로 달려온 한세정들은 방벽을 두들기는 수백 마리의 괴물들을 보며 입을 떡 벌렸다.
각양각색의 종자들로 시야에 닿는 지역 전체가 새까맣게 물들어 있었으니까.
물론.
감상은 찰나였다.
[혹한의 방벽이 공격받고 있습니다.]
인간을 발견하고 더욱 흥분한 놈들의 아우성으로 인해 방벽이 거의 절반가량 부서져 한가로이 구경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공격해!!”
“어, 어!”
“저는 저쪽으로 가겠습니다!”
“제가 왼편 창문을 맡을게요!”
“저는…….”
균열이 이는 방벽에 정신이 퍼뜩 든 한세정의 고함을 필두로 각자 위치를 잡아 가는 5인.
창문을 열고 창칼을 찔러 착 달라붙은 놈들의 대가리와 몸통을 걸리는 족족 찍어 없앴다.
허나.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시원찮았다.
“하아!!”
서걱!
“케게겍―”
“므우우우우우우!!”
쿵!
베고, 찌르고, 또 베고 찌르고.
연신 무기를 놀려 봐도 사방을 꽉 채운 괴물들의 수는 영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에.
‘뚫려선 안 돼!’
한세정은 이를 악물어야 했다.
자신들에게 있어서 ‘안전지대’는 단순히 집의 역할만 하는 게 아니었다.
아윤이 여유롭게 수색을 다닐 수 있는 것도, 다섯 명이 한꺼번에 던전 공략에 몰두할 수 있는 것도 다 ‘혹한의 방벽’이라는 방패가 존재하기에 가능한 일.
따라서.
저 방패가 파괴되면 이때까지처럼 편리하고 자유로운 생활을 더 이상 영위할 수 없게 될 터이니.
“반드시 막아야 해!!”
한세정은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기합을 터트리며 다시금 칼자루를 내질렀다.
5분, 10분.
가상의 던전을 돌며 한창 피나는 싸움을 벌이고 온 탓에 피로감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지만, 칼 휘두르는 걸 멈추지 않았다.
적어도 아윤이 돌아올 때까지는 버텨야 하기에.
“하아압!!”
…하는 심정으로 어금니를 꽉 깨물며 단검 ‘흑묘살의 날카로운 송곳니’를 찌르던 그때.
삑―!
[‘반대편 신호기’에서 신호가 전달되었습니다.]
한 줄의 메시지가 한세정의 눈앞을 가린다.
신호기 1회.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하다.
“오빠? 아윤 오빠!”
아윤의 귀환이었다.
콰아아아아앙!!
신호기가 울리고 채 10여 초가 지나기도 전에 울려 퍼지는 요란한 소리.
‘오빠!’
잔뜩 찡그려져 있던 한세정의 입가에 미소가 돋는다.
“세, 세정아!”
“형님!”
다른 이들의 감정도 비슷했다.
들불처럼 피어나는 안도감. 어두웠던 안색은 온데간데없고 눈동자는 초롱초롱하게 빛난다.
그래서 외쳤다.
“나가자!”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자고.
아윤이라고 해도 수백 마리의 괴물을 홀로 상대하기는 무리일 터. 그럼에도 그가 망설임 없이 투쟁 전선에 발을 디딘 건 자신들을 위해서다.
허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정답은 뻔하다.
“다들 준비해!! 나가서 싸운다! 아윤 오빠를 돕는 거야!”
돕는 거다.
그 결단은 빨랐고, 명령을 거부하는 이는 없었다.
“열겠습니다!”
“여는 동시에 재우 씨가 오른쪽을 봉쇄해!”
“예!”
[철혈의 술―2단계]
[대군 방벽]
슈우우욱―
촤르르르르르륵!!
정문을 열어젖히자마자 하달된 한세정의 명령에 곽재우가 우측 방면으로 붉은 방벽을 세워 올리며 괴물들을 막아서는 사이.
“신지유! 우드 월!”
“드라이어드!”
우우우웅―
촤아악!
촤악!
촤아아아아악!!
동일한 명을 받고 배턴을 터치한 신지유도 드라이어드를 움직여 왼편에 저지선을 구축했다.
비록 근처에 나무가 많지 않아 순전히 정령의 힘으로만 이뤄 내야 했기에 높이나 두께가 곽재우에 비해 대단치는 않았으나, 어찌 됐든 간에 이로써 좌로든 우로든 진격로가 봉쇄된 건 자명한 사실.
“가자!”
“오케이!”
“제가 선두를!”
“누나! 내 뒤로 와!”
“난 걱정하지 말고 너도 조심해.”
한시적으로나마 정면만 커버하면 되는 한세정들은 그동안 억눌려 있던 분노를 토해 내기라도 하는 양 방어 태세를 풀고 거침없이 진격해 나갔다.
사냥에 나선 5인의 공격법은 다양했다.
[용독술]
[하독편―열화분]
*열화분(熱火粉) : 피부에 닿으면 살갗이 타는 듯한 통증을 유발하는 가루 독
화아아악―
투둑―
치이이익!!
치이익!
“끼요오오옥!”
“케엑! 켁!”
기초적이기는 해도 나름 공을 들여 개발한 독을 던지기도 했고.
[천강홍의장군]
[혈액량 충족]
[부가 효과 : 강격]
우우우우웅!!
“하아아!!”
콰앙!
쾅!
흑골갑에 선혈을 더하며 파죽지세의 검격을 발휘하기도 했으며.
[악의 징벌자]
휘이이이익―!
“읏, 차!!”
[칼론드 기사단 기본 창술]
슈우욱!
콰직!
또는 여기사의 혼영과 일체화해 여태껏 갈고닦은 창술을 선보이거나.
[미래 예지]
[아드유로 용병단 기본 검방술]
“왼쪽 심장! 오른쪽 옆구리!”
슈욱!
슉!
“지금!”
휘이이익!
서걱!
미래를 읽고 한 발짝 빠른 대응으로 카운터를 먹이거나.
“드라이어드! 우드 스피어!”
[기초 정령 마법 : 드라이어드편]
[우드 스피어]
촤르르르륵―
투우웅!
투웅!
“키에에에에엑!”
“으어어어어어!!”
슈우우욱―
콰직!
콰직!
“케에엑―”
“어, 어어억…….”
거친 눈발에 숨겨 투척한 마법으로 상대의 목숨을 빼앗으며 각자의 방식으로 승리를 거머쥐었다.
그 자잘한 전적은 ‘전쟁’이 아닌 ‘전투’에 국한된 승전이었지만.
“좋았어!”
지휘관인 한세정이나 그녀의 통솔을 따르는 네 명이나 크게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메인은 저쪽.
콰아아아앙!!
자신들은 호응만 해 주면 됐다.
아윤이 더 편히 날뛸 수 있도록, 아윤이 더 안정적인 상황에서 활약할 수 있도록. 한세정은 오로지 괴물들의 신경이 분산되는 것에만 집중했다.
전투를 이어 전쟁에서도 이기기 위하여.
* * *
“하아, 하…….”
“수고했어.”
나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한세정에게 다가가며 주변을 쓱 돌아봤다.
꼬박 10여 분의 격전을 치르고 나서야 평화가 도래한 전장.
수백 구의 시체가 단체로 뿜어내는 혈향에 코가 마비될 것 같은 현장에서 벗어나고자 기진맥진한 한세정들을 일으켜 얼른 근원석부터 수거하는 데 열중했다.
총합.
“…822개라.”
822개의 근원석을 거둬야 했으니까. 모조리 1등급이라는 걸 감안하고서라도 어마어마한 양이었다.
이 엄청난 재화를 어디에 써야 하나.
“신지유, 신지운.”
고민은 길지 않았다.
“네?”
“네?”
“가서 방어구를 맞추고 와.”
이러저러한 연유로 계속해서 미뤄 왔던 신지유와 신지운의 세트 장비를 맞춰 줄 시간이었다.
평소처럼 던전 공략에만 매진할 수 있는 시국이라면야 기술을 추가 구입하거나 복용으로 스탯을 올렸으리라.
하지만.
지금은 ‘이벤트 : 절망의 파도’로 괴물들과 부대끼게 된 형편이니, 방어구를 맞추는 게 우선이었다.
“오래 걸려도 좋으니 저번에 설명해 준 세트 아이템 효과를 받을 수 있으면서도 본인에게 어울리는 장비로 구매해.”
“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신씨 남매는 내가 근원석을 건네주자 허리를 꾸벅 숙이고는 곧장 상점으로 달려갔다.
그러길 3분쯤 지났을까?
끼이익―
“…음?”
의외로 금세 쇼핑을 마치고 나오는 두 사람.
손에는 투구에서부터 신발까지 총 다섯 부위의 갑옷이 정갈하게 포개진 상태였다.
뭐지?
의아한 얼굴을 하자 싱긋 웃은 남매가 내게 구매 목록이 적힌 종이를 보여 주며 설명을 덧붙였다.
“휴가 때 미리 봐 뒀어요. 세트 아이템 효과가 나오는 아이템인지는 확실하지 않아서 조금 불안했는데, 다행히 둘 다 세트 아이템이네요.”
“아.”
어쩐지.
“잘했다.”
나는 철저한 준비성을 보여 준 둘에게 대견하다는 칭찬을 해 주며 ‘장비 구매 목록서’로 시선을 옮겼다.
[장비 구매 목록]
1. 신지유
《사냥꾼의 녹색 두건》
《사냥꾼의 경량 갑옷―상의》
《사냥꾼의 경량 갑옷―하의》
《사냥꾼의 수렵용 장갑》
《사냥꾼의 수렵용 신발》
[세트 효과(5)―숙련된 사냥꾼 : 순발력 +15 / 무기 : ‘활’ 사용 시 적중률 및 관통력 9% 향상 / ‘짐승형’ 사냥감 사냥 시마다 체력 0.1% 회복 / ‘지형 : 숲’에서 이동 속도 5% 상승]
2. 신지운
《용병 길드 보급품―머리 보호대》
《용병 길드 보급품―상의》
《용병 길드 보급품―하의》
《용병 길드 보급품―건틀릿 》
《용병 길드 보급품―신발》
[세트 효과(5)―애송이 티를 벗은 용병 : 근력 +10 / 체력 +8 / 순발력 +8 / 내구 +6 / 전투 종료 후 체력 및 마력 회복 속도 5% 향상]
‘나쁘지 않네.’
목록을 쭉 확인한 나는 둘이 제법 잘 선택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점을 보완하면서도 장점을 끌어올리는 세팅이라.
이 녀석들.
육체적인 면모뿐 아니라 정신적으로 아주 잘 숙성되어 있었다.